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11화 (311/561)

#34. 웨인과 웨이네타 (9)

굴착현장을 위장하는 일은 터널을 대강 무너뜨린 후 시체인형들을 찢어 뿌려두는 것으로 족했다. 인형들을 좀 거칠게 찢어놓기만 해도 현지 주민들은 정체불명의 강력한 자연각성체를 상상할 것이었기에.

「콜레로의 뱀」의 출현은, 실존여부를 증명할 수 없는 괴물들에 대한 목격담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저 멀리 몽골에서는 사람의 창자를 닮은 거대한 핏빛 벌레(올고이 호르호이)가 출몰한다는 소문이 돌고, 북미지역에서는 사스콰치를 보았다는 신고가 쏟아지는 상황.

개중에서도 원시주술의 땅인 아프리카의 사정은 독보적인 면이 있었다. 대형 자연각성체들이 많은 환경이라 「콜레로의 뱀」 이전에도 괴기스러운 소문들이 많이 돌고 있었는데, 이제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레이스가 지정한 장소에 폭탄을 회수하러 나타난 것은, 그 모든 소문들의 뿌리인 그레이스-684 자신이었다.

약속장소는 울루구루 산맥과 접한 우드중와 산맥의 외진 자락이었다. 험준한 산악지대는 해가 떠있을 때에도 거대한 흉물이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 가능한 환경. 나는 숲의 그늘을 기어 다가온 684에게 재회의 인사를 건넸다.

“다시 보게 되어 반갑군. 그동안 잘 지냈나?”

「……우리가 서로 안부를 물을 사이였던가?」

“앞으로는 의례적으로라도 묻는 사이가 되어야겠지. 지금의 거래를 무의미하게 만들 작정이 아니라면.”

684가 드러내는 경계심은 한눈에 보아도 애써 자아내는 것에 불과했다. 약한 속살을 감추기 위한 껍데기, 혹은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은 나와의 관계에서 달리 취할 만한 태도가 마땅치 않아 도구적으로 꾸미는 태도에 더 가까워 보인다.

나를 응시하던 흉물이 시선을 옆으로 미끄러뜨렸다.

「이것이 그 「파란 고양이」인가?」

“그렇다.”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구해왔네. 솔직히 놀라울 정도야.」

“운이 따라주었지. 나도 이렇게 빨리 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좀 살펴봐도 될까?」

“얼마든지. 어차피 네가 가져갈 물건이니.”

황금기의 눈을 가진 것도 아닌데 겉으로만 봐서 뭘 알 수 있을까 싶지만, 혹여 저쪽이 폭탄의 설계도를 입수한 상태라면 만듦새를 볼 수는 있을 터였다. 세간에 알려진 제원만으로 완벽한 더미를 만드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684가 폭탄을 살피는 동안 나는 684의 몸뚱이를 관찰했다.

‘처음의 질량을 회복하진 못했나.’

앞서 내가 도와주었던 회복은 어디까지나 끊어진 결합구조를 봉합하여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조치한 수준이었지, 칼질에 잘려나간 생체질량과 파괴당한 작은 영혼들까지 수복해주었던 건 아니었다. 뒤쪽은 현존하는 어떤 마법으로도 이루지 못할 일이었으므로.

따라서 684가 최초의 상태를 되찾으려면 아기공장의 산물을 추가로 공급받는 수밖에 없었다. 즉 684의 영적인 질량과 물질적인 질량 모두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와 동일하다는 것은, 내게는 많은 것을 짐작하게 해주는 단서였다.

고양이를 살피던 684는, 내가 저의 몸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음을 깨닫고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뭘 그렇게 보는 거지?」

다소 날카롭게 나오는 질문. 나는 미리 궁리해둔 대답을 담담하게 돌려주었다.

“별것 아니다. 전에 입힌 상처들이 괜찮은지 궁금했을 뿐.”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 보여서 다행이군. 잠재적 동맹에게 해를 끼치는 건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지.”

「…….」

아기들의 얼굴로 가득한 뱀의 몸뚱이가 스스스스- 소리를 내며 움츠러들었다. 이 육중한 움직임에서 부끄러움이 읽힌다는 건 제법 신선한 경험이었다.

짧게 침묵하던 684가 이내 조용한 질문을 던져왔다.

「너는 이 몸을 보면서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건가?」

“거부감? 무슨 거부감?”

「생리적인 거부감 말이다. 황금기의 눈으로 보는 이 몸은 평범한 눈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할 것 같은데, 너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군. 그저 억누르는 것인지, 아니면 아예 느끼지를 못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는 척 684를 위한 변명거리를 던져주었다.

