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59화 (359/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9)

산동반도와 요동반도 안쪽의 바다, 발해(보하이/渤海)에 면한 소도시 베이다이허엔 중국 공산당 고위관료들을 위한 거대 휴양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고대 진나라 시절 행궁 유적을 중심으로 북쪽에는 전국인민대표회의 휴양소와 전국정치협상회의 간부 연수원 등이 들어서 있고, 남동쪽으로 둥그스름하게 돌출한 곶에는 그 유명한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리는 호화별장단지가 존재한다.

베이다이허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별장단지와 접한 기나긴 동쪽 해변 전체가 중국 군경의 엄격한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된다.

특히 이 해변에서 별장단지와 거의 붙어있다시피 한 베이다이허 제36호 주점(36号楼海景酒店/36호루 해경주점)은 입구 앞에 각성능력자 무장경찰이 고정적으로 배치될 만큼 경비가 삼엄했다. 회기 내내 공산당의 귀하신 분들과 그 2세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장소인 데다, 해변공원과 백사장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우수한 감제지점이기도 했기 때문.

이곳에 저격수가 침입할 경우 백사장을 거니는 모든 공산귀족들이 잠재적 표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런 곳에 내가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는 것은 내 위장신분이 그만큼 완벽한 덕분이었다. 내가 제시한 경찰증을 본 군경들은 각 잡힌 자세와 경례로 예의를 갖췄다.

긴 모래해변 북쪽에는 벽라탑(碧螺塔)이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솟아있었다. 이름은 푸른 소라고둥(벽라)이지만, 조명으로 물들이지 않는 낮 시간 동안에는 통상시야를 기준으로 하얀 소라껍데기를 닮아있는 탑이었다.

나는 전망이 좋아 보이는 탑을 보며 생각했다.

‘차라리 저기서 지켜보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군.’

내가 이곳에 와있는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경독들에게 배짱이 부족한 탓이었다.

앞서의 통화에서, 꾸며낸 자초지종을 들은 후샨량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더듬었다.

「과, 과연. 일전에 이능 전마(戰馬) 조달계획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셨던 게 바로 이 일 때문이었군요. 저희는 당신께서 전마 밀수에도 손을 대시려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 역시 중국의 국익에 보탬이 되는 일이니…….」

나는 대답했다. 그대들의 경쟁 계파에 성과를 만들어주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할 만큼 내가 궁핍한 사람은 아니라고. 중국의 국익 따윈 내 알 바가 아니며, 내게는 그대들과 함께 나누는 ‘우리의 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이후 이어진 다자간 통화에서, 경독들은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에 테러 음모를 저지하고 싶어 했다. 아니면 하다못해 공해상에서 격추시켜버려야 안전하리라고.

상하이 테러는 일개 군항이 목표였으나, 베이다이허 테러는 중국 주석과 공산당 핵심관료들을 겨냥한 것. 따라서 두 사건을 받아들이는 경독들의 자세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내 요구를 관철했다.

테러리스트들의 실패는 이번에도 극적이어야만 한다고.

납치당한 항공기들은 베이다이허 앞바다에 추락하거나, 중국 주석과 전인대 상무위원들이 볼 수 있는 하늘에서 불덩어리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이게 다 그대들 잘되라고 하는 조언이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미리 저지해봐야, 높으신 분들에게는 말 한 마디 보고서 한 줄이라도 전해지면 다행이지. 그대들의 경쟁 계파가 필사적으로 일을 축소하려 들 게 아니겠소?”

돌아올 보상을 극대화하려면 이 나라 모든 가짜 빨갱이들의 정점, 21세기 시황제에게 깊은 인상을 줄 필요가 있다. 경독들은 내 말을 반박하지 못했으나, 만에 하나의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온 요청이 이것이었다.

「그럼 동사장님께서 무명회사의 정예를 거느리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주십시오. 광저우 소요 당시 영웅적인 활약을 펼치셨던 동사장님께서 뒤를 받쳐주신다면, 저희도 안심하고 일을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절제된 생색을 한 번 곁들여 요청을 수락했다. 일정이 바쁘긴 하지만, 그대들이 내게 중하니 시간을 내보도록 하겠노라고.

중국 군경이 너무 무능하거나, 반대로 항공기를 납치한 무슬림들이 지나친 유능함을 발휘할 경우엔 어차피 내가 손을 써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 상황의 변화를 확실하게 관측할 수단으로는 역시 황금기의 눈만 한 것이 없었다.

