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24화 (324/561)

#35. 대영제국의 기수 (7)

러시아산 국화들은 이번에도 초음속으로 날아와 꽃피었다. 나는 경태로부터 통보를 받자마자 두껍고 오목한 접시 형상의 염동방호를 전개하는 한편, 남는 회로엔 발화억제를 장전했다. 접시가 이루는 곡률의 초점엔 로더필드가 위치했다. 조금의 오차범위는 있을지라도.

이번에 날아든 국화들은 먼젓번과는 품종이 달랐다. 가벼운 폭발음을 내며 깨지는 탄두들은 제각각 가연성 기체로 이루어진 희뿌연 운무(雲霧)를 뿜어냈다. 넓게 뿌린 운무를 한순간에 불태워 열파(熱波)와 충격파로 사람을 죽이는 열압력 탄두들이었다.

열압력 화기는 운무 방출과 점화 사이에 시차가 존재한다. 일반인에겐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시차지만, 여러 덩어리의 운무들 사이에 갇힌 로더필드는 경이적인 반응속도로 건틀릿과 완갑을 내밀어 방어기능을 폭주시켰다. 소용돌이처럼 확 번져 나오는 염동력의 와류.

그러나.

「음?」

일어나지 않는 점화에 눈을 찌푸리는 로더필드. 불발의 원인은 내가 사용한 발화억제였다.

이에 따라 백색의 운무는 스르르 형체가 무너지며 바람을 탔다. 풍하(風下)에 서있던 로더필드는, 짙은 인화성 안개가 자신의 방어영역에 스며드는 걸 보고 뒤늦게 두 눈을 부릅떴다.

이번엔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내 쪽이 더 빨랐다.

콰앙-!

내가 튀긴 불씨가 폭발을 일으켰다. 로더필드의 비명은 폭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윽……!”

목덜미에서 살이 익는 고통이 올라온다. 코끝엔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감돌았다. 충격파는 저지·반사시켰어도 복사열까지 막아낼 재간은 없었던 까닭. 나는 화상을 회복할 틈도 없이 폭발의 중심으로 돌진했다. 산소부족 때문이든 전투흥분 때문이든, 로더필드가 실착을 둔 지금 승기를 거머쥐어야 한다.

대영제국의 기수는 나보다 훨씬 더 처참한 몰골이었다. 안구는 터지고 상반신은 진피와 일부 근육까지 익어버린 것이다. 너덜너덜 틈이 벌어진 완갑과 건틀릿. 도끼창은 나가 떨어져있고, 뇌파의 특성은 전형적인 그로기 상태에 가깝다.

야만기사의 회복은 빠르다. 나는 즉각 몸을 탄환처럼 쏘아 로더필드를 들이받으며 온 힘을 다해 칼을 박아 넣었다.

“크아아아악!”

함께 뒤엉켜 몇 바퀴를 구른 로더필드는 괴성을 지르며 근육에 힘을 주었다. 원탁 제일의 염동으로 강화된 근력은 파고드는 칼을 근육만으로 붙잡고도 남는 것이었다. 무쇠를 찌른 듯한 충격에 시큰거리는 손목. 칼끝은 내장에 닿지도 못하고 멈추었으나, 로더필드의 회로운용을 교란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익이었-

빠악!

격통이 내달리고 시야가 흔들린다. 로더필드가 아무렇게나 휘두른 주먹질에 목덜미를 맞은 탓이었다. 가면이 박살나 날아가고, 경추에 무리가 갔는지 뼈가 갈리는 느낌과 저릿거리는 방사통이 함께 전해졌다. 나는 한 손으로는 칼자루를 쥐고 로더필드의 회로운용을 방해하며, 다른 손으로는 재차 주먹을 휘두르는 로더필드의 손목을 붙잡았다.

내게 잡힌 살갗이 찢어진다. 화상을 입어 물러진 피부는 로더필드와 나의 힘겨루기를 견뎌내지 못했다. 찢어진 피부가 주르륵 미끄러지는 바람에 나는 로더필드의 손을 놓쳤고, 로더필드는 근육이 다 드러난 팔을 휘둘러 타점이 어긋난 타격을 가해왔다. 힘이 힘이다 보니 어긋난 타격조차 묵직한 통증이었다.

