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56화 (356/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6)

“어머니의…… 고유마법?”

내 질문을 받은 라일라는 풀 죽은 강아지처럼 눈매와 어깨를 떨어뜨렸다.

“미안. 내가 구사할 줄 아는 마법들 중에서 당신이 모를 만큼 특별한 건 없어. 어머니의 지혜는 우리에게도 귀한 것이었거든.”

“그런가?”

“응. 기껏해야 「염동」의 원리를 응용해서 「염동중화」의 마탄을 제작하는 기술 정도가 전부인데…… 이건 말이 중화일 뿐 실제로는 「염동」으로 상쇄간섭을 일으키는 잡기에 불과하니까. 대마법사인 당신 입장에선 지혜라고 불러줄 가치도 없겠지.”

염동중화의 마탄이라면 596과 조우했을 때 한 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알갱이 하나하나마다 정성스럽게 인간의 영혼을 갈아 넣었던 산탄 두 발. 이는 거인의 뱃속에 있던 내게 유효타를 넣을 만한 위력을 품고 있었다.

달리 말해, 대마법사의 마소장악력마저 극한까지 억압하는 이상환경이 아니고서는 오로지 마탄의 성능만 가지고 대마법사에게 유효타를 가하기 어렵다.

‘쓰는 사람이 같은 대마법사이고, 육박전을 감행한다면 이야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596이 지니고 있던 소드오프 더블배럴 샷건은 그레이스가 로더필드의 의표를 찌르고자 준비한 변칙적인 한 수였을 가능성이 높다. 간합을 극도로 축소해놓은 상태에서, 서로의 장악력이 부대끼는 경계면에 총구를 들이밀고 방아쇠를 격발하는 것이다. 그러면 염동방호를 믿고 있던 로더필드는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터.

물론 이는 로더필드가 방어구 없이 싸움에 임한다고 가정해야 성립하는 결과다. 나와 싸울 때의 로더필드는 그리니치 아머를 착용하고 있었으니, 거기다 대고 중화 산탄을 갈겨봐야 불꽃 좀 튀고 말았겠지. 나처럼 갑옷에 균열을 만들어놓고 그 약점을 노려 쏜다면 또 모를까.

그 외에 대마법사가 아닌 마법사들을 상대로는 그래도 효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다만 이 경우엔, 염동중화를 건 산탄보다는 같은 염동력으로 공기저항을 줄이고 속도를 높인 단일탄체를 쓰는 편이 더 유효할 따름.

내 입장에선 어느 쪽이든 비경제적인 인시 낭비지만.

그나마 기본적인 위력이 강한 포탄이나 로켓탄이라면 상황에 따라 저항감소 부여를 고려해볼 가치가 있겠다. 사표(射表)를 쓰지 않는 중거리 이내의 직사사격, 혹은 명중률이 중요치 않은 테러용 공격에 한하여.

미사일 같은 경우는 유도체계와 그에 호응하는 조향체계가 설계속도에 정밀하게 맞춰져있어, 무작정 저항감소를 줘버리면 밸런스 파괴로 인한 유도성능 감소 및 비행특성 변화가 심각할 테고.

“혹시 실망했어……?”

나는 손을 모으고 눈치를 살피는 라일라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네가 쓸 줄 알기를 기대하지는 않았다. 내가 바란 건 술식의 존재 자체에 대한 정보다. 그레이스에겐 어떤 고유마법들이 있는가. 그것을 알고 싶었을 뿐이야.”

“아.”

탄성을 흘린 라일라가 짧게 골몰한 후 자신이 아는 것들을 하나하나 늘어놓았다.

‘기대 이상으로 길이 잘 들었군. 거부감이 전혀 없어.’

그레이스에 대한 정보는 라일라에게 민감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내 요구에 응하는 라일라는 일말의 거부감도, 경계심도 내비치지 않았다. 보이는 거라곤 그저 나에 대한 호의와 내게 도움이 되고 싶은 열망의 색채가 전부.

그간 쌀이 다 익기 전에 솥을 여는 성급함을 경계해왔던 나로서는 다분히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동안 꾸준히 공을 들여 숙성시킨 보람이 있는 셈. 처음 대면했을 때 보여주었던 모습을 감안하면 라일라는 정말로 빠르게 변한 것이었다.

