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10화 (310/561)

#34. 웨인과 웨이네타 (8)

왕의 군세가 모로고로로 치고 들어올 수 있는 길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연방수도 도도마에서부터 내려오는 북쪽 길이고, 다른 하나는 이링가에서부터 들어오는 남서쪽 길이다.

이 중에서 방어하기가 더 까다로운 쪽은 후자였다. 북쪽으로는 멀리 전진기지를 배치하여 완충지대를 확보할 수 있었으되, 남서쪽은 울루구루의 험한 산세(山勢)가 기나긴 도로의 측면을 위협하여 그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로고로에 주둔하는 평화유지군 세력의 주력은 남서쪽에 몰려있었는데, 이들이 지닌 전력의 과반은 저수지와 산지 사이에 나란히 낀 한 쌍의 좁은 회랑에 집중되어있는 상태였다. 회랑에 방어선을 깔고 인접한 고지들을 요새화해놓았으니, 왕의 군세가 이곳을 돌파하려면 상당한 출혈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달리 말해, 주술사 왕에게 핵 공격의 혐의를 뒤집어씌우기엔 안성맞춤인 무대가 만들어져 있다는 뜻이었다.

도시의 남쪽 경계와 접한 울루구루 산맥의 말단에서. 나는 경호인력을 동반하여 굴착을 개시할 지점을 물색했다.

산줄기 위에 서서 도시 남서쪽의 회랑과 시가지를 내려다본 경태는, 손을 들어 바람을 헤아리더니 크- 하고 감탄하는 소리를 흘렸다.

“바람까지도 기가 막히네요. 고양이가 폭발하면 도심에 낙진이 아주 낭낭하게 뿌려지게 생겼습니다.”

이곳은 건기에 남풍이 많이 부는 고장이었다. 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북서와 남동에 각각 산이 솟아있는 지형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비틀어 도심을 향하게끔 만들었다. 핵폭발이 자아낼 뜨거운 폭풍 또한 지형 굴곡에 반사되어 증폭된 위력으로 몰아칠 터.

설마하니 원탁의 참모들이 여기까지 내다보고 계획을 짰을까 싶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모략은 보면 볼수록 기분이 나빠질 만큼 높은 완성도를 과시하고 있었다.

굴착을 개시할 장소를 찾는 건 예상보다 조금 까다로운 일이었다. 요새화된 고지들 사이에 온갖 종류의 무속인들이 판을 치고 있었던 까닭이다.

나는 계곡마다 늘어진 금줄과 오색의 천, 사방에 어지러이 붙은 괴황지 부적들, 수도 없이 꽂혀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솟대들을 바라보며 초조함을 억눌렀다.

‘세상이 이상한 방향으로 미쳐 돌아가는군.’

남이 거둔 성공은 쉽게만 보이는 게 사람의 생리이고, 누구 하나 장사가 잘된다 싶으면 너도나도 비슷한 간판을 내걸고서 뒤따르는 게 한국인들의 전통이다.

김연화가 이 땅에서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이자, 온갖 종류의 선녀니 보살이니 하는 사기꾼들이 김연화 워너비가 되어 몰려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문제는 평화유지군 사령부가 그 사기꾼들에게 일종의 기술용역을 발주하고 있다는 것.

평화유지군 수뇌부의 의도는 알 만했다.

현지인들이 주술을 경외하고 또 두려워함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즉 길목마다 함부로 범접했다간 저주를 받을 것처럼 생긴 금역(禁域)들을 스산하게 조성해놓으면, 적의 진격을 차단하거나 최소한 지연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왔겠지.

그 결과가 바로 지금 계속해서 마주치는 우스꽝스러운 광기들일 것이었다.

제웅(액막이 인형)을 줄줄이 못박아놓은 비각성체 나무들과, 환경보전 따윈 생각지도 않고 핏빛 페인트로 제문을 휘갈겨놓은 커다란 바위들. 본연의 주술적 기능이나 의미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어떻게 해야 보는 이들에게 더 큰 두려움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을 한 결과물들.

이스라엘이 거리에 돼지 오줌보들을 매달아 무슬림들의 테러를 막으려는 것과 많이 닮아있는 조치라 하겠다.

그 틈바구니에선 서로 다른 사이비들이 자리다툼을 벌이는 중이다.

“썩 꺼져라! 여긴 본 선녀가 먼저 자리를 잡았느니라!”

주요 예상 침투로는 한정되어 있고, 사이비들이 값을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자리도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정신이 온전치 못한 장사치들이 드잡이질을 벌이는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 일이었으나…….

“이곳은 위대한 히틀러 대총통신과 게르만 영령들에게 바쳐진 레벤스라움이다! 유대-볼셰비키의 하수인들에겐 단 한 뼘도 내어줄 수 없다!”

한쪽은 이렇듯 히틀러를 신령으로 섬기는 사이비의 진영이었고, 다른 한쪽은 하는 소리와 품새 등으로 미루어 스탈린을 섬기는 사이비의 진영이었다.

“닥쳐라! 내 오늘 여기서 서기장신의 령을 받들어 대조국전쟁의 영광을 재현하노라!”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와중에, 나는 양측의 대치를 담는 카메라의 존재를 보며 생각했다.

