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20화 (320/561)

#35. 대영제국의 기수 (3)

탄자니아 중부 고원지대를 휩쓸던 모래폭풍은 7월로 접어들면서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이것이 일시적인 소강기일 뿐인지, 아니면 정말로 폭풍의 끝이 다가오는 것인지는 전문가들도 서로 말이 엇갈렸다. 자연에 분포하는 각성수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나기만 하는 상황에서, 그것들의 환경적인 영향을 계산할만한 예측 모델이 나온 게 없는 까닭이었다.

가장 좋은 싸움은 싸우기 전에 승리를 확정짓는 싸움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유리한 시기와 내게 유리한 환경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나는 모래폭풍이 더 약해지기 전에 대물 사냥을 끝마치고 싶었다.

지상에서 적의 위성감시와 항공지원에 대한 우려를 내려놓고 대마법사를 잡을 기회가 언제 다시 찾아오겠는가. 「황금기의 눈」의 전술적 효용도 효용이다. 내게는 투명하고 적들에게는 불투명한 전장이란 얼마나 우호적인 것인지.

“결과가 나왔나?”

내 물음에, 전장설계의 일환으로 미사일 사수들의 장비 점검을 지도하던 경태가 답했다.

“매번 측정할 때마다 값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긴 하는데, 기상이 여기서 더 악화되지만 않는다면 한 오륙백 미터까지는 안정적인 유도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좀 아쉬운 거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발사체가 최고속도에 도달할 수는 있겠구나.”

“그렇죠.”

나는 부하들이 붙잡고 씨름하는 미사일 발사기 세트를 바라보았다.

저 먼 본사로부터 마스터 로더필드에게 꽂아주고자 공수해온 초음속 대전차 미사일의 이름은 「흐리잔테마(Хризантема/국화꽃)」라 했다.

발사기의 수량은 넷. 준비된 미사일은 열둘. 겉보기엔 다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차이가 존재한다. 초기형과 개량형의 차이. 그리고 탄두 형식의 차이.

이러한 차이는 입수처가 제각각이기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것들을 내가 직접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발사기와 미사일의 절반은 리비아로부터 흘러나온 상품이다. 카다피 사후의 혼란기를 틈타 빼낼 수 있었던 물건들 중에선 희소성이 높은 축에 들었다.

나머지 절반의 출처는 중국이었다. 삼합회와의 거래를 통해 입수한 ‘거래 이력이 거의 없어 시세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장비들’ 가운데 이 미사일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가짜 빨갱이들이 언제나처럼 역설계와 기술도둑질을 하려고 종류별로 소량씩 확보해놓았던 샘플. 놈들은 이 샘플들에 최대한 비싼 값을 매겨 넘겨주었다.

초속 4백 미터가 넘는 속도, 그리고 두께 1.1미터의 강철(압연강)을 관통하는 위력이면 전쟁영웅 대마법사의 반사 신경과 방어능력을 뚫고 유효타를 넣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는 그레이스가 내게 공유해준 로더필드와의 교전 경험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 전쟁광 새끼에겐 사각이라는 게 없어.」

미약한 염동력을 퍼트려 제7의 감각으로 삼는 응용기술. 로더필드는 이 응용기술을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구사한다고 했다.

「믿어져? 지뢰를 매설해놓은 곳을 완벽하게 피해 가면서, 전방위에서 발사한 RPG-7(대전차 로켓) 마흔두 발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요격해버리더라. 그것도 내 딸들을 상대로 교전을 치르는 와중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내 부하들이 그레이스가 제공한 당시의 자료들을 분석해본 결과, 로더필드의 감지영역은 반경 170미터 안팎이며, 평균적인 반응속도는 약 130밀리초(ms) 가량이었다. 로더필드를 노리고 발사된 로켓들은 표적으로부터 150미터 이상 떨어진 허공에서 줄줄이 터지거나 궤도가 휘어졌다. 감지영역 내부에서 발사된 것들조차 채 20미터를 날아가지 못한 채 허망하게 폭발해버렸고.

이게 그레이스의 복제체 셋을 상대하던 와중에 발휘한 실력이라 했으니, 견제가 없는 상황에서는 필시 반경 2백 미터 이상의 정밀한 감지영역을 두를 수 있을 것이었다. 각성수가 없는 개활지에서 대마법사의 마력장을 최대로 전개한 상태라는 전제하에.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국화꽃」은 최대속도까지 가속했을 때 130밀리초에 52미터를 비행한다. 즉 로더필드의 마력장과 감지영역을 어떻게든 52미터까지 축소시켜놓기만 하면-

‘놈은 요격이고 뭐고 해볼 겨를이 없겠지.’