그레이스는 딸들에게도 비밀이 많은 마물이었으되, 라일라의 진술엔 「부패」와 「환시」가 아닌 또 다른 고유마법의 목격담이 포함되어 있었다.

“원거리에서 차량의 시동을 꺼트렸다고?”

내가 확인하듯 묻자, 라일라는 분명하게 끄덕였다.

“응. 원탁의 하수인들을 추격하던 중이었는데, 어머니께서 뭔가 마법을 사용하니 도주하던 차량들 중 최후미를 달리던 차의 엔진이 즉시 정지했어. 나머지 차량들은 잠시 이상을 겪고 나서도 계속 달아나다가 차례차례 시동이 꺼졌지. 어머니께서 연속으로 같은 마법을 투사하셨던 것 같아.”

“이상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이상이었지?”

“음, 순간적으로 제동이 걸리거나 후미등이 점멸하거나 하는 정도?”

“말만 들어서는 EMP 같은데……. 너희가 몰던 차량은 멀쩡했나?”

“우리는 괜찮았어. 무전기나 핸드폰 같은 전자기기들도 마찬가지였고.”

통상 전자기충격파는 전방위적인 확산 파동의 형태로 생성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방식에 따라서는 지향성 충격파를 만드는 것도 가능한 일이긴 했다. 당장 미국에선 해당 기술을 교통경찰이 쓰려고 했던 적도 있으니까.

사고가 여기에 이르자 한 가지 가능성이 뇌리를 스쳤다.

‘「환시」가 이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물리학적인 의미의 빛은 전자기파의 동의어에 가깝다. 그러므로 가시광선의 굴절에 관여하는 술식은, 간섭하는 파장의 범위만 어떻게든 수정하면 전자기파에 지향성을 부여하는 술식으로 탈바꿈할 수도 있었다.

“나, 도움이 되었어?”

라일라가 올려다보며 묻는 말에,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전에 한 번 쓰다듬어주고 나서부터 수시로 많이 기대하는 티를 내었기 때문.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라일라는 김춘식이와 비슷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사람을 따르는 동물의 그것처럼 순수한 원색의 기쁨.

이런 식의 접촉이 왠지 모르게 껄끄러운 건 여전하지만, 백 마디 말로도 얻지 못할 효과가 있으니 개인적인 호오는 접어두는 수밖에.

라일라와의 대화를 끊은 건 벽면에 붙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방송이었다.

「함교에서 알립니다. 곤륜성위함이 지금 막 장강 하구로 진입했습니다. 저지한계선 도달 예정시각까지 앞으로 약 57분, 약 57분. 중국 해경의 동향엔 아직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그레이스와의 통화 이후 9시간가량이 흐른 지금, 나는 잠시 시간을 내어 중국지부 산하 엽사병단 석벽호표의 장강선단에 합류한 상태였다. 오늘, 8월 6일은 내가 샤히디에게 약속했던 1차 조공을 결행하는 날이었기 때문.

애미 애비가 유별나게 없는 고아들을 소모품으로 쓰기로 하기는 했으나, 민감한 일감을 외주로 줄 땐 충실한 관리감독이 병행되어야 사고가 생기지 않는 법이었다.

세계 최대의 감시국가에 위장 테러를 감행하는 입장에서 곧 자폭할 놈들과 지속적인 연락을 취할 순 없다. 고로 이럴 땐 내 눈을 대신할 수단이 마땅치 않았다. 겸사겸사 이쪽에서 해결해야 할 부수적인 문제도 하나 생긴 참이고.

라일라는 내 손이 떨어지는 걸 아쉬워하며 물었다.

“가봐야 해?”

“음.”

“나도 옆에서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

“안 될 이유는 없지. 얼굴만 잘 가리고 있어라.”

“고마워!”

무엇이 그리 고마운지는 모르겠지만, 라일라는 이런 사소한 일을 가지고도 진심에서 우러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배, 장강에 배치된 석벽호표 강상(江上) 제2전단 소속인 벽수(壁宿)는 석벽호표 전체의 상징적 기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베크룩스보다 배수량이 크고 설비가 좋은 무장선박이었다. 베크룩스는 실제 가치보다 영웅함선이라는 명예의 가치가 더 큰 배였으니까.

