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웨인과 웨이네타 (7)
공허한 우주 어딘가에서 도피처를 찾는다니. 곱씹을수록 어처구니가 없어지는 공상이다.
지금에 이르러선 불감증의 영역으로 접어든 우려이긴 하나, 마법의 시대가 갑작스럽게 돌아온 만큼 갑작스럽게 떠나갈 가능성은 아직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우주의 공허 저편에 마소가 지구와 같은-혹은 그 이상의-밀도로 흐르고 있으리라 가정하는 것부터가 낙관적인 기대이거니와, 그 마소가 언제까지고 사라지지 않으리라 믿는 것은 낙관을 넘어선 순수와 어리석음의 영역이다.
하물며 그런 불안 속에서 건설한 도피처가 완벽하게 안전하다는 보장도 없잖은가. 미지의 환경에는 미지의 재난이 도사리고 있기 마련.
스스로 진단해보건대, 조금 전 나를 사로잡았던 공상은 일종의 스트레스 반응에 불과할 것이었다. 나는 내 안에 이런 종류의 나약함이 있다는 걸 용납하기 어려웠다.
더욱 끔찍한 것은, 내가 그린 공상 속의 풍경에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형님?”
주인의 이상을 감지한 개처럼 내 안색을 살피는 경태 녀석. 한숨을 삼키며, 나는 적당한 둘러대기로 나 자신의 균열을 감추었다.
“별것 아니다. 마법을 활용한 우주 개발의 사업성에 대해 생각해봤을 뿐이야.”
“그렇습니까?”
썩 납득한 기색은 아니었으나, 경태는 넉살 좋게 내 말을 받아주었다.
“하긴, 우주 개발에 대마법사의 권능이 더해지면 달이나 화성에 정착지를 건설하는 것쯤은 일도 아니겠군요. 지원을 얼마나 해주느냐에 따라서는 완전한 테라포밍까지도 노려볼 수 있겠고요. 상상해보니 이거야말로 진짜 마법 같은 일인데요?”
마소만 충분하다면, 개척선에 나 한 사람만 태워 화성의 극지 인근에 떨어뜨려놔도 단기간에 도시 규모의 거주지를 건설하는 게 가능하다.
위쪽으로 눈을 굴리던 경태가 짐짓 아쉬워하는 체를 한다.
“안타깝네요. 원탁의 대마법사들이 심보를 고쳐먹고 마법을 좀 대국적으로 써주기만 해도 우리가 사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질 텐데 말입니다.”
공상을 논하는 대화는 여기서 흐름이 끊어졌다.
정적을 덜어주는 뉴스 화면 하단엔 「영화 호텔 르완다의 주인공 루세사바기나, 옥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다」라는 문구가 사소한 정보처럼 흘러지나갔다. 그것을 보며, 조금은 정신이 산만해진 와중에, 나는 르완다의 대통령이 화가 단단히 났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설마하니 그 고독의 완전체가 반역자를 죽이라는 경솔한 명령을 내렸을 리 없으니까.
명망 높은 반역자를 처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길게 살아서 추해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다.
경태가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모래폭풍이 예상보다 길어지네요. 보통은 이쯤이면 끝나야 정상이라고 하던데.”
이 순간에도 객실의 창문에선 타닥 탁 모래알갱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중이었다. 사막과 인접한 지역이라면 모를까, 아프리카 동부 고원에선 길게 잡아도 사나흘이면 기세가 잦아들어야 정상인 모래폭풍이 아직까지도 강성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는 탓이었다.
이 같은 이상 현상의 원인에 대해 학자들은 다양한 가설들을 내놓았다. 개중 가장 유력한 것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각성수들의 영향을 논하는 가설이었다.
가설이 제시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물에 대한 구속력을 발휘하는 나무들의 존재가 물의 거시적인 순환에 영향을 미쳐, 상대적으로 식생밀도가 낮은 지역들을 과거 이상으로 건조하게 만들었다는 것.
둘째는 외부자극에 대한 조건 반사로 끊임없이 전류를 흘리는 각성수들이, 허공을 부유하는 모래먼지에 계속해서 전기 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는 것.
‘원탁이 핵을 쓰기엔 좋은 환경이지.’
모든 폭탄이 그렇듯이, 핵폭탄 또한 지면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공중에서 터트릴 때 파괴력이 극대화된다.
나는 핵무기 위력계산 상수들을 토대로 「파란 고양이」의 대략적인 파괴력을 암산해보았다.
「파란 고양이」는 카탈로그 스펙을 백 퍼센트 발휘하더라도 모로고로 전체를 파괴하기엔 역부족인 폭탄이다. 중심가 상공에서 터트린다고 해도 대충 8만 명쯤 죽이고 10만 명쯤 병신으로 만드는 정도가 고작이겠지.
수치만으로는 고작이라고 할 게 아닐지나, 「파란 고양이」는 어쨌든 핵폭탄이었다. 핵폭탄치고는 정말로 얌전한 축에 드는 위력인 것이다.
