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51화 (351/561)

#38. 광장으로 가는 길 (1)

처음 내게 거두어진 이래 지금까지, 샤히디 그룹에 속한 위구르인들은 미국과 멕시코를 전전하며 1천 시간에 달하는 전문적인 전투훈련을 이수했다. 하루 12시간씩 83일간의 강행군으로 이루어진 속성 정예화.

사막에서, 정글에서, 그리고 시가지와 건물 내부를 모사한 인공적인 훈련환경에서. 헌터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사설 훈련기관들이 워낙 많았기에, 많은 돈과 확실한 위장신분만 있다면 못 쌓을 경험이 드물었다. 때로는 국제사업부나 경호실에 속한 내 부하들이 건너가 교육지도를 행하기도 했다. 국제사업부의 밀수경험은 잠입과 무기반입, 그리고 게릴라 조직 결성에도 쓸모가 있으니까.

여기에 추가로 행해진 것이 비행훈련과 해상활동훈련이었다.

비행훈련엔 에어버스와 보잉의 비행 시뮬레이터가 동원되었다. 파산한 항공사가 보유하고 있던 EASA FFS 레벨 D의 시뮬레이터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독립투사들이 하이재킹 역량을 배양하는 수단이었다. 조종사를 협박하여 행선지를 바꾸는 것과 테러리스트 스스로가 직접 조종간을 잡는 것 사이엔 아주 큰 차이가 존재한다.

해상활동훈련은 멕시코 해군 ZN-8 사령관 마르띠네즈 제독에게 외주를 주었다. 훈련 외주라기보다는 합법적인 헌터그룹의 탈을 씌운 위구르인들을 해상단속활동에 써보라며 지원해준 것에 가깝지만.

해상에서 이루어지는 밀수단속과 대테러활동은 해상침투 및 선박 강탈의 데칼코마니에 해당한다.

장비들을 채택하고 운용함에 있어서 채산성을 고려해야 하는 일반적인 헌터그룹들과 달리, 샤히디 이하의 위구르인들은 내 조직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비용을 도외시하고 최고급의 장비들을 운용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파견기간 내내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모든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기록을 세웠다. 마르띠네즈 제독은 내가 지원해준 인력의 수준에 깊은 만족감을 표했다. 이 모든 것이 총 책임자인 경태가 예상한 대로였다.

그리고 오늘, 필리핀 북부 해상에서, 나는 오랜만에 알림 샤히디와 대면했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드는구려. 그동안 잘 지내셨소, 알림?”

인사를 건네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각성능력자용으로 출시된 중량 전술방호복 차림의 샤히디는 그저 복잡한 눈으로 나를 응시할 따름.

“왜, 아직도 내가 의심스러우신가?”

다시 물음을 던지니 샤히디는 비로소 반응을 보였다.

“아니. 그렇지 않다. 당신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받았지……. 다만, 어째서 이렇게까지 해주는지가 여전히 의문스러울 뿐. 예전에 당신이 해주었던 말들을 곱씹고 또 곱씹어보았으나,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당신이 말한 당신의 동기는 충분한 이익을 담고 있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하오?”

“…….”

“당신들은 내 이익이 무엇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없소. 중요한 건 내가 약속했던 그날이 드디어 목전으로 다가왔으며, 그날의 거사를 성공적으로 완수해야 당신네 민족의 앞날에 희망이 생긴다는 사실이지. 지금은 오직 당면한 과제에만 모든 의식을 집중해야 할 때요.”

여기까지 말한 나는 테이블 중앙의 프로젝터에 전원을 넣었다. 선실 전면의 스크린에 미리 준비해놓은 자료가 출력된다.

“공연한 소모는 접어두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먼저, 이게 뭔지 알아보시겠소?”

“……선적 및 운항계획? 질산암모늄?”

마르띠네즈 제독 아래에서 경험을 쌓도록 한 보람이 있어, 샤히디는 영문과 중문으로 병기된 국제표준양식의 선적 및 운항계획을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 조국독립과 성전을 향한 열망이 낳은 능력향상이었다.

