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69화 (369/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19)

각각의 주둔지엔 현지인 장사치와 매춘부들이 공공연히 돌아다녔다. 천한 아랫것들이 지옥 같은 열대우림에서 갈려나가는 동안, 귀하신 몸들은 후방에서 향락을 소비하며 기습과 암살에 대한 불안을 잊으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군공을 탐내어 서묘포파에 참가한 공산귀족들은 본토에서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은 자들이다. 이들의 목표는 제2의 가오슈센이 되는 것. 광저우 소요 당시의 가오슈센이 그러했듯이, 전장에서의 명성과 중앙당의 총애를 얻으려면 최소한 전장에 머물기는 해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정작 하급귀족들의 롤 모델인 가오슈센은 가장 높은 관위(官威)에도 불구하고 가장 외지고 소외된 부지에 맹룡기의 진채를 차려놓았다.

나는 처음엔 가오슈센이 자신의 명성으로 이곳에서 세력을 모을 가능성을 고려했었다. 이익이 합치하면 하루가 아니라 차 한 잔 마실 시간만 주어져도 세력결성이 가능한 게 공산귀족이라는 족속들이니까.

그러나 경태는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가오슈센은 이미 성공한 대기업 포지션이고 서묘포파의 하급귀족들은 골목상권의 소상공인 포지션입니다. 그러니 겉보기만으로는 초심자들의 사냥터에 웬 모친출타한 썩은 물이 와서…… 아니, 웬 양심도 없는 고수가 와서 사냥감을 싹쓸이하려는 꼴인데, 먼저 사냥터에 와있던 초심자들이 좋아할 턱이 없죠.”

그 말대로였다. 제2의 가오슈센을 꿈꾸는 자들은 선발주자의 그늘에 가려지기를 원치 않았다.

더구나 가오슈센은 가문과 소속된 계파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 힘은 한참 전부터 와있던 가오슈센의 사촌이 장악하고 있었기에.

그 사촌은 가오슈센이 아니라 가오닝후이를 지지했다. 가오슈센이 제 사촌의 군공을 의뢰하던 걸 기억하는 나로서는 기분이 조금 묘해지는 것이었다.

피로 이어진 사촌조차 잠재적 적성세력으로 경계해야 하는 입장에서, 가오슈센이 저 홀로 나머지 모두를 따돌리는 듯한 곳에 주둔지를 정한 건 생존을 위해서라도 불가피한 일. 어차피 가오슈센은 무명(武名)을 드높이지 않고선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몸이다.

마침내 눈에 들어온 맹룡기의 이능엽사들은 표정들이 하나같이 우거지상이었다. 화려한 도회지 생활을 하다가 하루아침에 오지로 끌려왔으니 불만이 없을 수가 있나.

그래도 진지는 견고하게 구축해놓았고, 경계태세도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다.

“핵심 표적이 확인되십니까?”

나는 경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보인다.”

꼴에 방탄장구를 갖춰 입은 가오슈센은, 위장막을 덮어씌운 지휘막사에 홀로 들어앉아 바지를 끌어내린 채 불완전한 자위행위를 하는 중이었다. 제대로 서지 않는 양물을 멍한 표정으로 주물럭거리는 모습은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에 노출된 인간의 그것이었다.

가오슈센의 정수리는 둥글고 반들반들하게 비어 초라하고도 우스꽝스러운 인상을 더했다. 원형탈모가 심하게 와, 마치 중세시대의 수도사들을 보는 듯하다.

우리는 경계근무자들의 밀어내기식 교대가 이루어진 직후부터 외곽 경계선을 조용히 침식해 들어갔다. 경계태세를 갖췄다고는 해도, 조직적인 실전경험이 전무한 데다 아직 민주화 진영 게릴라들의 습격을 받아본 적도 없는 이능엽사들은 내 마법과 내 부하들의 손에 차근차근 죽어나갔다.

지향성 음파로 뇌를 진탕시키고, 탄소원자가 붙은 질식성 기체를 모아 참호에 들이붓고, 흡음결계를 전개하는 한편 투시력에 기대어 부하들을 지도하고.

밀어내기 교대의 다음 주기가 찾아왔을 때, 경계임무를 맡고 있던 맹룡기의 엽사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누워있었다. 막사에서 쉬거나 잠들어있던 자들까지 마저 정리하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밤의 고요를 깨지 않으며 백이십 남짓한 인명을 살상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분가량.

내가 지휘막사로 들어서자, 가오슈센은 거의 경기를 일으키다시피 펄쩍 뛰었다.

“누, 누구야?!”

바지가 발목까지 내려가 있었으므로, 의자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가오슈센은 억 소리를 내며 앞으로 쓰러졌다. 바닥을 안면으로 들이받아 코뼈가 부러진다. 그러나 혈중 아드레날린 농도가 치솟은 가오슈센은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몸을 굴려 후다닥 뒤로 기었다. 턱 끈이 풀려있던 방탄모가 데굴데굴 굴러 주인에게서 멀어졌다.

