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46화 (346/561)

#37. 금기와 욕망 (8)

술타나는 내부의 적이 자신의 아들이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나는 보여주기용으로 잠시 멈칫한 뒤에 뜻밖이라는 투로 대꾸했다.

“그걸 내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의외인가?”

“예.”

설령 모두가 다 아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게 체면을 상하게 할 법한 사안이라면 당사자의 면전에서는 절대로 거론하지 않는 게 이 나라의 전통적인 정서다. 그러한 정서의 결정체라고 해도 좋을 꼰대가 가정사라고도 할 수 있을 치부를 스스로 밝힌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직설적인 화법 역시 어울리지 않기는 매한가지.

빠드득 빠드득. 손아귀에서 마찰음이 나도록 담배 파이프를 만지작대며, 술타나는 평온한 얼굴과 고저가 완만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군주를 시해하려 한 역모는 왕국에서 가장 무겁게 다스려야 할 죄일지라. 옛 왕국의 긴 역사 속에서 반역을 도모하고도 신분과 지위를 유지한 전례는 없도다. 패륜(Kebejatan)을 범한 시점에서 놈은 더 이상 여의 자식이 아니게 된 것이야. 여는 다만 죽어 마땅한 역적에 대해 말하고 있음인즉.”

“음…….”

“어차피 역적은 중인환시에 공개처형을 당할 것이다. 오늘 여기서 억울하게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신민들과 같이, 놈은 녹색 땀을 흘리고 푸른 위액을 토하며 땡볕 아래의 광장에서 고통스럽게 죽어야 한다. 왕의 판결이 이러하며 번복의 여지가 없건만, 함께 싸워줄 벗에게 말을 아껴서 무엇하겠느뇨?”

어차피 알게 될 일을 뭐 하러 감추겠느냐는 소리였다. 나는 가볍게 끄덕였다.

“그럼 반역자는 산 채로 압송되어야 하겠군요.”

“그러하다. 가능하다면 말이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술타나에게서는 자신의 속을 누군가에게 꺼내어놓고 싶은 억눌린 욕망이 엿보였다. 위험한 수위까지 내압이 증가한 압력용기에서 간헐적으로 가스가 새어나오듯이, 술타나의 내면에서도 더는 눌러두지 못한 말들이 흘러나오는 모양새였다.

‘가끔 보면 정신병에 걸리지 않는 게 용하단 말이지.’

이 나라에서 유해 자연각성체를 일컫는 말인 「글랍 마따」는, 내가 기억하기로. 본디 쌓이고 쌓인 내면의 울화가 터져 광란에 빠진 사람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온갖 부의 감정들을 조용한 미소로 덮어버리고, 끊임없이 침묵하며 인내하기를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 그리고 그 자기억압적인 문화로부터 비롯된 특수한 형태의 정신질환.

이렇게 힘들어하는 꼰대를 보니, 가족이란 얼마나 큰 약점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평소와 다른 술타나가 이어서 말했다.

“역도가 누구의 손에 잡힐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나, 만약 그대가 놈을 산 채로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면, 여는 그날 놈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 그 무게만큼의 달러를 그대에게 내어 주리라. 이는 여가 약속한 다른 대가와는 별개로 지불할 사례금이다.”

언제나처럼 사전에 실무진들 간의 협의가 이루어진 바, 술타나는 나와 내 조직의 타격대를 불러들이기 위해 작전지역 내에 위치한 모든 플랜테이션 농장과 공장들에 대한 지분을 내걸었다. 일단 내가 직접 와서 싸워주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0.1%를 주고, 적의 거점을 파괴하거나 얼굴이 알려져 있는 적 간부 하나를 잡을 때마다 특정 퍼센티지의 지분을 추가로 양도하겠노라고. 그 외의 공로가 발생할 경우엔 별도의 협의를 통해 조정하도록 하자고.

양도의 최대치는 5%.

작전지역에 분포하는 농장들의 면적을 다 더하면 서울시의 면적보다 더 넓어진다. 고로 이 모든 자산들에 대한 지분은 0.1%라도 매우 큰 것이었다.

술타나가 이처럼 막대한 대가를 내걸 수 있게 된 건, 내가 가오슈센과 합작으로 차린 광둥성의 농업회사 「양광백포」와 마찬가지로, 기름야자 플랜테이션 농장들 역시 합법적인 무력을 보유하지 않고서는 유지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술타나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하여 교묘하게 자신의 지분을 만들어놓았다.

나는 이곳으로 오기 전 들었던 국제사업부의 보고를 떠올렸다.

