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60화 (360/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10)

저지선을 구성하는 해군 초계함들의 시선을 수상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무인 자폭보트 중 하나는 따로 피격을 당하거나 하지 않아도 거리를 두고 알아서 폭발하도록 세팅되어 있었다.

낮은 확률이긴 하나, 이는 초계함들이 무능의 극치를 달리는 대처로 보트 돌격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면 베이징 테러 이전까지 중국에게 완벽하면서도 연속적인 승리를 선사하겠다는 목표에 지장이 생길 터.

반대로 초계함의 장교진과 승조원들이 매우 유능하다면, 해상에서의 위협과 공중에서의 위협에 동시에 대응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바라는 수준의 연출은 실패다. 완벽한 승리를 안겨주는 것과 극적인 상황 연출은 서로 별개의 문제였다.

‘전 세계의 성전박이들을 충분히 예열시켜놔야 하니까.’

그러나 나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질적인 수준을 믿었다. 명색이 정예라고는 하나, 실전경험이 전무한 해군 함정들이 갑작스러운 사태에 처음부터 효율적인 대응을 보일 리가 있나.

또한 부패한 나라의 부패한 군대에선 훈련 및 인사의 평가에도 부정과 파벌정치가 만연하기 마련. 위에서는 결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 담긴 평가보고서를 받아볼 수 없고, 그저 군인으로서의 의무에만 충실한 자들은 출세의 사다리에서 도태된다.

그런즉 나는 여기서 얻어갈 것만 제대로 얻어 가면 되겠지.

당에 충성하는 엽사병단의 탈을 쓰고 해상과 해변 곳곳에 배치된 내 부하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각도에서 위구르 지하디스트들의 장절한 죽음을 담은 영상 소스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중국 정부는 자국에 불리한 영상자료의 송출 및 확산을 통제할 테니.

영상매체를 활용한 선동은 때로 수천 발의 폭탄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무기다.

나는 조금 전까지 흘러간 생각에서 약간의 얼룩 같은 위화감을 느꼈다.

‘……성전박이?’

깨닫고 보니, 내 생각의 갈피에 경태가 쓰는 언어가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마법이 돌아온 이후 경태 녀석과 함께 현장을 뛸 일이 많아져서 그런가, 시일이 흐를수록 내 언어와 사고가 자꾸만 오염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요즘 젊은 세대의 언어라고 치면 반드시 나쁘다고 할 일만은 아닐지라도.

두 초계함의 대응은 내가 예상한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름뿐인 정예가 전투흥분으로 시야가 좁아진 결과라고 해야 할까.

CCA 5760을 위시한 세 대의 화물기는 초계함들의 개함방공구역을 무저항으로 돌파, 해변으로부터 3킬로미터 거리에 설치된 크립 밸러스트 차단선 위를 통과했다. 그 부근에서 해양각성체의 침투에 대비해 순찰을 돌던 디핑 소나(Dipping Sonar) 탑재 드론 바이크 기수들이 크게 동요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시점에서 화물기들은 시속 9백 킬로미터까지 가속한 상태였다. 호화 별장단지를 직격하기까지 남은 대응시간은 고작 20여 초.

“어? 어어어?! 저거, 저거!”

전망이 좋은 주루 내부에서도 사태를 눈치챈 자들이 하나둘 창밖으로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한다.

“도망쳐!”

의자에 앉은 채로 넘어지는 자, 갑작스러운 상황을 소화하지 못해 두 눈을 크게 뜨고 뻣뻣하게 굳어버린 자, 비명과 고함을 지르며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나는 자, 통로가 막히자 의자를 집어던져 전면의 유리창을 깨고 뛰쳐나가는 자 등.

입구를 지키던 무장경찰은 각성능력자의 힘을 살려 누구보다도 신속하게 달아나버렸다.

나와 경태를 눈여겨볼 여유 따위 누구에게도 없는 아수라장 속에서, 나는 봄빛으로 우린 차를 마시며 화물기들의 진행경로와 타격목표를 눈에 담았다.

