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14화 (314/561)

#34. 웨인과 웨이네타 (12)

해적함대의 주력 전투함, 로켓추진 충각선 「마르깝 다압」의 강력한 방어력은 175도에 달하는 비정상적인 전면경사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면으로부터 날아드는 공격은 4.5인치 함포사격이라도 튕겨낼 수 있으되, 측면에서 들어오는 공격이라면 입사각에 따라서는 기관포를 맞고도 장갑이 관통당하는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단점을 공략하기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선체의 크기와 각진 형상으로 말미암아 레이더 반사 면적이 작아, 사람이 수동으로 조준하고 쏘아야 할 때가 많았기 때문.

이에 따라 해적에 맞서는 국가들이 전투함들의 상호간 엄호체계를 강화하는 한편 비행순찰 및 근접 공중엄호가 가능한 헌터들을 대대적으로 고용하고 나서자, 해적제독은 차세대 충각선을 전장에 데뷔시키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러면서 한 짓이 유머러스하게 찍은 프레젠테이션 영상을 공개한 것이었다. 나는 민사심리전의 걸작이라고 해도 좋을 이 영상을 아주 인상 깊게 감상했다.

「기존의 마르깝 다압은 우리 형제들의 사랑과 강도국가들의 증오를 한 몸에 받는 훌륭한 돌격선이었지만, 전장 환경의 변화에 발맞추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취약한 측면과 후방, 고약한 안정성, 요란하기 짝이 없는 항주 소음 같은 것들 말이죠.」

이렇게 운을 떼는 동영상 속의 해적제독은 검은색 터틀넥과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여기에 회색 뉴발란스 운동화까지 신었으니, 흉내 내려 한 인물- 스티브 잡스의 패션과 다른 것은 오직 머리에 착용한 터번 하나가 전부였다.

「우리가 계속해서 강도국가들과의 전쟁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배를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보다 조용하고, 보다 은밀하며, 보다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는 배를.」

「오늘 소개해드릴 2세대 마르깝 다압은 그러한 조건들을 빠짐없이 충족시키는 혁신적인 돌격선입니다. 자, 그럼 우리의 자랑스러운 신상품이 1세대와는 무엇이 달라졌는지 하나하나 보여드리도록 하죠.」

이렇게 처음 모습을 드러낸 2세대 마르깝 다압은 수면 아래 1미터 깊이에서 항주가 가능한 반잠수정이었으며, 1세대엔 없었던 ‘저소음 추진체계’를 추가로 탑재하고 있었다.

말이 저소음 추진체계지, 그 실체는 사람이 돌리도록 설계된 수동 스크루 프로펠러였다. 기술적으론 한강 오리배와 비슷한 수준. 다만 구조적 완성도가 더 높을 따름이다.

영상 속의 해적제독은 이를 직접 시연해 보이기까지 하여 프레젠테이션의 유머러스함을 더해놓았다.

「실제로 프로펠러를 돌려보도록 할까요? 우선 몸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손과 발을 함께 써서, 전신의 힘을 고르게 실어, 이렇게, 이렇게……. 아. 잘 돌아가는군요.」

한때 근엄한 어조로 선전포고를 하던 인간이 이러고 앉아있으니, 나머지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그 갭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이미지 메이킹의 힘은 강력한 것. 언론이 보도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건대, 주요 교전당사국의 시민들조차 해적제독 말라크 하산이 상종 불가능한 미치광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군사적으로 문외한인 자들은 겨우 이런 수준의 해적들을 상대로 졸전을 면치 못하는 해군 함선들을 비웃기까지 한다지.

그러나 우스꽝스러운 이미지야 어쨌든, 2인 이상의 각성능력자들이 돌리는 프로펠러는 전술적으로 유의미한 속도를 내기에 충분한 추진 장치다. 어두운 시간, 낮은 소음을 유지하며 침투한 후 가까운 거리에서 로켓추진을 개시하는 식이면, 당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악몽이나 다름없다.