“이것이 내가 준비한 첫 번째 조공이오. 타격 목표는 중국 동해함대 상하이 군항. 공해상에서 화물선에 침투한 후 선창에 은밀히 폭탄을 설치해놓고, 선박이 민간부두에 도달했을 때 기습적으로 함교를 장악하여 군항으로 진입하는 물목을 차단하는 거지.”

화물선의 이름은 「쿤룬 싱웨이(곤륜성위/昆仑星位)」. 내 조직과는 전혀 무관한 선박으로, 나는 이 선박의 화물과 운항정보를 중국 국가안전부를 통해 입수했다. 세 경독에게 댄 명분은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을 확인하는 데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화물의 상세와 행선지를 확인한 샤히디가 동요를 드러냈다.

“이게…… 고작 조공이라고? 2천 3백 톤의 질산암모늄 폭발이?”

나는 가볍게 긍정했다.

“그렇소. 왜냐면 이건 실패하기 위한 계획이니까.”

질산암모늄 2천 3백 톤이면 작은 전술핵과 비견될 화력을 뽑아낼 수 있다. 단순 위력계수로만 암산하면 군용화약(TNT) 970톤쯤을 터트리는 것과 비슷할 터.

그러나 질산암모늄과 군용화약의 폭속엔 차이가 존재하는 만큼, 실제 파괴력은 그보다 5% 가량 낮춰 잡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건물과 선박을 반파할 수 있는 범위는 반경 5백 미터 이내. 창문이 깨지는 정도의 가벼운 피해도 반경 1킬로미터를 조금 넘는 선에서 그치게 된다.

‘극적인 실패를 연출하기에 적당한 위력이지.’

얼마나 극적인 장면이 완성되는가는 테러리스트들의 공격 계획을 미리 전달받은 경독들의 역량에 달려있는 문제다. 장강 하구에서 버섯구름이 치솟았음에도 피해자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 게 최선의 결과겠지. 수십만의 목격자들은 첩보당국의 활약에 깊은 인상을 받을 것이다.

“어째서?”

샤히디가 의문을 드러냈다.

“배를 탈취하고도 굳이 실패를 꾸미는 이유가 뭐지?”

“말했잖소. 조공이라고.”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조공의 정의가 뭐요? 적의 주의를 주공으로부터 돌려놓기 위한 기만공세잖소. 적을 속이고 방심시키며, 적의 전력을 흩어버리는 계략이지.”

“하지만, 이걸 성공시키면 수천 명의 중국인들을 죽일 수도 있을 텐데……. 조공이 꼭 실패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겨우 수천의 목숨에 너무 집착하지 마시오. 어차피 이 자살임무에 투입할 인력은 따로 준비해놨고, 당신은 그냥 성명만 발표해주면 되니까. 민족의 자주독립을 염원하는 독립투사이자 알라의 전사인 알림 샤히디의 이름으로.”

자살임무에 투입할 인력의 정체는 물론 아장-아장의 고아새끼들이었다. 이 고아들은 마법이 돌아오기 전부터 선박납치와 폭탄테러로 악명이 높던 놈들이라, 해상에서의 조공으로 소모하기에 적합했다.

“우리에게 명예를 주고 죽을 자들이 있단 말인가? 설마 당신이 구한 다른 동포들이……?”

“아니. 그들에게는 다른 역할이 있지.”

튀뮈르 아지지 그룹. 쇼랏 압디카디르 그룹. 그리고 누르메멧 칸 그룹. 이 세 개의 그룹은 중국 공안과 국안부를 기만할 정보원들이고, 해외 위구르인 공동체 내에서 무장독립운동에 대한 여론을 조성할 바람잡이들이며, 샤히디 그룹을 보충할 예비 병력자원이기도 하다.

“그럼 대체 누가? 당신의 부하들일 리는 없을 테고.”

“공동전선을 펴기로 한 알라의 전사들이 있소. 당신이 그토록 경애하는 동 투르키스탄 이슬람당의 독립투사들은 아니니 안심하시오.”