벽수의 함교에서는 상하이 항만 부두의 전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었다. 함교에서 오가는 민감한 정보의 노출을 피하기 위해, 같은 풍경을 봐야 할 샤히디와 그 무리는 가까운 위치의 다른 선박에 탑승한 상태.

나에 대한 샤히디 그룹의 평가와 신뢰는 키울 수 있을 때 키워놔야 하는 것. 현장에서 직접 목격하는 거대한 버섯구름은, 그것이 비록 조공에 불과할지라도, 기다림에 지쳐있던 극단주의 독립운동가들에게 그저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벅찬 감상을 선사할 터였다.

드디어 무언가 이루어지기는 하는구나, 라는.

2천 3백 톤의 질산암모늄을 적재한 쿤룬 싱웨이(곤륜성위)호는 27노트의 속도를 유지하며 부두를 향해 접근해왔다. 이는 화물선 치곤 조금 빠른 속도였지만, 선박의 위치정보를 표시하는 디지털 인터페이스 속에서의 움직임은 지루함이 느껴질 만큼 굼뜬 꾸물거림이었다.

팔짱을 낀 채 식별부호의 좌표변화를 지켜보던 경태가 말했다.

“예전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거 본의 아니게 성공해버릴 수도 있겠구나 싶어지지 말입니다.”

“예전 경험?”

“그 왜, 광저우에서 처음 싸울 때요. 형님께서 저 콘크리트 수도관이 사실 폭탄이라고 알려줬는데도 가오슈센은 군에게 정보공유를 안 해줬죠. 그래서 군은 결국 쓸려버렸고, 형님께서 기어이 몸소 총을 잡으셔야 했잖습니까.”

고아들에게 점령당한 배가 원래 정박할 예정이었던 부두는 보다 안쪽 지류의 군항과 고작 10킬로미터 남짓 떨어져있을 따름. 27노트의 속도를 유지한다면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주파 가능한 거리다.

그러므로 대응의 주체가 군이든 공안이든, 지금쯤이면 슬슬 현장에서의 움직임이 보여야 할 때이긴 했다. 지금부터 계산해도 잔여 대응시간은 채 한 시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너는 성공을 예상하는 거냐?”

“아뇨. 그냥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겠다…… 정도지요. 형님께 은혜를 입은 짱깨 대자들이 이번 일을 개인의 공적으로 삼기보다 적대 계파를 갈아버릴 기회로 쓴다거나 하면 말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경고했는데 쟤들이 안 들었어요!” 하는 식으로요.”

“그런 식으로 날리기엔 너무 아까운 건수일 텐데.”

“뭐, 그렇죠. 형님의 눈 밖에 날 리스크도 리스크고요.”

경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고 보면 우리 춘식이는 중성화가 아직이었네요.”

“음?”

“저는 경독들이 삽질을 하지 않는다는 쪽에 춘식이의 고환을 걸겠습니다. 제 예상이 빗나갈 경우 춘식이는 고자가 될 것입니다.”

“…….”

옆에서 듣고 있던 라일라가 쿡 하고 웃음을 터트린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상황 전개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데드라인까지 약 47분이 남은 시점에서, 나는 쿤룬 싱웨이호를 향해 수중침투로 접근하는 일군의 각성능력자들을 포착했다.

원양항해를 하는 선박들에게 있어 크립 밸러스트 적재는 양날의 칼이었다. 하나 이상의 특수 컨테이너에 꽉 채워놓은 불사암의 마력장이 자연각성체들의 접근과 습격을 유의미하게 줄여주는 건 맞지만, 각성자 선원들과 무장경비들로 하여금 몰래 침투해 들어오는 해적들의 존재감을 알아차리기 어렵게 만드는 단점도 있는 까닭이다.

광신도 고아새끼들은 각종 정찰자산의 지원을 받아 가며 크립 밸러스트의 그늘로 들어오는 중국 능력자들을 감지하지 못했다. 가까운 항로를 지나가던 배들이 조금씩 티 나지 않게 거리를 벌리고 있으며, 수로의 통행량 자체도 서서히 감소 중이라는 사실 또한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당초의 계획에 따라 가야 할 지점으로 배를 몰고 나아갈 뿐.