여기에 부수적인 수중침투 및 파괴공작까지 더해진 결과, 방어자들의 입장에선 능동 소나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게 되어버린 것.

물론 방어자들이라고 아무 대책도 없이 음파를 뿌려대고 있는 건 아니었다.

「피잉-」

높은 음계의 날카로운 고주파가 내가 머무르는 심도(深度)를 쓸고 지나간다. 고주파를 방출하는 근원은 공중으로부터 줄에 달아 내리는 형식의 음향탐지기(디핑 소나)였다.

이러한 고주파 탐색은 파장의 도달거리가 짧아 멀리 있는 각성체를 자극할 우려가 낮았다.

수면 위 약 50미터 지점에서 와이어를 늘어뜨리고 있는 것은 방전능력자 헌터가 올라탄 드론 바이크였다. 제트 바이크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정지비행과 초저속비행이 가능하며, 파일럿의 배가 꺼지기 전까지는 무제한이나 다름없는 체공시간을 외곽 경계망 구축에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각성체 고래의 공격을 받더라도 소나 하나 망가지고 끝이니까.

나는 외곽 경계망을 무인지경으로 돌파하며 생각했다.

‘고래의 마음을 알 것도 같군.’

날카로운 액티브 핑을 계속해서 듣다보니, 시끄럽고 거슬리는 것들을 다 박살내고 다니는 고래들의 심정이 이해가 될 것도 같았다.

내가 노리는 다국적 순찰선단은 여러 겹의 경계망을 두른 채 느린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장 바깥엔 드론 바이크들이 배치되고, 보다 안쪽엔 어군탐지기를 실은 소형 고속정들이 있으며, 그보다 더 들어간 위치에 비로소 전투함과 무장 여객선들이 자리 잡는 커다란 원형진.

왕립해군의 프리깃 「HMS 웨스트민스터」를 사정권에 넣은 나는 곧바로 고래의 노래를 회로에 장전했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매 공격에 앞서 부르는 그리움과 복수의 노래를.

「휘오오오…… 우웅…… 우우우……」

높낮이를 달리하며 몽환적으로 이어지는 울림은, 인간 세상을 초월한 무언가가 거대한 관악기를 연주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감각을 마법적 진동으로 고스란히 재현한 바, 전 방위로 퍼져나간 연주의 잔향은 순찰함대의 원형진을 패닉에 빠트렸다. 노래가 원형진의 내부에서 울려 퍼졌다는 사실은 저들에게 공포 그 자체일 것이었다.

「피잉- 피잉-」

여기를 보라는 듯, 내가 지나온 방향의 디핑 소나들이 자극적인 액티브 핑을 난사해댄다.

심해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고래처럼 마력장을 전개하며, 나는 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여 나를 중심으로 하는 커다란 구형의 수괴(水塊)를 빚어냈다. 이는 진동을 일으킬 공격수단인 동시에 진동을 흡수할 방어수단이기도 한 공방일체의 수성 결계였다.

다음 순간 주변에 가득하던 환경소음이 훅 잦아든다. 디핑 소나들이 발산하는 액티브 핑의 고주파는 내가 지배하는 물의 두께를 뚫고 들어오지 못했다. 다만 눈으로 흐트러지는 음파를 볼 수 있을 따름.

「우우우우웅-!」

내가 방출한 지향성 충격파가 디핑 소나들을 연달아 파괴했다. 저가형이라도 백만 달러를 호가할 장비들이 물에 젖은 쿠키처럼 바스러져 나간다.

다음 순간, 일제히 날아든 헌터들이 둥근 금속성 구체들을 무더기로 투하하고 지나갔다. 각각의 구체들은 착수와 동시에 굉장한 소음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워워워웍-! 워워워웍-!」

작게나마 내 결계마저 뚫고 들어올 만큼 시끄러운 소리들. 이 틈을 타 아직 성하게 남아있는 디핑 소나들이 인양기에 감겨 올라간다.

