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61화 (361/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11)

영상 소스를 전달해주자, 본사 홍보실은 간만에 재미있는 일감이 들어왔다며 열성적으로 실력을 발휘했다.

조직 본사 홍보실의 가장 중요한 소임은 매스 미디어와 온라인 매체들을 활용하여 조직의 실체를 은폐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수적으로는, 내가 신규 조직원들에게 목숨을 빚 지울 때, 혹은 기존 조직원들의 고충을 해결해줄 때, 특정 사건에 대한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호도하는 기능도 수행하고 있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사교육팀의 내부교육용 영상자료 제작에도 협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듯 경험이 풍부한 미디어 전문가들에게 비참함과 비장함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저 조명하는 방향과 각도를 조금씩 바꾸는 것만으로도, 담아내고 전달하는 감정의 방향성이 180도 달라지곤 하는 것이다.

내가 제공한 ‘비참함’에 힘입어, 중국은 이번 「베이다이허 항공테러 미수 사건」을 당과 인민의 승리로 받아들였다.

「보십시오. 분연히 출격한 당의 전사들이 극단주의 이슬람(伊斯兰) 공포분자들을 일방적으로 압도하여 섬멸하는 모습을!」

중국의 관영매체들이 내보내는 영상은 9할 9푼이 내게서 나온 것들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나 이외의 누가 당시의 상황을 다각도로 풍부하게 담아낼 수 있었겠는가.

중공 중앙선전부의 입맛까지 고려하여 선별한 영상들 속에서, 베이다이허를 지키는 세력의 활약은 영웅적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통제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던 공역에 과밀하게 몰려, 그저 충돌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던 빨갱이 공중기병들조차 용맹무쌍하게 싸우고 놀라운 전투력을 발휘한 것처럼 포장되었을 정도.

이는 경독들의 공로를 완성하는 최후의 한 수이기도 했다.

사람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동물이며, 관록 있는 최고위 공산귀족들 또한 사람의 본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실책은 감추고 성과는 부풀리고 싶었을 하급자들 역시 줄줄이 왜곡된 보고를 올렸을 게 뻔한 상황. 중공의 지도부는 보고와 영상의 일치를 토대로 사실관계를 파악했을 것이다.

물론 본인들이 직접 겪은 게 없지야 않겠지. 그러나 안전한 지하 벙커에서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채 뭘 얼마나 듣고 보았겠는가.

이와 반대로, 내가 퍼뜨린 ‘비장함’에 힘입어, 이슬람권에서는 이번 「베이다이허 의거」를 결의에 찬 성전사들의 안타깝고도 숭고한 실패로 받아들였다.

반세기 이상 신앙과 민족을 탄압해온 항거불능의 거악(巨嶽). 그 거악에 맞서 치밀한 준비와 결사의 각오로 의거를 감행했으나, 결국 적 수괴의 거소(居所)를 코앞에 두고 피를 흩뿌리며 무너져 내린 알라의 전사들.

이 슬픈 결말은 전 세계의 무슬림들에게 깊은 감명을 선사했다.

최초로 유포된 영상의 조회수는 불과 7시간 31분 만에 천만 뷰를 돌파했고, 만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전체 영상들의 조회수 합계는 1억을 가볍게 넘어섰으며, 알림 샤히디의 SNS 계정들은 폭발적인 기세로 팔로워가 증가했다.

복수의 SNS 계정을 운영하는 건 당연히 수연이 관리하는 홍보실 소속의 프로젝트 팀이었다. 여기엔 메리옘과 그 동생들의 자문 및 업무보조가 있었으므로, 언어와 종교의 장벽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메리옘은 신을 배알하는 사제의 공순함으로 보고했다.

“이 세상 모든 승리와 영광의 주인이시여. 당신께서 도모하시는 일에 무기와 자금을 후원하거나 전사로서 가담하고 싶다는 간절한 요청들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점에서, 신원이 확실한 자들이 헌납하고자 한 금액의 합계는 미화로 5천 7백만 달러가량이었습니다.”

