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31화 (331/561)

#36. 시한부의 꿈 (7)

7월 16일. 이링가에서 탈출한 평화유지군 행렬은 남쪽으로 약 230킬로미터 떨어진 소도시 은좀베 외곽에 도달했다.

여기까지 오는 데 소요된 시일은 아흐레. 평시라면 열악한 도로 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차를 달려 서너 시간 만에 주파 가능한 거리였겠으나, 그렇잖아도 느린 대열이 빈번히 공격을 받다 보니 불가항력으로 소요시간이 늘어진 것이다.

멀리서 가하는 저격 한 발에 대열 전체가 멈춰서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더욱 본격적인 습격이 들어올 때면 격퇴에서 수습까지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런저런 악조건들을 고려할 때, 일 평균 이동거리 25킬로미터를 찍은 것은 오히려 기적이라 평해야 할 일이었다. 사망자 및 실종자의 숫자도 낮은 수준에서 억제되었으니까.

그 기적을 가능케 한 주역은 역시나 이 무대의 주연인 미친 무당 김연화였다. 적의 습격을 예언하고 현지 주민들의 협조를 이끌어냄으로써, 무당은 이동경로의 안전성과 평화유지군의 대응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혁혁하게 기여했다.

무당이 내놓는 예언은 단 한 번을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미리 예언하지 못한 습격들이 없지는 않았을지언정, 일단 예언을 한 사건들은 반드시 발생했던 것이다.

전 세계의 주요 언론들과 전문가들은 무당의 신들린 예언이 잘 꾸며진 속임수이자 장삿속이라고 판단했다.

지금 위성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분명합니다. 코리안 맥아더는 주술사 왕의 군세 내에 자신의 추종자를 심어놓은 거예요. 휴민트(HUMINT/인적 첩보자원)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후 그걸 자신의 예언으로 포장해서 내놓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야 자신의 ‘사업’이 더욱 번창할 테니 말입니다.」

「아, 그녀의 능력을 폄훼하려는 건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에요. 그녀는 어마어마한 수완가죠. 대체 누가 그녀와 같은 일을 해낼 수 있겠습니까? 오직 그녀뿐입니다. 미스 맥아더는 대신할 사람이 없는 독보적인 존재예요.」

「익명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CIA도 왕의 군세에 대한 첩보를 전적으로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게 있다면, 우리 미국에서도 이토록 뻔한 속임수에 넘어가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입니다.」

「아프리카 현지인들이야 충분히 속을 만하지요. 대체로 교육수준이 낮은 데다 전통적인 주술신앙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서조차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공교육의 파탄이 낳은 비극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이야기가 새는 느낌이긴 합니다만, 전미총기협회(NRA)는 미스 맥아더의 교리를 연상케 하는 TV 광고를 즉각 중단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악한 것들은 형체가 있든 없든 총과 화약으로 해결할 수 있다.”라니. 그렇잖아도 미스 맥아더가 유명세를 탄 이후 관련성을 부정하지 못할 사고들이 급증하고 있는 마당에-」

미국에서 통하는 김연화의 별명 중 하나가 바로 「총기협회의 비너스」였다.

영적인 존재나 주술적 현상들에 대한 두려움이 민간에서 역병처럼 번지고 있던 차에, 그것들을 화력으로 밀어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선지자가 등장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상인들에게 상품의 새로운 판로는 언제나 옳은 것이다.

총기협회의 핵심 지지자들인 신 보수주의 백인들의 종교적 반발도 의외로 적었다. 김연화가 항상 성경을 끼고 다니며 성경 구절들에 해박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까닭이다. 김연화는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맥아더 장군께서는 일찍이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성경을 읽지 않고 잠든 적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 그런 장군을 신령으로 모시고 있는 본 선녀가 어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함과 삼위일체를 부정하겠는가? 본녀는 다만 남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따름이니라. 이 세상 모든 신령들이 주님의 아래에 늘어서 있음인즉.”

평소의 언행이 이러하기에, 미국의 기독교 신자들은 김연화를 상종 못 할 이교도라기보다 지천에 널린 기독교 이단 중 하나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미국에서는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는 범위였다.

정체를 다 알고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저렇게까지 말을 잘 꾸며내는 것도 재주다 싶을 지경.

하기야, 따지고 보면 김연화는 과거부터 그럴듯한 말들로 덜떨어진 기복자(祈福者)들을 등쳐먹으며 살아온 사기꾼이지 않았나.

이 감각 좋은 사기꾼은 이링가를 벗어난 평화유지군을 아래에서부터 살살 녹여먹는 중이었다. 상층부야 무당의 예언이 뻔한 속임수라고 생각하지만, 일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은 그게 또 아니었던 것.

병사들이 미신에 취약한 건 비단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해병대만 하더라도 전투식량에 들어있는 사탕을 먹으면 재수가 없다는 믿음을 공유하지 않던가.

