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시한부의 꿈 (13)
해동을 완료한 331의 육체에 684의 뇌와 영혼을 접붙이는 과정은 매우 빠르게 완료되었다. 331의 몸에 임시로 넣어두었던 영혼을 소거한 후, 두개골을 따서 온전치 못한 본래의 뇌를 들어내고, 그 자리에 684의 뇌를 넣어 「생명」에 의한 재생으로 뇌수를 재충전하며 신경을 연결하는 과정. 이 과정을 마치고 육체를 재가동시키는 데 걸린 시간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멎어있던 호흡이 재개되자, 현장에 보조로 배치되어있던 본사 의료지원과 인력들이 경악성을 흘렸다.
“오, 세상에…….”
냉동수면과 해동, 그리고 완전한 전신이식. 현대의학이 아직 닿지 못한 영역의 시술들을 초현실적인 수단으로 간단히 해치우는 광경은, 사실 의료 인력들에게 보여주기엔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신들이 지닌 전문기술이 별것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으니까. 직업적 자긍심이 쇠하면 기술을 갈고 닦으려는 의지도 무뎌지기 쉽다.
그레이스 복제체의 얼굴과 육체가 사람을 홀리기 쉽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일에 만전을 기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겐 331의 육체가 보여줄지도 모를 여러 이상반응들에 대하여 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할 보조 인력들이 필요했다. 눈에 어떤 현상이 보여도, 그것을 어찌 해석하여 어떻게 대응할지가 문제인 것이다.
성공 확률을 최대화하려면 조금이라도 더 적확한 처치를 행해야 한다. 내 의료지식은 전문가들보다는 못한 수준이었다.
덜걱!
수술대 위의 육체가 경련을 일으킨다. 뇌에 압축되어있던 684의 영혼이 죽은 자매의 몸 전체로 번져나갔다. 그 사이 고정된 사지는 자꾸만 퍼덕였다.
684가 새로운 몸으로 눈을 떴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으로 힘들어지는 구간이었다.
“꺽……! 끄어억……!”
눈을 뜬 684는 고통에 겨운 표정으로 숨을 꺽꺽댔다. 한 번 완전히 죽어 전신에 세포 손상이 발생했던 것을 마법으로 복원해놓은 육체다. 내가 복원에 심혈을 기울이긴 했어도, 보이는 것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영역의 균형은 엉망진창이 되어있을 수밖에 없었다.
“684. 내 말 들리나?”
“끅, 꺼윽, 켁……!”
“「생명」을 운용해라. 아프고 힘든 건 알겠지만, 너 스스로 「생명」을 활성화하지 못하면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어진다.”
684의 눈꼬리에 눈물방울이 맺혔다. 신경신호가 현란하게 번뜩이는 가운데, 뇌하수체, 갑상선, 췌장, 부신, 난소 등의 내분비계로부터는 온갖 종류의 호르몬들이 난잡하고 폭발적으로 분비되었다. 내 말이 들리는 상태인지조차 의문스러울 지경.
「생명」을 쓰는 데 필요한 열량은 인퓨전 펌프에 연결된 정맥주사를 통해 완전비경구영양(TPN)으로 공급되었다. 고 강화계수 각성능력자용으로 출시된 TPN 용액은 1리터에 1,500kcal의 열량이 녹아있었다.
내 말을 들은 것인지, 아니면 본능적으로 필요성을 느낀 것인지, 684는 자신의 회로에 「생명」을 장전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술식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가장 길게 유지된 시간이 2~3초가량에 불과했으며, 그나마도 술식의 완성과 운용은 별개인지라 기왕 완성한 술식이 도리어 자신에게 육체적 손상만 더해놓기도 했다.
마스터 로더필드가 「생명」으로 자신의 뇌를 파괴했고, 또 그레이스가 「부패」의 응용공식을 공유해주었듯이, 「생명」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684의 마력장을 억누르고 개입하여 최대한 원상태에 가깝게 되돌려놓았다. 호흡곤란으로 산소포화도가 낮아질 때에는 마법적인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기도 했다. 684의 실패와 내 개입의 반복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열량을 소모했다.
내게는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도 684의 뇌만큼은 보호해야 했기에.
“주입 속도를 올리지.”
내가 손짓을 더해 하는 말에, 의사 자격이 있는 부하가 조언했다.
“유의하시길. 주입 속도가 빠르면 삼투압에 의한 이뇨와 탈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영양성분 간의 차등적인 소모로 인한 특정 성분의 과잉도 경계해주십시오.”
“걱정 마라. 주의해서 보고 있으니.”
