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52화 (352/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2)

앞서 빈탄 섬에 들러 부하들에게 휴식을 주었을 때, 나는 잠깐의 짬을 내어 성체 바다악어 두 마리를 포획해놓았다.

나는 이 바다악어들에게 회로를 새겨 각성체로 만들었고, 「생명」으로 덩치를 크게 불려주었으며, 내부 장기에는 불사암 세포를 심어 공격성을 강화했다. 몸길이만 7미터에 무게는 1.3톤에 달하는 전도유망한 식인괴물 두 마리의 탄생이었다.

이 괴물들의 광기는 침묵 속에서 숙성되었다. 운반의 편의성을 위해 신경을 조작하여 전신불수로 만들어놓은 악어들은, 낯선 환경과 신체의 부자유, 그리고 병마가 선사하는 고통 속에서 눈알만을 굴리며 선명하게 미쳐갔다.

악어들이 활동할 무대는 베이징의 지하세계였다. 내가 베이징의 지저에서 테러를 준비하려면 먼저 지하세계의 주민들을 치워버릴 필요가 있었기 때문. 누군가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감지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그 시점이 악어를 풀어놓은 다음이면 자신이 느낀 게 거대한 식인괴물의 이능파장(异能波长/마력장의 중국식 표현)이라 여길 것이었다.

7월의 베이징엔 한 달 내내 비가 쏟아졌다.

뉴스에서는 3백 밀리미터가 넘는 집중적인 호우가 명백히 이상기후의 한 갈래라고 떠들어댔다. 대기 중 탄소 농도가 감소 추세라고는 하나,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비는 8월 초까지도 계속되고 있었다. 덕분에 톈진에서 베이징에 이르는 물길은 유량이 큰 폭으로 증가한 상태였고, 나는 이 물길을 따라 어렵지 않게 살아 숨 쉬는 화물을 운반할 수 있었다. 중간에 보 몇 개가 방해가 되긴 했지만, 야음을 틈탄 수중이동의 소요시간은 단 두 시간 남짓에 불과했다.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기념일을 한 달여 앞둔 8월 4일 새벽, 나는 두 마리의 식인괴물을 베이징의 지하수로에 풀어놓았다.

“어휴.”

주변을 둘러보던 경태가 코를 막으며 넌더리를 냈다.

“이런 곳에서도 사람이 산다니…….”

경태와 나는 베이징의 하수도와 연결된 어느 지하벙커에 와있었다.

과거 「중국은 핵전쟁이 두렵지 않다. 중국 인구가 6억 5천만이니 3억이 죽어도 절반 이상이 남는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 많은 아기들을 낳을 것이다.」라며 호기를 부렸던 마오쩌둥은, 사실 핵전쟁의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더 경계하던 인간이었다.

그렇기에 베이징의 지저엔 마오쩌둥 시대에 건설된 엄청난 숫자의 방공호들이 남아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하수도를 출입구나 비상통로로 활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방공호들을 주거지로 쓰는 것은 불법이다. 그러나 베이징의 살인적인 집값은 백만이 넘는 생계형 범법자들을 양산해냈다. 오래된 우물 아래에서도 잠을 자고 하수구 통로에서도 살림을 차리는 마당에, 방치된 핵 방공호에서 지내지 못할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이 어둡고 습한 지하는 불온한 사상을 지닌 지하단체들이 곰팡이처럼 증식하기에 적합한 환경이다.

따라서 중국 공안과 국안부 산하 베이징 시 국가안전국은 지저의 주민들 사이에도 그들의 눈과 귀 노릇을 할 인간들을 박아놓았다. 공권력의 작은 비호를 등에 업고, 소정의 활동비와 포상금을 받아가며 위세를 부리는 왕초들을 풀어놓은 것이다.

이것들을 자연스럽게 치워버릴 수단이 바로 식인괴물이 된 파충류 두 마리였다.

수단이 수단인 만큼, 그 과정에서 부수적 피해가 따르는 건 불가피한 일.

「쿠웅-! 쿠웅-!」

하수도 저편에서 아스라이 울려오는 굉음의 정체는 각성체 악어가 또 다른 방공호의 압력문에 몸을 부딪쳐대는 소리였다. 냉전기 중국의 야금기술로 만들어진 압력문은, 인간의 냄새를 맡고 광분한 악어의 힘을 받아낼 때마다 눈에 띄게 찌그러지며 기능을 상실해갔다.

압력문 안쪽에선 인간들의 아우성이 한창이다. 악어의 공격을 받는 방공호엔 하수구를 통하지 않고도 지상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가 존재했으나, 가까운 아파트 지하로 통하는 그 계단은 아파트 주민들이 투기한 쓰레기들로 꽉 막혀있었다.

악어로부터 달아나려는 인간들은 필사적으로 쓰레기들을 끄집어냈다. 세탁기, 냉장고, 부서진 식탁과 장롱 등. 그러나 그들이 길을 여는 속도보다는 악어가 문을 부수는 속도가 더 빨랐다. 방공호 내부로 포탄처럼 쏘아진 압력문이 사람 하나를 갈라 죽인다.