한낱 사탕조차 우연한 불행들이 겹치면 그만한 위력을 발휘하는데, 예언 적중률이 백 퍼센트인 무당의 영향력이야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이 영향력은 무당이 더욱 좋은 실적을 쌓도록 해주는 힘이었다. 이 길고 고단한 엑소더스가 종착지에 도달했을 때, 세상은 그 공로의 과반이 무당에게 있다고 평할 것이었다.

그러니, 평화유지군과 각국 교민들의 대탈출을 집중 조명하는 라디오 방송이 김연화에게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라디오에선 김연화가 과거에 했던 인터뷰들이 흘러나왔다.

「지난날 일본이 사악한 짓들을 많이 했던 것은, 일본인들이 태생적으로 사악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나라가 8만 잡귀들의 음기에 눌려있었기 때문이다.」

「그 크고 삿된 음기가 리틀 보이와 팻 맨의 양기에 날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일본인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되찾아 항복문서에 서명할 수 있었고, 8만 잡귀들도 사도(邪道)에서 정도(正道)로 돌아와 더는 사람들을 나쁜 방향으로 홀리지 않게 되었던 것이지.」

「핵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지혜로 태양의 양기를 빚어내는 양중지양(陽中之陽)의 신물(神物)이다. 그러므로 핵은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퇴마 수단이며, 일본인들은 귀한 핵폭탄으로 양진(禳鎭)을 베풀어준 미국의 은혜에 감사를 표해야 마땅하다.」

「맥아더 장군께서 한국전쟁 당시 백악관에 핵무기 사용을 진언했던 것도 중공 빨갱이들의 음기와 사기(邪氣)를 날려주기 위해서였다. 그때 핵을 맞았어야 중국이 더 선량한 국가로 거듭날 수 있었을 터인데, 심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관성 있는 단순함과 우스꽝스러움으로 지식인들의 경계를 덜 사면서도, 미국 보수층의 입맛에 은근히 달게 느껴질 난언들. 무당의 사업은 앞으로도 순조로울 것이다.

그레이스는 이 미친년을 대체 어디까지 키워서 써먹을 작정인지. 설마 런던에서마저 보게 되려나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다.

야전텐트 안에 마주 앉아 함께 라디오를 듣던 윤혜원이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기본적인 엠바고(보도통제)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네요. 정부로부터 협조 요청이 있었을 텐데. 하여간 언론이라는 것들은…….”

무당이 왕의 군세에 첩자를 심었다 어쩐다 하는 소리는, 사실 절대로 방송을 타선 안 되는 것이었다. 정말로 첩자가 있다 치면 그 첩자의 신변이 위험해지고 마니까.

이 같은 언론의 행태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살래살래 고개를 저은 윤혜원은 가벼운 쪽으로 화제를 전환했다.

“그거 아세요? 요즘 중국에선 한국의 무속이 원래 중국의 것이었다는 주장이 돌고 있대요. 유튜브랑 SNS를 활용해서 적극적으로 홍보도 하고 있고요.”

“그렇습니까?”

“우리나라가 그걸로 이래저래 이익을 보니까 욕심이 났나 봐요. 경제적으로만 보더라도, 한국으로 주술 관광을 오는 외국인들이 한 달 사이에 무려 40만이 늘었다고 하잖아요. 계룡산 주변 숙박업소들은 반년치 예악이 꽉 찼다고도 하고, 망해가던 명동엔 서낭거리가 들어선다고도 하고…… 지금 같은 불경기엔 확실히 부러울 만도 하죠.”

“사람들이 싫어하겠군요.”

“예, 뭐. 살다 살다 이런 걸로 외교적 갈등이 생기는 날이 올 줄이야. 참 신기한 세상이지 않아요?”

사냥감이 재밌지 않느냐는 듯이 미소 짓기에, 나 역시 절제된 웃음을 꾸며 어울려주었다.

윤혜원은 둘이 있을 때 경제, 사회, 외교에 관한 이야기나 내 표면적인 신분의 직무 및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꺼내었다. 제 딴에는 그러는 편이 나의 흥미를 끌어내기에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는 윤혜원 본인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사회적인 명성, 직업적인 성공, 그리고 경제적인 풍요.

이 험한 땅으로 자청해서 올 만큼 야망이 넘치는 인간답다고 해야 할까.

“식사는 만족스러우셨는지.”

내 말에 윤혜원이 볼을 붉힌다.

“네에. 오늘도 정말 맛있게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모두가 살기 위해 식사를 하는 이때, 즐기기 위한 식사를 하는 특권은 사냥감이 스스로의 동선을 감춰야 할 이유의 하나였다.

윤혜원은 자신이 상급자와 동료들의 눈에 그들보다 편하게 지내는 모습으로 비쳐지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러므로 윤혜원은 교민들의 상태를 살피고 헌터들의 협조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단독행동을 포장했다.

이 혼란스러운 대열에서 홀로 움직이는 건 외교부 안전수칙을 위반하는 것이었으나, 모두가 지치고 피곤한 현장에선 그런 원칙이 곧이곧대로 지켜지기 어려웠다.

헌터들에게 협조를 구한다 함은 곧 헌터들의 담합을 상대하는 일이다.