“…….”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는 샤히디의 내면엔 복잡한 감정신호의 파문이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예전엔 해외에서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해온 투사들에게 대단한 존경심을 드러냈던 인간이, 스스로 주도하는 무장독립투쟁이 가시권에 들어온 지금에 이르러서는 전과 같은 존경심을 품고 있지 않은 것이었다.

“두 번째 조공은 항공기 납치 및 자폭이오.”

나는 리모컨을 다루어 화면을 넘겼다.

“납치할 기체는 총 3기. 셋 다 여객기가 아니라 각성체 승용마(乘用馬)를 수송할 화물기들이지. 타격목표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행선지가 내몽골 자치구이니, 항로를 조금만 틀어도 타격지점으로 향할 수 있소.”

전마(戰馬)로의 전용이 가능한 각성체 승용마는 거의 모든 국가들이 수출을 규제하는 전략물자다. 그럼에도 중국은 온갖 불법적이고도 비밀스러운 수단들을 동원하여 해외로부터 각성체 승용마들을 사들이는 중이었다.

여기엔 당연히 중국 국가안전부가 연관되어 있었으므로, 세 경독들에게서 획득한 그들의 작전정보를 토대로, 내 조직의 국제사업부는 자연각성체 판매 브로커를 가장하여 국안부 요원들에게 접근할 예정이었다.

제대로 자리를 잡은 3인의 경독은 이렇게나 쓸모가 많았다.

경독들에게 해가 될 일은 없었다. 왜냐면 각성체 전마 도입 계획은 그들과는 다른 계파가 주관하는 것이었으니까. 경독들은 공적도 쌓고 경쟁자들에게 엿도 먹이는 일석이조의 즐거움을 누리는 셈.

샤히디가 위성지도를 노려보며 수염을 매만진다.

“베이다이허라면, 중공의 압제자들이 매년 비밀회의를 여는 그곳인가?”

“너무 기대하지는 마시오. 이 역시 성공을 거두어서는 곤란한 계획이니까.”

“또?”

“나는 저들에게 계속해서 완전무결한 승리를 안겨줄 거요. 저들이 자신들의 방첩역량을 과신하고, 내가 넘겨주는 정보들을 더없이 신뢰하며, 당신들이 잇따른 실패로 가진바 역량을 소진했다고 판단하게 될 때까지. 그때 우리는 빨갱이들의 심장부를 타격할 것이고.”

“이렇게까지 해서 노리는 적의 심장부가 대체 어디이기에?”

“어디긴 어디겠소. 중공의 수도 베이징이지.”

샤히디의 눈에 비치는 내 모습이 흔들렸다.

“……진심인가?”

나는 담담한 어조로 긍정했다.

“내가 했던 약속을 기억하시오. 나는 분명 백만 인의 공포와 압제자들의 경악을 약속했었소. 베이징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어놓으면 독립투쟁의 봉화로는 더할 나위가 없겠지.”

“…….”

“아무튼, 두 번째 조공에선 당신네들의 희생이 조금 필요하오. 조종간을 잡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 일을 도울 알라의 전사들 중엔 비행교육을 받은 자가 전무하거든.”

“내 동지들을 실패가 확정된 임무에 희생시키란 말인가?”

“승리를 위한 희생이자, 당신들의 조국과 민족을 위한 희생이오.”

“어렵군.”

“전혀 어렵지 않소. 당신이 바투르의 딸에게 했던 일을 생각하시오.”

바투르의 딸이라 함은 메리옘을 이름이다. 지난날의 행적을 지적당한 샤히디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러나 조용히 응시하는 내 시선 앞에서 날카로움은 이내 덧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메리옘을 희생양으로 삼았던 독선은 내가 이 인간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던 이유. 자살임무에 동지들을 투입하는 데 과연 거리낌을 느끼기나 할까.

“자, 그럼 다음은 세 번째 조공이오.”

내 말에 샤히디는 못내 황당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깐. 끝이 아니었단 말인가?”

