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55화 (355/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5)

황금기의 눈을 가진 내가 거대한 각성체들을 탐색해보지 않았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 따라서 그레이스는 내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짐작하겠지만, 내가 이 버섯의 숲에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말이지……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와보니, 버섯을 섬기는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교회」의 사제들이 제법 독특한 마법술식을 만들어낸 모양이더라. 이들의 교리로는 「접신」이니 「합일」이니 떠들어대던데, 자기도 알고 있지?」

“거기에 관심이 있나?”

「당연하지. 거대 균사체의 인지체계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마법이라니. 흥미롭잖아.」

“내게 묻고 싶은 건 「접신」의 구체적인 작용에 대한 것이겠군.”

「맞아.」

술식의 정확한 구현 원리는 전화상에선 완벽한 전달이 불가능하다. 언어엔 그저 영감과 대략적인 방향성만을 담아낼 수 있을 따름. 그러니 그레이스가 듣고자 하는 바는 술식의 작용에 대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버섯 교회의 사제들은 도무지 자기들이 쓰는 마법을 설명하질 못하더라. 마법사가 아닌 자들에게 딱히 기대를 품진 않았어도……. 그렇다고 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 항문성교를 해보기는 좀 그렇잖아? 상대가 당신이라면 모를까.」

“꼭 그렇게 개 같은 소리들을 한마디씩 끼워 넣어야 속이 시원한가 보지?”

「큭큭. 왜? 난 당신이 상대라면 내 몸의 어디라도 허락할 준비가 되어있어. 그 귀한…… 유전자를 넘겨주기만 한다면 말이지. 장담하는데, 내 항문은 굉장히 기분이 좋을 거야. 자식에 대한 거부감을 잠시 억누를 가치가 있을 만큼.」

“미친년.”

그레이스는 내 욕설을 듣고 숨넘어가는 웃음을 터트렸다.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 것인지.

나는 혀를 한 번 차고서 그레이스가 궁금해한 것을 알려주었다.

하나. 내가 현장을 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접신」을 제대로 구사하는 자는 그 술식의 고안자이자 교단의 중심인물인 맨발의 여사제가 유일했다는 것.

하나. 「접신」은 거대 균사체의 마법적 침식에 대하여 본인의 영혼을 무방비하게 노출시키는 마법이라는 것.

하나. 「접신」의 의도치 않은 작용으로서 인간과 균사체의 인지가 교차하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

하나. 마지막으로, 「접신」은 거대 균사체의 인지 네트워크에 인간 의식의 메아리를 남길 수단으로서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것.

「인간 의식의 메아리라……. 기대한 방향과는 다소 다르지만,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걸?」

“본래 기대한 방향이 무엇이었기에?”

「음, 어차피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라도 인간과 동일한 형태의 지성은 가지지 못할 존재니까…… 나 같은 대마법사라면 그 거대한 의식에 기생해서 술식을 이식하거나, 혹은 일종의 충동 같은 걸 부여할 수도 있지 않으려나 싶었지. 너무 거창한 기대였나?」

“잘도 그런 정신 나간 발상을 떠올렸군.”

그레이스의 말은 사실상 레이디 아밀라리아를 간접적으로 조종해보고 싶었다는 뜻이었다. 일부 기생충이나 장내 미생물들이 숙주의 정신과 기호에 영향을 미치듯이, 인위적인 충동을 부여하여 원하는 방향으로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방식으로.

그레이스가 답지 않게 칭얼대듯 말했다.

「너무 짓궂게 그러지 마. 난 황금기의 눈이 없잖아. 시도해보기 전에 견적을 내는 데엔 한계가 있어.」

아무리 그렇다 한들, 레이디 아밀라리아의 막대한 질량을 보면서도 간접적 영향력 행사의 가능성을 떠올린 건 과욕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결과라고밖에 볼 수 없었다. 영혼을 다루는 마법의 대가, 크로우허스트의 지혜를 흡수·발전시킨 나조차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건만.

“왜. 전율하는 거인을 충동의 끈으로 얽어볼 생각은 안 들던가?”

그레이스는 내가 비꼬듯이 묻는 말을 웃음으로 흘려 넘겼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그 정도로 어리석을까. 전율하는 거인은 레이디 아밀라리아에 비해서도 한참이나 격이 다른걸. 아무튼, 당신이 보기에 의식의 메아리를 남기는 정도는 현실성이 있다는 말이지?」

나는 “그렇다.”고 짧게 대답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 짓을 실제로 시도한다 치면 그레이스는 자신의 복제체 자식들을 착실하게 갈아 넣기 시작할 것이었다. 자신이 직접 시도하기엔 위험부담이 있거니와, 대마법사의 인시를 여기에 집중해버리면 방기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니까.