중무장 용팔이들이 짬짜미로 가격을 올려댄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작금에 이르러서는 차라리 민간인과 비전투원들 전부를 왕의 군세에 넘긴 뒤 추후 몸값을 지불하는 편이 싸게 먹히겠다는 말이 나올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물론 헌터들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한국정부가 고용한 헌터들은 공무원들에게 이구동성으로 볼멘소리를 해댔다.

「우리는 다른 나라 헌터들보다 훨씬 싼 값에 물자를 대고 있는데, 여기서 가격을 더 내리라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거 공공의뢰점수로 협박질 좀 그만하소! 하여간 이 망할 놈의 나라는 사람 제값 주고 쓰는 꼴을 못 보겠다니까! 아주 그냥 공산주의야, 공산주의!」

「어휴. 내가 영어만 되었어도 일찌감치 탈조선을 했을 건데……. 내 무식이 죄다.」

한국정부가 헌터들에게 제도적인 고삐를 채워둔 덕에, 한국 외교부 긴급대응팀 및 타라자 부대의 현지조달가는 타국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공공의뢰점수가 깎이면 다양한 무기와 장비들의 운용자격을 박탈당하는 한국 헌터들로서는 공무원들의 협박 아닌 협박을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무원들과 용팔이들의 입장은 평행선을 그릴 수밖에 없었고, 헌터들을 상대하는 건 외교관들의 기피업무가 되었다.

그런 기피업무를 윤혜원 혼자서 하겠노라 자청하니, 다른 외교관들이 싫어할 리가 있나. 처음엔 그래도

이는 사냥감이 나와의 밀회를 비밀로 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였다. 나와의 사적인 친분이 알려지면 제 노고가 평가절하당할 우려가 있잖은가. 사고방식이 천박한 인간들 사이에서 다소 더러운 소문이 돌 가능성도 걱정해야 한다.

“아, 갑자기 왜 이렇게 졸음이 쏟아지지?”

식사에 들어있던 수면제가 효과를 발휘하는지, 이마를 짚고 무겁게 눈을 깜박거리는 사냥감. 나는 야전침대를 가리키며 휴식을 권했다.

“많이 피곤하신 모양인데, 잠시 눈을 붙이고 가시지요. 이삼십 분 정도라면 바깥에서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간 이 정도의 신뢰관계는 구축되어 있었다. 윤혜원은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도 장난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제가 부사장님을 믿어도 되는 건가요?”

“이제 와선 새삼스럽지 않습니까?”

“……그도 그러네요. 부사장님만큼 자기절제가 엄격한 분도 없겠죠.”

내게 제대로 낚인 윤혜원은 한참 전부터 이런저런 유혹의 신호들을 보내오고 있었다.

이에 나는 직설적으로 이야기했다. 아랫사람들이 고생을 하는 와중에 홀로 일탈을 벌이는 것은 윗사람의 도리가 아닌 듯하다고. 그러니 보다 진지한 만남은 작금의 사태가 마무리된 뒤에 시작하자고.

약효는 그사이에 더 강해졌다. 소리 죽여 하품을 한 윤혜원이 꾸벅대며 말했다.

“그럼…… 잠시 신세를 지도록…… 할게요……. 너무 졸려……. 이상하네…….”

“제가 도와드리지요.”

나는 흔들거리는 윤혜원이 넘어지지 않게끔 도와 야전침대에 눕도록 해주었다. 다시 한 번 미소를 지은 사냥감은 몇 호흡 지나지 않아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약이 들기 이전에도 이미 피로가 쌓여있던 사냥감이다.

쌔액- 쌕-

무방비한 숨소리.

사실 윤혜원은 죽이려면 진즉에 죽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이나마 틈틈이 할애해가며 여기까지 온 것은, 죽이기에 앞서 사냥감에 대한 감정평가를 실시하는 과정이었다.

요컨대 나는 이 작은 사냥과 기념품 제작이 수연 녀석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 선물일지를 좀 더 분명하게 가늠해보고 싶었다.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게 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그동안 나는 다양한 방식으로 윤혜원의 진술을 이끌어냈다.

물론 그러한 진술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과는 거리가 멀었으나, 나는 이런 부류의 가해자들이 쓰는 화법을 해박하게 알고 있었다. 조직 본사의 고충심의위원회가 괜히 있는 게 아니고, 나는 꼬박꼬박 보고를 받아 결재를 해주는 입장이니까. 대부분의 가해자들에게는 일정한 공통분모와 전형성이 존재한다.

이러한 앎에 황금기의 눈을 보태면 진실의 윤곽을 더듬는 건 쉬운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수연 녀석의 불우한 시절에 대해 전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텐트를 나와 손짓하자, 기다리던 부하들이 들어가 사냥감을 잘 포장하여 산 채로 운반할 준비를 마쳤다.

칠각기사단이 공유한 정보에 따르면, 이제 곧 무당이 예언하지 않은 습격이 개시될 것이다. 야습으로 인한 혼란은 외교부 사무관의 실종에 그럴듯한 정황을 제공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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