「농장을 경영하던 기업들은 처음엔 무장경비들을 고용해서 자력구제를 하려고 했답니다. 하지만 잘 안 됐지요. 자연각성체와 산적들, 그리고 강을 타고 내륙까지 약탈을 들어오는 해적들도 상대하기 버거운 마당에, 북쪽에서 미친 광신도들이 밀고 내려왔으니까요.」

「이슬람 원리주의 반군들의 연합전선은 사방이 열려있는 농장들을 장악해서 지역경제의 목줄을 움켜쥔 후, 마을과 도시들을 역순으로 떨어뜨리는 전략을 쓰는 중입니다. 부패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지방군(코렘/코딤) 부대들은 여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도, 부대 내부에 있는 간자들을 걸러내지도 못했습니다. 무거운 엉덩이를 어렵게 움직여봐야 허탕만 치기 일쑤였지요.」

「어떻게든 군구(코담) 직할 각성능력자 전투단이나 중앙군(코스트라드)을 불러들인다면 해결이 될 문제지만, 그 부대들은 다른 임무들이 많이 밀려있어 임무의 우선순위를 바꾸는 데 과도한 뇌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남는 선택지가 바로 술타나의 라스카르였던 겁니다.」

개별 업체들이 꾸린 자경단들이 협력 체제를 구축해봐야 술타나에게 외주를 주는 것보다는 못하다. 자경단들은 농장에서 나오는 수익으로만 운영해야 하는 반면, 라스카르에겐 해상밀수와 기타 비밀스러운 사업장들로부터 뽑아내는 안정적인 수입이 있으니까.

라스카르가 축적해온 군사적 역량도 역량이다. 파편화된 자경단들의 협력체는 옛 왕실의 말예가 절치부심 갈아온 칼만큼 강하고 날카로울 수가 없었다.

「각성능력자 자경단을 만들거나 지방군 사령관에게 뇌물을 주는 등 초기 시행착오에 들어간 비용이 상당했기 때문에, 업체들은 술타나에게 돈이 아닌 채권을 대가로 제시했다고 합니다. 이에 술타나 측의 협상담당자는 그냥 채권 말고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부사채를 가져오라고 요구했다더군요.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지분을 나눠주라고.」

「궁지에 몰린 업체들은 이 역제안을 받아들인 모양입니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지방군보다 잘 싸우는 술타나를 확실하게 밀어줘서 개국공신이 되어보자는 계산이 섰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부수적으로 들어오는 이득이 쏠쏠하겠지요. 알고 보면 이쪽은 중국보다도 심하게 연줄로 돌아가는 사회이지 않습니까?」

지분을 주면 운명공동체가 되는 셈이니 보다 확실한 보호를 기대할 수 있기도 하다. 술타나가 내게 굳이 사업장들의 지분을 나눠주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지분은 매번 말썽이 생길 때마다 나를 끌어들이는 인계철선처럼 작용할 테니.

겉보기엔 한 번의 용역에 과도한 대가를 지불하는 꼴로 보여도, 실상은 강력한 외부세력을 반영구적으로 고용하는 계약인 것이다.

나야 잠수정 건조시설과 운송 라인만 무사하면 그만이지만.

지방군 부대들의 졸전은 일찍부터 예기된 바였다.

이 나라의 지방군 지휘체계는 연대와 대대 단위로 자잘하게 쪼개어져있다. 무수한 연대장과 대대장들이 저마다의 작전구역에서 폭넓은 재량권을 행사하는 시스템.

이 시스템이 악명 높은 인도네시아식 부패와 엮여 돌아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답이 없어진다. 군대의 장교들이 토호 노릇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지방군 부대들은 장비의 통일은커녕 가장 기본적인 복장의 통일조차 이루어져있지 않았다. 개별 지역사령부 단위로 자율성이 높은 조달체계를 구성하며, 그 모든 조달체계에 군납비리와 리베이트가 끼어있는지라, 하나의 소대 내에서조차 서로 다른 군복을 입고 서로 다른 모자를 쓰고 서로 다른 무기로 무장한 병사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그레이스에게 무기 공급을 제안할 때도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게 장비의 통일과 보급의 규격화이지 않았나.

규격화된 장비 없이는 규격화된 전투력도 없다. 결국 이 나라의 지방군이란 정규군의 탈을 쓴 비정규군 집단에 불과했다.

게다가 군의 각성능력자 수용은 민간에 비해 더딜 수밖에 없다. 예산은 한정되어있고, 법적으로 복무기간이 보장된 군인들을 무작정 내보내지도 못하며, 부패한 장교들의 커넥션이 고용의 경직성을 한층 더 심화시키기까지 하니까. 매관매직이 일상인 마당에 인적쇄신은 무슨 놈의 인적쇄신이란 말인가.

고로 잠비 일대의 기업가들에겐 현실적으로 라스카르 이외의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땅에 기반을 두지 않은 일반적인 용병들은 몸값이 너무 비싸 대안이 될 수 없다.

