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57화 (357/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7)

장강에 와서 해결한 부수적인 일은 파슈툰 기술자들과 맺은 긴급탈출 계약의 이행이었다.

그간 흑해자당을 위해 무기를 제작하고 기술교육을 진행해온 다라-아담-켈의 장인들은, 나와 아부 알 까심이 맺은 또 다른 계약에 따라 흑해자당의 내부정보를 지속적으로 유출해주고 있었다. 이 정보를 토대로, 「석벽호표」의 장강전단은 주력이 아프리카로 원정을 나가있는 동안에도 다른 중국계 엽사병단들에 비해 우수한 실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흑해자당에겐 손해를 보는 것 이상의 이익을 돌려주었다. 내 부하들이 장인들을 통해 꼬박꼬박 전달해준 공안의 작전정보는 흑해자당의 생존성을 극도로 높여주었으니까. 나와 파슈툰 기술자들, 그리고 흑해자당 사이의 관계는 명백한 상리적 공생관계였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은 흑해자당이, 기술자들의 이면활동을 알아차린 것도 아닌 주제에, 기술자들을 미끼로 버려놓고 도주를 감행한 것은 명백한 배신 그 자체였다.

경태가 시체들 가운데 서서 가볍게 혀를 찼다.

“하여간 이북 빨갱이들은 사사건건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그냥 얌전히 지들 나라에 처박혀있지 않고서.”

흑해자당의 수로채에 불의의 일격을 가한 세력은 군경의 기동대도 아니고, 중국의 일반적인 엽사병단도 아니었다. 북한에서 제1의 사회주의 우방국을 돕는다는 핑계로 외화벌이를 보낸 외인(外人)엽사병단이었지.

부패한 놈들의 생리는 부패한 놈들이 잘 아는 법이며, 빨갱이들의 생리 역시 빨갱이들이 잘 아는 법이다. 부패한 빨갱이들의 나라에서 온 외인엽사병단은 장강수로 흑적채 토벌의 난맥이 다른 엽사병단들의 부정과 군경의 부패에 있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실제로도 우리의 개입을 제외하면 대부분 맞는 추측이었다.

우리에게 사로잡힌 북한 빨갱이들은 부들부들 떨면서 진술했다.

“……그래서 우리는 공안이 주는 정보들을 믿지 않았고, 우리의 활동정보를 공안에 제공하는 것도 최대한 자제하거나 지연을 넣거나 기만을 섞거나 했습니다.”

경태가 주도한 심문은 표준중국어로 진행되었다. 방언이 섞인 문화어보다는 차라리 중국어가 의미를 명료하게 담아냈기 때문.

어차피 다 죽일 놈들이라 우리의 출신을 감추는 것 자체엔 의미가 없으되, 우리가 저들 말을 모른다고 여기게 만들면 저들끼리의 속삭임에 자연스럽게 비밀이 녹아나올 것이기도 했다. 심문시간을 줄이는 간단한 노하우였다.

덕분에 이것들의 숨죽인 속삭임들로부터 그냥 각성능력자가 아니라 특수작전군 해상저격여단 소속이라는 사실을 추가로 알 수 있었지만, 딱히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선창에 갇혀있던 기술자들은 빨갱이들의 피가 냇물처럼 흘러내리는 계단을 밟고 올라오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이들이 올라오는 계단 입구엔 북한 소유의 선박다운 붉은 선동문구가 적혀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은 최고사령관 동지께 끝없이 충실한 이능전위가 되자!」

이 문구 아래를 지나 핏물 흥건한 갑판으로 올라온 기술자들은 갈기갈기 찢어진 북한놈들의 시체를 보고 다시 한 번 몸을 떨었다. 예전에 고하르 라왈과 함께 있던 것을 본 기억이 나는 자들이었다. 발라클라바와 방탄모를 쓰고 눈만 내놓은 메리옘이 이들의 질문을 통역해주었다.

“오랜만에 당신을 보는군요. 일단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친구. 그러나 이들을 이토록 잔인하게 죽일 필요가 있었습니까?”

나는 가볍게 긍정했다.

“그렇소. 이들은 사람에게 죽은 게 아니어야 하는 까닭이오.”

내가 염동력으로 시체를 찢으며 그린 심상은 베이징의 지하수로에서 보았던 악어의 공격이었다. 악어 특유의 본능- 사냥감을 물고 거칠게 회전하는 데스 롤링(Death Rolling)까지 모사한 탓에, 벽, 창문, 천장을 가릴 것 없이 피와 살점들이 잔뜩 튀어있었다.

자연각성체들의 활동 범위는 넓다. 요즘의 생태계는 지역적 안정성과 거리가 멀었고, 장강은 바다악어가 올라올 만한 환경이었다. 한강에서도 각성체 상어가 발견되는 마당에 장강에서 대형 식인악어가 출몰하지 못할 건 또 뭔가.

나는 파슈툰 기술자들에게 말했다.

“곧 헬기가 도착할 거요. 여러분은 그걸 타고 떠나시오.”

“존경하는 알 바시르, 당신과 함께 움직이는 게 아닙니까?”

