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웨인과 웨이네타 (13)
6월 27일 오후 9시.
여러 안테나들이 달린 철탑 아래에서, 나는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레이스가 보내올 사람을 기다렸다.
그런 내게 정각에 맞춰 다가온 것은 밝은 색조의 옷을 입은 현지인 인력거꾼이었다. 머리엔 띠를 둘러 바람개비를 꽂아놓았고, 목에는 싸구려 티가 많이 나는 마사이식 목걸이를 걸었으며, 앞니는 모두 빠져있어 웃는 얼굴에 바보 같은 인상을 더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당신의 이름은 웨인 씨가 맞는다?”
“그렇소. 내가 웨인이오.”
“만나서 반가워요. 나는 조하나(Johana)예요. 선생님은 이제부터 나의 릭샤(인력거)를 타십니다. 나는 선생님을 웨이네타 님께서 기다리시는 곳으로 편안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웨이네타?”
“예. 웨이네타. 뭔가가 잘못되었습니까?”
“……아니, 그런 것 없소.”
조하나가 타기를 권하는 릭샤는 주인의 머리띠가 그러하듯 알록달록한 바람개비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지붕 위는 바람개비들로 이루어진 꽃 덤불이라고 해도 좋을 지경. 내가 경호팀과 시선을 교환하고서 릭샤에 올라타자, 조하나는 다시금 헤죽 웃어 보이고는 손잡이를 붙잡고 각성능력자의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해안 도로를 달리는 릭샤는 다양한 색채의 LED로 반짝거렸다. 바람개비마다 달린 작은 발전기들이 전기를 공급하는 구조였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불빛에 둘러싸인 나는 한숨을 삼키며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꽤나 악취미적인 초대로군.’
이렇게 유치하고 눈에 띄는 탈것 또한 등잔 밑의 그늘이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꼭 이런 방법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귓구멍 안쪽에 부착한 초소형 리시버로 경태의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형님. 인상 펴십시오. 사진이 잘 안 나옵니다.」
“……사진이라니?”
「지금처럼 보기 힘든 형님의 모습은 응당 추억으로 남겨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심하십시오.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로 안 보여주겠습니다. 누님 한 사람만 제외하고요.」
“지워라.”
「에이, 그러지 마시고……. 전에 형님께서 선물 주신다고 하셨던 거, 지금 찍는 사진들로 퉁치면 안 될까요? 누님도 좋아할 겁니다.」
“지워.”
「넵.」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노력이 가상하기는 하나, 지금의 내게는 그런 걸 받아줄 만한 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뱃속이 꽉 조여들고 입술이 마르는 긴장감. 나는 길게 마시고 길게 뱉는 호흡을 반복하며 마음을 다스리고자 노력했다.
경호팀이 지상과 하늘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가운데, 조하나가 끄는 릭샤는 수연이 예상했던 장소 중 한 곳으로 방향을 잡았다.
유럽연합 대표부를 비롯하여 독일, 덴마크, 한국, 일본 등 두 자릿수의 대사관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호화로운 호텔. 입지가 이렇다보니 주변엔 탄자니아 정규군과 평화유지군 병력들, 평화유지군에 협력하는 다국적 헌터들의 전투단 등이 즐비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이런 곳에서는 내 조직과 악마숭배교단, 원탁의 하수인들 모두가 실력을 행사하기가 곤란해진다. 정부와 갈등을 빚으며 비밀스러운 일을 추진하는 중인 원탁의 일파로선 특히 더 그러할 테고. 장소 선정 자체엔 흠잡을 데가 없는 셈이다.
반짝거리는 릭샤는 호텔 본관 앞에서 정지했다.
“내리세요. 다 왔습니다.”
내가 땅에 발을 딛자, 조하나가 내게 출입증과 카드키를 건넨다. 출입증은 국제 고위험 수렵협회에서 발급한 것으로, 외국인 전용으로 지정되어 테러 위험성이 높은 시설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공신력 있는 국제협회나 국가기관의 인증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이제 팁을 주십시오. 팁은 신사의 소양입니다.”
“…….”
당당하게 팁을 요구하는 조하나에게 백 달러 지폐 한 장을 쥐여 준 후, 나는 카드키에 적힌 번호의 객실을 중심으로 호텔 내부의 위험요소를 탐색했다.
‘딱히 눈에 띄는 건 없군.’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장소 중 하나인 만큼 경호실의 감시와 사전정찰이 있었으므로, 릭샤의 행선지를 확인하고서 나보다 먼저 진입한 부하들은 지체 없이 각자의 대기지점에 자리 잡은 상태였다.
