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64화 (364/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14)

8월 17일. 악어들이 죽었다.

내 부하들이 트랩을 해체하는 작업만 중단해도 근시일 내로 목숨이 끊어질 것들이었으되, 대마법사의 인시를 써가며 각성시킨 괴물들은 조금 더 극적이고 가치 있는 방식으로 최후를 맞이해야 마땅했다.

베이징 하수도의 두 식인악어는 국가주석이 직접 관련 담화를 발표할 만큼 중요한 문제가 되어있었다. 즉 관계부처의 실무자들 입장에선 사태 해결이 지연될시 줄줄이 목이 날아갈 위기였다. 나는 3인의 경감들에게 각자의 울타리(취엔즈/圈子) 내부에서 이번 사태의 해결로 덕을 볼 수 있는 자가 있으면 추천해 올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번 일을 도울 내 부하들은 해외에서 초빙한 각성체 악어 추적 및 몰이사냥의 전문가들로 포장되었다. 경감들의 꽌시에 들어있는-혹은 이번 일을 계기 삼아 들어오기로 한-아랫사람들은 자신들이 계파의 덕을 보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추적과 몰이는 전문가들이 하고, 괴물들의 목숨은 자신들이 끊으며, 그에 따른 인사고과 또한 온전히 자신들이 받아먹는 것으로.

악어들은 내 체취에 쫓겨 지상으로 내몰렸다.

그리고, 일단 지상으로 나간 악어들은 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던 군경의 화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경제논리와 부수적 피해를 무시하기로 작정할 경우, 이 세상에 인류가 죽이지 못할 자연각성체 따윈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레이디 아밀라리아」나 「전율하는 거인」 같은 초월적 자연각성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첫 번째 악어는 8월 17일 새벽에 인민대회당과 접한 서장안로(西长安路)의 아스팔트 위에서 박살이 났다. 사인은 머리에 직격으로 꽂힌 대전차미사일. 장소가 장소인지라, 죽기 전의 악어는 인상적인 사진과 영상들을 남겼다.

두 번째 악어는 같은 날 저녁 자금성 서쪽 난하이(남해/南海)의 중심부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원래는 조금 더 동쪽으로 몰아 명(明) 대의 성루 앞에서 죽일 요량이었으나, 경감들이 동원한 아랫것들의 손발이 맞지 않아 뜻하지 않게 중국공산당의 급소를 위협하게 되었다. 3인 4각의 불협화음이 문제였다.

난하이 중앙에 있는 영대(瀛台)는 청나라 시절부터 황제의 거처였던 곳이다. 초대 중공황제 마오쩌둥도 당연히 이곳을 뜯어고쳐 처소로 삼았고, 류샤오치와 덩샤오핑 같은 후임자들도 마오쩌둥의 전례를 본받았으며, 지금에 이르러서는 국가주석의 관저 겸 최고위 공산귀족들의 사무실과 연회장으로 기능하는 장소였다.

악어가 하필이면 이 난하이로 기어들어오자, 주석의 경호를 담당하는 8341부대엔 비상이 걸렸다. 국가주석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키는 정예부대는 감히 금지(禁地)를 범한 악어를 가죽만 멀쩡한 연체동물로 만들어 죽였다. 나는 야전군 출신이라는 8341부대의 사령관이 제법 유능한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두 악어는 각각 아침뉴스의 속보와 저녁뉴스의 속보가 되어 사태의 종막을 장식했다.

나는 3인의 경감을 화상으로 호출하여 식은 어조로 질책했다.

“이번 일은 실망스럽군. 그대들은 어떻게 된 게 주는 것도 받아먹질 못하오? 내가 대자들을 위해 손수 차린 밥상을 남이 차지하고 앉아 퍼먹는 꼴을 봐야겠소?”

내가 노기를 드러내자, 경감들은 화면 너머로 마주하는 분노임에도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버거워했다. 이마가 반들반들하게 되어 눈알만 굴리던 셋 가운데 먼저 입을 연 것은 장타이롱이었다.

「너무 노여워하진 마십시오, 동사장님. 비록 한 마리는 중앙경위국(8341부대)에게 양보하긴 했습니다만, 국가주석께선 저희를 특별히 언급하여 치하하셨다고 합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던 사태를 빠르게 종결짓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말입니다.」

나는 다시금 눈살을 찌푸렸다.