나는 주먹을 연달아 내리쳐 갓 재생된 로더필드의 안구를 터트렸다. 그러자 로더필드는 짐승처럼 목을 비틀어 내 팔뚝을 물어뜯었다.

“이런 개 같은……!”

육체파 대마법사는 우악스러운 치악력으로 내 살과 근육을 뜯어먹었다. 씹지도 않고 삼키는 피와 살은 곧 로더필드의 양분이 될 터.

나는 열량소모를 누적시켜야 한다는 일념 하에 거친 손갈퀴로 로더필드의 피부를 긁어냈다. 차오르던 물집들이 터지고, 미처 재생되지 않은 피부들이 마구잡이로 벗겨진다. 불에 그을린 훈장들과 갑주의 남은 부위들이 하나하나 볼품없이 떨어져나갔다.

로더필드 또한 내 화상을 긁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닥치는 대로 때리고 미친 듯이 할퀴어대는 싸움은 대마법사들의 박투라기보다 짐승들의 사투에 더 가까웠다. 힘의 균형은 비등했다. 로더필드의 회로운용 효율 저하, 그리고 열량 고갈이 일군 균형이었다. 틈틈이 경태와의 대련으로 갈고 닦아온 레슬링 기술도 보탬이 되었고.

세찬 바람이 모래를 뿌리고 지나갔다. 미처 아물지 않은 자리에 이물질이 뿌려지자 수백 개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이 밀려든다. 로더필드와 나의 상하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내 부하들의 지원사격을 경계한 로더필드는 자신이 위로 올라갈 때마다 곧바로 무게중심을 비틀어 무너뜨렸다.

나와 로더필드가 한 덩어리로 뭉쳐 외진 비탈을 굴러 떨어지니, 대경한 경태가 급한 무전을 보내온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지평선이 맹렬하게 회전했다. 나는 이를 갈며 답신했다.

“이쪽은! 신경 쓰지 마라! 가서 하수인 새끼들을! 막아!”

불투명한 전장 환경이 원탁 원정군의 전투역량을 갉아먹고 있지만, 한 가문의 계승권자쯤 되는 마법사가 통상시야의 가시거리 이내로 진입하면 굉장히 귀찮아진다. 나에게나, 내 부하들에게나.

피아의 마력장이 일진일퇴의 마찰을 거듭한다. 제례검의 칼날은 로더필드의 마법이 흐트러질 때마다 조금씩 덜컥거리며 파고드는 깊이를 더해갔다.

“Bloody…… Hell!”

마침내 로더필드의 입에서도 천박한 상소리가 흘러나온다. 내가 눈알을 거듭 터트리니 로더필드 또한 내 안면을 더듬어 쥐고 엄지로 안구를 짓눌렀다.

그러나 이쪽의 눈알은 황금기의 눈이었다. 억센 힘에 신경이 짓눌려 두통이 번지고 시야가 번뜩번뜩 암전하는 순간들이 있을지언정, 안구 자체가 뭉개지지 않는 이상 열량손실의 교환비에선 내 쪽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안와가 통째로 함몰하지 않도록 눈과 가까운 부분의 염동강화를 보강했다. 큰 움직임이 없는 부분은 염동력을 중첩시키기가 수월했다.

눈가가 찢어지고 뿌득뿌득 소리가 나는데도 이쪽의 안구가 깨질 생각을 않자, 로더필드는 손을 빼어 내 안면을 후려치려 들었다.

나는 그것을 이마로 뻑 소리가 나도록 받아친 뒤 주먹 아래를 이빨로 물어뜯었다. 뜯고 뜯고 또 뜯으며 내려가 손목의 혈관을 톱질하듯 끊어버린 다음에는, 상처를 질겅질겅 짓씹어 재생을 막으며 흘러나오는 피로 목을 축였다. 나는 지금 열량을 빼앗을수록 유리해지는 싸움을 하고 있었으므로.

로더필드는 핏줄과 전완근이 쭉 찢어지는 것을 감수하며 팔을 회수했다. 힘줄이 끊어져 덜렁거리던 손은 다시 힘을 줄 수 있게 되기까지 한 호흡의 공백이 필요했다. 그 공백은 내가 여덟 번의 연타를 갈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쾅, 쾅, 쾅, 쾅!

현기증의 갈피에서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지는 타격음들.

