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22화 (322/561)

#35. 대영제국의 기수 (5)

684를 이루는 아기들은 하나같이 피눈물을 흘리고 핏덩어리를 토해내며 울어대고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울음소리를 들으니 다시금 피가 화끈해지고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지금 느껴지는 불쾌감은, 아마도 긴장감에서 뻗어 나온 하나의 곁가지일 것이다.

“프랑스 놈들과의 통신은 잘 유지되고 있겠지?”

내 물음에 경태가 즉답했다.

「옙. 개입과 동시에 외곽 쪽은 싹 날려버릴 수 있을 겁니다.」

“음향감시체계는?”

「신호 잘 들어옵니다. 염려 놓으십시오.」

우리가 준비한 공격수단 중엔 우리의 것이 아닌 화력도 포함되어 있었다. 평화유지군에 속한 프랑스 정규군의 통신비문을 엿보고, 야지에 투입된 프랑스 특수부대원들과 프랑스 정부의 의뢰를 받은 패스파인더 집단들을 눈여겨봐두었다가, 이들을 타이밍에 맞게 조용히 묻어버리고서 확보한 화력유도의 권한.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 가능한 몇몇 부하들은 죽은 자들의 통신장비를 붙잡고서 화력유도에 필요한 예비좌표들을 갱신하는 중이다. 고지대에 중계기를 배치한 위성통신장비는 열악한 환경에서도 화력지원 요청을 보내는 게 가능했다.

돌아가는 꼴을 보니 그레이스가 이 전장에 핵을 투발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나는 그레이스가 보낸 투구 겸 가면을 착용했다. 이는 주술사 왕으로서의 마녀가 일곱 사도들에게 내린 신물과 동일한 것. 내가 받은 가면엔 루구루족의 대주술사 「콜레로의 헤그하」의 상징이 각인되어 있었다.

“이제 시작하지. 잘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십시오, 형님.」

내가 쥐는 무기는 이번에도 제례검이었다.

물론 로더필드를 상대로 진짜 육탄전을 치를 작정은 아니다. 다만 놈의 주의를 끌기 위한 하나의 책략일 따름.

경태는 처음 내 계획을 들었을 때 말도 안 된다며 기겁을 했으나, 로더필드에게는 통할 가능성이 높으리라는 내 설득을 내키지 않는 태도로 받아들였다.

황무지 한가운데에 선 나는 검을 꼬아 쥐고 호흡을 길게 다스렸다. 긴장감 속에 내쉬는 숨결엔 가느다란 떨림이 묻어났다.

684는 수많은 아기들이 우는 소리와 그 아기들이 터지는 소리를 내며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기어오고 있었다. 황당한 착각이지만, 피투성이가 된 흉물의 모습 위로 울면서 도망쳐오는 아이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했다.

‘그럼 뒤에 쫓아오는 건 무서운 아저씨인가?’

무수히 많은 인명을 살상한 684를 보고 이딴 생각이 든다는 게 어이가 없긴 하지만, 그래도 실없는 생각이 긴장감을 푸는 데엔 도움이 되었다. 내가 고아가 되기 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에게 혼이 날 적에 방바닥의 무늬를 집중해서 쳐다보던 느낌과 비슷했다.

「오오오오오오-!」

뱀을 난도질하며 달려오다 멀리서부터 나를 발견한 로더필드는, 곧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투명한 힘으로 바람을 뒤흔들었다. 염동력을 이용한 발화(發話). 공기 중으로 번져 나가는 심장박동 같은 파동. 쩌렁쩌렁한 울림은 먼 거리를 가볍게 극복했다.

「검! 검! 검을 들었다고?! 내 앞에서! 검을 들었어! 검! 검! 검! 검을! 검을 들고 도전을! 나에게 도전을 해?! 아아아- 좋구나! 좋은 기개다! 훌륭한 각오야!」

……미친 새끼. 왜 갑자기 발기를 하는 거지?

684가 내가 있는 곳으로 도망치고 있었으므로, 로더필드의 질주는 자연히 나를 겨냥한 직선으로 수렴했다. 즉 내가 움직이지 않는 이상 로더필드의 동선이 흐트러질 일은 없다.