5천 7백만 달러. 아랍권 대부호들의 재력을 고려하면 그렇게 대단한 금액이라고 보기 어렵지만, 주목해야 할 건 이게 단 하루 만에 들어온 비밀 메시지들을 집계한 후 그들이 제시한 소통창구를 통해 1차적인 대화를 나눠본 결과라는 점이었다.

신원이 확실한 자라 함은 SNS 서비스 제공자들이 계정 주인의 신원을 확인한 자라는 뜻이다. 요컨대 이슬람 세계에서 사회적 명성이 상당한 명사들이라는 의미.

주겠다는 돈을 받지 않을 이유는 없다. 일단 돈을 받고서 정말로 큰 건을 터뜨려주면, 성전의 후원자들은 자신의 기여에 대한 보람과 성취감, 그리고 종교적인 고양감을 느낄 터이므로. 그렇게 되면 나중엔 더 큰 자금을 기꺼이 내어놓게 되어있다.

마무르도 비슷한 소리를 이상한 언어로 지껄였다.

「나는 알아요. 지금쯤이면 샤히디의 배후에 있는 싸장님에게 천국행 도네이션 문의가 쏟아지고 있을 것이다. 싸장님이 게시한 영상들이 너무나도 슬프고 감동적이었기 때문에. 영상 속 전사들의 최후는 이 냉혹무비한 마무르조차 눈물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큰손들의 도네이션이 들어오면 무조건 받아놓아야 합니다. 그러면 큰손들은 다음 테러를 싸장님과 알림 샤히디의 성의 충만한 리액션으로 받아들일 것이에요.」

「도네이션과 리액션의 선순환은 큰손들에게서 육수를 짜내는 최고의 전략이다. 싸장님은 크고 아름다운 후속 테러로 그들의 무발기 사정을 유도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싸장님이 운영하는 성전 채널의 노예가 되어 제발 내 돈을 더 가져가라고 외쳐댈 것이다. 성전 경력 16년에 인터넷 방송 시청 5년 경력의 전문가인 이 마무르가 보장해요.」

낯설고 천박한 표현들이 많아 절반 이상은 문맥으로 의미를 짚어내야 했지만, 대충 내가 생각했던 바와 맥락이 같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이슬람 세계 내에서 사회적·종교적 영향력이 큰 명사들의 열성적인 지지는 런던을 겨냥한 내 동원력을 끌어올리는 데 유익하게 작용할 터.

후원자들의 자금이 추적당할 가능성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무방했다.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알 카에다가 성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이래, 이슬람권의 대부호들은 이런 쪽으로 이미 많은 경험들을 쌓아왔으니까. 이들이 초벌로 세탁한 돈을 받아 내 회사의 방식으로 한 번 더 세탁해주면 추적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다.

「샤히디 그룹」의 SNS 계정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폐쇄되는 수가 늘어갔다. 원인은 물론 중국 정부의 압력, 그리고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을 차단하는 SNS 자체의 운영규범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위압에도 아랑곳 않고 일찌감치 차단은 없다고 못을 박은 기업들의 존재는, 앞으로의 선전 활동에 매우 긍정적인 요소였다.

중국에게 대놓고 엿을 날린 첫 번째 기업은 파키스탄 계 영국인이 무슬림 전용 SNS를 표방하며 세운 곳이었다. 명목상의 명분은 「우리는 사용자를 검열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으나, 실제로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무슬림들의 강한 지지 여론, 그리고 영국과 중국의 험악한 외교관계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았다.

또 하나의 기업은 미국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해당 기업의 실질적인 주인은 자신의 SNS 계정에 이런 글을 남겼다.

「그들의 계정을 폐쇄하라고? 내가 왜?」

작성자는 다름 아닌 미국 대통령이었다. ‘그들’이 누구인지, 또 폐쇄하라는 요청은 어디서 왔는지 언급하지 않은 멘션이었으되, 이 멘션이 어디를 겨냥하여 던지는 말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차별과 혐오를 부추긴다는 이유로 기존의 SNS에서 잦은 차단을 당했던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기업을 물려준 자녀들로 하여금 새로운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만들도록 했다. 이 나라엔 진정한 자유와 진실을 담아낼 SNS가 필요하다면서.