꼭 나나 684의 압박 및 견제가 아니더라도, 황무지에 서있는 각성수 한 그루면 미사일을 꽂아 넣을 사각지대를 만들 수 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이야기에 불과했다. 유도방식이 마지막 순간까지 조준을 유지해야 하는 레이저 유도인지라, 상대의 발을 묶어놓지 않고서는 명중을 기대하기 어려우니까.

따라서 러시아산 국화꽃은 승산을 높일 하나의 작은 방편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방편은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경태가 아쉬운 소리를 했다.

“전장을 확실하게 고정할 수만 있다면 훨씬 더 화끈한 화력을 깔아놓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악마숭배자들도 더 잘 대접해줄 수 있겠고요.”

684가 유인을 맡기로 하긴 했지만, 로더필드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출현할지 모르는 이상 전장이 될 장소를 확실하게 확정하기란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유인의 제1목적은 어디까지나 로더필드를 끌어낸 후 그의 군세와 분리시키는 것.

하여 우리가 준비하는 장치들 또한 기동성을 중시하고 있었다. 상황변화에 따라 어디로든 전개 가능한 기동성을.

나는 경태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노파심에 말해두겠다만, 이번 작전의 핵심목표는 로더필드를 죽이고 놈의 군세에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는 거다. 부차적인 목표에 너무 심력을 낭비하다가 핵심목표를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내 말을 듣고 히쭉 웃어 보이는 경태 녀석.

“형님도 참. 저 김경태입니다, 김경태.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부차적인 목표란 그레이스가 거느린 정예 전투단의 전력을 파악하고, 그 전력이 예상을 상회할 경우 티가 나지 않게 출혈이 많아지는 방향으로 전투를 끌어가는 것이었다. 이는 우리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침이기도 하다.

그 과정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면 그레이스의 불신을 살 것이며, 자연스러운 구도를 연출하더라도 마녀가 이쪽의 실력을 저평가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경태의 능력과 부하들의 실력을 믿지 않았다면 애초에 말도 꺼내지 않았을 일.

그레이스가 핵심전력을 온존한다면 그만큼 런던 공략이 쉬워지겠지.

그러나 기본적으로 나는 나 혼자서라도 런던 공략을 이룰 수 있도록 준비하던 입장이다. 그레이스는 나와의 협력이 더욱 아쉬운 처지가 되어야 하며, 운명의 날 이후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일찍부터 세력균형에 주의를 할애할 필요가 있었다.

수연 녀석도 내게 비슷한 맥락의 말을 올렸다.

「탄자니아 하나만 해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합친 것보다 더 거대한 땅입니다. 아프리카 국가들 다수를 전쟁의 기반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그레이스로서는 자신의 정예와 복제체들을 다소 소모하더라도 남는 장사라고 느끼겠지요.」

주술사 왕의 위명으로 무수히 많은 부족들 사이의 갈등을 봉합하고, 또 오늘만 사는 각성능력자들에게 광신을 심어 전쟁 준비에 갈아 넣는다면, 검은 대륙은 실로 어마어마한 생산력을 뿜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마중물이 될 인풋이 필요하다. 구슬이 서 말이 있으면 뭐하나. 하나로 꿸 능력이 있어야 의미가 있지.

「세력권이 급격하게 팽창할수록 조직의 보안성이 취약해지는 것은 필연입니다. 우리는 도움의 형태로 과도한 확장을 조장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를 견제할 수 있습니다. 칠각기사단이 과부하에 시달리며 원탁과 영국 정부의 공작에 대응하느라 소모되는 사이, 우리는 배후의 조력자로서 그레이스가 거느린 세력의 약한 연결고리들을 최대한으로 파악해놔야겠지요.」

이렇게 파악해놓은 정보는 훗날을 대비한 보험으로 삼기에 좋다. 그레이스와의 동맹이 파국에 이를 경우, 핀 포인트 공격과 참수작전으로 거대한 세력의 신경망을 끊을 수 있게 해주는 보험. 줄이 끊어져 흩어지는 구슬들은 그레이스에게 불리한 선택을 강요할 것이다.