TPN 용액의 주요 성분은 포도당과 단백질이지만, 그 외에 아연, 셀레늄, 구리, 철분과 망간 등 다수의 미량원소들도 고르게 포함되어 있었다. 특정 성분의 과잉을 경계하라는 말이 나온 이유였다. 상황을 봐가며 용액 팩을 교체하거나 마법적 조치를 취하거나 해야 한다.
나는 계속해서 조언을 받아가며 684를 보조했다.
“끅, 께흑-”
몸을 뒤틀던 684가 글썽거리는 눈으로 간절하게 나를 응시했다. 무언가를 말하려는 것 같은데, 여전히 호흡이 정상이 아니어서 제대로 소리를 내지는 못한다.
그래서 나는 입 모양을 읽어냈다.
“손? 손이라고 한 건가?”
684의 턱이 위쪽으로 홱 들리더니, 몇 초의 간격을 두고 아래로 다시 푹 꺾이듯 내려온다. 아마 고개를 끄덕이려고 했던 모양. 억제벨트에 고정된 손의 움직임을 보니 아무래도 손을 잡아달라고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쪽 손을 쓰지 않더라도 내가 684의 육체 상태를 관리하는 데엔 큰 지장이 없었으므로, 나는 684가 바라는 대로 손을 잡아주었다.
잠시 후, 684는 처음으로 10초 이상 「생명」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한 번 늘어나기 시작한 유지시간은 날카로운 등락을 반복하면서도 꾸준한 증가 추세를 이어나갔다. 주입 열량이 3천 kcal을 넘어갈 즈음엔 1분을 돌파했고, 1회 유지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등락의 편차도 줄어들었다.
그리하여 밤이 새벽으로 다가갈 무렵, 684는 「생명」의 운용이 끊어져도 어지간하면 스스로 술식을 재가동해 극복할 수 있게 되었고, 제대로 목소리도 낼 수 있게 되었다.
“추, 추워. 너무 추워.”
수술실의 온도는 충분히 높았지만, 몸이 불덩이 같은 684는 강한 추위를 호소했다. 그런데도 전신에서 줄줄 흘러나오는 혼탁한 땀은 684의 상태가 여전히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증거였다.
통상시야에 비치는 땀의 색채는 다채로웠다. 때로는 노란 땀이, 때로는 녹색 땀이, 때로는 검은색에 가까운 푸른 땀과 그보다는 좀 더 밝은 청색의 땀이 흘러나왔다.
“우욱……!”
수분손실을 고려하여 684에게 경구수액을 먹여주고 있는데, 뒤쪽에 대기하던 의료진 가운데 누군가가 헛구역질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원인은 684에게서 나는 독한 냄새. 일반적인 액취를 수십 배 농축해놓은 듯한 냄새에 황 화합물이 풍기는 계란 썩은 내, 신장의 기능이 마비되어 땀샘으로 배어나는 암모니아 냄새, 간의 대사이상으로 말미암은 트리메틸아민의 비린내 등이 한꺼번에 뒤섞여있다. 환기장치를 돌리는 것만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악취였다.
나는 부하들에게 의료용 증류수를 가져오도록 하여 적당한 온도로 진동가열한 후, 데워진 물을 다스려 684의 피부를 닦아주었다. 684의 마력장을 적당히 억압해도 마소를 끌어다 들이부어주기만 하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다들 밖에서 대기해라. 필요하면 부르겠다.”
가장 어려운 고비는 넘겼으니 응급상황이 발생할 확률은 낮다. 의료진이 돌아서는 모습을 본 684는 내 손을 붙잡는 힘을 강하게 했다. 그래봐야 기운 없는 환자의 악력이긴 했지만. 가만히 내려다보던 나는 땀에 젖은 억제벨트를 풀어주며 말했다.
“나는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이 말에 날 붙잡는 힘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검푸르던 새벽은 밝아오는 아침이 되었다.
스-
까무룩 잠이 든 684의 규칙적인 숨소리. 331의 육체가 진정한 의미에서 684의 것이 되는 순간, 벌써 한참 전부터 한계에 몰려있었던 684는 실신하다시피 수마에 굴복했다.
육체적인 피로라면 모를까, 뇌의 신경계에 누적되는 피로는 내가 손을 쓰기 어려운 영역이다. 잘못 건드리면 돌이키지 못할 손상을 가하는 수가 있으니까.
684의 회로엔 더 이상 「생명」이 흐르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331의 육체는 이제 다른 작용이 없어도 기본적인 항상성을 유지하는 게 가능했다.