나는 뒷짐을 지고서 곧 도축할 돼지를 내려다보았다. 뒤따라 입구를 걷고 들어온 미주는 살색 사타구니를 드러낸 돼지를 발견하고는 더러운 것을 봤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뒤로 기다 말고 멈춰서 눈을 꿈벅이던 가오슈센이 이내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동사장? 박 여사?”

가오슈센은 자기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표정이었다. 잠시 후, 제 아래를 내려다본 돼지가 숨을 삼키며 급하게 다리를 오므렸다. 그러고는 헛된 희망을 담아 더듬더듬 물어왔다.

“혹시, 나를, 도와주러 온 거요?”

“어떨 것 같소?”

질문에 질문을 돌려주자, 나와 미주를 번갈아 응시하던 가오슈센이 천천히 눈매와 어깨를 늘어뜨렸다. 경태가 전에 말했던 것처럼, 가슴 속 깊은 곳에서는 진실을 눈치채고 있었던 사람이 보일 법한 모습이었다.

“아니겠지……. 큽……. 내 팔자에 그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경독들의 이반을 감지한 시점에서 나 역시 저로부터 돌아섰음을 깨달았어야 정상이다. 말끝을 흐린 가오슈센은 아이처럼 눈을 비비며 구슬피 울기 시작했다.

“그치만…… 이건 좀 너무하는 거 아니오……? 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왜 하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온단 말이오……?”

이러더니, 별안간 미친 인간이 발작을 일으키듯 막사 바깥으로 소리를 질러댔다. 거기 아무도 없느냐고. 여기 외부인이 침입하지 않았느냐고. 당장 나를 구하러 달려오라고. 누군가, 누군가, 누군가.

고래고래 내지르는 소리가 듣기 싫었는지, 미주는 가오슈센을 군홧발로 걷어차 침묵시켰다.

“시끄럽다.”

옆구리를 맞은 가오슈센은 짧은 시간 호흡곤란에 시달렸다. 그렇잖아도 코피를 흘리느라 숨쉬기가 불편했던 인간이다. 맞은 곳을 부여잡고 버르적대던 공산귀족은 숨이 돌아오자 다시금 굵은 눈물을 쏟아냈다.

“윽, 흐윽……. 동사장까지는 내가…… 이해를 하겠소……. 하지만, 흑, 박 여사……. 당신은 왜 그토록 차가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요……? 나는 당신에게…… 큽, 항상 좋은 남자가 되려고 노력해왔건만……. 적어도 당신 한 사람만큼은…… 내게 동정과 연민을 주어야 맞지 않소……?”

미주는 서늘하게 대꾸했다.

“개소리 집어치워. 그동안 네 역겨운 언행을 참아주느라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알아? 너는 살아 숨 쉬는 매순간이 너를 살리고 죽은 사람을 욕되게 만드는 인간 쓰레기였어.”

“그게 나를 그런 눈으로 보는 이유요……? 내가 나를 위해 몸을 던진 서 형(兄)을 부끄럽게 만드는 사람이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요……?”

미주가 까딱 끄덕이자, 가오슈센이 울상으로 웃으며 도리질을 쳤다.

“아닌데……. 드넓은 중국 땅에 나만한 호한(好汉/사내대장부)이 또 어디에 있다고…….”

미주는 또 한 번 가오슈센을 걷어찼다. 갈빗대가 부러진 공산귀족은 벌레처럼 바닥을 기며 꺽꺽거렸다. 나는 손을 들어 미주를 진정시킨 후, 「생명」을 운용하여 가오슈센의 고통을 덜어주었다. 심문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조카의 비리를 가장 잘 아는 것이 숙부를 비롯한 다른 친족들이었던 것처럼, 숙부의 비리를 가장 잘 아는 건 조카를 비롯한 다른 친족들인 게 당연하다. 숙부에게 쫓겨 여기까지 온 조카라도 부러진 비수 한 자루쯤은 간직하고 있을 터.

체념한 분위기의 가오슈센은 묻는 질문마다 무저항으로 답을 내놓았다. 이렇게 협조적으로 구는 한편으로 은근히 때늦은-그리고 부질없는-거래를 제안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가망이 없음을 아는지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았어도.

‘거래를 하려면 진즉에 했어야지.’

굶주린 돼지의 식탐과도 같은 욕심을 반의 반만 내려놓았어도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보를 충분히 우려낸 내가 두어 발짝 물러나 미주에게 고갯짓을 하자, 죽음을 직감한 가오슈센이 황급히 시간을 벌었다.

“잠깐, 잠깐만……! 내가 박 여사에게 줄 것이 있소……!”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뒤집어 엉금엉금 기어간 가오슈센은, 위장패턴이 들어간 가방으로부터 두꺼운 책으로 위장된 휴대용 금고를 끄집어냈다. 다시 절반쯤을 기어온 가오슈센이 미주를 향해 급하게 금고를 내밀었다.

