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26화 (326/561)

#36. 시한부의 꿈 (2)

나는 날아다니는 적들을 땅으로 내리꽂는 것부터 시작했다.

키무라 마사노리와 피에르프란체스코를 포함한 공중 수송 에스코트 패키지를 습격할 때와 달리, 제트 바이크를 탄 원탁의 비행대들은 내 마력장의 범위 내에서도 누구 하나 고도를 상실하지 않았다. 그저 한 차례 출렁이듯 하강했다가 상승했을 따름. 과연 원탁의 정예다운 기량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추력의 감소는 불가피한 것이었고, 이들을 상대로 위기에 몰려있던 칠각기사단의 비행대는 갑자기 굼떠진 적들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곧바로 깨달았다. 악마숭배자들은 각자의 조종석에서 환호하며 잔뜩 독이 오른 역습을 감행했다.

장거리 화력투사와 유도화기의 사용이 제한되는 환경에서, 기동성의 압도적인 격차는 수적 열세를 만회하고도 남도록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칠각기사단의 기체들은 넘치는 힘으로 상승 및 급강하 공격(붐 앤 줌)과 편대전술을 구사하여 스코어를 역전해나갔다.

허공을 다단으로 박차며 때때로 염동비행을 곁들여 가속한 나는, 가장 속도가 느린 적 비행체를 골라 몸으로 올라탔다.

「-!」

쿵 하는 울림과 함께 휘청 흔들리는 기체. 조종석에 앉은 파일럿은 두 눈을 부릅뜬 채 부들부들 떨었다. 줄어드는 속도와 떨어지는 고도. 대마법사가 달라붙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나는 로더필드의 건틀릿을 방탄유리에 가져다대었다.

콰자작-!

염동와류를 빚어내는 방어기능은 사물을 파괴하는 용도로도 써먹을 수 있었다. 일단 속도가 빠르며, 회로점유율을 아끼기에도 좋다.

질기게 찢어지는 방탄유리를 뜯어내고, 경악한 파일럿을 핼버드의 갈고리로 찍어 들어올린다. 염동력을 불어넣은 갈고리는 저급한 마법이 걸린 방어구를 종잇장처럼 꿰뚫었다. 명치를 찍힌 파일럿은 울컥울컥 피를 토하며 도축장의 돼지처럼 무력하게 끌려나왔다.

“말도…… 큽…… 안 돼…….”

이렇게 중얼거리는 파일럿은 내 가면과 저를 찌른 창과 내가 낀 건틀릿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시선이 마지막으로 멎은 곳은 그을음 가득한 건틀릿에 장식처럼 각인된 문장 위. 생기를 잃은 파일럿의 눈엔 눈물이 차올랐다.

‘시시하기는.’

나는 거칠게 창대를 꺾어 파일럿을 절명시킨 후, 파일럿의 방탄모에 결합되어있던 전술 헤드셋을 떼어냈다. 그러고서 남은 시체는 휘몰아치는 바람을 향해 내던졌다.

던져진 시체는 포물선을 그린 끝에 꿍- 하고 지면과 격돌했다. 파열한 인체가 핏빛 선명한 자국을 남긴다. 멀리서 보면 그저 벌레를 터트려 죽인 자국과 유사했다.

원탁의 하수인이 발악조차 해보지 못하고 무력하게 죽은 것은, 아마도 평생에 걸쳐 세뇌당하다시피 몸과 마음에 새겨왔을 대마법사의 위대함이 원인이겠지.

「발화」를 이용한 비행은 염동비행보다 훨씬 더 경제적이다. 탈것을 갈취한 나는 조종간을 염동력으로 다루어, 이번엔 가장 빠르게 움직이는 적성 비행체를 급습했다. 가장 빠르게 움직인다 함은 해당 기체의 파일럿이 결코 평범한 하수인이 아니라는 뜻. 회로의 밀도를 보건대 필시 대마법사 계승의 맥이 끊어진 모 가문의 혈족쯤 되지 않을까 싶다.

적들이 그룹별로 어느 주파수를 쓰는지는 멀리서 콕핏 안쪽을 엿보는 것만으로도 알아낼 수 있었다. 헤드셋을 귓가에 가져다대고 제어 패널을 원격으로 조작하자, 가까운 적들의 목소리들이 귀에 들어온다. 환경이 좋지 못한 만큼 수신범위는 그리 길지 않을 것이었다.