깨진 유리창을 통해 상쾌하지만은 않은 바닷바람이 새어 들어온다. 공산귀족들의 휴양지라 할지라도, 중국 대륙의 내해 연안은 기본적으로 맑고 깨끗할 수가 없는 곳이었다.

슈화아아아악-!

바람과 함께 밀려드는 로켓모터의 추진 소음. 백악관의 옥상에 언제나 대공미사일 사수들이 대기하고 있듯이, 중국 국가주석과 공산귀족들이 머무는 별장 건물들 근처에도 당연히 대공미사일을 휴대한 각성능력자 경호세력이 자리하고 있었다.

국안부로부터의 경고- 즉 세 경독들의 경고가 늦지 않게 도착했는지, 이들은 해군 함정들이 드론 공격을 받기 시작할 즈음부터 벌써 발사절차를 개시한 상태였다.

개인 휴대가 가능한 견착식 대공미사일(맨패즈)은 발사 전 반드시 추적 장치 냉각과정을 거쳐야 한다. 분리해서 보관하던 배터리와 냉각장치(BCU ; Battery/Coolant Unit)를 결합한 후 30초 안팎의 급속냉각을 실시해야만 비로소 발사가 가능해지는 것.

고로 경독들의 경고가 없었다면, 베이다이허 회의의 최종 대공저지선은 기능을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파국을 맞이했을 터다. 조기경보의 유무가 빚어내는 결정적인 차이였다.

지상으로부터 수십 발의 대공미사일들이 고속으로 솟구치자, 쇄도해오던 화물기들이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과 연기의 날개를 펼쳤다. 과거엔 이스라엘의 민항기들이나 탑재했으나, 이제는 세계 각국의 국적항공사들이 보편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적외선 교란 수단(플레어) 방출이었다.

화물기의 체급이 체급이다 보니 뿌려지는 플레어의 양도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따돌리기엔 미사일의 숫자가 너무 많았고, 성능도 우수했다.

콰쾅! 콰콰쾅!

수십 발의 대공미사일들이 피라냐 떼처럼 화물기들을 물어뜯었다. 엔진에 불이 붙고, 날개는 찢어지고, 동체엔 구멍이 뚫린 화물기들은 곧 조종 불가 상태에 빠져 빠르게 고도를 상실했다. 이대로라면 세 기체 모두가 해변에서 5백 미터 이상 이격된 해수면에 격돌할 것이었다.

그러나 극의 절정은 이제부터였다.

긴 연기를 물고 떨어지는 화물기들의 좌우에서 폭발이 일고 파편이 튀어 오르는가 싶더니, 말에 올라탄 알라의 기수들이 일제히 뛰쳐나왔다.

말은 영리한 동물이다. 염동력을 쓰는 이중각성체로 이루어진 무리에서, 허공을 밟고 달릴 줄 아는 개체가 하나만 있어도 한두 달만 지나면 무리 전체가 하늘을 질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번 테러에 투입된 각성체 말들 중엔 본디 내가 내 조직원들을 위해 준비해두었던 준마 무리의 일부가 포함되어 있었다. 실제로 현장업무에 투입한 적은 없으되, 말의 회로를 열어두는 게 내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니까.

기수를 태운 전마들은 각각의 후미에 서로 다른 문구가 적힌 기다란 깃발(Plane Banner)을 하나씩 끌고 있었다.

「신은 위대하시다」 「위구르 독립 만세」 「민족과 신앙의 적들에게 죽음을」 「알라께서는 믿는 자들의 자유를 축복하신다」 「죽어라 시○핑」 등등.

다만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고 뒤엉키는 깃발들도 적지 않았는데, 이는 말을 다루는 기수들의 역량이 형편없는 탓이었다. 샤히디 그룹에 속한 자들이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최소한의 기승 훈련을 거쳤으나, 나머지 기수들은 고작 사나흘 가량 각성체 전마를 경험해보았을 따름.