‘해군이나 공군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싫었던 모양이군.’

기왕 주변 수로를 비울 거라면 특공대를 침투시키기보다는 아예 격침을 시켜버리는 쪽이 더 빠르고 안전하다. 마침 해군부두 맞은편엔 방풍림이 되어줄 만한 삼림공원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경독들은 굳이 각성능력자 특공대를 보내었다. 다른 부처에 배역을 나눠주느니 국안부 인력을 소모할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모든 공을 독점하겠다는 의지였다. 상황이 급해 미처 협력을 구할 시간이 없었다는 핑계를 대면 무난하겠지. 아니면 포로를 잡을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해도 될 테고.

애국자들의 목숨은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마침 국안부엔 죽어도 이름이 남지 않을 요원들이 많았을 터였다.

데드라인을 30분 남긴 시점에선 각종 동영상 플랫폼에 미리 업로드해 놓은 알림 샤히디의 테러 예고- 혹은 중국을 상대로 한 선전포고가 공개 상태로 전환되었다. 여기에 추적 방지 조치를 취한 SNS 유령계정들이 자동화된 프로그램에 따라 동영상의 내용을 급속히 확산시켰다. 위구르와 독립운동, 그리고 테러 관련 태그들을 달아서.

영상 속의 알림 샤히디는 얼굴의 절반과 두상을 가린 채 어둑한 방에서 조명 하나에 의지해 자신을 드러냈다. 완전무장한 샤히디의 등 뒤엔 위구르인들의 마지막 조국, 동 투르키스탄 제2공화국의 깃발이 걸려있었다.

「중국 공산당의 압제자들아. 너희가 억압해온 우리 위구르 민족과 신앙의 형제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나 알림 샤히디는 오늘, 뜻을 함께하는 신실한 믿음의 전사들과 더불어, 겨레의 자결(自決)과 독립국가 건설의 기치를 높이 걸고 거룩한 성전의 시작을 선포하는 바이다.」

「우리 위구르 겨레는 퇼레스의 일맥으로서 튀르크 범(汎) 민족들과 뿌리를 함께하며, 너희 중국인들과는 하나의 역사를 공유하지 않는다.」

「너희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에게 책봉을 내렸음을 근거로 오랜 지배관계가 성립함을 주장하나, 대체 어떤 지배자가 피지배자에게 세폐를 바쳐가며 평화를 구걸하는 일이 있단 말인가? 너희는 위대한 위구르 카간들의 시대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너희에게 유리한 사실만을 취사선택하여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너희들의 특기인가?」

「너희의 책봉질서가 이간질의 수단이자 자기최면과 현실도피의 도구로 기능했음은 우리가 알고 세상이 알며 오직 너희들만이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는 바다.」

「우리는 우리만의 문자가 있고 우리만의 언어가 있으며, 또 우리만의 역사와 우리만의 문화와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한 우리만의 믿음이 있다. 우리 위구르 민족의 자주독립은 이러한 역사적 독자성과 독립성에 힘입어 당위성을 얻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자비로움의 주인이신 알라께서 우리 겨레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기를.」

「이제 이러한 당위성에 의거하여, 동 투르키스탄 제3공화국이 우리 겨레의 강역에 우뚝 서는 그날까지, 나 알림 샤히디와 믿음의 형제들은 진정한 신앙이 허락하는 초국가적 단결 아래 무제한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해나갈 것이다.」

「너희 압제자들에게 알라의 진노가 임할지라.」

「너희는 우리의 언어를 탄압하고 너희의 언어를 강요하려 들었다. 너희는 우리의 신앙을 제약하고 너희의 사상을 새기려 들었다. 너희는 우리의 전통을 억압하고 너희의 문화를 이식하려 들었다.」

「또한 너희는 우리의 사내들을 죽이고 우리의 여자들을 겁간하였으며, 자손을 생산하는 능력을 빼앗고 원치 않는 통혼을 강제하여 위구르 민족의 완전한 말살을 꾀하였다.」

「답해보라. 이러한 행태의 어디에 너희가 말하는 소수민족의 권리가 있는가? 공중화장실로 전락한 마스지드(모스크)가 너희가 말하는 소수민족에 대한 존중인가? 아니면, 굴삭기로 파헤치고 불도저로 밀어버린 우리 조상의 무덤들이 너희가 말하는 소수민족의 평화인가?」