직선을 이루는 동선과 등속운동은 전장에선 피해야 마땅할 일.

나는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적당한 선에서 억제한 채 때를 기다렸다. 쫓기는 684와 쫓는 로더필드의 마력장이 서로를 격렬하게 밀어내고 있었기에, 로더필드의 염동감지엔 좁은 부채꼴의 사각지대가 생긴 상태였다.

“지금!”

내가 신호를 주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쭉 뻗어온 비가시영역의 레이저들이 로더필드의 몸통에 광점을 찍는 순간, 내 뒤로 거리를 두고 대각선으로 벌어지며 배치된 미사일 발사대들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콰쾅! 콰콰쾅!

연한 모래 빛의 베일과도 같은 바람이 폭발섬광에 번뜩이고, 추운 나라에서 온 국화들이 격렬한 화염을 꽃피운다. 음속의 1.2배까지 가속한 대전차 미사일들의 작렬. 그리고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과 충격파. 그러나 1미터의 강철을 관통하는 이중탄두의 파괴력은 한 점으로 집중되지 못했다.

나는 갑옷 주변으로 확 퍼져 나오는 염동력의 난류(亂流)를 보자마자 마력장을 펼치며 검을 세우고 달려들었다. 이중탄두들의 입사각과 화력이 와류에 비틀리고 분산되는 찰나, 가능한 최대의 가속과 최대의 근력강화를 실어 내리긋는 검으로 로더필드를 후려친다. 내 마력장이 로더필드의 마력장을 상쇄하여, 짓눌린 염동난류는 내 검격을 비틀어놓았을지언정 완전히 흘려내지는 못했다.

카앙-!

거칠게 튀어 오르는 불티. 상앗빛 칼날에 찍힌 갑주는 마도구로서의 기능이 순간적으로 저하되었다. 다른 대마법사들이 인간의 영혼을 갈아 넣어 부여해주었을 마법이, 영혼을 적출하는 검에 맞아 충격을 받은 탓이다. 갑주에 깃든 마법의 정체는 로더필드의 염동력을 받아 난류를 형성하는 자동화된 방어능력이었다.

「으아아아!」

격노로 눈에 핏발이 선 로더필드가, 피를 흘리는 와중에도 내 모든 연속공격을 다 받아내며 대기를 흔들어 빚어내는 포효.

「검을 들고 미사일로 공격하다니! 이 비열한 사생아 새끼야!」

칭찬 고맙군. 방금 그걸로 죽어주었으면 더욱 고마웠을 텐데!

야만스러운 대영제국의 기수는 열세를 견디는 단 두 호흡 만에 모든 부상을 회복해버렸다. 갑주가 좀 상한 것과 열량을 소모시킨 게 기습으로 따낸 이익의 전부가 된 셈이었다.

「죽-어-라-!」

전투기동에 돌입한 대마법사에겐 육탄전이 반드시 근접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가진 바 모든 힘을 아낌없이 발휘하는 대마법사는 문자 그대로 육(肉)을 탄(彈)으로 재어 쏘는 수준의 급속기동이 가능하기 때문.

따라서 로더필드와 나 사이의 간합은 근거리와 중거리를 어지러이 아울렀다. 눈을 한 번 깜박이면 지근거리에 상대가 있고, 찰나의 공방을 교환한 직후엔 중거리에서 다시 서로를 포착하는 싸움.

간격이 이보다 더 벌어지지 않는 건 로더필드가 제게 유리한 간합을 악착같이 유지하는 탓이며, 또한 684가 시작한 유인의 바통을 내가 이어받은 까닭이었다.

이런 와중에 684와 나의 협격(協擊)은 서로 다른 악보를 연주하는 듀엣과도 같았다. 하나와 하나를 더하여 둘을 이루지 못하는 불협화음. 하물며 684는 대마법사들의 싸움에서 온전한 하나로 칠 수도 없는 전력이다.