그나마 각성체 낙타라도 타보았던 관록 있는 지하디스트들은 부족한 대로 기수라고 불러줄 만한 기량을 선보였으되, 그렇지 못한 나머지 다수는 그저 멋대로 달리는 말의 안장 위에 가까스로 매달려있는 게 최선이었다.

그럼에도 추락하는 비행기들로부터 뛰쳐나온 기병들이 느슨하게나마 단일한 방향성을 유지하며 달려올 수 있는 것은, 말들이 무리의 우두머리를 뒤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굳은 땅을 밟고자 하는 본능 또한 있었다. 아무리 허공을 달릴 능력이 있다지만 그것이 단단한 지면이 주는 안정감을 대신할 순 없으니까.

전술마갑을 씌운 각성체 전투마와 중갑을 착용한 기수, 그리고 「가시나무」에 준하는 성능을 지닌 인마(人馬)용 다중 스펙트럼 길리슈트의 조합은 가짜 빨갱이들의 허를 단단히 찌르는 것이었다.

“알라! 후! 아크! 바아아아아르!”

성전사들의 외침이 뚝뚝 끊어지는 원인은 극악한 기승감(騎乘感)에 있었다.

신경이 잔뜩 곤두선 채 바람을 밟으며 달리는 말들은, 지상으로부터 광선처럼 그어져 오는 예광탄 줄기들을 본능적으로 회피하려 들었다. 마갑에 피탄 충격이 가해지기라도 할 때엔 화들짝 놀라 광란에 가까운 방향전환을 선보이기도 했다.

매순간마다 중력가속도를 턱턱 걸어대는 가혹한 탈것 위에 앉아서 전장의 함성을 내지르는 건 썩 현명한 일이라고 볼 수 없었다. 나는 기병대의 말발굽 아래로 잘린 혀 반쪽이 떨어져 내리는 광경을 목격했다. 알라를 찬양하다가 거세게 혀를 깨문 지하디스트의 유실물이었다.

해당 지하디스트는 안장이 들썩일 때마다 코와 입으로 핏물을 흘리거나 뿜어댔다. 혀가 잘린 것에 당황하여 제 피를 삼키다 사레가 들린 탓이다. 발과 몸을 안장에 고정시켜두지 않았다면 추락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겉보기만으로는 비장함의 극치인 장면이다. 그도 그럴 게, 사정을 모르고 본다면 피를 토하면서도 돌격을 멈추지 않는 결사적인 성전사 그 자체가 아닌가.

지하디스트들이 흔들리는 지향사격으로 난사해대는 총기는 내가 말의 몸속에 숨겨 기내로 반입하도록 한 것들이었다. 「생명」을 활용하면 어려울 것도 없는 일. 해당 부위의 통각이 차단된 말은 배를 가르는 그 순간에도 멀뚱히 서있었을 것이다. 저가 무슨 일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쿠우우우우우-!

CCA 5760기가 해수면에 부대끼며 미끄러진다.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 화물기가 거칠기 짝이 없는 착수로 굉음을 동반한 물보라를 일으켰다.

충격과 손상이 누적되어있던 화물기들은 동체가 부러져 빠르게 가라앉기 시작했으나, 그럼에도 순식간에 해수면 아래로 삼켜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미사일 피격으로 발생한 내부 화재가 동체를 불태우며 검은 연기를 확산시켰다. 누출된 항공연료가 실시간으로 화마의 기세를 키워준다. 세 방향에서 추락한 화물기들이 세 방향에 대한 연막을 차장하는 꼴이었다.

연막이 피어오르는 방향에 전개된 중국 측의 전력은 이 순간 일시적으로 화력을 투사할 능력을 상실했다. 그만큼 지하디스트 기병대의 명줄이 길어진 것이다. 상황에 압도당한 드론 바이크 기수들의 굼뜬 반응을 보건대, 시간으로 따지면 일이십 초 정도일까.