주루 내부는 배경 소음이 상당했다. 중국인들의 대화가 기본적으로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TV에서 나오는 소리도 만만찮게 음량이 높았기 때문이다. 바로 어제 상하이 테러가 터진 탓인지, TV에서는 관련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제 있었던 화물선 곤륜성위호 폭발사건에 대하여, 선주사인 곤륜표국은 자신들이 이번 사건을 일으킨 공포분자(恐怖份子/테러리스트)들과 어떠한 관계도 없음을 재확인했습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건의 주모자 알림 샤히디는 신장 자치구의 카스(喀什/카슈가르)에서 동료들과 함께 살인강도 및 집단강간을 저지른 후 해외로 도피한 악질적인 범죄자로-」

반쯤 흘려들으며 마법사로서의 묵상을 하고 있으려니, 여급이 쟁반을 받쳐 들고 다가왔다.

“주문하신 차와 음료입니다.”

중국의 주루는 이름과 달리 술만 파는 장소가 아니다. 나는 특일급(特一级)의 벽라춘(碧螺春)을 작은 병으로 하나, 경태 녀석은 평범한 콜라 한 잔을 주문했다. 경태는 제 앞에 놓이는 찻잔을 보더니 “앗.” 하고 조금 당황한 반응을 내비쳤다.

“뭔가 잘못된 것이라도 있나요, 선생님?”

여급이 의아히 묻는 말. 경태가 아니라고 손을 젓자, 여급은 고급 차에 기본으로 제공되는 다점(茶点)이라며 작은 접시에 담긴 오행육화(五行肉花)를 내려놓고 돌아섰다.

경태는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콜라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으, 메뉴를 좀 더 자세히 확인했어야 했는데…… 이 김경태가 이런 실수를…….”

이런 고급 업소에선 청량음료도 뜨겁게 나오는 게 기본이다. 특히나 그게 색소가 들어간 음료라면 더더욱. 생강 향이 진하게 감도는 콜라엔 레몬 한 조각이 띄워져있었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맛을 본 경태가 다시 한 번 투덜거렸다.

“뜨거운 콜라라니. 이런 걸 마시니까 중국인들이 나날이 성격이 나빠지지.”

“식혀주랴?”

“아닙니다. 이건 처음부터 데워먹으라고 만든 거라 식혀도 못 살립니다.”

“그럼 주문을 새로 하지 그러냐.”

“괜찮습니다. 그냥 마시죠 뭐.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가 떨어질 텐데요.”

그렇다면야. 나는 연한 봄빛의 차를 따라 마시며 내 앞에 높인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오행육화라는 거창한 이름의 다점은, 사실 희소성이 있는 다섯 종류의 로우꿔(肉果/불사암) 절육(切肉)을 조그마한 꽃 모양으로 빚어 구워놓은 것이었다.

자연 상태에서 발견되는 불사암 덩어리들 중에는 간혹 「발화」나 「방전」, 「염동」 등의 이능을 발현하는 것들이 있다. 무질서한 회로에서 우연히 형성된 국소적인 질서의 산물이거나, 혹은 불사암의 숙주가 생전에 지니고 있었던 능력 내지 잠재력이 부분적으로 보전·발현된 결과다.

중의학계의 돌팔이들은 이를 오행(五行)의 원리에 대입했다.

「발화」를 품은 불사암은 불의 기운을, 「방전」을 품은 불사암은 벼락의 기운을, 「염동」을 품은 불사암은 바람의 기운을, 생체강화가 폭주하여 겉이 나무껍질 같은 각질로 뒤덮인 불사암은 나무의 기운을, 대사 이상으로 말미암아 기이한 색채가 감도는 불사암은 그 색과 성분에 따라서 물과 금속의 기운을 가지고 있노라고 약을 팔아댄 것이다.

마법이 막 돌아왔을 때만 해도 불사암이라면 종류를 불문하고 환장하며 처먹었던 중국인들은, 이제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귀한 것들을 구분하여 처먹는 절제력과 사치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돈 많은 중국인들의 특권이기는 해도.

물론 여기는 중국이므로 지금 나온 것이 제대로 된 오행육화라는 보장은 없었다. 오행이고 나발이고를 떠나, 분변으로 살찌운 염가의 불사육을 오행육이랍시고 팔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위생적인 불사육이라도 딱히 입에 대고 싶은 건 아니지만.

때를 기다리며 가만히 차를 음미하고 있는데, TV 화면 속의 앵커가 한국과 관련된 소식을 전하는 게 귀에 들어왔다.