힘과 회복력의 저울이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나의 우세로 기울어진다. 로더필드의 체질량 역시 처음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오그라든 야만기사의 위장이 꾸륵꾸륵 진동을 일으키는 모양새가 보인다.

이 시점에서, 나는 마력회로에 올린 술식들의 점유율을 조정하여 「발화」를 장전할 여백을 만들었다.

서로 완전히 뒤엉켜 밀착한 상황에서는 피차 육체강화와 염동 이외의 술식을 사용하기가 까다롭다. 조금이라도 힘을 빼는 순간 위험해질 수가 있을뿐더러, 직접접촉으로 전기를 흘려 넣으면 다른 접촉으로 돌아올 것이고, 음파를 무기로 쓰자니 진동을 증폭시킬 최소한의 간격이 없으며, 상대의 마력장을 침범하지 못하는 불은 쓰는 사람도 함께 구워질 따름이니까.

그러나 힘과 회복력의 우세를 점했다면, 그리고 작열통이 가해지는 와중에도 회로운용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내 출혈을 담보삼아 상대에게 출혈을 강요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각오를 다지고 기회를 노리던 나는, 내가 아래에 깔리고 로더필드의 폐부가 수축하는 찰나에 빠른 들숨으로 호흡을 멈추곤 마력을 태우는 불을 일으켰다.

“허윽…….”

숨을 들이쉬려던 로더필드가 바람이 새는 듯한 신음성을 냈다. 다시금 덜컥 하고 파고들어 끄트머리가 아슬아슬하게 대장에 닿는 칼날. 로더필드의 회로운용은 한층 더 강한 교란을 당하게 되었다.

불길은 마력장의 경계면을 타고 세차게 소용돌이치며 번져나갔다. 로더필드와 나의 힘겨루기가 화염의 파장을 발산하는 듯한 광경. 공기 중에 고기를 굽는 고소한 내음이 퍼진다. 붉은 핏물이 배어나오던 로더필드의 안면근과 대흉근이 붉고 희게 익어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나 또한 고열에 노출되어 지져지기는 마찬가지.

이 순간에도 양쪽 모두 「생명」에 의한 재생은 계속되고 있었다. 근육의 질량을 유지하지 못하면 힘의 균형이 급격히 기울어버리니까. 지속적으로 재생되는 살이 익은 살을 밀어내어,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인육의 껍질들이 묵은 때와 각질처럼 부슬부슬 부풀어 올랐다.

몸싸움은 고통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내 위치와 바람에 따라 화력을 조절해가며 로더필드 쪽이 조금이라도 더 구워지도록 애썼다. 빠각! 어금니 깨지는 소리가 턱뼈를 타고 올라온다. 머리에 차오르는 열과 생살을 지지는 작열감에 정신을 놓아버릴 것만 같은 고비들이 파도처럼 엄습했지만, 내가 한 번 아찔하면 로더필드는 두세 번을 흔들리는 식이라 어찌어찌 비교우위를 쌓아나갈 수는 있었다.

“크흐으으읍!”

로더필드는 나를 떨쳐내려 몸부림쳤다. 육식동물을 떼어내려는 초식동물을 연상케 하는 발악. 목줄을 물고 늘어진 육식동물도 찰나의 발길질 한 번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나는 흐려지려는 정신에 연신 날을 세우며 사냥감의 발악을 견뎌냈다.

치직, 칙-

고열을 머금은 기름이 제례검의 칼날을 타고 흐른다. 구워지며 갈라진 살결 사이로 지글지글 흘러나오던 피하지방은, 피와 진물을 만날 때마다 수증기를 칙 뿌리며 자잘한 기름방울들을 터트렸다.

미끄러워진 칼자루가 내 집중력을 흐트러뜨린 아주 짧은 순간에, 로더필드는 인간에겐 불가능한 동작으로 무릎을 꺾어 내 갈빗대를 가격했다.

“컥!”

숨이 턱 막히는 충격이 올라온다. 기력이 쭉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나와 칼을 한 번에 떼어내는 데 성공한 로더필드는, 그러나 몸을 굴려 빠져나가고서도 일어서다 말고 옆으로 쓰러졌다. 불가능한 움직임을 해내기 위해 「생명」으로 변형시킨 좌측 고관절이 문제였다.