“중공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오. 제대로 방심시키려면, 처음 두 차례의 조공 이후 비교적 규모가 작고 반복성과 관성이 있는 실패를 더하는 편이 좋지. 그 수단으로는 드론 공격이 적당할 테고. 중간에 몇 번쯤은 성공을 거두어도 무방할 거요.”

이란에서 처음 만들고 온갖 잡다한 데서 복제품을 찍어내는 「아바빌」 드론은 이런 목적으로 쓰기에 적합한 무기체계였다. 따로 물건을 조달하지 않아도 조직 본사에서 복제생산이 가능하니까. 저렴하고, 단순하며, 기술적으로도 수준이 낮지만, 그럼에도 북한군이 쓰는 어설픈 드론들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양품(良品)이다.

타격목표는 오로지 군사시설만으로 한정한다. 이쪽이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들과 달리 국제여론에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여주면, 중국 당국의 대응에도 그만큼의 여유와 명확한 방향성이 생길 터.

‘이만큼이나 공적을 떠먹여주는데 설마 경감을 달지 못할까.’

말은 중공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어서 조공들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되, 실상 베이징 테러에 앞서 전개하는 일련의 공세들은 그저 연출의 문제일 뿐. 3인의 경독이 3인의 경감이 되는 건 확정사항이고, 다만 어느 계파에 올라타 얼마의 급수를 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줄을 갈아타는 과정에서 원래의 주인이었던 가오슈센의 방해는 없어야 한다.

나는 적당한 선에서 설명을 끝마쳤다.

“이해했으면 이제 가서 성명의 초안을 잡아보시오. 초안이 완성되면 내 부하들이 내용을 검토하여 뺄 것은 빼고 더할 것은 더하도록 해줄 거요.”

“당신의 아랫사람들에게 첨삭을 받으라고?”

“싫소?”

“……아니. 당신 뜻대로 하겠다.”

대략적인 작전내용을 공유한 것은 성명과 선전 영상을 미리 제작해두기 위함이었고, 내가 직접 시간을 낸 것은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과의 또 다른 채널이 될 인간에게 저가 과히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흐려졌을지도 모를 내 인상을 다시 한 번 깊게 각인시켜놓을 겸 하여.

마무르 그 미치광이와 다라-아담-켈의 다섯 공장이 대단히 협조적이기는 하나, 극단주의자들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고, 그들 세계와의 접점은 많을수록 유익하다.

샤히디를 내보낸 나는, 대담이 진행되는 내내 완전무장을 한 채로 시위(侍衛)하고 있던 메리옘에게 말했다.

“이제 복면을 벗어도 좋다.”

“예, 주인이시여.”

공손히 답한 메리옘이 발라클라바를 벗고 차분한 손길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저 인간을 다시 보고도 의외로 별 감정이 없어 보이는구나.”

“당신께서 그를 도구로 쓰려 하시는데, 당신의 종인 제가 어찌 사사로운 원한을 떠올리겠습니까. 또한…….”

메리옘은 자신의 심장 어림에 손을 얹고 말을 이었다.

“또한, 제 몸과 마음과 영혼은 사람에게 권능을 허여하시는 분의 은총이 정수리에 부어진 날 새롭게 빚어진 것. 그 이전에 겪었던 고통들은 당신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당신을 섬기는 나날의 충실함에 희석되어, 이제는 마치 다른 사람의 기억처럼 아득하게 느껴질 따름입니다.”

원래의 전공이 전공이라 그런가, 쓰는 언어가 참 유려하기도 하군.

“네 동포들과 사라진 조국의 일도 그러하냐?”

“솔직히, 그렇습니다. 동포들이 광복을 맞이한다면 물론 기쁜 일이기는 하겠사오나…… 지금의 제게는 과거와 같은 열망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희는 잃어버린 나라보다도 더 아늑한 영혼의 안식처를 허락받았으니까요.”

“그런가.”

거짓된 메시아의 사도가 쏟아내는 말들은 모두가 진심이었다. 혹시나 해서 확인해봤지만, 이 녀석에 대해서는 별도의 ‘고충관리’가 필요 없을 듯하다.

나는 정례화된 포상으로서 메리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메리옘은 행복의 색채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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