「고귀한 핏줄을 지켜라, 본브릿지의 기사들아! 너희가 맹세한 의무를 실천할 때다!」

이쪽은 본브릿지 가문의 애송이였나.

적대적인 대마법사의 존재감이 자신에게로 육박해오자, 표적이 된 마법사는 사색이 되어 반대 방향으로 달아났다. 이제껏 제게 의지하던 동료 기체들과 지상에 전개된 전투단의 안위 따윈 안중에도 없는 본격적인 적전도주였다. 달아나는 주제에 위엄을 담아 호령하는 꼴이 우스울 지경.

그렇게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가병들로 채워진 동료 기체들은 충돌을 아랑곳 않는 비장함으로 내 진로를 가로막고 갖은 화력을 뿜어댔다. 나를 죽이겠다는 살의보다는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결의가 느껴지는 움직임들이었다.

그러나 속도와 기량의 차이가 현저하니 어떤 견제를 가해온들 소용이 있을 리 없다. 나는 그 모든 공격과 방해를 간단히 회피한 후, 홀로 달아나던 기체를 바짝 따라잡았다.

그러곤 표적이 탑승한 기체의 비행안정성을 극단적으로 저하시켰다.

「어? 어어어?!」

표적에게 들어가는 마소의 흐름을 불규칙하게 풀었다 조이는 것만으로도, 나는 표적의 기체가 미친 듯이 요동치도록 만들어줄 수 있었다.

목적은 표적의 혼을 빼놓는 것. 언제든 자결이 가능한 마법사를 산 채로 심문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시도를 안 해볼 수는 없다. 하다못해 뇌가 온전한 시체만 건져도 얼마나 남는 장사란 말인가.

공들여 「소생」시킨 시체인형의 진술은, 잘만 하면 자백제를 사용한 심문만큼의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소공급을 가지고 간접적인 견제를 넣어, 표적이 느끼는 위협의 수위를 조절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596의 실패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다. 운이 다소 따라준다면, 저 살겠다고 바로 내빼는 됨됨이로 미루어 생포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푸슛-! 콰콰콱! 후르르르-!

사냥감의 기체 노즐로부터 고르지 못한 화염이 분사된다. 롤링, 요잉, 피칭. 모든 축(Axis)의 균형이 깨어지자 파일럿의 안색이 급격히 창백해졌다. 마법사의 공황이 기체의 안정성을 더욱 떨어뜨리고, 떨어진 기체의 안정성과 중력가속도가 다시 마법사의 공황을 심화시키는 악순환.

그런 악순환이 이어진 끝에 우르륵 토사물을 쏟아낸 마법사는, 저가 쏟아낸 오물을 뒤집어쓴 채 풀린 눈으로 헉헉대며 비상탈출 레버를 잡아당겼다.

투캉-!

폭발 볼트가 터지며 캐노피가 벗겨져 날아가고, 파일럿은 탈출용으로 구비된 제트 팩의 추진력에 힘입어 조종석을 이탈했다. 개인용 제트팩은 무게가 톤 단위인 제트 바이크에 비해 안정성을 확보하기가 유리했다. 대마법사에 비할 바 아닌 회로운용능력으로도 얼마든지 확보 가능한 안정성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무난한 판단이었으되, 문제는 요동치며 회전하던 기체가 막 뒤집어지는 순간에 탈출을 감행했다는 점.

결과적으로, 본브릿지 가문의 애송이는 내가 어찌 손써볼 틈도 없이 지상을 향해 대각선으로 내리꽂혔다. 단단한 지표에서 또 한 번의 핏빛 폭발이 일어난다.

최대속도로 감행한 지옥으로의 탈출이었다.

“……쯧.”

나는 혀를 차며 미련을 덜어냈다. 주인을 잃은 제트 바이크는 포물선을 그리는 추락으로 주인을 뒤따랐다.

경태가 설정한 예비전장엔 많은 기지점들이 잡혀있었다. 나는 이 기지점과 고도를 조합하여 맨패즈(휴대용 대공미사일) 사격지시를 하달했다.