인류가 거대한 해양각성체들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고자 채택한 생존전략엔 「스컹크 전략」이라는 별명이 붙어있었다. 악취를 뿜어 포식자를 쫓아내는 스컹크와 같이, 견디기 어려운 소음공해를 퍼부어 각성체 고래를 쫓아내보자는 발상이었다.

아니면 하다못해 도망을 칠 시간이라도 벌어보거나.

심연을 유영하는 거대한 각성체들 앞에서, 인류는 그저 스컹크와 비슷한 포지션에 불과함을 인정한 것이다. 악취를 풍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약한 것들.

원형진 중심부의 다국적 선단은 저마다 다른 대응들을 보여주었다. 나로부터 비교적 멀리 있는 배들은 엔진소음을 낮춰 슬금슬금 달아나는 쪽을 택했고, 상대적으로 가까운 선박들은 엔진을 끈 채 재난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HMS 웨스트민스터는 당연히 후자에 속했다.

이와 함께, 각각의 함선에서 날아오른 헬기들은 원형진 안팎에 다수의 디코이들을 투하했다. 고래들이 보편적으로 가장 적대시하는 음문(音紋)을 방출하는 청각적 미끼들이었다.

이렇게까지 야단법석을 떠는 와중에도, 나를 향해 직접적으로 가해지는 공격은 존재하지 않았다. 변죽만 요란할 뿐 그 흔한 폭뢰 한 발조차 날아드는 게 없다.

그도 그럴 게, 함부로 공격을 했다간 무슨 꼴을 겪게 되는지 현재진행형으로 보여주고 있는 국가가 하나 있잖은가.

‘일본이 당하는 걸 보고서 배우는 게 없다면 대가리가 빈 거지.’

특히 일본과 같은 섬나라인 영국은 더욱 철저하게 「스컹크 전략」을 고수하는 게 당연하다. 내가 전보다 여유롭게 공격을 준비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물에 대한 지배력의 코드는 꿈속에서, 또 현실의 여백에서 지속적으로 계량해온 술식들 가운데 하나인 바, 이제는 폭뢰공격을 받더라도 일정 선까지는 상쇄를 노려볼 경지에 오르긴 했다. 그러나 최선은 역시 공격 자체를 받지 않는 것.

사냥감, HMS 웨스트민스터는 배에 탑승한 자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있었다. 누구도 뛰거나 걷지 않고, 누구도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절대적인 침묵 상태. 이마가 반들반들하게 젖은 누군가는 눈을 감고 묵주를 쥔 주먹을 코끝에 대고서 기도를 올리는 중이다.

2백 언저리의 인간들이 하나같이 고래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모습.

그저 멀리서 눈으로만 보고 있는데도 저들이 뿜어내는 긴장의 냄새가 비강에 감도는 듯하다.

「쿠웅-! 쿠구웅-!」

나는 1초에 서너 번 꼴로 지향성 충격파를 방출하여 시끄러운 것들을 파괴해나갔다. 처음에는 노이즈 메이커를, 다음으로는 교란용으로 뿌려진 디코이들을.

이러는 과정에서 ‘운이 나쁜’ 몇 척의 배들이 덤으로 휘말린다. 감각을 교란당한 고래가 가하는 흐트러진 공격에 맞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영국의 배만 격침시켜버리면 수상한 정황이 남으니, 나로선 당연히 해둬야만 하는 일.

그래도 치명타를 가한 배는 없다. 어디까지나 우연하게 들어가는 공격을 연출하는 것이니까. 각성능력자들 다수가 타고 있는 배라면, 응급수리(대미지 컨트롤)로 선체에 뚫린 파공 몇 개쯤 틀어막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왕립해군 프리깃의 차례가 돌아왔다.

「우우우우웅-!」

수면으로부터 커튼처럼 들어와 일렁이던 빛이 한순간 바르르 흔들린다.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방출한 지향성 음향 충격파가 HMS 웨스트민스터의 선복을 강타했다. 투명한 짐승에게 물어뜯기다시피 파쇄당하는 강철 선체.