즉, 뇌와 영혼의 정착이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
나는 조금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나 또한 몹시 피로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르게, 언젠가 비가 내리던 날 베크룩스의 함교에서 짧고 깊은 숙면을 취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성취감의 일종일지도.
684의 뇌파는 안정적인 동조화를 보였다. 평온하게 잠들어있는 684는 유전적으로 동일한 어머니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나는 따뜻한 증류수를 일으켜 684를 마지막으로 한 번 씻겨주었다. 그다음에는 마력을 태우는 불과 염동력으로 부드러운 질감의 훈풍을 빚어 물기를 날려 보냈다. 물에 대한 구속력으로도 건조를 시킬 수는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불가피하게 열을 빼앗게 되니까. 열 보존을 위해 추가로 손을 쓰느니 간단한 방식을 쓰고 말지.
악취를 빼낸 머리카락을 말려주고 있으려니 잠든 684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스쳐지나간다. 무언가 좋은 꿈이라도 꾸는 모양.
684가 탁한 땀을 흘리지 않게 된 지도 벌써 수 시간째지만, 그럼에도 실내엔 아직 희미하게나마 악취가 감돌았다. 손목과 발목을 고정시켰던 억제벨트를 포함해 냄새가 밴 구석들이 많았기 때문.
기왕 회로에 올린 물에 대한 지배력이다. 나는 뒷정리를 할 의료 인력들을 생각하여 진동가열과 진동세척으로 수술실 전체를 씻어냈다. 밤새도록 대기한 녀석들도 피곤할 게 아닌가. 내가 손을 쓰면 10초도 걸리지 않는 청소였다.
청소보다 오래 걸린 것은 684에게 잡혀있는 내 손을 빼내는 일이었다.
“으응…….”
684가 살짝 미간을 찡그린다. 날 잡은 손엔 힘이 더해졌다. 이는 나로 하여금 나를 향해 손을 꼬무락대던 일그러진 아기들을 떠올리게 했다.
시간을 들여 어렵게 손을 빼낸 나는, 684의 마력장을 억압한 후 옷을 입히고 담요를 둘러 염동력으로 들어올렸다. 수술실을 나서자 줄줄이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의 시선이 모인다.
“다 끝났다. 내부 정리는 내가 했으니 이만 해산해도 좋아. 모두 수고가 많았다.”
684를 미리 준비된 개인선실에 눕혀놓고 나온 다음엔 선내식당을 찾았다. 피로도 피로지만 공복감 역시 상당했으니까. 언제라도 전투가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자면, 눈을 붙이기 전에 간단하게라도 요기를 해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식당에 비치된 TV에선 언제나처럼 뉴스가 흘러나왔다. 내가 착석할 즈음에 나오는 소식은 미국에 부는 주술한류 열풍에 관한 것이었다. 뉴스는 어느 한국인 예언가가 게스트로 출연한 토크쇼의 한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보여주었다.
「빵상! 깨랑까랑? 미국인들아 무엇을 알고 싶으냐?」
앵커는 이 예언가가 전함 미주리 나포를 포함해 여러 사건들을 예언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주리에 대해서는 “미국인들이 바다의 침략자들에게 역사적인 장소를 빼앗길 것인데, 그때는 올해 6월이다.”라며 구체적인 시기까지 적중시켰노라고.
태평양 전쟁이 전함 미주리의 갑판 위에서 일본의 항복문서 서명으로 끝났으니, 굳이 끼워 맞춘다면 역사적인 장소라고 하지 못할 것은 없다.
어느 정도 안목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함이 호위함 하나 없이 단독으로 출격한 시점에서 이미 안 좋은 결말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대중의 무관심 속에서 우려를 제기한 전문가들도 있었고.
저 예언가는 아마 그런 우려들을 참고하여 예언을 빚어냈던 것이겠지. 여기에 김연화가 일으킨 시운이 더해진 결과가 바로 지금의 사업적 성공일 터.
「어떤 주식이 오를 것 같으냐고? 미국인들아. 테슬라를 사라. 테슬라는 올해 안에 2천 달러까지 간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액면분할이 이루어질 것이다.」
「2023년 겨울엔 처음으로 화성 땅을 밟는 지구인이 나온다.」
「내가 이 먼 곳까지 와서 이렇게 너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나는 너무 행복하고 즐겁구나. 빵빵 똥똥똥똥 땅땅 따라라라-」
많이 피곤한 와중에 하는 식사는 의무적인 노동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소화가 잘되는 종류의 음식을 떠서 꾸역꾸역 입에 집어넣으며, 나는 684가 언제쯤이면 깨어날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