육체파 교조주의자에게 제 몸을 변형시키는 ‘신성모독’이 익숙할 리가 있나.

너무 아프고 힘이 들어 죽을 것만 같다. 당장이라도 드러누워 기절해버리고 싶다. 타는 듯한 목마름과 뱃속을 쥐어짜는 듯한 허기. 사막처럼 말라붙은 비강에선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내가 이 정도이니, 야만기사는 훨씬 더 죽음에 가까운 상태일 테지.

나는 칼자루와 갈빗대를 움켜쥔 채 로더필드를 노려보았다. 탄화된 몸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로더필드는, 지속적으로 누적된 「생명」의 비용으로 인해 고행자에 가까운 몰골이 되어있었다. 대영제국의 기수로서 과시하던 위용은 온데간데없다.

관절을 회복해 비틀비틀 일어서는 로더필드는 얼굴과 전신이 누더기처럼 너덜거렸다. 화상으로 인한 피부 박리(剝離)와 고속재생의 반복으로, 죽은 피부들이 여기저기 깎다 만 사과껍질들처럼 매달려있는 것이었다.

“흐억…… 흐크억…….”

나보다도 숨을 쉬기가 괴로워 보이는 로더필드는 각막의 상피세포가 벗겨진 눈으로 눈물을 줄줄 흘리며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제 얼굴에서 늘어진 ‘구운 고기’들을 뜯어 허겁지겁 입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 동작에선 귀족으로서의 품위, 자기 자신의 살을 먹는 것에 대한 생리적 거부감 따위가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극한에 달한 굶주림으로 반쯤 정신을 놔버린 것이다. 구강이 바싹 말라있다 보니 씹어 삼키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밀어 넣는 모양새가 거위에게 강제로 먹이를 먹이는 프랑스 목부들을 보는 것 같았다.

마법으로 얼마간의 체력을 회복한 나는, 생체강화와 염동체술의 조합을 폭발시키며 달려들어 로더필드의 복부를 가격했다. 맹목적인 식탐에 빠져있던 로더필드는 내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고, 위장에 충격을 받아 방금 먹은 것들을 게워냈다. 대마법사의 고기들이 신물과 섞여 흙바닥에 쏟아졌다.

구토를 하는 동안의 로더필드는 자랑으로 삼던 염동체술도, 염동방어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지향성 살상음파에 직격당한 다음에는 눈과 코와 귀에서 피를 흘리며 비틀거렸고, 이후에 가하는 연계 공격을 샌드백처럼 다 처맞았다.

마침내 원탁의 수호자가 무너져 내렸다.

헐벗은 기사의 전신에서 피가 배어난다. 그 피의 양이 많지 않은 것은 상처가 적어서가 아니라 혈류량이 적어서였다. 대마법사라도 시체가 되었어야 정상인 상태였지만, 로더필드는 회로를 꽉 채운 「생명」으로 죽음의 순간을 지연시켰다.

대자로 드러누운 로더필드는 쌔액 쌕 날카로운 숨소리를 내며 힘겹게 물었다.

“너는…… 대체…… 누구냐?”

기력이 다한 나는 칼에 기대어 후들거리며 되물었다.

“그게 중요한가?”

“크, 흐흐, 크흐.”

끊어지는 소리로 고통스럽게 웃던 로더필드가 수긍했다.

“그렇군……. 내가 무의미한…… 질문을 했군…….”

로더필드는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네가, 이겼다.”

그러고는 유언 같은 한마디를 덧붙였다.

“너는, 우월하다.”

이 말을 끝으로 대영제국의 기수는 마법적인 생명유지를 중단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로더필드의 「생명」은 자신의 뇌를 파괴하는 도구로 전용되었다.

허탈함이 피로를 가중시킨다. 기력이 조금 차오른 다음에 죽여서 신선한 시체인형을 만들 요량으로 숨을 붙여두었던 것인데.

나는 얼굴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피와 눈물이 기름과 뒤섞여 손바닥에 묻어났다. 닦아도 닦아도 끝이 없는 물기가 정말이지 성가시기 짝이 없었다. 달라붙어있던 모래알들이 까끌거리며 쓰라린 통증을 더해주었다.

눈꺼풀이 열기에 오그라든 탓에, 로더필드는 눈을 뜬 채로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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