“아니오. 나는 다른 일로 바빠서.”

“그럼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됩니까?”

“호텔.”

“……호텔?”

“우한의 공항 근처에 위장신분으로 호텔을 잡아놓았소. 거기서 하루 잘 먹고 잘 쉬고 항공편으로 출국하시면 되오. 내 부하들이 소정의 여유자금을 지급할 테니, 그 돈으로 면세점에서 기념품이나 좀 사서 돌아가시구려.”

메리옘의 통역을 거쳐 내 말을 들은 기술자들은 매우 황망해하는 반응들을 내보였다.

“아니, 잠깐, 잠깐. 이야기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우리더러 이 나라의 출국심사대를 통과하라니요?”

“말했잖소. 위장신분을 마련해놨다고. 여권엔 입국 도장이 찍혀있고, 전산기록도 제대로 되어있지. 프라이빗 제트를 예약해두었으니 불편함은 없을 거요.”

“어…….”

말을 붙였던 기술자가 버벅대는 사이, 석벽호표 강상전단에서 띄운 헬기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나는 파슈툰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어야 이익으로 돌아오는 입장이라, 귀찮은 내색을 감추며 목소리를 조금 키워서 말했다.

“지금의 내 능력은 당신들을 처음 실어 나를 때와는 또 다르오. 이런 상황에서 쓸 위장신분들은 일찌감치 당신들의 머릿수만큼 만들어놨지. 이 순간 이후 당신들은 업무상의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했다가 흑해자당에게 억류당했던 파키스탄 사업가들인 거요.”

“……당신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던 모양이군요.”

“칭찬 고맙소. 남은 궁금증이 있다면 가면서 풀도록 하시오. 비밀로 해야 할 내용만 아니라면 내 부하들이 성의껏 답변해줄 테니.”

내 말을 들은 기술자는 심장 위에 손을 얹고 위쪽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내려 나를 눈에 담았다. 바라보는 눈에는 깊은 감탄과 호의가 녹아있었다. 헬기가 고도를 낮추면서 강한 하강기류에 옷자락이 나부끼기 시작한다.

“알라 후 아크바르! 당신과의 우정을 선물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그리고 당신에겐 항상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당신들에게도 축복이 있기를 바라겠소! 이제 가보시오!”

흐르는 강물 위로 둥근 파문이 이는 가운데, 북한군에게 사로잡혔던 기술자들이 차례차례 헬기에 올라탔다. 경태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헬기 파일럿은 경례를 남기고 다시 고도를 상승시켰다. 9할가량은 중국인들의 세금으로 장만한 다목적 수송 헬리콥터였다.

이곳에서 교전이 발생할 거라는 공안의 경고가 전파되었으므로, 주변엔 지나가는 배가 존재하지 않았다. 상하이에서 버섯구름이 치솟은 이후 채 한나절이 다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배가 물결을 타며 출렁이자, 찢어진 북조선 빨갱이 새끼의 낯짝 절반이 핏물을 타고 주르륵 미끄러져 내 발끝에 와 닿았다. 나는 흐리멍덩한 눈알을 보며 짜증을 느꼈다.

‘이것들만 아니었어도 내가 여기까지 올 필요가 없었건만.’

의심 많은 북조선 빨갱이들이 중국 공안을 믿지 못하여 포로들의 신병 인도는커녕 정보 공유조차 제한하는 바람에, 내가 직접 장강 줄기를 거슬러 오르며 눈으로 탐색을 해야만 했다. 아니었다면 강상전단에 배치된 부하들이 알아서 처리했을 일. 빨갱이들은 필시 포로들을 그냥 넘겨주면 제값을 받지 못하리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김씨 왕국의 군인들답지 않게 왜 유능한 짓을 한단 말인가. 공안이 부패했으면 적당히 어울려서 푼돈이나 벌어갈 것이지.

이로써 용무를 마친 나는, 비행갑판에 주기해놓았던 제트 바이크에 탑승하여 연소 체임버의 발화압력을 끌어올렸다.

기술자들을 구출했다는 소식을 위성을 경유한 통신으로 전달받은 마무르는 강렬한 기쁨과 분노를 표했다. 기쁨은 신앙의 형제들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대한 기쁨이었고, 분노는 기술자들을 헌신짝처럼 버린 흑해자당을 향한 것이었다.

「하여간 중국인들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중국인들에게 신용이 없다는 사실은 그들의 고전인 삼국지에도 확실하게 나와 있어요!」

“……삼국지?”

「그렇습니다! 중국인들이 덕과 인의의 상징이라고 말하는 유비를 보십시오! 그 귀 큰 도적 짱깨는 푸른 눈의 마빡이 짱깨에게서 형주를 빌려가 놓고는 온갖 핑계를 대가며 돌려주기를 거부했어요! 그래서 생긴 말이 유비무환이다! 유, 비, 무, 환! 유비는 환불이 없다!」

나는 언제나와 같은 마무르의 미친 소리를 흘려 넘겼다. 유비무환의 뜻을 잘못 알고 있는 건 그렇다 쳐도, 빌린 땅을 돌려주지 않는 것과 환불이 서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이 새끼의 지능 수준을 감안하면 십중팔구는 일부러 꾸며내는 이미지일 것이다.