생각건대, 이 시점에서 라일라와 같은 복제체 자식들의 지속적인 소모는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많다.

그레이스와 나 사이의 전력격차 감소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공동전선을 편 입장에서 우방의 전력이 깎이는 걸 달가워하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어쩌면 그레이스와 나 사이의 관계가 얼마간 냉각될 공산도 있겠다. 모든 투자는 투자자 개인의 책임이라곤 하나, 손실이 발생했을 때 해당 투자에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했던 자가 원망을 받지 않는 건 드문 일이잖은가. 말로는 괜찮다고 해도 호의는 식어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여기선 복제체들을 살리는 쪽으로 권고하는 편이 낫겠지.

그래도 굳이 하겠다면 그건 내 책임이 아닌 것이고.

「웨인? 듣고 있어?」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을지 생각해보고 있었다.”

「가치?」

“현실성이 언제나 경제성을 담보하는 건 아니잖나.”

「아아.」

“아밀라리아의 인지 네트워크에 유의미한 메아리를 남기려면 지속적인 소모를 감내해야 할 거다. 「접신」의 시전자가 지닌 역량이 우수할수록 한 번에 더 강한 잔향을 퍼트릴 수 있겠지만, 정교한 회로구조를 보유한 자일수록 버섯의 침식에 피해를 입을 확률이 높아질 테니.”

「즉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니다?」

“그래. 지금의 너로서는 주술사 왕의 왕국에 집중하는 편이 더 경제적이리라는 게 내 판단이다.”

「견실한 조언이네.」

버섯숭배자들과 그 중심인물인 맨발의 여사제가 수시로 버섯의 침식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명줄이 붙어있는 것은, 내가 보기엔 단순하고 밀도가 낮은 마력회로의 덕을 본 것이었다. 두꺼비집에 감아놓은 구리선이 전자회로에 비해 과전압을 잘 견디는 것과 유사한 이치.

그레이스 복제체의 하나인 라일라를 기준으로 할 때, 내가 관측한 바를 토대로 추산하는 회로파열 발생확률은 대략 3% 언저리다.

낮은 확률 같아도, 열 번을 시도했을 때의 사망 확률은 26%를 넘어가게 된다. 스무 번을 반복한다고 치면 그 확률은 거의 50%에 가까워지겠지.

나는 복제체들이 균사의 왕국 곳곳에 죽어 널브러진 광경을 상상해보곤 눈살을 찌푸렸다. 그만한 낭비가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메아리를 남겨서 거둘 이익이 그렇게 대단할 것 같지도 않은데. 기껏해야 인공여신의 계시를 위조하는 정도가 전부이지 않겠는가.

서로 얽히고설킨 메아리들이 거대한 의식이 각성하는 계기가 되려면 그만큼 막대한 수의 산 제물들을 갈아 넣어야 할 터. 그런다 한들 성공은 장담하지 못한다.

물론 계시를 위조하는 것만으로도 무시하지 못할 파급효과가 일어나겠지. 그러나 주술사 왕의 연합왕국에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경우의 기대이익이 훨씬 더 막대하다.

「웨인.」

그레이스가 내 주의를 환기했다.

「자기의 조언에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면, 그 「접신」의 술식 자체는 내게 알려줘도 상관없겠네? 별로 가치가 없는 지혜잖아. 아밀라리아의 침식에 대한 지식이라면 몰라도.」

“…….”

지금 이 마녀는 내가 저를 견제할 의도를 감추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중이었다. 나는 한숨을 곁들여 대답했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들긴 한다만, 원한다면 알려주지. 네 말대로 별 가치는 없으니까.”

「시원시원해서 좋네. 당신과 손을 잡기를 정말 잘했어.」

“그래서, 기어이 아밀라리아를 건드려볼 작정인가?”

「내가 자기를 높이 평가하는 거랑은 별개로, 자기의 말만 듣고서 결정을 내릴 순 없잖아? 타당성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직접 확인을 해봐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리고?”