“그 국가주석이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소?”

「죄, 죄송합니다.」

“내게 죄송하라고 하는 소리가 아니오. 그렇잖아도 입지가 불안정한 그대들인데, 일이 잘못되었으면 살아남을 수나 있었겠느냔 말이오. 십중팔구 국안부의 모든 책임을 떠안고 숙청이나 당했겠지. 내 말이 틀렸소?”

「아닙니다. 정확한 말씀이십니다. 그저 저는 저희의 불민함으로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을 따름입니다.」

“자폭 무인기 밀수 추적은 잘 되어가는 중이오?”

「물론입니다. 주신 단서가 매우 정확하여 당장 오늘내일이라도 결실을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서두르시오. 언제 흔적이 지워질지 모르는 일이니.”

「예! 이번만큼은 절대로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이런 질책은 기강을 잡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상대가 ‘대국’의 공산귀족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처자가 외국에 볼모로 잡혀있고, 내 능력에서 이제껏 바닥을 목격한 적이 없으며, 부정한 정보유출의 증거들을 차곡차곡 적립하고 있기까지 한 이 가짜 대자들은 향후 아무리 지위가 높아져도 내 앞에서 거만하게 굴기 어려웠다. 그간 내 지시에 따라 유출한 국안부의 기밀들만 하더라도 이들에겐 하나하나가 심장을 찌를 비수와도 같다.

‘9월 3일엔 연막차장에 더 신경을 써야겠군.’

두 번째 악어가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 죽은 탓에, 난하이 일대의 경계태세는 전보다 더 강화되었다.

모스크바에 핵전쟁을 대비한 비밀지하철(메트로-2)이 있는 것처럼, 천안문과 자금성 주변엔 지하에 깔린 왕복 4차선로와 벙커들의 연결망이 존재했다. 국무원, 천안문 광장, 인민대회당, 국방부, 군 병원 등을 잇는 비밀스러운 네트워크가.

이 연결망에 주둔하는 병력이 증강된 것은 내게 다소 불만족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인민해방군 최고의 정예라고 해도 좋을 8341부대의 제일가는 존재목적은 어디까지나 국가주석 한 사람의 생명과 안위를 지키는 것.

즉 천안문 광장에서 테러가 발생하더라도, 이 강력한 전투부대가 지하로부터 쏟아져 나와 즉각 사태진압에 나설 일은 없다는 뜻이다. 정확한 상황을 판단하기 어렵고 이쪽의 규모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선 주석과 주요 요인들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겠지.

“가오슈센을 처리하는 건은 진행상황이 어떻소?”

화제를 바꾸자, 거짓 대자들은 내 기분을 풀 기회라 여겼는지 앞다퉈 아첨하듯 상황을 보고해왔다. 자신들이 그 상황에 어떻게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대해서도.

가오슈센의 가장 큰 적은 그 자신의 우유부단함이었다.

가문의 실질적인 가주이자 성(省)급 정부의 최고감찰권자인 숙부를 들이받으면 가오슈센 자신도 결코 무사할 수가 없다. 승산 자체가 낮을뿐더러, 어렵게 이기더라도 가지고 있던 부와 권력은 거의 다 잃어버린 다음일 테니까.

건곤일척의 복수를 감행할 것인가, 아니면 굴욕을 인내하며 권세를 보전할 것인가.

세 경감은 말했다.

「당과 조국에 떳떳치 못한 일을 해야 할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건 역시 피로 이어진 친족들이지요. 그러니 가오슈센 서기가 저지른 부정의 증거를 가장 많이 쥐고 있는 것 역시 친족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친족들의 정점에 있는 게 숙부인 가오닝후이 감찰주임이니, 가오 서기가 복수를 도모하려면 문자 그대로 목숨까지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동사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가오 서기는 가진 재산과 권력을 쉽게 포기할 만한 성품이 못됩니다. 하물며 목숨은 어떻겠습니까?」

「노회한 정치원로답게, 가오닝후이 감찰주임은 조카가 망설이는 틈을 타 착실하게 포위망을 구축하는 중입니다. 물론 거기엔 저희가 기여한 바가 크지요.」

「이대로 가면 싸움은 감찰주임의 부전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 경감은 숙부가 조카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는 과정을 우연히 감지한 척 숙부에게 접근했다. 이때 세 경감이 인지한 ‘공격계획’은 숙부가 실제로 세운 계획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치명적인 것이었다. 여러 부정의 증거들을 엮고 부풀림으로써 있지도 않은 내란 모의의 행적을 꾸며냈으니까.

