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08화 (308/561)

#34. 웨인과 웨이네타 (6)

내가 부재한 상황에서 그레이스의 전화를 받은 것은, 스텔라 포르투나에 머물며 후방지원과 일반 사무를 총괄하던 수연 녀석이었다.

미리 짜놓은 대응 매뉴얼은 이 통화에서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레이스가 제 요구사항만 일방적으로 통보한 채 연결을 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섬기는 자에게 전해라. “그대가 원탁의 일원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거든, 원탁이 내게 절대로 넘겨줄 리가 없는 것을 찾아서 내게로 가져오라.”고.」

다행히 마녀는 선문답을 하려는 게 아니었다. 이후 그녀는 구체적인 목표를 지정해주었고, 그 목표가 현재 대략 어디쯤에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지, 찾고 난 다음에는 어디에 가져다놔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알려주었다.

그러고서 마지막에 덧붙이는 말이 이러했다.

「탐색범위가 많이 넓긴 하지만, 황금기의 눈을 가진 대마법사에겐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그레이스가 요구한 신용보증의 방편은 그 자체로는 충분히 합리적인 것이었다. 나 또한 제례검을 담보물로 삼아 대화를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찾아내야 할 원탁의 자산이 무엇인지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은 당혹감을 느껴야만 했다.

핵폭탄이라니.

마녀가 손에 넣고자 하는 것은 과거 「파란 고양이(Blue Cat)」, 또는 「체체파리(Tsetse)」라는 암호명으로 불렸던 영국제 전술 핵탄두였다.

‘그건 전량 해체된 게 아니었나?’

무기를 밀수하는 상인으로서, 나는 이 폭탄의 상세를 알고 있었다.

무게 77킬로그램. 플루토늄과 우라늄을 함께 사용한 이중 복합 코어. 중량이 다소 무겁기는 하지만, 크기는 여행용 가방에도 넣을 수 있을 만큼 작다. 원래는 로켓에 달아 날려서 잠수함을 잡겠다고 만든 폭탄이었다.

위력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의 70% 수준.

그레이스는 원탁이 이 핵폭탄을 검은 대륙으로 들여왔노라 이야기했다. 그녀가 잘못된 첩보를 입수했거나 모종의 심계로 나를 속이려 드는 게 아니라면, 원탁에게 폭탄을 제공한 건 역시 포튼 다운의 소행일 것이었다.

비록 포튼 다운의 표면적인 주관영역이 생화학 무기 연구로 한정되어 있다고는 해도, 그 이면에 존재하는 「동반승천」의 카르텔은 국방 분야 전반의 ‘관할 부처가 존재하지 않는 독립기관들(Non-departmental public body)’ 대부분과 닿아있으니까.

정보를 공유받은 경태는 원탁의 과감성에 혀를 내둘렀다.

“도시 하나를 증발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마녀 하나만 잡아 죽이면 이익이다 이거로군요. 잘 안 되더라도 주술사 왕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울 수 있겠고요.”

주술사 왕으로서의 그레이스는 이미 단거리 탄도탄 공격을 선보인 바 있다. 그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왕의 군세에 대하여 미지로 말미암은 공포를 품게 되었으니, 원탁과 포튼 다운이 작정하고 누명을 씌운다면 벗을 방법이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었다.

변변한 교섭창구 하나 존재하지 않는 왕의 군세가 무슨 수로 외교무대에서 자신들을 변호할 것인가. 주술사 왕에 대한 검은 대륙의 민심 또한 악화를 면치 못하겠지. 당장은 추가적인 핵 공격에 대한 공포가 왕의 군세에게 힘을 실어줄지라도, 장기적으로는 결국 사면초가의 형세에 놓이게 될 터.

문자 그대로 「인류의 적」이 되어버리는 셈이다.

“거 원탁 새끼들, 게임 참 좆같이 하네요.”

경태가 짐짓 감탄과 경계를 담아 흘리는 독백이 내 심저의 감상과 닿아있었다.

‘저쪽의 참모들도 만만치 않군…….’

직접적으로 겨냥을 당한 입장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생존본능이 자극받는 게 느껴질 만큼 훌륭한 차도살인의 계책이다.

일단 검은 대륙에서 버섯구름이 치솟고 나면, 그때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제연합군이 결성될 터였다. 요컨대 원탁은 자신들과 전혀 무관한 나라들을 끌어들여, 그 나라들의 군사력으로 그레이스를 견제할 수 있게 되는 것.