커다란 구멍으로 세찬 바닷물이 밀려들어가는 가운데, 배 안에서는 붉은 비상등이 점멸하고, 이제껏 숨을 죽이고 있던 승조원들은 거칠게 뛰고 소리를 질러대며 절망적인 대미지 컨트롤을 개시한다.

아직 안에 사람이 남아있음에도 잠금장치가 걸리는 해치. 해수가 차오르는 선실에 갇혀 절규하거나 흐느끼는 수병들. 복구반이 바쁘게 움직이고는 있으나, 배는 점차 기울어만 가고, 손상을 입은 용골엔 시시각각 더 많은 금속피로가 누적되는 중이었다.

이로써 웨스트민스터의 침몰은 정해진 결과나 다름없게 되었지만, 오늘의 사냥은 이제 갓 막을 올렸을 뿐이다.

나는 이제부터 약 반나절에 걸쳐 탄자니아 앞바다를 배회하는 고래 흉내를 낼 작정이었다. 그러면서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인 듯 왕립해군과 섬나라 헌터들에게 가장 큰 피해를 남기려는 것.

아까에 비해 훨씬 조용해진 바다에서, 나는 다시금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호곡(號哭)을 연주했다. 원형진을 이루는 모든 배들이 한층 더 거대한 긴장에 휩싸이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이 현장을 이탈할 채비를 하며 생각했다.

‘여기에 전략원잠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전략원잠. 핵미사일을 탑재하고 있는 원자력잠수함.

해양각성체에 의한 해난사고가 급증하고서부터, 지구상의 모든 원자력잠수함들은 기약 없이 모항에 발이 묶인 신세로 전락했다. 해양 원자력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지나치게 높아졌다고 판단한 것이다.

만약 전략원잠이 아직까지도 바다에서 활동하고 있었다면, 나는 전략핵무기의 대량 탈취를 진지하게 고려해보았을 터.

비록 크립 밸러스트의 마력장이 방해가 되긴 할 테지만, 지금의 내게는 잠수함 나포를 시도할 능력이 충분했다. 꾸준한 성취와 지속적인 궁구로 축적해온 마법적인 역량이.

외부와 완전히 고립된 바닷속에서 벌이는 일이니 후환을 염려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핵을 확보하더라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위력 전술핵탄두라면 또 모를까, 요즘의 전략원잠에 실린 전략핵탄두엔 옛날에 만들어진 폭탄들보다 훨씬 더 발전한 형태의 암호와 안전장치가 걸려있을 테니까.

그런데도, 일단 한 번 핵을 손에 넣어 그 마력을 경험해보고 나니 자꾸만 미련을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예컨대 「아밀라리아」의 메아리에 관한 정보를 마녀에게 넘기려면, 그 전에 유사시 균사체의 왕국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는 보험을 들어두는 편이 안전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나는 내가 자아내는 호곡의 파형(波形)에 매우 유사한 파형의 또 다른 호곡이 겹쳐 간섭과 공명을 일으키는 광경을 목격했다. 새로 나타난 파형은 내가 연주하던 곡을 살짝 압축해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

찰나 간 의문을 느끼던 나는, 내가 연주한 게 아닌 고래의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곤 신경이 올올이 곤두서는 감각을 느꼈다.

이런 망할-

「휘오오오……」

고래의 호곡이 나의 연주보다 파장이 짧았던 건 도플러효과 때문이었다. 이는 즉 파동원의 중심인 고래가 내게로 머리를 향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

가슴이 철렁한 내가 연주를 끊자, 내 연주중단을 수중의 음속으로 감지한 고래가 터무니없는 가속을 선보이며 급격하게 쇄도해왔다.

내가 회피를 포기하고 방어를 굳혀야 할 만큼 빠른 가속을.

황금기의 눈이 보여주는 바, 각성체 혹등고래의 급속기동은 수류(水流)를 제어하는 원시마법에 기초하는 것이었다. 내가 가진 물에 대한 지배력처럼 섬세한 작용까진 불가능할지언정, 흐름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엔 탁월한 에너지 효율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심장이 빠르게 방망이질 치는 와중에도, 나는 고래가 가진 코드의 완성도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다.