당연하게도, 가오닝후이 감찰주임은 인민영웅 칭호를 수여받은 조카를 완전히 끝장낼 의도가 없었다. 그러면 가문의 성세가 눈에 띄게 위축될 것이 아닌가. 숙부에게 있어서 최상의 시나리오는 조카가 현실과 타협을 택하는 것이었다. 혹은, 타협을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주거나.

조카를 죽이는 건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나 고려할 선택지다.

그러나 세 경감은 “그분은 우리의 은인이다. 제발 죽이지만 말아 달라.”며 자신들이 ‘인지한’ 숙부의 공격계획을 넌지시 흘렸다. 몽둥이를 들고 있던 사람에게 총기를 쥐여 주고서 방아쇠를 당기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꼴.

가오닝후이 주임은 경감들이 보내는 신호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피차 다 알면서 의뭉을 떨어대는 교감을 거쳐, 주임과 경감들 사이엔 마침내 비밀스러운 협력관계가 성립했다.

이러는 동안 가오슈센은 소모적인 가정사에 심력을 낭비하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게 아니야. 당신이 부족했던 거라고!」

경감들이 국안부의 자산을 동원해 감청한 가오슈센과 그 아내의 통화. 이 통화에서, 과거 간음을 저질렀던 아내는 도리어 언성을 높이며 남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다.

「세상에 남편이 잘나가고 잘하는데도 바람을 피우는 아내는 없어! 여자의 불륜은 반드시 남자가 원인을 제공하는 거야!」

「내가 나 혼자만 좋자고 큰아버님이랑 잔 줄 알아? 내 희생이 없었으면 당신이 지금처럼 출세할 수나 있었을 것 같아? 광저우에서 다른 친척들 다 밀어내고 당신이 큰아버님의 후광을 입은 게 순전히 당신 능력인 줄 알았니?」

「나 아니었으면 당신은 아직도 너절한 경독 계급장이나 달고 있었을걸? 여기저기 굽실대고 다니면서 돈도 못 벌고 진급도 못 하는 만년과장 신세였겠지!」

「당신도 힘들었고 나도 힘들었어. 그런데 겨우 도달한 이 행복을 왜 깨려고 하는 거야? 친척에게서 자식을 입양해서 대를 잇는 집들도 많은데, 그냥 조용히 넘어가면 안 돼? 그럼 우리는 앞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 이제껏 그랬듯이.」

「당신도 나 말고 다른 여자들이랑 자잖아? 왜 당신은 되고 나는 안 돼?」

「뭐? 내가 잠자리를 거부하기 전까진 그런 적 없었다고? 하, 웃기지 마. 내가 이래봬도 당신 아내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지.」

「됐고, 우리 커신(可欣)이한테 용돈이나 다시 보내.」

「요즘 아끼고 아껴서 한 달에 15만 달러 정도밖에 안 쓰는 앤데, 어떻게 남자가 애한테 주는 용돈을 끊을 생각을 해? 애가 돈을 못 쓰면 고급스러운 꽌시를 못 만들고, 고급스러운 꽌시를 못 만들면 당신 젊었을 때랑 똑같이 비루해지는 거야! 웬만한 호텔에서 스위트 잡고 슬립오버(파자마 파티) 한 번만 해도 4만 달러가 넘게 들어가는걸!」

「부모는 자식을 가슴으로 키운다고 했어. 그런데 이제껏 가슴으로 키운 애를 하루아침에 남처럼 취급하려고? 니가 그러고도 사람이니?」

이 녹취를 들은 경태는 우스꽝스럽게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해 보였다.