고로 그레이스가 어찌어찌 핵 테러를 피해 살아남는다 한들, 아프리카에 건설해놓은 기반을 건사하기는 지극히 어려우리라는 뜻이다. 어쩌면 그레이스를 죽이는 것보다 이쪽에 더 무게를 두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한편으로 이는 영국 정부를 따돌리는 데에도 좋은 계책이었다.

영국은 역사에 길이 남을 병신 짓이었던 이라크 전쟁의 당사국 중 하나다. 있지도 않은 핵무기를 있다고 믿으며 이라크를 들이받았던 나라가, 실제로 솟구치는 버섯구름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

이 모략의 발안자가 누구이든, 자신의 모국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는 경태도 동의하는 바였다.

“그래도 말이죠, 자신감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감이라니?”

“어쨌든 폭탄 자체는 영국산인데, 그 비밀이 영원히 감춰질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건의 스케일이 스케일인 만큼, 영국 하나만이 아니라 파이브 아이즈…… 아니지, 전 세계가 매달려서 진상을 캐낼 텐데 말입니다.”

“……그건 그렇지.”

지표상에서 핵의 섬광이 번쩍이는 순간, 온갖 군사위성들이 카메라의 초점을 폭발의 중심지로 돌릴 것이다. 주술사 왕이 위명을 떨치기 시작한 이래, 이 대륙에 대한 위성궤도의 감시는 극적으로 밀도가 증가한 상태였으니까.

제아무리 원탁이라도 그 모든 감시를 무력화하고 방사능 오염지대의 한가운데로 들어가 잔해를 회수할 방법은 없다. 방호복에 의지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으니, 방사선에 의한 DNA 손상을 막으려면 대체 얼마의 회로점유율을 「생명」에 할애해야 할는지.

‘폭탄의 상태부터가 의심스럽기도 하고.’

「파란 고양이」는 연식이 오래된 구형 폭탄으로서, 정기적으로 삼중수소를 재충전해주지 않으면 폭탄의 위력이 감소하는 설계결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리고 폭탄의 위력이 감소한다 함은 그만큼 잔여 핵물질의 양이 많아진다는 뜻.

핵물질의 불완전 연소는 곧 방사능 오염의 폭발적인 증가와 동일한 의미였다.

“언젠가 결국 꼬리를 밟히게 되더라도, 그때의 원탁은 이미 뒷감당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힘을 기른 상태일 것이다……. 뭐 대충 이런 자신감이 있지 않고서야 핵폭탄 같은 극단적인 수를 쓸 엄두가 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경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기는 합니다만, 형님께서 원탁을 왜 그렇게까지 경계하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러냐.”

“예. 「황금기의 눈」이 아니더라도 그 인간들이 형님을 내버려둘 리가 없었겠구나 하는 확신도 들고요. 원탁에 속하지 않은 대마법사라는 게 그 인간들 눈에 얼마나 거슬리겠습니까? 마녀 아줌마와 더불어, 자기네 헤게모니를 위협할 수 있는 유이한 존재인걸요.”

“…….”

어찌 되었든, 원탁의 수가 극단적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레이스가 그만큼 중대한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다면 핵폭탄까지 가져다 쓸 생각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놈들도 놈들 나름대로는 몰려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야겠지.’

몸바사 항 남쪽, 불타버린 공장의 폐허엔 수갑과 족쇄를 찬 채로 타죽은 시체 한 구가 있었다. 그 시체의 치아를 가져다 DNA 검사를 해본 결과, 죽은 자는 흑인은 흑인이되 주변 지역의 주민들과는 유전자의 구성이 많이 다른 인물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이 시체의 고향이 영국일 가능성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칠각기사단의 일원이든, 아니면 영국 정보부에 속한 요원이든 간에.

장차 그레이스와의 협력관계가 성립한다면 어느 쪽인지 답을 알 수 있겠지.

그레이스가 제시한 「파란 고양이」의 추정 위치는 탄자니아 동부 내륙의 중심지인 모로고로(Morogoro) 인근의 어딘가였다.

물론 말이 ‘인근’이지, 실제로 수색해야 할 영역은 유사시 핵으로 모로고로를 타격할 수 있는 범위 전체였다. 면적으로 따지면 수만 제곱킬로미터를 가볍게 넘어간다.

작금의 상황을 두고 수연 녀석은 이런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그레이스가 제공한 정보의 절반쯤은 추측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누가 보더라도 왕의 군세의 다음 공격 목표는 모로고로가 될 확률이 높으니까요. 그레이스를 노리는 원탁의 핵도 당연히 그 도시를 사정권에 두어야 하겠지요.」

왕의 군세가 탄자니아 연방의 수도 도도마를 손에 넣고 이링가 점령을 목전에 둔 지금, 동쪽의 모로고로마저 떨어뜨리고 나면 탄자니아 최대의 도시이자 평화유지군 세력의 핵심 보급항인 다르에스살람으로 가는 길이 열린다.