“救我! 救我!(살려줘! 살려줘!)”

“救命! 有没有人来救我啊?!(구해주세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방공호의 주민들이 계단 위의 문을 향해 울며불며 외쳐대는 소리. 그러나 자물쇠가 걸린 녹슨 문 너머엔 사람은 없고 다만 금줄에 걸린 경고문이 있을 따름이었다.

「쥐족 출입 금지.」

쥐족(鼠族). 즉 시궁창에 서식하는 쥐 같은 족속들. 이는 볕이 들지 않는 지하세계의 빈민들을 일컫는 멸칭이다. 지층 주택에 세 들어 사는 사람도 쥐새끼고, 우물 아래에 숨어 사는 사람도 쥐새끼고, 방공호나 하수도에서 생활하는 사람도 쥐새끼다.

아무렴 아파트 주민들이 자기네 현관으로 더럽고 냄새 나는 쥐새끼들 드나드는 꼴을 보고 싶겠는가. 이 부근의 집값이 얼마인데.

핏빛 폭발이 일어났다.

방공호 내부는 삽시간에 사람의 피로 채색되었다. 악어의 광란이 좁은 공간에 부대낄 때마다 천장에서 부스스 돌가루가 쏟아져 내린다. 괴물이 사람을 물고 거칠게 머리를 흔들자 떨어진 팔다리와 인간의 내용물이 사방팔방으로 튀어나갔다.

경태가 물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보십니까? 저쪽에 뭔가 특별한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니, 별것 아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할 때, 두 마리 악어가 죽이는 지저세계 주민들의 수는 반드시 많을 필요가 없다.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지저에 사람이 드물게 만드는 것이며, 베이징의 각성능력자들로 하여금 거대한 마력장의 실체를 혼동하도록 유도하는 것.

일정 수위 이상의 공포가 조성되기만 하면 시궁창의 쥐들은 알아서 지상으로 쏟아져 나갈 터이다. 설령 두 악어의 죽음이 확인된다 한들, 지저의 어둠 속에 또 다른 괴물 악어가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적어도 한 달 이상은 이어지겠지. 하수도 수색에 나설 엽사들이 때때로 거대한 무언가의 존재감을 증언할 테니까.

양지로 올라간 쥐 떼는 지상의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공산당은 땅 밑에서 올라온 난민들에게 다소의 행정력을 낭비해야만 하겠지. 숫자라도 적다면 모를까, 최소 만 단위를 헤아릴 난민의 물결은 방치하거나 무시해도 좋을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테러에 도움이 되는 요소들.

쥐 떼를 몰기 위한 대략적인 계획은 수립해두었다. 두 악어를 풀어놓은 지점부터가 지저세계에 존재하는 권력 피라미드의 신경망을 자극하기 적합한 곳들이었다.

「왜애애애애애앵-!」

하수도에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는 사이렌 소리. 경보장치를 작동시킨 것은 이 구역의 왕초가 깔아놓은 야경꾼들이었다.

이윽고, 「흑수방(黑水帮)」이라는 현판을 내건 대형 방공호로부터 투박한 냉병기와 소수의 총화기로 무장한 각성능력자들이 쏟아져 나왔다. 청각을 조율하니 일곱 모퉁이 너머의 외침들이 귀에 들어온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기어코 철혈검문 놈들이 쳐들어온 건가?!”

“너! 당장 방주님을 모셔와!”

“9번대! 이발소 앞 길목을 차단해라! 8번대는 나를 따라 헬스장(健身房) 방향으로 우회해서 적을 탐색한다!”

이 악취가 감도는 땅 밑에도 작고 열악하나마 이발소와 세탁소, 헬스장 등 주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업소들이 간판을 걸고 있었다. 물리적인 의미의 지하경제라 할 만한 광경.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자들의 허영으로 스스로를 치장하고 기세를 올리던 ‘무림인들’은, 그러나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식인괴물의 존재감과 낮은 포효의 메아리 앞에서 일제히 얼어붙었다.

「그-으-르르르르르르-」

지저의 주민들은 체취가 강하고 독한 편이었다. 위생관념의 개선은 부의 피라미드를 타고 차등적으로 흘러내리는 것이기에. 이 냄새를 맡은 악어는 난폭한 질주로 인간들을 향해 쇄도했다. 1.3톤짜리 괴물의 전력질주가 가벼운 지진과도 같은 진동을 자아냈다.

고속으로 이동하는 지저의 커다란 마력장에 지상에서도 한바탕 소요가 일어난다. 교차로에선 추돌사고가 벌어지고, 잠들어있던 각성자들이 소스라치게 놀라 깨어나며, 누군가는 공안으로 신고 전화를 넣는 등.

“뭐, 뭐야, 저건!”

마침내 한 무리의 무림인들과 악어가 직선상의 대치를 이루었다. 괴물에게 집중되는 휴대용 조명들. 어둑한 환경에서 빛을 받은 악어의 눈이 불그스름한 색채로 번쩍인다. 악어는 눈에서 잔광이 그어질 만큼 빠른 가속으로 인간들의 대열을 덮쳐들었다.