‘미리 합의한 연극인가.’

어떤 장사를 벌이든, 무명으로 묻히는 것보다는 우스꽝스럽고 나쁜 방향의 유명세라도 얻는 편이 낫다. 이 분야의 선구자인 김연화가 맥아더 장군신을 섬기는 것으로 이름을 높였으니, 후발주자들은 맥아더보다 더 자극적인 컨셉을 취함으로써 동업자들과의 경쟁에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나 생각이 짧고 한심한 부류들이 입찰을 하는데도 걸러내지 못했다는 건, 평화유지군이 그만큼 다급한 처지에 몰려있다는 방증일 터. 한국에서 온 주술사가 여권과 서류를 제출하면 무조건 승인이 떨어지는 지경이 아닌가 싶다.

사이비들이 가짜 다툼을 벌이는 계곡은 굴착을 개시하기 적합한 환경이었다. 모래폭풍 속의 깊은 골짜기엔 외부의 전파가 닿지 못했고, 반경 5백 미터 이내엔 다른 사이비들이 보이지도 않았다.

여기서 더 멀어지기도 저어되어, 나는 주변 지형을 검토한 후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소음을 차단하겠다. 양쪽 모두 가급적 많이, 온전하게 생포하도록.”

부하들의 공격은 내가 마력장을 팽창시키는 것과 동시에 시작되었고, 그로부터 3분이 지나기 전에 종료되었다. 실력 차이도 차이이거니와, 기습을 당한 사이비들의 무리가 내 마력장에 짓눌려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덕분이었다.

내가 온전한 생포를 주문한 이유는 시체인형으로 만들어 세워놓기 위함이었다. 죽여 버리면 따로 영혼을 조달하기가 귀찮아지니까. 정교하게 만들 것도 없이, 다른 사이비들이 멀찍이에서 보고서 여기는 벌써 임자가 있구나 생각할 정도면 족했다.

제례검을 써서 수준 낮은 인형들을 빠르게 생산한 나는, 경태에게 잘 지키고 있으라는 당부를 남겨놓고 굴착을 개시했다.

작업 속도는 가면 갈수록 빨라졌다. 지표와 가까울 때야 마력장의 반경을 관리하느라 조급증을 참아야 했으나, 대각선으로 파들어 가던 갱도를 수평으로 전환할 즈음부터는 회로의 최대출력을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었던 덕분.

‘베이징의 예행연습을 이런 식으로 한 번 더 치르게 될 줄이야.’

갱도굴착은 어려울 것이 없는 단순작업이었다. 파내고, 분쇄하여, 대각선으로 기울어진 갱도를 통해 사출한다. 이는 각각의 단계가 구분되지 않는 연속적인 흐름이었다.

분사하듯 뿌려지는 토사는 위험한 수준의 진동을 유발하지 않았다. 줄여놓았어도 위험한 소음은 염동차장을 전개할 줄 아는 부하들이 억제해주었다. 점차적으로 쌓이는 흙은 곧 그득해지는 계곡물을 못 이겨 스스로 무너진다. 애초에 그렇게 되도록 갱도 입구의 방향을 정한 것이었으니.

하류의 주민들은 갑자기 흙탕물이 내려오는 걸 기이하게 여기겠으나, 원인을 찾겠답시고 위험한 산간에 발을 들이진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계곡물이 흐르는 방향은 평화유지군 세력의 주둔지가 있는 쪽이 아니었다.

벽은 압착하여 굳히되 그 이상의 보강이나 가열경화처리는 하지 않았다. 어디가 약하고 위험한지 뻔히 보이니 그 부분은 더욱 두껍게 압착하면 그만이고,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작용한다 한들 내가 잘못될 가능성은 없으니까.

마침내 폭탄의 직하에 이르러 공동을 넓히다 보니, 굳이 폭발을 일으킬 필요까지야 있겠는가 하는 판단이 들기 시작했다.

‘토양이 기대 이상으로 견고하게 버텨주는군.’

지저공동의 크기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면야, 폭발을 일으켜서라도 지표를 갈아엎어놔야 할 터.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현실은 좋은 방향으로 계획과 일치하지 않았다. 공동의 벽을 깎고 또 깎아내도 붕괴가 임박한 조짐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한계까지 공동을 키워 자연적인 싱크홀을 모방하는 쪽으로 방침을 선회했다.

그리고.

「쿠르릉-!」

구조적 위태로움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염동력을 투사하여 공동 위쪽 지층의 강성과 전단강도를 저하시키자, 드디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붕괴가 막을 올렸다.

「콰과과과과과-!」

굉음과 더불어 지진을 닮은 진동이 지축을 흔든다. 공동에 접한 갱도에 서서 염동방호를 두른 채로 지켜보는 붕괴는 짧고도 격렬한 것이었다. 직경 30미터가 넘는 지표가 수직으로 푹 꺼져 내려오는 와중에, 나는 추락하는 핵폭탄을 끌어당겨 나와 보다 가까운 곳에 파묻히도록 유도했다.