“이런 눈을 달고 있는 내 정신상태가 궁금한가?”

「……그런 셈이지. 아무튼, 대답은?」

여기서는 있는 그대로의 개인사로 ‘인간적인’ 믿음을 사는 편이 나을 것이다. 딱히 중요한 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니. 잠시 숙고하던 나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는 소년기의 기억을 현재로 끌어왔다.

“조금 옛날이야기를 해야겠군.”

「옛날이야기라니?」

“마스터 크로우허스트와의 형이상학적인 숨바꼭질을 끝내고서 처음으로 눈을 떴을 때, 나는 내가 지옥에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지옥?」

“그래, 지옥. 그 당시의 나는 아직 다 자라지도 못한 어린놈에 불과했고, 그 어린놈에게 황금기의 눈이 제공하는 시야는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내가 내 손을 보고서 비명을 질렀던 건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우습기는 하군.”

통상 시야의 층위 아래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층위(Layer)를 동시에 인식해버리는 시야는,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LSD가 유발하는 부정적인 환각(Bad trip) 따윈 장난으로 치부해도 좋을 정도로.

“내가 지옥이나 그에 준하는 어딘가에 떨어진 게 아님을 깨닫기까진 사흘의 시간이 필요했지.”

그것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며 잠조차 이루지 못했던 사흘이었다. 얌전한 환경에서 눈을 떴어도 적응에 시간이 걸렸을 것이건만, 눈을 뜬 현장이 「엘(El)의 칠망성」 중심이기까지 했으니.

마구잡이로 뇌리에 흘러들어오는 스승새끼의 기억과 경험은 내가 정신을 가누지 못하도록 만들었던 또 하나의 요인이었다. 사흘은 그러한 기억과 경험들이 단순한 환각이 아님을 알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으므로.

그래도 그렇게 온전치 못했던 정신으로나마 ‘지옥’의 구조가 보육원과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나는 거기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수도꼭지처럼 생긴 무언가에서 나오는 액체를 물이라고 믿고 마심으로써 탈수를 면할 수 있었고, 냉장고처럼 생긴 것의 문을 열어 내용물의 형상과 냄새를 확인함으로써 아사를 면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내가 마주한 모든 인간들은, 뼈와 근육과 신경과 내장이 온갖 종류의 색으로 일렁거리는 괴물의 형상이었다. 나 자신조차도 예외가 아니고.”

「…….」

“그런 내게, 너는 시각적으로 인간과 썩 다를 게 없는 끔찍함에 불과하다. 그저 질량이 좀 크고, 인간만큼의 익숙함이 없을 따름이지. 이 정도면 답변이 되었나?”

여기서 중요한 건 인간과 네가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자연스럽게 던져져 상대의 취약점으로 배어들 한마디. 진솔함을 가장코자 담백하게 털어놓은 과거는 지금의 이 한마디를 벼려내기 위한 숫돌이었다.

「……솔직하게 답해줘서 고맙다고 해야겠군.」

684는 대화의 방향을 돌렸다.

「네게는 이 고양이의 뱃속이 보이겠지?」

“그렇다면?”

「혹시 내부에 제조시기와 어울리지 않는 전자부품이 들어가 있진 않나?」

“그런 건 없다.”

「확실한가?」

684가 묻는 것은 암호화된 안전장치나 해체 방지장치 따위가 추가되었는지 여부였다. 나는 느리고 확실하게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없어. 활성화 메커니즘에 손을 댄 흔적이 있긴 하지만, 뭔가를 추가하거나 대체한 게 아니라 원래 있던 환경감지장치들의 회로를 끊어놓은 정도에 불과해. 축전기만 작동시키면 곧바로 뇌관이 활성화되게끔 말이지.”

핵폭탄의 환경감지장치는 가속도계와 압력계 등으로 구성되며, 핵폭탄이 정상적으로 발사(혹은 투하)되었는지를 기계적으로 판단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안전장치들이다. 가속도와 압력의 변화가 정상적인 범위를 이탈할 경우 안전장치들은 해제되지 않는다.

이러한 장치들은 외부로부터 전력이 공급된 다음에야 비로소 활성화된다. 그리고 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존재하는 최초의 안전장치가 바로 전압과 주파수(헤르츠)에 민감하게 만들어진 축전기였다. 전압 및 주파수가 폭탄에 시동을 거는 암호열쇠로 기능하는 셈.

냉전 초기의 기술력으로 갖출 수 있는 최대한의 안전장치들이었다.