정규군이 술타나에게 소모적인 역할을 다 떠넘긴 배경엔 사업상의 경쟁자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깔려있었던 셈이었다.

‘뭐, 이 꼰대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북부의 반군들에게 무기를 팔아넘긴 술타나가 과연 정규군의 배치와 작전정보는 안 팔아먹었을까. 정규군이 추태를 부려야 자기가 운신할 폭이 넓어지는데.

이곳은 나처럼 더러운 자들의 밀림이었다.

“술타나. 나는 이번 사냥에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사흘. 사흘 안에 적의 전면적인 패퇴를 이끌어내도록 하지요. 그 이후의 전과 확대와 점령지 탈환은 라스카르의 몫이 될 겁니다.”

베이징 테러 준비에 차질이 없으려면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 수연의 지휘 하에 한참 전부터 밑 작업이 진행되고는 있었으되, 내가 직접 가야만 할 수 있는 핵심적인 준비들이 있으니까.

전투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피해는 패주하는 도중에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과 확대는 라스카르에게 넘겨주기 좋은 역할이었다. 수마트라 전역이 라스카르의 쾌속한 진격에 전율할 미래가 그려진다. 인도네시아 정부 또한 이제까지와는 다른 태도로 술타나를 대하게 되겠지.

꼰대는 내 말에 한쪽 눈썹을 꿈틀거렸다.

“벗이여. 그대의 용맹이 아르주나와 같고 부하들의 정예함은 왕국의 군대를 넘어섬을 알지만, 적도들을 너무 쉽게 여기다간 큰 곤란을 겪을 것이다.”

“걱정 마십시오. 적정을 낱낱이 들여다볼 선을 만들어두었으니.”

“선이라고? 어떻게? 그대는 이제 막 이곳에 도착했을 뿐이지 않은가?”

“당신이 내게 처음으로 도움을 청한 게 언제였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때부터 이미 이번 출정을 계획하고 있었단 말인가?”

“승리는 싸우기 전에 구해놔야 이상적인 것이잖습니까, 술타나. 나는 이겨놓은 싸움을 하러 온 사람입니다. 전장의 안개가 제거된 환경에서, 게릴라들은 나와 내 애들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겁니다.”

“…….”

술타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내가 둘러댄 말들은 기본적으로는 황금기의 눈을 위한 변명이었다. 그리고 마무르의 존재는 내 변명에 설득력을 더해줄 터.

꼰대가 내 말을 의심하여 나름의 조사를 해본다 한들, 성전연합의 존재에 촉각이 닿으면 거기서 납득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서 더 파고들었다간 나와의 관계가 악화될 우려가 있으니까.

그러나 이게 전부는 아니었다.

‘경각심이 들겠지.’

자신이 그간 어쩌지 못했던 적들을 사흘 내로 밀어버리겠다는 내 말은, 골초 꼰대의 자존심과 경각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술타나가 내 조직의 무력을 빌려 쓰는 데 재미를 붙이는 건 달갑잖은 일이다. 그렇다고 요청이 들어오는 족족 쳐내기만 하는 것도 잘하는 짓은 아니고.

그러니 여기선 꼰대에게 적당한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오며, 지나치게 강력한 우방은 수평적인 관계로부터 수직적인 관계로의 전이를 걱정해야 하는 대상이다.

잠수정 건조시설과 밀수라인의 안전을 확보하고, 지분은 지분대로 받아가면서 꼰대 스스로 자제하고 삼가도록 만들 간단한 방책.

꼰대가 세울 왕국은 향후 매 분기마다 폭발적인 성장이 확정된 기업과도 같다. 그렇게 성장을 거듭하다보면 자연히 상호간의 우열을 다시 정하려는 시도가 있기 마련. 이번 사냥은 그러한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무력시위로서도 의미가 있었다.

따라서 승리는 일방적이고 또 압도적이어야 한다.

“후우…….”

술타나의 입술 사이로 담배 연기가 새어나왔다. 이 순간의 칸드라 키라나는 속에 있는 번뇌를 태워 연기를 흘려내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를 보는 시선은 우울하면서도 복잡하고, 체내엔 가벼운 아드레날린의 색채가 번졌으며, 심장은 평소보다 조금 빠른 박자로 뛰고 있었다.

이윽고 꼰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벗이여. 마음껏 실력을 발휘해보라. 여는 어려울 때마다 우정을 보여주는 그대의 노고를 심장에 새겨 기억하리니.”

술타나의 체면으로는 이렇게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이날 하루, 나는 잠비 지역에서 암약하던 470명의 게릴라들을 사살하고 그 배가 넘는 포로들을 잡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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