시차를 두고 발사된 열추적 대공미사일 열두 발은 음속의 두 배에 달하는 속도로 솟구쳐 올라왔다. 내가 공중에 유도용으로 깔아놓은 불의 온도를 포착하여 급격한 방향전환을 선보이는 미사일들.

부챗살처럼 쫙 펼쳐지는 열두 궤도의 끝엔 당연히 원탁의 공중기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표적이 회피기동을 실시하더라도 쉬이 따라붙도록 만들어진 가느다란 미사일들은, 거친 바람 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열원을 들이받아 소명을 다했다. 모래폭풍 속에서 불빛들이 번쩍이고,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여지없이 박살난 기체의 파편들이 뿌려진다.

이런 악천후 속에서 유도화기가 사용되었음에도 발사지점을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렇잖아도 낮던 적의 사기를 바닥까지 떨어뜨렸다.

헤드셋을 통해 내 귀에 들어오는 어느 파일럿의 절규.

「적외선 유도야! 레이더 조준 경고가 없었다고! 미친 악마숭배자 새끼들 같으니! 아군이 맞아도 상관없다는 건가? 제정신이 아니군!」

모래폭풍 속에선 제트 바이크들이 방출하는 적외선 역시 가려진다. 어지간히 거리가 가깝지 않고서야 조준 사격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황금기의 눈이라는 이레귤러를 고려하지 않는 한, 누가 맞아도 상관없다는 각오로 갈겼다고 생각할 수밖에.

그러나 사기가 떨어졌다 한들 원탁의 전투단 또한 광신도 집단이기는 마찬가지다. 대마법사의 마력장과 세뇌교육으로 주입받은 경외에 짓눌리는 상황에서조차, 원탁을 섬기는 자들의 전의는 최후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았다.

문제는 그 불꽃들이 가문의 구분에 따라 각자의 이익을 위해 타올랐다는 점.

「로더필드 경은 왜 안 나타나시는 거지? 정말로, 정말로 당하신 것인가? 그 강대한 분께서, 정녕 이런 야만의 땅에서 쓰러지셨다고?!」

「돌아오려면 벌써 돌아오셨겠지! 그분께서 전사했다면 나머지 대의원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다! 이블린 님께서는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셔야 한다!」

「승천의 서약을 수호하는 기사들아! 원탁의 생명책에 이름이 적힌 자들아! 오늘 우리의 희생은 장차 진정한 인류의 부활과 왕국의 나날로 보답 받으리라!」

원탁의 원정군을 하나로 묶어주던 로더필드가 사라진 시점에서, 반강제로 원정군에 차출당한 영락한 가문들이 각자도생을 도모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내가 엿들은 다른 채널의 누군가는 극심한 인지부조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적성 대마법사가 로더필드 경의 핼버드로 무장했다는 보고!」

「잠깐! 혹시 그게 로더필드 경 본인인 건 아닌가? 가면을 쓰고서 탕녀의 수족인 척 우리 가문을 쳐내려는 게 아니냐고!」

「그게 말이 됩니까? 이 상황에서 우리를 숙청하여 얻을 이익이 뭐가 있습니까? 그리고 로더필드 경이 그런 불명예를 감수할 사람이긴 합니까?」

「그럼 로더필드 경이 묵시록의 탕녀가 빚은 피조물과 그 음탕한 딸년들에게 패배했다는 건 말이 되나?! 차라리 로더필드 경에게 다른 계획이 있는 쪽이 더 현실적이지!」

탕녀(蕩女)란 물론 그레이스를 뜻한다. 보편적인 성경 해석에 따르면 묵시록의 음탕한 여인은 로마제국을 뜻하는 은유이지만, 원탁의 추종자들에겐 그레이스야말로 구세주들의 원탁을 파괴하려 드는 사악한 탕녀 그 자체인 것이다.

이는 추종자들의 자의적인 해석 따위가 아니라 대마법사들이 합의한 가르침이었다. 원탁의 마스터 하나가 한낱 색에 홀려 목숨을 잃었다는 한심한 진실보다는, 마녀가 태생적으로 사악한 인간 이상의 무언가였다는 거짓이 자신들의 위엄을 지키기에 좋았으니까.