「우웅……우우우……」

지척까지 다가와 감속한 장대한 생체질량이 나를 중심으로 느릿느릿 원을 그리며 헤엄친다. 서로의 마력장이 격렬하게 부대끼며 밀고 밀리는 마소장악력의 경계면을 형성하는 가운데, 감정을 읽기 어려운 커다란 눈은 나에게로 고정되어 있었다.

고래의 체내에서 아드레날린 분비량이 늘어나고 있지 않았으므로, 나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자리를 지키는 한편, 머리로는 냉정함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이 녀석으로서도 지금의 상황이 조금은 당황스럽겠지.

누군가 제 자식의 이름을 노래하는 걸 듣고서 와봤더니, 거대한 마력장의 중심에 동족이 아니라 웬 인간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니까.

「끼우웅- 쿠궁-」

끝끝내 용골이 파열된 왕립해군의 프리깃이 두 쪽으로 찢어지며 발하는 굉음. 금속이 찢어지는 소리와 격벽이 터지는 소리들이 한데 뒤섞여 울려온다.

계속해서 원을 그리던 혹등고래가 이를 듣고 슬쩍 고개를 돌리더니, 이가 빠지고 찌그러진 원형진을 향해 파장이 긴 저주파를 방출한다. 가시거리보다 먼 곳을 더듬는 탐색의 음파였다.

뻗어나간 음파는 가라앉는 배, 달아나는 배, 제자리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배들과 부딪혀 서로 다른 잔향으로 돌아왔다.

고래는 다시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은 마치 내게 설명을 요구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역시 짐작일 뿐이지만, 고래는 내가 저에게 누명을 씌웠다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하기야 이건 지나치게 인간스러운 사고방식이기는 하지.

잠시 후 고래가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어지다 끊어지고, 음역을 달리하여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몽환적인 발성은, 필시 고래가 나에게 건네 오는 저들 고유의 언어일 것이었다.

가만히 듣고만 있으려니, 고래는 꼬리를 저어 내게로 가벼운 물살을 밀어 보냈다. 마치 대답을 재촉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가 슬쩍 몸을 빼니 고래도 슬쩍 따라붙는다.

긴장 속에서 체감하는 시간은 실제보다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다. 도무지 떠날 생각을 않는 고래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내가 아는 고래의 호곡을 연주했다.

「-!」

놀라움의 표현일까. 고래가 한순간 커다란 동작으로 움직이더니, 다시금 내가 알아듣지 못할 노래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그저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려주는 게 나의 최선이었고, 고래는 이따금씩 거세지는 헤엄으로 저가 느끼는 답답함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마침내 포기를 했는지, 돌연 머리를 돌리더니 신경질적인 음파공격을 발산했다.

「우우우웅-!」

고래가 겨냥한 것은 원형진 안에 남아있던 전투함과 무장여객선들이었다. 한 차례 길게 이어지는 방출이 다섯 척의 배를 연달아 반파시켜 놓는다.

‘……경악스럽군.’

내게 충격을 준 건 공격의 위력이 아니라 고래가 음파공격을 빚어내는 원리였다. 나는 고래의 음파공격이 다중각성의 산물이리라 생각해왔지만, 아니었다. 이 미친 고래는 그저 생체강화에 의지하여 본연의 발성기관만 가지고 선박을 파괴해왔던 것이다.

뭐 이런 엽기적인 각성체가 다 있는지.

혹여 내게 공격이 돌아올까 대비한 것이 무색하게, 음파 방출을 끝낸 고래는 미련 없이 몸을 틀어 먼바다를 향해 헤엄쳐 나아갔다.

“후…….”

고래가 충분히 멀어진 뒤, 나는 긴 날숨을 내쉬며 임전태세를 풀었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갑작스럽게 피로감이 몰려온다.

현 시점에서 2억 3천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있는 혹등고래는, 전율하는 거인의 술식을 보유한 나를 상대로도 승산이 없지 않을 강력한 자연각성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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