그레이스가 웨이네타라는 가명으로 빌린 객실은 최상층에 위치한 스위트였다. 같은 층에 힘과 지위가 있는 인사들이 주로 묵고 있다 보니, 스위트 전용 승강기 앞에선 입구에서의 검사와 별개로 다시 한 번 신분확인이 이루어졌다.
각성능력자 무장경비원은 친절한 미소로 나를 통과시켰다.
“아, 확인되었습니다. 웨이네타 슬롭 님의 배우자분이셨군요. 들어가시지요.”
배우자라. 웨인이 원래부터 웨이네타와 한 쌍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이긴 했다. 둘이 합쳐 쓰레기(Slob) 부부가 되는 것.
나는 경비원에게 눈인사를 하고서 승강기에 올라탔다.
층수를 가리키는 바늘이 올라갈수록 심장 박동이 거세진다. 목 뒤편이 조금 뻐근해지는 느낌. 올라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승강기는 빠르게 최상층에 도달했다.
「띵-」
문이 열리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복도가 나타난다. 복도의 저편에 있는 문 너머에서, 그레이스는 소파에 다소곳이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순간 눈앞의 복도가 전율하는 거인의 뱃속보다 위험한 미궁의 입구로 느껴지는 이유였다.
나는 일부러 소리를 내며 걸었고, 느린 박자로 문을 두드렸다. 마녀는 실크 장갑을 낀 손을 들어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카드키를 찍고 문을 열자, 마침내 나를 보게 된 그레이스가 입가에 진한 미소를 머금는다.
“왔어, 여보?”
“……질이 나쁜 농담이로군, 그레이스.”
“큭큭. 재미없기는. 앉아.”
높이가 낮은 탁자를 가운데 두고 마녀와 마주앉으며, 나는 광택이 감도는 황동 종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는 내가 고래 흉내를 내어 격침시킨 왕립해군의 프리깃에서 떼어온 기념품이었다. 그레이스는 흥미로워하는 표정으로 종에 음각된 글씨를 읽었다.
“HMS 웨스트민스터, 1993년……. 지난 오후에 같은 이름을 가진 배가 「키요우타마히코」의 공격으로 침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설마 거기에 웨인 당신이 관여한 바가 있는 거야?”
“일단은 그런 셈이지.”
“일단은, 이라면?”
“웨스트민스터는 내가 격침시킨 게 맞지만, 함께 가라앉은 나머지 배들은 내가 손을 댄 게 아니다. 그쪽은 진짜 고래의 소행이지.”
“오, 들어보면 제법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인걸? 하지만 당장은 그런 것보다…….”
사람을 잡아먹는 동물의 냄새가 훅 가까워진다. 말끝을 흐리며 내 쪽으로 상체를 기울인 그레이스가, 입가의 미소를 지우고 내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하는 말.
“만나서 반가워, 웨인. 그 눈이 「황금기의 눈」이야?”
마녀의 질문은 예고도 없이 찌르고 들어오는 칼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흉중에 서늘하게 날을 세운 채로.
“그래. 이게 황금기의 눈이다.”
“신기하네. 보는 것만으로는 전혀 모르겠어. 그게 그렇게 살아있는 사람에게 박혀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기도 하고……. 크로우허스트 그 욕심 많은 인간이 대단한 일을 해냈구나.”
“가지고 싶은가?”
“솔직히 말하면, 그래. 가지고 싶지 않을 리가 없잖아?”
“…….”
“그렇게 정색할 것 없어.”
상체를 뒤로 되돌린 그레이스가 입을 가리며 작게 웃는다.
“684에게 들었어. 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고 나서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며? 지옥 같은 나날이었다고 들었는데, 맞아?”
“그랬지.”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긴 해. 그런 눈을 달고 일상생활을 영위한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상상조차 가질 않으니까.”
그레이스는 짧은 여백을 넣고서 여유로운 말을 이어갔다.
“물론 그 눈은 나를 지금보다 더 강력한 존재로 만들어줄 수 있겠지. 그러나 당신처럼 아예 안구 대신 박아 넣지 않는 한, 전력상승의 폭은 그렇게까지 현격하지 않을 거야. 적어도 앞으로 몇 년 동안에는.”
“…….”