항구를 닫는 것은 이 지역에 배치된 평화유지군 세력의 마지막 숨줄을 끊는 것과도 같다.

더욱이 모로고로는 루구루 족의 영역인 울루구루 산맥의 북쪽 자락에 닿아있다. 전략적 가치가 높은 표적이 공격을 걸기에도 좋은 위치에 있다는 뜻이었다.

원탁이 제트 바이크로 폭탄을 운송한다면, 저 멀리 다르에스살람 외곽에서부터 날려 보낸다고 쳐도 10분 안팎이면 타격을 완료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폭탄이 모로고로 시가지 내, 혹은 시가지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는 편이 반응 속도가 가장 빠를 테니까.

이 같은 판단 하에 내가 모로고로로 이동한 것은 6월 21일의 일이었다.

“평소엔 별 쓰잘머리도 없는 무슨무슨 협회니 하는 것들이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군요.”

호텔을 잡아 여장을 푸는 와중에 경태가 하는 말.

이 말처럼, 내 대외적인 거취에 명분을 제공해준 것은 공능법인 개마의 안호준 부사장이라는 위장신분, 그리고 그 위장신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감투들이었다.

이미 상고한 바, 이 도시가 주술사 왕의 다음 목표가 되리라는 건 대국을 보는 눈이 있는 자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사실.

따라서 평화유지군 세력은 이 도시에 대한 방어계획을 수립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동쪽 항구를 통해 증원된 병력을 전진 배치시키고, 도시 인근의 고지들을 요새화하며, 다수의 예비활주로를 건설하는 동시에 보급물자를 미리 추진시켜놓는 등.

그러는 과정에서 온갖 헌터 단체들의 고위 관계자들이 모여 현장시찰이니 긴급대책회의니 헛기침을 할 기회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오래 머물 장소는 아니었으되, 나는 부하들에게 최대한 좋은 숙소를 잡도록 지시했다. 항상 만전의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틈틈이 취하는 휴식의 품질은 최대한 높여놔야 마땅한 것. 설령 그게 단 5분에 불과할지라도.

객실에 비치된 TV에선 마치 다른 세상의 일처럼 느껴지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여러분은 우리 회사의 주식을 사셔야 합니다. 왜냐면 나는 화성에 갈 거니까.」

화면의 중심을 차지한 인물은 작금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가 중 하나였다. 마법이 돌아오기 이전부터 우주 개발에 몰두했고, 지금은 이중각성능력자들의 힘을 우주에서 활용하는 분야의 선두주자로 통하는 인물.

이어지는 자료화면은 이 인물이 공개한 새로운 우주선의 모형을 보여주었다. 여기엔 관계자의 해설이 뒤따랐다.

「사람은 기계가 아닙니다. 이써리스트(각성능력자)들이 만들어내는 불은 출력의 안정성이 높지 않아요. 또한 24시간 내내 능력을 사용할 수도 없고, 능력을 투사하는 시간을 천 분의 일 초 단위로 정밀하게 제어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죠.」

「대기권 내에서의 비행이라면 그런 것들은 딱히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주 공간에서라면 어떨까요?」

「화성까지의 거리는 가장 가까운 궤도를 지날 때에도 5억 4천 6백만 킬로미터에 달합니다. 그토록 기나긴 공허를 날아가는 동안에는 아주 작은 오차도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무제한의 동력이 있어도 만사가 해결되지는 않는 이유지요.」

「스페이스 X는 이 문제를 두 가지의 기술 혁신으로 극복하려 합니다.」

「하나는 세계 최초로 펄사 네비게이터(Pulsar navigator)를 실용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기가 존재하지 않고 중력이 가변적으로 변하는 환경에서도 능력자들이 자아내는 추력의 크기를 정교하게 계측, 실시간으로 운항에 반영하는 항법장치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화성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을 2주 이내로 단축시킬 수 있습니다. 단위 중량당 운송비용 역시 획기적으로 줄어들겠죠. 이제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양의 화물을 한 번에 실어 나를 수도 있습니다…….」

뭔가에 홀린 듯이 화면에 집중하던 나는, 경태의 부름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형님? 왜 그러십니까?”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나와 TV를 번갈아보는 경태의 모습.

“…….”

나는 조금 전 나를 사로잡았던 터무니없는 공상, 갑작스럽게 마주한 나 자신의 나약함에 오한이 들고 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원탁을 포함하여, 나를 잡아먹고자 하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을 별들의 저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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