그렇기에 로더필드는 나와 684를 한꺼번에 상대하면서도 열세에 처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나는 로더필드가 야수 같은 본능으로 기회를 포착할 때마다 눈앞이 아찔해지는 감각을 느껴야만 했다. 수시로 박히는 경태 이하의 지원이 없었다면 대단히 위태로웠을 것이다.

불협화음의 어느 박자에, 684는 크고 깊은 창상을 입은 채 몸통을 굴려 물러났다.

「브에에에-」

벌어지려는 상처 양쪽의 아기들이 손에 손을 내밀어 서로를 맞잡고 지퍼를 닫듯 상처를 봉합한다. 그 상처가 아물 틈도 없이 로더필드가 연격을 넣으려 들기에, 나는 마력을 쏟아부은 「열화」 폭발로 지중폭발을 일으켜 파편효과로 로더필드의 호흡을 끊어놓았다.

「열화」는 표적 좌표나 궤도상의 물질 극소량을 열량으로 치환하는 술식. 술식의 복잡성이 너무 높아 운용효율이 매우 낮지만, 폭속(爆速) 하나만큼은 그저 마력을 태우는 불에 불과한 「발화」를 압도적으로 능가한다.

게다가 내게는 331의 유품인 묵주가 있었다. 내가 묵주를 휴대한 상태에서 구사하는 최고 화력의 「열화」는, 본사 기술지원팀의 측정 결과 최대 3.1 마이크로그램의 물질을 에너지로 치환하는 수준이었다.

쿠구궁-!

까마득한 높이까지 솟구치는 토사. 폭음이 지축을 뒤흔드는 가운데, 막대형 C4 폭탄(M112) 90개를 한꺼번에 터트리는 레벨의 폭발을 멀쩡하게 뚫고 나온 로더필드가 방탄 보안경 안쪽의 눈을 희번덕댔다.

「그레이스! 그레이스! 그레이스인가?!」

내가 가면을 쓰고서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감추고 있다가 기습을 가한 탓에, 로더필드는 내가 그레이스이며 저를 방심케 하려 수작을 부렸다고 오해하는 것 같았다. 내 체형을 가리는 전술방호구의 탓도 있겠고.

여기에 정말로 그레이스 본인이 가세한다면 확실한 우세를 점했을 텐데. 그 마녀는 자신을 얼마나 아끼는 것인지.

같은 도망자로서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얼굴을 보여라, 열등한 자여!」

허공에서 지그재그로 튀다가, 눈으로 따라잡기 버겁게 꺾이는 방향전환과 흐릿한 가속으로 치고 들어오는 로더필드. 684는 여전히 고통스럽게 몸을 뒤트는 중이다.

‘그래, 와라!’

나는 내가 물러날 자리에 미리 묻어두었던 산탄지뢰들에 염동력을 걸어 사출시켰다. 내 마력장으로 말미암아 로더필드의 감지를 벗어나있던 폭발물들이었다.

콰콰쾅! 콰콰콰쾅!

양쪽으로부터 후려치는 듯한 압력이 가해지고, 플라스틱 파편들이 내 전신 방호구를 긁고 지나갔다. 나 자신은 치명적인 영역에서 벗어나있는데도 이 정도였다.

무수히 많은 볼베어링의 폭풍이 오직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비좁은 살상범위로 중첩된다. 화력밀도가 너무 높아 강철구슬들끼리 부딪힐 정도였지만, 이 모든 살상력은 그리니치 갑주의 방어영역으로 진입하는 순간 급격하게 감쇄되었다. 흐르는 물속으로 총탄을 갈겼을 때와 유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예상한 일.

핵심은 산탄 폭발과 동시에 가한 낙뢰 공격이었다. 내 힘으로만 만들어낸 게 아니라, 온 천지에 가득한 음전하를 유도하여 길게 지지듯이 내리꽂는 강력한 벼락.

전투감각이 탁월한 대마법사답게, 로더필드는 내가 산탄지뢰를 터트리기도 전에 조짐을 읽고 공기를 이온화시켜 무형의 방어막을 전개했다. 그러나-

“끄으으으으-!”