이 전략이 먹히는 건 그레이스가 내 앞에서 약한 소리를 할 처지가 못 되기 때문이다.

내가 그레이스에게 얕보여선 곤란한 것처럼, 그레이스 역시 내게 얕보이고 싶지 않을 게 당연하다. 내가 얼마의 실력을 지니고 있으며, 또 얼마만큼의 세력을 거느리고 있는지를 모르는 상태이지 않은가.

일찍이 나는 684 앞에서 “너와 같은 복제체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필시 그레이스의 귀에도 들어갔을 터.

내가 자신의 세력을 그렇게 평가하며 접근했음을 아는 이상, 그게 사실이 아니라 한들 그레이스로서는 내 ‘착각’을 유지해야 할 동기가 있다.

‘복제체의 진짜 숫자는 얼마나 되려나.’

비록 넘버링이 엄청나기는 하나, 그 번호들 사이엔 아주 많은 결번들이 끼어있을 가능성이 높다. 단순히 기만을 목적으로 비워둔 결번들도 있겠으나, 원탁과 영국 정부에게 척살당하여 결번이 된 번호들이 그 이상으로 많지 않을는지.

어머니인 그레이스의 손에 죽은 딸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596이 발작처럼 내지르던 절규를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싫어! 싫어어어엇! 더 이상은 싫단 말이야! 제발 저를 놔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어머니……. 우리 가족, 저 하나쯤은 없어져도 괜찮잖아요…….」

그레이스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이 절규를 여러 차례 곱씹어보았다.

거인의 뱃속으로 도피한 596은 원탁이 아니라 어머니가 보낼 추적자들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으면 나와 마주치자마자 앞뒤 잴 것도 없이 어머니의 사람이라고 믿고 달아났겠는가.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였을 것이다.

596은 어머니에게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고, 그 판단을 지체 없이 실행으로 옮겼다. 그 단호한 절망은 그레이스의 세력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시사한다.

흉물스러운 몸에 들어간 684의 우울은 또 어떠한가. 그레이스가 딸들의 뇌를 주무르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은 거의 확실하지만, 그 기술이 결코 만능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내가 그레이스라면, 리스크 관리를 위해서라도 복제체 딸들의 전력을 항상 일정 선 이하로 유지할 것이다.

활동영역의 분할과 강력한 감찰, 불규칙적인 순환배치 등의 조직운영을 통해 제어 가능한 규모의 상한을 높일 수는 있겠지. 그러나 그러한 관리에도 또 다른 한계가 있는 법이다.

딸들의 기능에 따라 능력을 달리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되겠다. 단순히 디코이로만 써먹을 복제체에겐 높은 수준의 전투력이 필요치 않을 테니까.

“형님.”

나를 부른 경태가 위성통신으로 들어온 정보를 전달했다.

“684 아가씨가 움직인답니다.”

칠각기사단과 우리가 실무적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상당한 진통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경태가 조율하지 않았다면 여태까지도 그 문제로 씨름을 하고 있었을지 모를 만큼.

“우리도 움직이지.”

내가 정찰지원과 제한적인 화력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한 이후, 684는 전보다 훨씬 더 효율적으로 원탁의 촉각(觸角)을 파괴해나갔다. 더 이상 황금기의 눈을 경계하거나 어디에 뭐가 있을지 몰라 몸을 사릴 이유가 사라졌으니까.

「콜레로의 뱀」이 선사한 충격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어떻게든 뱀을 죽일 방안을 골몰하는 평화유지군 세력도, 평범한 영국 헌터 클럽(HC)의 탈을 쓰고서 사냥개들을 풀어놓은 원탁의 원정군도, 이제는 약하고 연한 부위를 수시로 물어뜯어 피를 흘리도록 만들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원탁의 원정군에게 소모와 선택을 강요하는 과정.

684의 사냥은 이번에도 수월하게 마무리되었다. 높은 곳에서 지켜보던 내가 다 끝난 것을 확인하고 접선지점으로 내려오자, 684는 커다란 몸을 살짝 움츠린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안녕.」

아기들의 옹알이가 화음을 이룬다. 결코 좋은 소리라고 하기는 어려우나, 처음 들었을 때보다는 그래도 많이 나아진 발성(發聲). 흉물스러운 몸을 다루는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다는 방증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브아…… 브아아…….」

684의 몸통에 박힌 아기 얼굴 하나가 나를 보며 방긋방긋 미소 짓는다. 빽빽이 박힌 얼굴들의 틈바구니 사이로 기형적인 팔 두 개가 뻗어 나와 나를 향해 손가락을 꼼지락대었다. 684는 조금 당황한 기색을 드러냈고, 미소 짓던 아기의 얼굴은 곧 가만히 눈을 감고 잠든 것처럼 변했다.