“여기, 이걸 받으시오……. 이 안엔 내가 국내외에 은밀히 숨겨놓은 자산들에 접근하는 열쇠들이 들어 있소……. 비록 그대는 나를 역겹다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대를 사랑하오……. 그러니 내 마지막 유산은 당신이 가져갔으면 좋겠소……. 왜 그렇게까지 나를 혐오스러워하는지는 도통 모르겠소만……. 나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모습으로 기억해주시구려…….”

“…….”

미주는 나아가 금고를 받아드는 대신 가만히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시선의 온도. 점점 더 울상이 짙어지던 가오슈센은, 힘없이 금고를 내려놓고는 억지로 미소 지으며 물었다.

“그래도 말이오, 내가 얼굴은 좀 괜찮게 생긴 편이지 않소?”

날카로운 총성이 울려 퍼졌다. 툭 떨어져 구르는 구릿빛 탄피 하나. 미주가 쏜 권총은 내가 예전에 건네주었던 바로 그 총이었다. 미간에 구멍이 뚫린 가오슈센이 뒤로 드러누워 축 늘어진다. 마름모꼴로 벌어진 다리와 사타구니가 흉물스럽게 느껴진다. 미주는 죽은 돼지의 양물과 고환에 대고 몇 발의 사격을 추가로 가했다.

“기분이 어떠냐? 괜찮으냐?”

내가 묻자, 미주는 부드러우면서도 조금은 쓸쓸한 느낌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예. 상상하던 것과 조금 다르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막혀있던 속이 트이는 기분이 듭니다.”

“그건 다행이구나.”

나는 염동력으로 금고를 띄웠다.

“이건 정말로 가져가지 않을 셈인가? 금액이 상당할 텐데.”

“괜찮습니다. 조직의 재정에 보태주십시오. 그게 어떻게 저 개인의 이득일 수 있겠습니까?”

미주는 돼지가 남긴 유산에 손도 대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현장을 이탈하기 전, 우리는 시체들을 가까운 우림 속으로 집어던진 후 교전 흔적을 위조했다. 그러곤 곳곳에 연료를 뿌리고 광범위한 방화를 실시했다.

추후 흔적을 분석한다면, 게릴라들의 유인에 말려들어간 맹룡기와 가오슈센이 조직적인 화공에 당했다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 허술하고 미심쩍은 구석이 아무리 많아도 그 외에 다른 답을 도출할 수가 없을 테니까.

이 사건의 미스터리함은 가오닝후이 감찰주임이 언제까지고 스스로 알아서 삼가도록 만들어줄 또 다른 불편함이기도 하다.

이날 이후, 전승절의 전야에 이르기까지, 내 계획을 방해하는 요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국안부의 경감들은 내가 안배해둔 단서들을 쫓아 테러용 무인기들의 실물을 확보해냈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한 기체들을 분석하여 내가 만들어둔 결함을 찾아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아바빌(ابابیل) 무인기의 결함을 찌르는 전파방해는, 샤히디의 이름으로 후속 시행된 무인기 테러들을 번번이 좌절시켰다. 중국은 이를 자국이 보유한 최첨단 전자대항조시(电子对抗措施/전파교란) 기술의 승리라고 자화자찬했다. 사실 기술적으로는 대단할 게 없었지만, 외부인들이 알 게 뭐란 말인가.

이때 중국의 승리감에 작게나마 재를 뿌린 게 마무르와 그 일당이 날린 비둘기 드론이었다. 조작적 조건화를 거친 생체 유인모듈은 전파방해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목표물을 타격했다. 위력과 정밀도가 들쭉날쭉하긴 했어도, 어쨌든 성공은 성공이었다.

이 일은 중국 국가주석의 체면을 건드렸다.

연이은 테러로 민심이 술렁이자, 주석 본인이 나서서 방첩기관의 성과를 과시하며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담화를 발표했는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존재 자체가 황당한 비둘기 드론이 등판한 것이다.

진노한 시○핑 주석이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호통을 쳤다는 보도가 나오자, 마무르는 일전에 게임에서 승급인지 뭔지를 했을 때만큼이나 즐거워했다.

“내가 핑핑이를 화나게 했다! 나는 빨갱이들의 감정을 지배할 수 있다!”

비둘기 드론의 성과는 당초의 계획에 지장을 주는 요소가 아니었다. 성공 여부와 별개로, 살아있는 비둘기를 탑재한 무인기의 비루함은 「샤히디 그룹」의 밑천이 다 떨어졌다고 판단케 할 재료였으니까.

9월 1일. 나는 마무르를 베이징의 지하거점으로 데려왔다. 성전연합을 상대로는 이제껏 베이징 거사 계획의 보안을 유지하고 있었으되, 추후 이슬람 세계에서의 영향력을 원활히 확대하려면 현장에 참관인을 두는 편이 좋을 것이었기에.

마침내 진정한 거사의 상세한 전모를 접한 마무르는 다시 한 번 광희하여 외쳤다.

“드디어! The 개쩌는 지하드! 브랜드 뉴 테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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