「너희는 너무도 많은 죄를 저질러 구원의 여지가 없느니. 너희를 태울 지옥의 불은 밝게 빛나지 아니하고 피처럼 붉지도 아니하며 다만 칠흑처럼 어둡고 진흙처럼 달라붙을 일흔 배의 뜨거움이라.」

「잠시 후, 상하이에서, 너희는 그 뜨거움의 편린을 조금 더 일찍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 우리가 공격할 목표는 상하이 군항이니, 죽음이 두려운 자들은 이 영상을 보는 즉시 그 근처를 벗어나라. 우리는 민간인들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아울러 중국 해군에게 고한다. 너희의 배들을 움직이지 마라. 우리는 너희에게는 없는 전사의 명예로서 민간인들이 달아날 시간을 줄 것이지만, 만약 너희의 전투함들이 부두를 이탈할 기미가 보인다면 그 즉시 유예를 철폐할 것이다.」

「그래도 배를 버리고 달아나는 정도는 눈감아주겠다.」

「오늘의 의거는 앞으로 너희가 치를 무수한 고난들의 첫 신호탄에 불과하리니. 기억하라. 신께서는 유일하시고도 위대하시며, 신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신의 정의에 대적하는 자들에겐 오직 패배와 심판이 있을 뿐임을.」

「위구르 독립 만세. 알라 후 아크바르.」

나는 노트북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들으며 고아들이 탄 배와 항구의 동향을 지켜보았다.

중국 해군의 상하이 기지는 태호(太湖)에서 발원하여 상하이 시내를 가로지르는 황포강(黄浦江)이 장강으로 접어드는 어귀에 위치해 있었다.

이곳의 부두엔 열 척이 넘는 초계함과 구축함들이 계류되어있는 상태. 이것들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건 중국 입장에서도 가볍다고는 하지 못할 피해다.

해군기지와 인접한 민간인 거주구역에선 뒤늦게 대피 소동이 일어났다. 동영상이 퍼져서가 아니라, 거리에서 사이렌이 울리는 가운데 재난경보가 발령되었기 때문이다. 발령권자는 3인의 경독 중 한 사람이거나 그 관계자일 확률이 높았다.

해군기지에서는 조금 더 빠르게 도망자들이 발생했다. 그래도 군이라고 재난경보에 앞서 정보공유를 받은 모양. 죽을 각오로 배에 올라 명령을 기다리는 군인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해군부두 맞은편의 공안학교(상해공안학원)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쿤룬 싱웨이의 선내에선 드디어 교전이 벌어졌다. 필리핀의 고아들은 광적인 투지를 선보였으나, 기습을 받아 상실한 인원이 있었고 장비 수준과 강화계수의 격차마저 크다 보니 오래 견뎌낼 재간이 없었다.

순식간에 함교를 빼앗기고 선창에 고립된 광신도 고아들의 얼굴에 절망이 어린다. ‘아버지’가 내린 임무는 중국인들의 군항을 타격하는 것. 배를 더 가까이까지 몰고 가지 못하면 폭탄을 터트려봐야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그렇다고 폭탄을 터트리지 않을 수도 없다. 아버지에 대한 단서가 사소한 것이라도 넘어가선 안 되니까.

함교를 점령한 중국의 애국자들이 뱃머리를 틀자, 광신도들은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기폭장치를 작동시켰다.

꾸궁-!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섬광이 번쩍인 직후 검은 연기가 백 미터 이상 치솟았고, 다음 찰나에 발생한 회백색의 초음속 충격파가 혼탁한 장강의 물결을 둥글게 밀어냈다. 충격파가 확산하는 동안에는 다른 모든 배경소음들이 지워졌다. 강변에 조성된 공원은 강풍에 한 번 휩쓸리고 높은 파도에 다시금 휩쓸린 끝에 거센 태풍이 할퀴고 지나간 꼴로 전락했다.

전술핵에 비견될 폭발은 형태가 확실한 버섯구름을 남겼다. 상하이 인구의 절반이 족히 볼 수 있을 법한 크기였다.

김춘식이의 생식능력은 제거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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