「미국의 대통령은 어떤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는다. 하물며 미국의 자유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간섭이라니!」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발언의 자유가 없다. 왜냐면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 내다버린 자유를 내가 되찾아 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9.11을 경험한 미국이 유사한 테러를 당한 나라의 입장에 공감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번에 공격을 받은 건 미국의 특허와 기술을 훔치고 불공정한 무역으로 미국 경제를 강간하던 경제강간범들의 나라다. 내가 왜 그들의 처지에 공감을 해야 하나?」

이렇듯 폭언을 쏟아내는 백악관 미치광이의 입장과는 별개로, 미국의 추적은 마땅히 대비해야 하는 바였다. 예산을 절감하느라 인적 첩보자산을 많이도 말아먹은 미국 정보기관들이지만, 통신 분야의 감시능력은 여전히 압도적이었으니까.

고로 SNS의 운영은 술타나의 왕국, 성전연합의 근거지인 중앙아시아 4개국, 그리고 주술사 왕의 영지인 탄자니아를 경유함으로써 추적을 지난하게 만들었다. 중계 릴레이의 거점마다 점조직 형태로 뿌려둔 현지 피고용인들은 내 조직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저 업무지침에 따라 단순노동을 반복할 따름.

임마누일이 이야기했던 ‘비용을 도외시한 보안성’이었다.

비용을 도외시한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보안에 예산을 많이 쓴다 뿐이지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딱히 수익사업을 추진하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흘러들어오는 중국의 방첩예산 덕분에 적잖은 돈을 벌어들이는 중이었으므로.

예산절감에 미쳐 인적첩보는 죄 외주를 줘버리는 미국과 달리, 중국은 인적 첩보자원을 대단히 중시하는 나라다. 그리고 중국 국안부 입장에서, 세 경독이 구축한 정보라인- 즉 내가 만들어놓은 가상의 창구들은 하루가 다르게 효용가치의 고점을 갱신하는 첩보자산이었다.

「오늘 3억 위안의 긴급예산이 추가로 할당되었습니다. 전부 저희가 재량으로 쓰되, 확실한 성과를 가져오기만 하라는 지시입니다.」

베이다이허 테러 다음날 장타이롱으로부터 들어온 연락. 기쁨을 억누르는 어조로 내게 몇 번이고 깊은 감사를 표한 장타이롱은, 조심스러우면서도 공손한 저자세를 유지하며 내게 추가예산의 용처를 물어왔다.

요는 이런 돈이 있으니 언제 어떻게 얼마나 드리면 되겠느냐는 뜻이었다. 그렇게 돈을 드린 후엔 언제쯤 다음 첩보를 입수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기도 했고.

이때의 장타이롱은 의외로 3급 경감이 되어있었다. 장타이롱만이 아니라, 후샨량과 판하이산 또한 함께 특진을 했다는 것.

“어떻게 된 일이오? 계파 정리가 끝나기 전에는 승진이 어렵다고 하지 않았소?”

내가 묻자, 장타이롱은 국가주석의 의지를 입에 담았다.

「주석께서 직접 지시하신 사안입니다.」

“주석이?”

「예. 사실 실적만 따지면 저희는 진즉에 1급 경감까지 올랐어도 이상할 게 없잖습니까? 전후 상황을 세밀히 보고받으신 주석께서 친히 인사명령을 내리셨다더군요.」

“그럼 계파 문제는 정리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거요?”

나는 일이 좀 쉽게 풀리나 싶은 기대를 품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절반의 긍정에 불과했다.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가오 서기와의 관계가 정리되지 않는 한, 주석께서는 저희를 중용하는 데 부담을 느끼실 수밖에 없지요.」

국안부를 선점하고 있던 충성파들의 입장에선 주석이 새로운 계파를 들여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이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보통 군주가 새로운 친위세력을 육성한다는 건 기존의 세력을 견제하거나 숙청하기 위한 준비단계에 해당한다.