“그렇다고 당신의 예를 본받기도 곤란해. 그 눈이 제공하는 시야와 정보량에 적응하기 전까지, 나는 원래 있던 힘조차 완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릴 테니 말이야. 단 하루의 전력공백도 치명적일 수 있는 시기엔 감수하기 어려운 위험이지.”
그레이스의 눈매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자, 당신이 날 설득하기 위해 준비했을 내용은 딱 이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때, 정답이야?”
정말이지, 상대를 가지고 노는 화법 하나는 일품인 여자로군. 나긋한 마디마디에서 어조와 태도에 가려진 성격이 묻어나는 것만 같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긍정했다.
“정답이다. 왜, 그걸로는 너를 설득하기에 부족한가?”
“그을-쎄. 확실히 타당하고, 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알잖아? 머리와 가슴이 가리키는 바가 반드시 일치하지만은 않는다는 거. 그러니 이 밤의 향방은 결국 당신의 구애가 얼마나 매력적인가에 달려있는 셈이지.”
“분발해야겠군.”
“당신에게서 긴장과 두려움의 냄새가 나는걸?”
“너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난다.”
후각으로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는 건 동물의 영역이자 초인의 영역이다. 그리고 대마법사의 후각적 분해능은 평범한 각성자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냄새를 감추지 않음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상대의 신용을 사고자 했고, 이는 눈앞의 마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로써 우리는 서로가 가시를 곤두세운 고슴도치임을 서로에게 인식시켰다. 정말로 고슴도치가 맞는지, 아니면 고슴도치 흉내를 내는 포식자인지는 피차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네가 대역이 아님을 증명해주었으면 좋겠다만.”
내가 요구하자, 그레이스는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렇지. 그래야겠지.”
그레이스가 입고 있는 플레어 원피스는 684의 수녀복처럼 ‘불투명한’ 재질이었다. 비록 머리를 드러내고 있기는 해도, 회로의 일부만 보아서는 진짜 그레이스인지 아니면 공이 아주 많이 들어간 복제체일 뿐인지 알 수 없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레이스가 장갑을 벗어던지고는 넥 아래의 단추로 손을 가져갔다.
“잘 보도록 해.”
일렬로 달린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 내린 그레이스는, 느린 동작으로 허리띠까지 마저 풀어버린 후, 느슨해진 원피스를 어깨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자락이 긴 옷이 스르륵 떨어지고, 나는 마침내 마녀가 지닌 회로 전체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름답군.’
역시 대마법사가 갈고 닦은 회로라고 해야 할까. 다른 대마법사의 회로를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웨스트버튼 때는 싸움이 한창이었으므로 그 구조적 완성도를 감상할 여유가 없었다. 심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딸들과 달리, 그레이스 본인의 몸엔 어떤 문신도 새겨져있지 않았다. 위장이 필요하면 즉석에서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 아무래도 좋은 일이겠지.
속옷 차림으로 선 마녀가 짓궂은 표정으로 묻는다.
“마음에 들어?”
“협조에 감사한다.”
“이번에도 재미없는 반응이네. 그럼, 이제 당신 차례야. 지금 벽 너머에서 당신을 겨누고 있는 총구가 다 합쳐서 몇 개인지 말해볼래?”
문 너머에서 들어오라 손짓하는 걸 본 것만으로는 충분한 시험이 될 수 없었다. 나는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총구가 아니라 클레이모어(산탄지뢰)겠지. 위치도 벽 너머가 아니라 이 응접실 내부이고. 숫자는 서른다섯. 참 꼼꼼하게도 깔아놓으셨군그래.”
각종 내장재와 장식품 따위로 은폐된 산탄지뢰들은. 유사시 그레이스가 앉은 자리를 제외한 나머지 영역 전체를 삼중사중으로 휩쓸도록 치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내가 마력장을 펼쳐 발화억제로 막으려 한들, 그레이스의 장악력에 가로막혀 생길 사각지대로 인해 완벽한 저지가 불가능하다. 그레이스의 위치변화에 따른 선택적 격발도 가능해보였다.
“딩-동-댕-!”
짝, 하고 손뼉을 부딪치는 그레이스.
“내 신중함을 불쾌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웨인 당신도 당신대로 준비한 게 있을 테고. 그렇지?”
맞는 말이었다. 내가 준비한 보험들 중엔 다수의 레이저 유도 대전차미사일과 직사가 가능한 강선식 중박격포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고작 산탄지뢰를 좀 깔아놓은 정도로 불만을 품을 계제가 못 되었다.
피차 가시를 눕히기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