세상이 푸르스름한 흑백으로 물들고 천둥의 굉음이 울린 직후, 로더필드가 육성으로 내지르는 고통스러운 신음이 뒤따른다. 나를 향하던 공세도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다.

번개줄기들이 이온화 공기그물을 뚫은 것은 강철 산탄들 덕분이었다. 전도체의 폭우를 맞고 있으니 이온화 도파관 채널만으로는 벼락을 완전히 흘려낼 수 없었던 것.

하이엔드 급의 그리니치 갑주는 「방전」에 대한 방호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외부와 내부의 절연처리. 그리고 요소요소에 장식을 겸하여 달린 정전기 방출기(Static Discharger). 그러나 러시아산 국화꽃들이 남긴 작은 손상들은 전류가 새어 들어가기에 충분한 구멍이었다.

카가가가각!

제례검의 날이 로더필드의 창대와 연속으로 얽힌다. 감전 당한 와중에도 내 공격을 방어해내는 로더필드의 기량이 경이로우나, 그런 기량으로도 상앗빛 칼날이 다시금 갑주의 마법을 억압하는 걸 막아내진 못했다.

로더필드는 내가 좌우로 띄우는 폭발성형관통탄(EFP)들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콰쾅!

코끝이 초연에 매캐해지고 귀에는 피잉- 울리는 이명이 맴돈다. 멀어졌다가 빠르게 다시 가까워지는 환경소음들. 평범한 EFP는 폭발 시 용기가 깨지면서 전방위로 파편이 튀지만, 이 순간을 위해 특별 제작한 강화 EFP는 용기의 내구성이 높아 내게까지 파편이 튈 일이 없었다.

폭발압력이 성형(成形)한 발사체들이 기사의 갑옷을 파괴적으로 두들긴다. 본디 인간이 아니라 기갑차량을 박살내기 위해 존재하는 폭력.

고급스러운 판금과 두꺼운 복합장갑재가 퍽퍽 꺼져 들어가는 찰나, 나는 무게중심이 훅 말려들어가는 것을 느끼곤 반사적으로 몸에 염동을 걸어 회피했다.

직후, 로더필드의 도끼창이 연기를 가르며 내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간다. 신기루 같은 속도로 창대를 당겨 잡아 그은 횡베기였다.

빠악-!

스치는 것만으로도 전술방호복의 앞섶이 터져나가는 압도적인 힘. 내가 손수 제작한 탄소복합체 방탄 플레이트가 소름끼치는 마찰음을 발했다. 숨이 턱 막히고 시야 가장자리가 어두워질 정도의 충격을 받은 나는, 한쪽으로 쓸려 무너지려는 자세를 가까스로 수습하며 3차원적인 기동으로 거리를 벌렸다.

핑 도는 현기증이 반 박자 늦게 골을 스친다.

‘그걸 견디다니…….’

최대출력의 염동력을 갑옷에 집적시켜 발사체를 방어한 로더필드가, 그 힘을 삽시간에 근육으로 옮겨 부으며 내지른 치명적인 반격.

이렇게 생긴 틈에 놈이 감전에 따른 피해를 고속으로 회복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황금기의 육체에 집착하는 인간답게 「생명」의 운용 역시 경지에 올라있는 것이다. 고도의 기술적 응용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을지언정,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기만큼은 원탁 제일을 다퉈도 좋을 경지에 도달한 지 오래인 인간.

이 인간이 떠들고 다니기를,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고 명쾌한 것」이었다.

이때 흙빛 베일에 가려진 하늘 저편으로부터 제트엔진들의 다중창이 급속도로 접근해왔다.

쐐애애애애액-

전장 상공에 출현한 다목적 전투기들의 정체는 프랑스 항공우주군의 라팔(Rafale/광풍狂風) 편대였다. 이름처럼 사나운 기류를 물고 온 전투기들은, 죽은 프랑스인들을 가장한 내 부하들의 폭격 요청에 따라 열여섯 발에 달하는 항공폭탄을 투하했다.

제국주의자들과 악마숭배자들의 전장에 탄두중량 250킬로그램짜리 폭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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