조금은 기대가 있었는데, 21세기 시황제를 꿈꾸는 독재자라고 해도 독재 권력의 지지기반을 이루는 꽌시의 그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지…….’

말로는 절대적이지 않은 충성은 절대로 충성이라 할 수 없다 운운하지만, 이렇게 떠들어대는 공산귀족들의 충성은 개인으로서의 충성을 의미하는 경우가 사실상 없다고 봐도 좋았다. 소속된 계파 전체가 운명을 함께하는 ‘충성의 덩어리’인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세 경감도 사실은 개인으로서 내게 충성을 바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덕을 본-혹은 보고자 하는-아랫사람들과 하나의 운명공동체 덩어리를 이루고 있을 테니까.

꽌시에 기대지 않고선 출세가 불가능한 이 나라의 귀족사회엔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개인이라는 게 존재할 수가 없다. 그리고 쉽게 저버릴 수 있는 것은 꽌시가 아니다. 꽌시를 저버리는 자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기 십상이었다.

꽌시와 취엔즈(圈子)를 이루는 인맥의 사슬은, 여러 인맥들의 중심인물, 즉 취약한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단숨에 두셋 이상의 파벌로 분열되는 경우가 많았다. 세 경독을 묶어두고 있는 취약한 연결고리가 바로 가오슈센인 것이고.

“일단은 알겠소.”

나는 지시사항을 하달했다.

“자금은 원래 전달하던 계좌들로 분할 입금하시오. 입금 주기는 그대들이 알아서 잘 조절하도록 하고. 그중 1할은 그대들의 가족들에게 차명계좌로 전달될 거요.”

「1할이요?」

“왜, 너무 적소?”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 말입니다. 저희가 받는 배려로 인해 현장에 가는 돈이 너무 줄어들면, 그, 정보원들의 의욕이 저하될지도 모르잖습니까. 이번에도 그렇게나 중요한 첩보를 제공해 주었는데 보상이 좋지 않으면……」

이제 어엿한 중견 공산귀족의 반열에 든 자의 입에서 리베이트가 너무 많다는 소리가 나오는 건 대단한 일이었다. 그만큼 내가 물려주는 돈과 연속적인 진급이 만족스러운 것일 테지.

내 거짓된 3인의 대자들은 내가 극단주의 무슬림들과 위구르 무장독립 운동가들 사이에 간자를 심어두었노라 믿고 있었다.

내가 거둔 위구르인들은 메리옘 그룹과 샤히디 그룹을 제외하고도 세 개 그룹이 더 있었으며, 그 세 개 그룹을 가지고 간자의 존재를 꾸미는 건 간단한 일이었다. 의심병이 도진 국안부가 검증에 나서더라도 이상점을 찾긴 불가능할 테지.

“염려 마시오. 돈이야 내가 적게 가져가면 그만이니. 내게는 한낱 금전보다 그대들의 출세와 중국의 안정이 더 큰 이익이오.”

「간부(干父)님…….」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 그리고 내가 이미 가진 돈이 얼마이며, 아프리카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또 얼마라고 생각하시오? 그깟 몇 억 위안쯤은 있으나 없으나 차이가 없는 푼돈이오.”

내가 주술사 왕의 영역에서 행하는 자원 밀무역은, 지금처럼 확대되어 나간다면 연 매출액이 2천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규모였다.

화물을 운반하는 건 대부분 중국 국적 선사나 중국이 차린 위장기업들의 역할이지만, 내가 챙기는 중개수수료만 해도 중국이 가져가는 이익의 총합을 능가한다. 옛 제국주의 국가들이 왜 그렇게까지 불공정한 통상조약에 집착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라 해야 할까.

그레이스가 자기 군대를 무장시키고자 넘겨준 이권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말 그대로 전쟁만 할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

나를 대하는 경감들의 공손함은 이런 면에서도 잘 보존될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