「당장 철수해! 박살나는 건 본브릿지 가문으로 충분하다!」

이 전장의 모든 가문들이 동일한 결론을 도출하니, 제아무리 강력한 전투단이라 한들 내 전진을 조금이라도 저지할 수 있을 리 없다.

적들의 분열과 도주는 하늘과 땅 사이의 균열을 빚어냈다. 땅을 달리는 것들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들보다 빠르게 물러날 순 없으니까. 나는 상대적으로 느린 지상전투단에서 쓸 만한 포로-또는 시체-획득을 노려보는 쪽으로 방침을 전환했다.

「당소 라인배커 2. 고폭탄 8발 떴다 이상. 비과시간 12초.」

내 부하들은 내가 보내는 좌표에 따라 충실한 화력지원을 해주었다. 부하들의 역할이 원거리 교전과 화력지원에만 머무는 것은 피아식별이 곤란한 전장 환경 때문.

탄속이 느린 박격포탄은 바람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다. 냉전기에 만들어진 120밀리 박격포탄들은 폭풍의 영향으로 편향된 궤도를 그리며 날아들었다.

그러나 마력장을 최대반경으로 전개한 내게는 저속 포탄의 낮은 정확성을 보완할 수단이 있었다. 하늘에서 전장을 내려다보며, 포탄의 진행경로 측방에 강풍을 닮은 염동충격파를 일으켜 궤도를 수정하면 그만이니까. 화력제압을 거는 데엔 그렇게까지 높은 정확도가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내가 치고 들어갈 작은 마비를 이끌어낼 수 있으면 족하다.

이렇게 제압용 화력을 뒤집어씌운 다음에는 곧바로 적의 지휘중추 하나를 급습했다. 전력을 온존한 다른 가문들에게 방패막이로 내던져진 자들의 진영. 심지어 같은 가문으로 보이는 자들조차 냉정하게 잘라내고 있는 꼬리.

이곳엔 전장을 면밀히 살핀 끝에 선택한 사냥감 하나가 있었다.

이제껏 원탁의 원정군이 칠각기사단을 상대로 우위를 점한 원동력은 진짜배기 마법사들의 존재에 힘입은 것이었다. 질적으로 우월한 마소장악력을 이용하여 아군의 엔진엔 과급기를 달아주고, 적군의 발목엔 무거운 족쇄를 채우는 힘. 개인의 전투력을 떠나, 그저 그곳에 자리하는 것만으로도 작은 범위의 전장을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만들어놓는 능력.

요컨대, 일반적인 전장에서, 진정한 마법을 구사할 능력이 있는 마법사의 기능은 대마법사의 축소판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뜻이었다.

그러한 존재들의 집단적인 이탈과 나의 난입은 지상에서도 전장의 기울기를 단숨에 뒤집어놓았다. 원탁의 추종자들 다수는 기세가 오른 악마숭배자들을 상대로 시간을 버는 데 자원을 소모하고 있었고, 따라서 내가 강습한 지점에선 반 토막 난 기사 소대 하나가 나를 막아설 따름이었다.

“헉, 허헉……!”

나이가 스물 중반이나 되었을까? 내가 급습한 지점의 귀족 애새끼는 눈이 마주치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다. 대호를 코앞에 둔 소동물처럼 굳어서는, 내가 제 호위전력을 박살내는 내내 뭔가 발악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심약한 모습.

타격지점을 신중하게 선정한 보람이 있다. 이번에야말로 포로 획득에 성공하나 싶어 심박이 비등하는 순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귀족 애새끼의 이마로 고풍스러운 칼날이 튀어나왔다.

무방비한 목덜미를 대각선으로 찔러 이마까지 뚫고 나온 서늘한 금속. 칼자루를 쥔 것은 애새끼에게 붙어있던 최후의 수호기사였다.

“…….”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짜증이 올라온다. 눈물을 글썽거리며 칼을 뽑은 수호기사는, 남은 손으로 성호를 긋고는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황금기의 태양이시여. 그리고 원탁에 둘러앉은 사람의 아들(Filius hominis)들이시여. 진리의 빛과 거룩한 언약으로 나를 이끌어 주소서.”

기사가 충혈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흔들리며 올라오는 칼끝은 곧 흔들리며 끌어내는 힘겨운 전의였다.

나는 그 칼끝이 다 올라오기 전에 기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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