몸을 다루는 기술은 좋아졌는데, 다형성 군체의 구성요소가 저렇게 통제에서 벗어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감정적 편린의 발현인가, 아니면 기능적인 장애인가.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나?”

내 물음에 684는 큼지막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그런 것 없어.」

“그렇다면 다행이다만, 문제가 생긴다면 사양 말고 말해라. 우리는 이제 확실하게 같은 편이 되었지 않나.”

「…….」

매 사냥이 끝날 때마다 이렇게 684와 접선하는 명분 중 하나는 흉물스러운 육체의 기능점검이었다. 내 칼질이 남긴 후유증이 어떤 구조적 불완전성으로 발현될지 모르니, 영혼을 다루는 마법의 대가인 내게 추적검사를 받아보라 권했던 것. 684는 내 권고를 머뭇거리며 받아들였다.

그레이스는 과연 이를 알고 있을는지.

“가져와.”

내 손짓에 경태 아래의 부하들이 제트 바이크로 실어온 화물들을 운반해왔다.

화물의 정체는 684가 먹을 음식들이었다. 최초의 조우에서 684가 인간을 잡아먹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으나, 본래 인간의 몸을 가졌던 684가 설마하니 개인적인 기호로 인육을 뜯어먹었겠는가. 전투 중 빠르게 열량을 보충할 수단이 달리 없었던 까닭이었을 터. 부차적으로 적들에게 공포를 선사하는 효과도 노렸겠지만.

커다란 몸집과 강력한 힘은 그에 비례하는 소모와 허기를 불러오게 되어있다. 수천수만의 작은 위장들로 느끼는 허기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생체질량이 워낙에 거대하니, 필요열량을 매번 보급추진으로 해결하기가 까다롭겠지.’

그레이스가 제 자식들을 취급하는 태도를 볼 때, 684의 열량보충은 본인이 알아서 해결하라 했을 공산이 크다. 여기에 빠듯한 타임 테이블과 게릴라전에 가까운 임무특성이 더해지면 화룡점정이다.

그레이스가 제 딸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관리를 방기하고 있다면, 그 틈을 내가 파고들지 않을 이유는 없다. 밑져야 본전이니.

“들어라. 이번에는 전보다 조금 더 많이 준비했다.”

식량 추진은 접선의 또 다른 명분. 684가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짤막하게 답해주었다. “사람은 밥을 잘 먹어야 한다.”라고.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684는 그 이상의 답을 요구하지 않았다.

나는 빈 상자를 하나 가져다놓고 684와 마주앉아 에너지 팩을 뜯었다. 잠시 멈칫했던 684는 이내 다시 입안으로 음식을 쓸어 넣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일단 뱃속으로 집어넣고 보는 것이다. 식도부터 위장까지 돋아난 자그마한 손들이 계속해서 넘어오는 음식들을 받아 차곡차곡 저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저장한 음식물들은 움직이면서 섭취해도 무방하다. 흉물의 소화계통을 이루는 아기들이 뱃속에 쌓인 음식들을 뜯어먹으면, 684는 아기들의 미각에 집중함으로써 그 맛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몇 번의 급양으로 확인한 바, 684는 단맛이 강한 음식을 많이 좋아하는 듯했다.

나는 다 먹은 에너지 팩 용기를 불태우며 말했다.

“특별히 먹고 싶은 게 있다면 요청해라. 가능하다면 구해보도록 하지.”

「……그런 식으로 귀찮게 하고 싶진 않은데.」

“가능하다면, 이다. 부담스러워할 것 없어.”

커다란 몸을 웅크린 채 머뭇거리던 684는, 조금 작아진 화음으로 「초콜릿 시폰 케이크…….」라며 말끝을 흐렸다.

“초콜릿 시폰 케이크. 기억해두겠다.”

이렇게 답하며, 나는 흉물의 중추에 번지는 신경신호의 변화를 눈여겨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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