“따흐흑…… 이 시대의 참된 호구 가오슈센 서기님……. 당신은 결혼하기에만 좋은 권력형 현금인출기……. 그래도 불쌍하지는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가오슈센은 이런 데 시간과 심력을 허비할 때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가오슈센은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지기만 하는 대화와 화풀이로 스스로를 소모하며 숙부에게 대응하기 위한 골든타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가족과 혈연은 인간의 원초적인 약점임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그래도 이 인간이 중화공산귀족으로서 살아오며 제2의 본능처럼 길러온 판단력을 잃어버리지는 않아, 제 가문의 내홍(內訌)과 거리를 두고 아무것도 모르는 양 의뭉을 떨어대는 경감들을 곧바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 경감들이 새로이 끈을 대고 있는 후원자가 나다. 그러므로 경감들의 이반이 경감들 자신의 처세술이든, 아니면 내 의사가 반영된 행동이든, 가오슈센 입장에선 경감들을 다시 제게 돌려놓으려면 나와 담판을 짓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 얼간이는 나를 상대로 무언가 뚜렷한 요구를 전달하지도 않았다.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는 공산귀족이 자신의 치부를 스스로 드러내기란 어려운 일.

게다가 가오슈센은 아직 복수를 하겠다고 확실하게 각오를 정한 것도 아니었다. 각오를 정하지 못했으니 구체적인 요구도 내놓을 게 없는 셈이다. 유사시를 대비해 제 으뜸 패인 나를 불러놓기는 해야 할 것 같아 린페이를 다그치고 있을 따름. 가오슈센은 내가 지금 중국에 와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런데 가오슈센의 이러한 우유부단함엔 경감들이 알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가 따로 존재했다.

바로 사랑에 대한 갈망이었다.

내 조직과의 비상연락선을 가동한 가오슈센은, 나보다 미주를 먼저 찾아 멍청이 같은 질문을 던졌다.

「혹시 말이오……. 박 여사께선 돈도 권력도 없는 평범한 남자와도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아직 해외에 머무는 것으로 되어있는 미주에게 기껏 비상연락선을 가동해서 묻는다는 질문이 이랬으니, 아무리 가벼움을 가장한들, 받는 입장에선 진지한 질문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정신적으로 잔뜩 몰려있는 본인만 모르고 있을 따름.

요컨대 이 시점에서 가오슈센이 돈과 권력을 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미주였던 것이다. 모든 부귀영화를 걸고서라도 부딪혀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혹여 상처뿐인 승리 이후 미주와의 연이 끊어질까 두려운 마음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

중국지부의 책임자로서 돌아가는 사정을 대충 알고 있던 미주는 이 덜떨어진 등신에게 대단히 적절한 대응을 해주었다.

경태는 미주의 대응을 ‘희망고문이 더해진 어장관리’라고 표현했다. 나는 어장관리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고, 뜻을 들은 다음에는 적절한 표현임을 인정했다.

경태는 다시금 장난스레 우는 시늉을 했다.

“따흐흑…… 진짜 연애는 한 번도 안 해봐서 의외로 가지고 놀기 쉬운 개찐따 순정마조 가오슈센 서기님……. 이번에도 역시 불쌍하지는 않습니다…….”

진짜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다 함은 이성과의 대등한 연애관계를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의미였다. 듣기로 현 아내와의 만남은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 자유연애가 아니었다 하고, 그 이후엔 돈과 권력을 보고 미소 짓는 고독들만 상대해왔을 게 뻔한 것을.

미주가 화상으로 보고하는 자리에서 경태는 미주를 짓궂게 놀려댔다. 남심을 그토록 능란하게 다루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고. 이런 쪽의 경험이 아주 풍부한 모양이라고.

내 눈치를 살피며 아니라고 민망해하던 미주는, 놀림이 길어지자 갑자기 정색을 했다.

「저 정말로 그런 사람 아닙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나를 보며 다시 강조했다.

「믿어주십시오, 형님. 제가 이성을 마음에 둔 것은 죽은 서갑수 부장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래.”

이런 쪽으로의 내 믿음이 왜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 화면 너머의 미주가 매우 진지한 눈빛이었으므로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말았다. 갑수에 대한 연정이 자신에게 유일하고 특별한 것이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건가 싶기는 했다. 어쩐지 기시감이 들기도 하고.

신색을 정돈한 미주가 말하기를, 가오슈센은 통화 내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말을 병적으로 반복해서 입에 담았다고 했다. 마치 강박증을 앓는 사람처럼.

처지를 보면 강박증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내와 숙부는 자기도 모르게 떡을 치는 관계였고, 제 자식인 줄로만 알았던 딸은 사실 딸이 아니라 사촌동생이었던 셈이니.

혈연과 가족에 대한 집착은 개인의 생존성을 너무도 크게 저하시킨다.

사흘 후 만난 린페이는 알몸으로 벌벌 떨며 내 앞에 오체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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