내가 훔쳐온 대잠 핵폭뢰 「파란 고양이」는 환경감지장치들이 전부 무력화되어있는 상태였다. 본디 압력계와 연동되어 고도와 수심(水深)을 감지하게끔 설계된 신관은, 이제 동력이 들어오는 즉시 폭탄을 격발시킬 것이다.

「그럼 폭탄을 뜯어서 축전기만 확인해보면 되겠군. 아니면 교체를 하거나.」

“더 물어볼 게 있다면 물어보도록.”

「아니야. 이 정도면 됐어.」

684는 눈으로는 나를 보며, 커다란 입으로 방사성 고양이를 집어삼켰다. 식도를 따라 돋아있는 자그마한 손들이 무거운 중량을 부드럽게 받아낸다. 중무장한 인간 여럿을 뱃속에 넣고도 고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몸뚱이는 77킬로그램짜리 핵폭탄을 운반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단이었다.

‘솔직히 좀 아깝긴 하군.’

아까부터 684가 보여주고 있는 조심스러운 태도엔 일정 부분 핵의 마력이 지닌 지분이 있을 것이었다.

당장은 쓸 곳이 없고, 쓸 기회가 오더라도 고뇌가 따를 것이며, 확실한 이익을 제공할 그레이스와의 협력에 비해 명확하게 나은 값어치를 매기기도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유욕을 자극하는 것이 바로 핵폭탄이라는 물건이었다.

사전에 저울질을 다 끝내고 왔음에도 다시 미련을 느끼다니.

나는 폭탄이 꿀렁꿀렁 자리를 잡는 모양새를 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우리는 한편이 되는 건가?”

「성급하게 굴지 마. 어머니께서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시기 전까지는 끝난 게 아니니까.」

반사적이면서도 방어적인 예민함을 드러낸 684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금 누그러진 어조로 작별을 고했다.

「난 이쯤에서 가보도록 할게. 당신이 운이 나쁘지만 않다면, 가까운 시일 내로 다시 어머니의 전화를 받아볼 수 있을 거야.」

“기다리도록 하지. 살펴 가라, 684.”

「……응. 당신도.」

684는 빙판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동작으로 방향을 틀어 가속했다. 내가 일전에 보았던 것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동작들. 흉물스러운 육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마음과는 별개로, 마법적 생체병기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걸 보면 확실히 그 그레이스의 복제체답구나 싶어진다.

경계를 풀고 다가온 경태는 684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괴상한 소리를 했다.

“거 생김새가 다소 충격적이어서 그렇지 의외로 새침한 아가씨네요.”

“새침? 저게?”

“아닙니까? 저는 그렇게 느껴지던데요.”

“…….”

“뭐, 그거는 그거고, 정신머리가 생각보다 온전해 보이는 게 뜻밖이었습니다. 악마숭배교단의 관계자이자 대량살인마처럼은 보이지 않는 언행이었네요. 그게 연기였다면 대박이겠지만요. 형님께서 보시기엔 어느 쪽인 것 같습니까?”

“아마 연기는 아닐 거다.”

어린 것들의 순수는 선악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혼돈이다. 물론 사람이라는 생체기계의 정신은 지식과 경험과 호르몬의 영향을 받는 것이니, 684가 그러한 순수의 조각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단정 짓는 건 섣부른 일이겠지.

그러나 저렇게 흉물스러운 몸을 강요받고서도 여전히 그레이스의 도구로 움직이고 있는 건, 지금으로서는 어린 것의 순수에서 비롯된 어머니에 대한 애착 이외에 다른 이유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레이스에겐 그러한 애착마저 마법적인 시술로 강화하는 요령이 있을지도 모르고.

경태가 물었다.

“아까 684 아가씨에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는 진짜입니까?”

“이야기? 어떤 이야기?”

“형님께서 그 눈을 가지고 처음 깨어나셨을 때의 이야기요. 대면영업용으로 적당히 간을 치신 사연입니까, 아니면 정말로 그렇게 무서우셨던 겁니까?”

이렇게 묻는 경태는 보기 드물게 진중한 낯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경태 이외의 부하들을 의식했다. 보통은 들을 기회가 없는 내 과거사가 궁금한지, 아닌 척 한껏 귀를 열어두고 있는 녀석들을.

나는 가볍고 짧게 대답했다.

“거짓은 없었다.”

“그렇습니까…….”

“이제는 그냥 지나간 일일 뿐이야. 떠날 채비나 해라.”

우리는 우리가 있었던 흔적을 지우고서 거래현장을 이탈했다.

아홉 시간 후, 나는 마침내 그레이스와 직접 만날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