내 옆에선 경태가 태블릿과 창밖의 풍경을 번갈아 살피며 침착한 무전으로 부하들을 통제했다.

“응, 그래. 라인배커 3, 위치 변경. 라인 감마에서 라인 베타로. 라인배커 2는 현 위치를 고수하며 계속해서 오조준 제압사격을 가하도록. 다들 아주 잘하고 있어.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끝까지 지금처럼만 가자고.”

본디 오조준은 화기의 영점이 맞지 않을 때, 혹은 탄도가 바람의 영향을 심하게 받을 때 그 오차를 감안하여 조준을 수정하는 기교를 의미하지만, 지금 내 부하들이 공안 특무부대를 가장하여 가하는 오조준 사격은 문자 그대로 일부러 빗나가게 쏘는 사격이었다.

지하디스트 기병대를 멀리서 비껴 쏘는 내 부하들의 제압사격은, 중국 측의 공중 전력이 기병대의 취약점을 노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수단이었다.

육상 방면에서 출격한 군경과 친정부 엽사병단의 제트 바이크들은 내 부하들의 교묘한 방해로 말미암아 제대로 된 조직력을 발휘하지도, 효과적으로 화력을 집중하지도 못했다.

친정부 엽사병단 다수가 띄운 제트 바이크들은, 시나리오상 미리 계획된 증원인 동시에, 외견상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또 하나의 교란수단이기도 했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경독들은 자신들이 적시에 예비전력을 호출하여 증원으로 보냈다고 믿겠지. 사후 보고를 받을 상부 또한 그렇게 판단할 테고.

그러나 제한된 공역에 명령계통이 상이한 비행전력을 무더기로 밀어 넣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화려하고 요란하지만 실속은 없는 전장의 완성이다.

이런 전장에 있는 거라곤 병력 운용의 끔찍한 저효율뿐. 중국의 공중기병들은 공격을 위한 기동보다 사선 회피와 충돌 회피를 위한 기동을 훨씬 더 많이 수행해야만 했다.

지하디스트 기병대의 생존시간을 연장해주는 또 하나의 장치였다.

이 모든 배려 속에서, 알라의 중장기병들은 하나하나 피를 뿌리고 죽어가면서도 소수가 살아남아 해변의 모래톱을 밟는 데 성공했다. 근처에 배치되어있던 중국 군경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난다. 앞서 광저우에서 숱하게 보았던 광경들이었다.

“알라 후 아크바아아아아르!”

경태는 허락을 구하듯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까딱 끄덕이자, 경태가 무전기를 쥐고 상황을 마무리 지을 명령을 하달했다.

“연극은 끝났다. 퇴장시켜. 전부.”

다음 순간, 대구경 저격탄에 급소를 맞은 지하디스트들이 일제히 피를 뿌리며 죽음을 맞이했다. 축 늘어지는 몸뚱이들.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팔과 손을 타고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러나 기수의 몸이 안장에 고정되어 있었고, 내 부하들이 말들의 생명까지 끊지는 않았으므로, 말들은 숨을 거둔 기수들을 등에 매단 채 이리저리 내달리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군경의 화력을 끌어들이는 표적 역할을 수행했다.

말이 펄쩍 뛸 때마다 기수의 시체도 허수아비처럼 튀었고, 뒤에 달린 깃발 또한 바람을 타고 길게 펼쳐졌다.

「알라께서는 믿는 자들의 자유를 축복하신다」

최후에 펼쳐진 깃발 속의 문구. 내가 손을 쓸 것도 없이 만족스럽게 막을 내린 연극이었다.

바람이 잦아들며 깃발의 마지막 펄럭임도 가라앉는다. 최선두의 지하디스트가 흘린 피는, 호화 별장단지의 외곽 담장으로부터 불과 칠십여 미터 떨어진 모래톱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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