지상에서 터트릴 경우엔 당연히 그보다 못한 수준이 된다. 폭탄의 수명연장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더더욱 그러하고.
따라서 원탁의 원정대는 가급적 공중에서 폭탄을 터트리고 싶을 터. 그런 그들에겐 대공감시 레이더의 성능을 저하시키는 작금의 환경이 더없이 달갑게 느껴질 것이었다.
경태와 나는 전술 태블릿에 평화유지군으로부터 받은 지도를 띄워놓고 핵의 구체적인 기폭지점이 어디가 될지 예상해보았다. 평화유지군 세력의 배치 현황, 그리고 왕의 군세의 예상 진격로는 핵의 소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었다.
이러한 작업의 와중에 경태가 가볍게 꺼내는 잡담.
“마스터 로더필드는 좀 뿔이 나 있겠군요.”
“왜?”
“생사를 건 싸움으로 생명의 우열을 가르는 걸 즐기는 사람이, 원탁의 적을 핵으로 치워버린다는 발상을 좋아할 리가 있겠습니까? 본인 손으로 찢어 죽여야 성이 풀릴 텐데.”
“그건 그렇지.”
“모르긴 몰라도, 그 나잇값 못하는 싸움꾼 할배는 마녀 아줌마가 이 계략에 걸려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것 같네요. 제발 비껴가라, 제발 비껴가라 이러면서.”
“그럴지도.”
“그 할배를 이 핵으로 죽이면 재밌을 것 같지 않습니까?”
“…….”
경태의 물음은 짧은 시간 내 사고의 흐름을 다른 방향으로 틀어놓았다.
내가 의뢰를 완수하고 나면, 그레이스는 마침내 손에 넣은 방사성 고양이를 과연 어디에 풀어놓으려 할 것인가.
내 일찍이 경태와 수연에게 이르기를. 필요하다면 핵이라도 밀수해서 런던에 터트리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래야만 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았던 말이었다.
핵 공격보다 온건한 「라즈베리 프로젝트」조차도 아직 확실하게 써먹겠다는 결심은 없다. 왜냐면 그것은 내가 원탁과 나 사이에 그어놓은 선을 위태롭게 만드는 계획이니까. 일회성에 불과한 계획일지라도, 최소한 방법론적인 영역에서는 그러하다.
지도를 보며 곁가지로 사색을 이어가던 나는, 이내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익한 생각이로군.’
그레이스와 아예 손을 잡지 않을 작정이라면 모를까, 여기까지 와서 이런 걸 고민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투입한 기회비용을 매몰비용으로 처리하는 것도 아깝거니와, 이번 기회를 놓치면 그레이스와 손을 잡을 기회가 언제 다시 오겠는가.
잠시 후 나와 경태는 1차 수색 범위를 결정지었다.
“바로 나가보시겠습니까?”
“준비해.”
경태의 물음엔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말 속의 말이 녹아있었으나, 나는 염동력으로 무기와 장비를 착용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경태는 짐짓 풀 죽은 개 같은 표정을 한 번 지어보이고는 테이블과 자리를 정리했다.
그로부터 27분 후, 폭탄은 허탈할 정도로 쉽게 발견되었다.
시가지 전체를 통틀어 변변한 방사선 의료기기 하나 존재하지 않는 낙후된 도시에서, 고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색채는 멀리서도 선명하게 반짝이는 별빛처럼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문제는 폭탄의 위치.
‘저걸 어떻게 꺼내 와야 하나…….’
핵을 가진 기생충들은 평화유지군 산하 영국군을 숙주로 삼아 정체를 감추고 있는 상태였다. 고로 폭탄의 위치는 영국군 주둔지의 중심부와 가까웠으며, 주변지대의 경비는 대단히 엄중하고 밀도가 높았다.
따지고 보면 원탁의 원정대가 자체적인 전력만으로 폭탄을 지켜야 할 이유 따윈 없었다.
원탁이 영국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기만과 속임수로 이득을 취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정부는 원탁이 가진 모든 것을 알지 못하고, 내부에선 동반승천을 약속받은 회색분자들이 암약하는 마당이니까.
그러므로 애국적인 헌터 단체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기생충들은, 영국군에게 협력하는 시늉을 하며 유사시 군의 화력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판을 짜놓고는, 함께 고용된 다른 헌터 단체들을 번견으로 삼아놓았다.
영국군도, 혐오스러운 섬나라의 다른 헌터들도 일방적으로 이용만 당하고 있는 셈.
상황을 이해한 경태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애처롭네요. 자기들을 죽일 미치광이들을 영문도 모르고 지켜주고 있는 모습들이.”
그러고는 내가 전자지도에 덧그린 적의 배치를 살펴 내놓는 제안이 이러했다.
“관계자들을 죽여서 시체인형으로 만드는 건 어떨까요? 경계망을 외곽에서부터 차근차근 갉아먹어 들어가는 거죠.”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 식으로는 안 돼.”