「한국 정부는 한국의 지난달 부적 수출액이 1억 메이위안(美元/달러)을 돌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같은 한국 주술산업의 가파른 성장세를 두고 이능총국 뤼정(吕政) 국장은 성명을 내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습니다.」

「“파렴치한 도둑국가 한국의 문화도둑질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황색지에 붉은 진사로 글을 쓰는 형식의 부적은 중국이 원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무자(巫子/무당)들은 중국의 선관(仙官)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훔쳐 한국의 부적을 모방하고 있노라 주장하며 중국의 전통과 중국의 정당한 이익을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부적의 기원이 중국에 있음을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그동안 중국의 이익을 저해한 혐의가 있는 모든 무자들의 활동과 영리행위를 영구토록 제한하며, 나아가 명예를 훼손당한 중국의 선관들에게 금전적인 배상을 해주어야 할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는 부적의 제작에 관한 국제표준과 무자 및 선관의 국제공인자격제도를 제정함에 있어서 중국 정부에 전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주루 곳곳에서 건방진 소국(小國)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렇잖아도 크던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한층 더 시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TV는 아까부터 중국인들을 분노하게 할 소식들만 골라서 내보내는 중이었다. 외부의 적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내부적 결속을 이끌어내는 손쉬운 방편이다.

이 광경을 지켜보며 콜라를 홀짝이던 경태가 큭큭거리며 웃었다.

“주술계의 아이돌 미스 맥아더의 파급력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마녀 아줌마도 여기까지는 예상하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에서 제작된 부적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은 전적으로 김연화의 공로 아닌 공로라고 할 수 있었다. 과연 이런 유행이 얼마나 더 지속될는지는 의문이지만, 온라인 상담과 주문제작만으로 월 수출액 1억 달러를 달성했다면 국가 차원에서는 한번 진지하게 육성을 시도해볼 가치가 있는 신산업 분야라 하겠다.

이는 김재환이의 투자보고서에 정식으로 기재되어있던 내용이었다. 유행의 열기를 얼마나 보존해내는가에 따라 시장의 장기적인 존립 가능 여부가 결정되리라고.

중국의 이능총국장은 한국의 무속인들이 중국의 문화를 침탈하고 있노라 주장했으나, 한국의 무속인들은 부적의 원류가 자신들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다만 세계적으로 중국산 부적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아, 중국의 무속인들이 한국인 흉내를 내며 부적의 원산지를 위조하고 있어서 문제였지.

경태 녀석의 핸드폰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슬쩍 액정을 확인한 경태가 어깨를 으쓱인다.

“형님. CCA 5760기가 백 킬로미터 이내로 진입했습니다. 순항고도 8천 피트, 지상속도(Ground speed) 379노트를 유지하며 접근 중. 앞으로 약 8분 후면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공역에 진입합니다.”

중국국제항공의 화물기 CCA 5760은 베이다이허 테러의 선두를 맡은 기체였다. 말은 선두라고 하지만, 육안관측이 가능할 즈음이면 후속 기체들도 가속하여 동시에 공격을 가해올 것이었다.

사실 이 시대의 베이다이허는 공산당 중진들이 모여 회합을 열기에 적합한 장소가 못되었다.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바다에 접해있다는 것은 아주 큰 마이너스 요소다. 거대 해양각성체가 공격적으로 밀고 들어오거나 인근 해역에서 난동을 부리기라도 했다간 순식간에 쓸려버릴 가능성이 있으니까. 적성세력이나 수적들의 대대적인 수중침투 가능성은 또 어떠한가.

그러나 베이다이허 회의는 마오쩌둥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이다. 이곳에서 최고 권력자로 인정받음으로써, 국가주석은 당의 역사에서 비롯된 강력한 정통성을 획득하게 된다.

즉 중국공산당에게 있어 베이다이허는 옛 중국의 황제들이 제단을 쌓아 팔일(八佾)의 체(諦)를 행하던 태산과도 같은 장소인 것이다.

그러니 종신집권을 추구하는 현 주석의 입장에선 이 유서 깊은 장소를 가볍게 포기할 수가 없었을 터였다.

나는 수평선 근처에서 꾸물거리는 점들을 보았다.

‘시작됐군.’

이번 테러계획의 가장 큰 위험요소는 가까운 바다에 전개된 초계함 두 척이었다. 화물기들이 항로를 벗어나 중국주석이 머무는 곳을 향해 위협적인 하강을 개시하는 순간, 초계함의 대공화기들이 최대 화력으로 불을 뿜을 것이었으니까. 초계함 두 척의 화력이면 민항기 세 대쯤은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위해 드론 공격을 준비했다. 홍해에서 후티 반군이 쓰는 것과 유사한 사양의 원격조종 폭탄 보트들은 초계함들이 잠시 동안 하늘에 신경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줄 것이었다. 적어도 이번 무대의 진정한 주인공들이 등장하여 사태를 마무리 지을 때까지는.

수평선에서 화광이 번뜩이고 먼 포성이 아스라이 울려올 즈음, 하늘에서는 경로를 이탈한 화물기들이 속도를 높이고 고도를 낮추며 빠르게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세 기체 모두 납치 단계에서 실패한 멍청이들은 없는 모양.

서로 다른 세 방향에서 들어오는 광동체 화물기들은, 제대로만 꽂힌다면 최고위 공산귀족들이 모여 있는 곶을 모조리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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