「-!」

원통형 절벽의 바닥에서 비명의 불협화음이 메아리친다. 귀로 듣지는 못할지언정 눈으로 그 파문을 보는 건 가능했다.

수직으로 수십 미터에 달하는 낙하의 충격은 어지간한 각성능력자의 몸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 바닥에 격돌한 원탁의 추종자들은 다수가 그 자리에서 즉사했고, 비명을 지르는 건 살아남은 소수 중에서도 기절하거나 생매장당하는 신세를 피한 일부에 불과했다.

아쉬운 점은 땅이 꺼지는 순간 반사적으로 허공을 딛고 탈출한 이중각성능력자들이 있었다는 것. 자살특공대에도 이만한 정예들을 배치하는 원탁의 사치스러움에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다.

나는 회로에 「발화」 술식을 장전했다.

「콰쾅! 콰콰쾅!」

떨어져 내린 탄약 상자에 불을 질러주니 곧바로 연쇄적인 유폭이 발생한다. 어둡던 지저에서 섬광이 일고 초연이 치솟자, 상황 파악 및 구조에 나서려던 지상의 잡것들이 기겁을 하며 물러난다.

인명보다 폭탄을 귀하게 여기는 것들 역시 당장의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여 발이 묶인다. 죽음을 불사하고 뛰어들지 않는 걸 보면, 자연적인 싱크홀을 모방한 것이 유효했구나 싶었다.

차량, 탄약, 연료 등 불태울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방화를 이어가며, 그리고 숨이 아직 덜 끊어진 원탁의 추종자들을 죽여 가며, 나는 토사에 파묻힌 제트 바이크와 「파란 고양이」의 결속을 원격으로 풀고, 고양이에게 염동력의 사슬을 걸어 부드럽게 잡아당겼다.

세상에서 가장 파괴적인 고양이는 액상화 된 토양을 유영하여 유순한 동물처럼 내게로 다가왔다. 마력장의 반경이 지상에 닿지 않게끔 조절하는 와중이어서, 그 속도는 조바심이 날 만큼 느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고양이를 감싼 원통형의 금속 용기를 손으로 만질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내 손과 호흡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핵폭탄이다.

“……허.”

평정을 회복하려는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주먹을 쥐면 주먹이 떨렸고, 빨라진 심박은 몇 차례의 심호흡을 거치고서도 도통 다스려질 줄을 몰랐다. 두개골 안에 뭉근한 열기가 차오르는 느낌은 가볍게 올라오는 취기를 꼭 닮아있었다. 흥분으로 사고가 무뎌지는 게 대체 얼마 만에 경험하는 일인지.

고양이의 심장, 최선의 조건에서 군용 화약(TNT) 1만 톤에 준하는 위력을 낼 수 있는 우라늄-플루토늄 이중구조 코어는 단단한 용기 안에 조용히 잠들어있었다.

이것이 내게 얼마나 쓸모 있는가를 떠나, 핵폭탄이라는 무기 자체가 지닌 마성에 홀리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폭탄에 묻은 흙을 닦아낸 나는, 내가 빚어낸 참사현장을 이탈하여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복귀했다. 계획과는 다른 상황 전개에 긴장하고 있던 부하들은, 내 모습을 보고 신경을 이완시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태 녀석이 방탄모 턱끈을 풀고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걱정 많이 했습니다, 형님. 방침을 바꾸셨으면 바꿨다고 귀띔이라도 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미안하다.”

“에이, 미안해하실 일까지는 아니고요……. 이게 그 고양이입니까?”

“그래.”

“와우.”

내가 염동력으로 띄워놓은 폭탄에 부하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온갖 훈련으로 담을 키워놓은 정예 전투단도 핵무기의 마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는 나와 같아, 사주 경계를 맡은 녀석들까지도 힐끔거리며 이쪽을 훔쳐보았다.

“음, 어쩐지 현실감이 없네요. 이렇게 간단히 핵무기를 손에 넣었다는 게……. 아니, 마냥 간단했다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무튼…….”

내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대던 경태는 이내 혼자서 뭔가를 납득했다.

“하긴 뭐,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비하면 딱히 특별하지도 않군요. 누구는 자기 땅에 떨어진 운석으로 왕관을 만든다고 하고, 또 누구는 해적들에게 전함을 빼앗기는 마당에.”

왕관은 인도네시아 꼴초 꼰대의 이야기이고, 전함은 미 해군의 사정이다.

운석이야 알고 보면 의외로 흔하게 떨어지는 것이니 그렇다 쳐도, 해적제독의 함대에게 전함을 점령당한 건 이 이상 황당한 일을 찾기 어려울 인재(人災)였다. 아무리 전함이 강력한 전력이라지만, 작고 빠른 적선들이 들끓는 바다에 호위함 한 척 없이 보내버리면 어쩐단 말인가. 하물며 승조원들의 함선 적응조차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언론들에 따르면 이는 군사적으로 까막눈이면서 대외 무력투사를 예산 낭비로만 아는 대통령이 관계자들의 반대를 묵살하고 독단적으로 강행한 사안이었다.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사악한 언론사들이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고.

경태의 말마따나, 세상은 언제나 말 같지도 않은 일들로 가득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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