남몰래 하나씩 하나씩 죽이는 것부터가 쉽지 않거니와, 시체인형의 불완전한 사고능력으로는 정기교신이나 근무교대 등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해내기가 불가능하다.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내 제어엔 허술함이 생길 게 뻔했고.
그나마도 시체인형들의 완성도를 한계까지 끌어올리지 않고선 시도하지 못할 짓인데, 그러자면 인형 하나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인형을 완성하기 전에 초병의 부재가 발각당할 공산이 큰 것이다.
또한 완성도를 끌어올리려면 들어가는 마력이 많아지고, 들어가는 마력이 많아지면 전개하는 마력장의 크기를 키워야 하며, 마력장의 크기를 키우면 대마법사의 존재감이 노출된다. 인형제조 작업을 현장과 거리를 두고서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인형술사 웨스트버튼조차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려고 인적 드문 산지에서 작업장을 운영하지 않았던가.
이는 작업시간을 추가로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설상가상으로 내부 경계망은 전부 다 회로가 반듯하게 열려있는 각성능력자들이었다. 이들을 단번에 모조리 해치우지 못하면 내가 핵의 불길에 타죽을 판인 것이다.
경태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혹시 지저침투도 어렵겠습니까? 형님의 능력이면 GPR(지저투과레이더)과 음파탐지장치, 진동감지장치까지 다 회피가 가능할 것 같은데요.”
GPR, 음파탐지장치, 진동감지장치 3종은 평화유지군이 「콜레로의 뱀」을 상대하기 위해 도입한 감시기기들이었다.
염동력으로 주변의 땅을 꽉 붙잡아놓고 굴착을 실시한다면, GPR을 제외한 나머지 감시수단들은 모두 무력화할 수 있다. GPR은 문자 그대로 피해서 들어가는 수밖에 없고.
문제는 이번에도 대마법사의 존재감이다. 지상의 능력자들이 느끼지 못할 깊이에서 수평으로 땅굴을 파는 거야 쉬운 일이지만, 위로 올라올 땐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지저에 가스를 채워 폭파시켜버릴까?’
「파란 고양이」는 내 예상처럼 제트 바이크에 탑재된 채 언제든 이륙이 가능하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비상 출격 전까지는 지상에 주기된 채로 대기하겠지.
그렇다면 대기지점의 직하(直下)에 터널과 공동을 만들어, 가연성 가스를 채운 뒤 폭파해버리는 방법이 있을 것이었다. 폭탄의 위치를 중심으로 넓고 깊은 붕괴가 뒤따르도록.
경태 녀석의 제안 또한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파란 고양이」의 본체는 핵폭탄답게 단단할 테니, 지면을 폭삭 주저앉힌 다음 다시 땅을 굴착해 들어가서 폭탄을 빼돌리는 겁니다. 그때는 형님의 존재감을 노출해도 상관이 없겠죠. 적들보다 먼저 폭탄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때 이쪽이 대마법사의 마력장을 전개하더라도, 평화유지군이든 원탁의 하수인들이든 「콜레로의 뱀」을 먼저 떠올릴 것이었다.
경태가 손가락을 퉁겼다.
“가스야 뭐 LPG를 구해다 써도 무방할 것이고……. 아니지, 형님께는 그냥 물만 있어도 되겠군요. 지하수를 끌어다가 분해하면 끝이네요!”
매몰된 폭탄에 적보다 먼저 도달하기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폭탄과의 거리는 저들이 훨씬 더 가까울 터이나, 저들에겐 토사 깊숙이 파묻힌 폭탄의 위치를 곧바로 파악할 방법이 없으니까.
대마법사의 힘을 아끼지 않는다고 치면, 터널을 처음부터 다시 파고 들어가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지.
핵폭탄의 내구성엔 대개 만들어낸 자들의 공포심이 반영되어있다. 강한 진동에 이어 땅이 꺼지는 정도의 충격으로 용기가 손상된다는 건 현실성이 낮은 일. 기폭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제로라고는 못하겠지만, 내가 아는 한 외부 충격에 의해 기폭장치가 활성화된 사고사례는 전무했다.
‘하다못해 골즈보로(Goldsboro) 사고 때도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2천 피트 높이에서 고속으로 추락하는 폭격기로부터 떨어져 나와, 지표를 뚫고 55미터 깊이로 처박힌 핵폭탄조차 용기가 파손되었을지언정 기폭장치가 작동하지는 않았다. 그 폭탄은 「파란 고양이」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함께 떨어져 나온 또 한 발의 핵폭탄은 내장된 낙하산이 펼쳐지면서 스스로 활성화 절차에 돌입하긴 했지만, 역시 최후의 안전장치만큼은 잠긴 채로 남았다.
그런즉 사고확률을 계산하면 1% 미만이 될 텐데, 이 정도면 충분히 감수해볼 만한 위험이지 않은가.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서 불을 당긴다면 방사능 누출에 대한 대비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결정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