「내게는 아무래도 이 ‘인간의 메아리’를 남긴다는 개념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말이야. 버섯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불타는 버킹엄 궁과 무너져 내리는 런던 브릿지의 환각을 보여줄 수 있다면, 알아서 증식하는 광신도들이 원탁의 주의를 분산시켜주지 않겠어?」

“그래 봐야 버섯의 침식을 허용하는 자들에게만 보일 환상인데?”

「오, 웨인. 광신은 내가 더 전문이야. 나는 칠각기사단의 주인인걸.」

“자신이 잘하는 분야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그 외의 것들을 간과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후후……. 뭐, 유념은 해두도록 할게. 사랑스러운 남편의 조언이니. 술식은 어떻게 넘겨줄래?」

“아무나 하나 잡아 회로를 새긴 후 도해와 설명을 첨부하여 보내주도록 하겠다. 술식 자체가 워낙 간단하니, 이 정도만으로도 금방 습득할 수 있을 거다”

「좋아. 그럼 그걸 받을 사람을 보내는 김에, 나도 슬슬 전에 약속했던 대가를 치러야겠네.」

“전에 약속했던 대가라니?”

「잊었어? 실종된 684의 수색을 부탁할 때 내가 그랬잖아. 내 감사는 이번에도 말이 전부가 아니리라고. 당신의 시간은 나의 시간만큼이나 귀한 거잖아. 부부간의 불화를 예방하려면 그때그때 늦지 않게 감사의 마음과 애정을 전해야지.」

“그거참 고맙군. 너는 내게 뭘 줄 셈인가?”

「이번에도 술식이나 하나 주지 뭐.」

또다시 마법인가? 나는 그레이스가 대수롭지 않은 투로 툭 던지는 말에 미간을 좁혔다. 나보다 오랜 시간을 살아온 마녀에겐 과연 그만한 지적자산이 있는 것인가 하고.

“술식이라면?”

「내가 한창 도망을 다니기 바빴던 시절, 살아남겠다는 일념만으로 빚어냈던 광학위장술식이야. 나는 이걸 「환시(幻視/Hallucination)」라고 불러.」

“투명화……인가?”

「그것도 가능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야. 이 술식의 핵심은 가시광선의 굴절인걸. 사실 완전한 투명화는 회로점유율의 낭비가 커서 나도 잘 쓰지 않아. 정적인 상태가 아니고선 사용하기 어렵기도 하고.」

“움직일 때 티가 나는 모양이지?”

「안 날 수가 있을까? 투명화는 빛의 곡률이 조금만 틀어져도 확 티가 나버려. 완전히 투명하게 보이는 각도도 제한적이지. 처음부터 방향을 설정해놔야 해.」

“솔직하군.”

「기껏 답례를 하고서 점수를 잃기는 싫거든. 자기가 너무 기대를 하고 있다가 실망해버리기라도 하면…… 그렇잖아?」

이렇게 말한 후에, 그레이스는 저가 고안해낸 광학위장술식의 기능을 본인이 실제로 사용했던 사례들과 함께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나는 그레이스의 설명을 듣고서 곧바로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거, 로더필드의 기교와 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괜찮겠는데.’

로더필드는 시각과 청각의 불일치를 통해 나와 라일라의 감각을 교란했었다. 그 기교를 「환시」와 조합하면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 사이의 괴리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을 테지. 중거리 이내에서의 교전에선 아주 훌륭한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여러모로 시간이 부족한 내가 로더필드의 기교를 완벽하게 재현해내기란 불가능한 일. 그러나 반의반만 재현해낼 수 있으면 나머지는 시너지의 총량으로 만회하고도 남는다.

또다시 과제가 늘어났다.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할는지.

수면의 질을 저해하는 자각몽 속에서의 궁구와 수련에도 시간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당신이 괜찮을 때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이야기해줘. 「환시」를 쓸 능력이 있는 애를 하나 보내줄게. 다만 적어도 닷새 전에는 알려주었으면 해. 내 딸들 중에서도 이걸 구사할 줄 아는 애는 몇 명 없고, 그래서 일정 조율이 좀 필요하거든.」

“그렇게 하지.”

「혹시 마음이 동한다면 그 애의 몸에 정액을 넣어서 돌려보내도 돼. 자궁 안에서 「생명」으로 상태를 고정해놓으면 내가 받아볼 때까지 신선함이 유지되겠지. 수정된 난자를 떼어 이식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고.」

“끊겠다.”

「그거 알아? 당신이 그렇게 매정하게 굴 때마다, 나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한편으로는-」

“개소리 그만하고 가서 네 일이나 봐라.”

나는 그레이스의 말을 자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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