「아무튼 싸장님의 능력에는 이번에도 감탄했습니다. 요청이 접수된 후 고작 4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수색과 구조를 완료하다니. 나 마무르는 다시 한 번 탄복했고 다시 한 번 확신했어요. 당신은 진정으로 알라께서 깔아두신 전사들의 융단이며, 융단의 끝에는 반드시 천국의 문이 존재할 것이다. 싸장님은 전설적입니다!」

이제는 슬슬 희미해지는 사실이긴 하나, 마무르의 가장 중요한 소임은 다섯 공장과 나 사이의 계약이 이행되는 과정을 감시하고 나에 대한 신뢰도를 평가하는 것이었다. 전승기념일 테러로 확실한 마침표를 찍기만 한다면, 다섯 공장과 성전연합은 내게 저명한 알라의 전사에 준하는 신용등급을 매길 테지.

나는 화제를 전환했다.

“그건 그렇고, 당신의 동아시아 지부가 내 부하들에게 밀수지원을 요청해 당신네 본거지로부터 웬 비둘기들을 실어왔다는 보고를 받았소. 그 비둘기들을 가지고 이상한 짓들을 하고 있다던데,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요?”

「이상한 짓? 아아, 그것은 조작적 조건화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마무르의 말을 듣자마자 살아있는 화물들의 용도를 깨달았다.

“비둘기를 써서 유도병기라도 만들 셈인가?”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기는. 70년도 더 전에 미국이 똑같은 짓을 시도한 과거가 있었으니 알지.

조작적 조건화는 특정 행동에 따라 선택적 보상을 제공하여 해당 행동을 강화하는 동물학습의 한 방식이다. 이 개념이 테러리스트의 입에서 튀어나오면 동물의 무기화에 관한 내용일 게 뻔하지 않은가.

유도화면에 보이는 표적을 부리로 쪼아댈 때마다 먹이를 받는 훈련을 거친 비둘기는, AI가 없었던 시절 살아있는 활공폭탄 유도장치로 써먹기에 충분한 수단이었다.

영국은 닭을 핵폭탄 항온장치로 쓰고, 미국은 비둘기를 활강폭탄 유도장치로 쓰고.

끼리끼리 잘들 놀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훈련된 비둘기만 있다면 유도무기의 나머지 구성요소들을 만들거나 구하는 건 쉬운 일이다. 마무르는 비둘기에게 새로운 표적들을 학습시킨 후 다른 구성요소들을 마저 마련하거나 가져올 계획이었을 터.

「싸장님은 정말로 아는 게 많고 통찰력이 좋은 밀수꾼이다.」

한숨처럼 내뱉은 마무르가 내 추측을 인정했다.

「그 비둘기들은 우리 성전연합의 비밀무기인 「비둘기 드론」의 유도장치다. 싸장님의 계획에 언제든 호응하여 화력을 보탤 수 있게끔 준비해두고자 했을 뿐인 것이에요.」

“뭐, 그건 좋을 대로 하시오.”

기왕 계획했던 드론 공세에 비둘기 드론 좀 더해진다고 나쁠 것은 없다. 특히나 중국이 이쪽을 얕보고 방심하게 만드는 용도로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할 테지. 갑작스러운 감은 있으나 소소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이어서 합시다.”

마무르 이외에도 내 연락을 기다리는 자는 또 있었다. 통화를 종료한 나는 제트 바이크의 통신 패널을 조작하여 추적 방지용 중계 릴레이에 연결했다. 연결할 대상은 비밀 연락채널을 통해 나와 모종의 상의를 희망한다고 메시지를 남긴 후샨량 경독이었다.

쿤룬 싱웨이 호 사건은 폭발로부터 불과 반시간이 지나기도 전부터 이미 방첩당국의 희생과 승리로 포장되어 보도되기 시작했다. 이름을 남기지 않는 영웅들의 죽음은 대중들의 애국주의에 불을 지피기 좋은 땔감이었고, 관제언론의 보도로 사건의 전말을 접한 상하이 시민들은 열광으로 들끓어 올랐다.

다른 방해만 없다면 세 경독은 가까운 시일 내로 특진을 하게 될 것이었다. 앞서 검은 대륙에서 친 중국적인 군벌들과 거래를 트고 거대한 자원수급처를 확보한 공로도 있으니까. 이는 그레이스가 만들어놓은 위장 밀수창구들을 말함이며, 사실 이것만으로도 승진은 당연시되는 보상이었다. 형편상 시일을 조금 미뤄왔을 따름이지.

통신이 연결되자, 의례적인 인사와 얼마간의 상황전달이 이루어진 후에, 후샨량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이렇게 물었다.

「혹시 린페이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보실 마음은 없으십니까? 어, 그러니까, 인공수정과 대리모를 이용하는 편리하고도 확실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그놈의 자식, 자식, 자식. 내 핏줄에 욕심을 내는 인간들이 왜 이렇게 많은가.

나는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