“으으, 이, 이노흐오옴!”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다. 왈패들을 이끌던 덩치가 바람이 새는 기합과 함께 자루가 긴 철퇴를 내리쳤다. 잔뜩 확장된 동공과 반쯤 맛이 가버린 표정. 그래도 지하의 왈패치곤 훈련을 열심히 했는지, 깔끔하게 떨어지는 궤적은 무의식에 동작이 밴 자의 염동체술이었다. 중국인들은 내가기공과 초식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하는 그것.

터엉-!

커다란 철퇴 대가리가 악어의 정수리를 치고 포탄처럼 튕겨나간다. 다음 순간, 바다악어는 중갑을 착용한 덩치를 물고 맹렬하게 몸을 비틀었다.

“끄아아아아악!”

두껍고 투박한 갑주가 무력하게 구겨지고, 그 안에 낀 사내의 몸은 쥐어 짜이다시피 으스러졌다. 와작, 와작, 와자작. 악어가 터업 텁 고쳐서 물어댈 때마다 갑주와 인간의 몸뚱이는 이빨 자국 가득한 누더기가 되어간다.

그렇잖아도 악어의 존재감에 압도당한 상태였던 왈패들은 삽시간에 공포에 잡아먹혔다.

“좌호법님 같은 고수가 순식간에……!”

“도망쳐! 우리는 상대가 안 돼!”

“대체 저런 괴물이 왜 이런 데 나타난 거야?!”

악어는 달아나려는 왈패들을 놓치지 않았다. 쇠 맛이 나는 인간 누더기를 휙 던져버리고, 보다 부드러운 질감의 새로운 인간들을 사냥한다. 덩치보다 방어구가 부실한 왈패들은 달리는 괴물에게 치이기만 해도 중상이었다. 반사적인 회피로 충돌을 비껴낸 행운아들은 좌우를 연속으로 후려치는 꼬리에 맞아 내장이 파열되었다.

두꺼운 꼬리의 속도는 채찍과도 같은 파공성이 울릴 만큼 빨랐다.

‘아주 잘 싸워 주는군.’

내가 빚어낸 괴물이긴 하나, 실전에서 보여주는 성능이 예상했던 수준을 상회한다.

콰앙!

어둑한 터널 안쪽에서 화약 터지는 섬광이 번뜩인다. 막다른 길에 몰린 왈패 하나가 대구경 사제총을 발사한 것이었다. 그러나-

티잉-!

우둘투둘한 가죽은 비껴 들어온 총탄을 간단히 도탄시켰다. 맑게 울리는 쇳소리는 두꺼운 악어가죽에 작용한 생체강화의 효과를 드러내는 것.

이렇게 잘 싸워주는 건 좋지만, 목격자 하나 남기지 않고 다 죽여 버려선 곤란하다. 나는 회로에 염동력을 장전한 후 터널을 따라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내 체취가 바람을 타고 악어에게 전해지게끔.

「……!」

여러 모퉁이를 굽이굽이 돌아간 바람의 한 갈래가 악어의 비강을 스치자, 악어는 소스라치듯 놀라 몸을 경직시켰다. 자세를 높인 채 후각에 집중하던 악어는, 내가 다시 한 번 일으킨 바람을 받아 풍하지대를 향해 달아났다.

“흐, 흐으으으…….”

꼼짝없이 죽을 운명이었던 사제총병이 오줌을 흘리며 주저앉는다. 넋이 나간 낯짝은 머리가 텅 비어버린 자의 것이었다.

나는 두 마리의 악어를 뜻대로 몰아가며 새벽녘의 지저를 진감케 했다. 이 과정에서 특히 신경을 써야 했던 게 유독성 가스가 고여 있는 구간들. 이 가스들은 유독성인 동시에 가연성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므로, 가스의 많고 적음에 따라 바람으로 흩어버리거나 불씨를 튀겨 폭파하나 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동시에, 일부 통로를 무너뜨려 외부로부터 고립된 구역을 확보했다.

이 구역에 있는 것은 냉전기 이후로도 당국의 관리를 받아온 방공호였다. 불법입주자들에게 점령당한 다른 자잘한 방공호들과 달리, 이따금씩 찾아와 시설을 점검하는 관리인을 제외하면 외부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던 시설. 다른 방공호들보다 깊이도 더 깊고, 시설도 더 좋고, 격벽과 압력문도 더욱 튼튼하다.

이곳은 지하굴착 작업의 거점 겸 베이징 테러의 현장지휘소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중국 당국의 지저시설물 지도에는 없는 새로운 길을 뚫어 비밀스러운 출입로를 확보하는 것쯤은 십 분 남짓의 마력 운용으로 충분했다.

기초적인 장비들을 벙커에 들이고 나서 먼 지상에 설치한 통신 중계장치들과 유선 연결을 완료했을 때, 나는 임마누일로부터 나를 찾는 연락이 들어왔었다는 사실을 보고받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걸자, 목소리에서 술 냄새가 나는 주정뱅이 임마누일은 대뜸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바딕. 나 좀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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