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웨인과 웨이네타 (5)
“용사와 마왕이 나오는 이야기가 유치하다는 건 나도 알아. 이런 공상에 푹 빠져서 자기 앞가림도 못 하는 한심한 인간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그치만 그보다 더 한심한 건 세상을 소설이나 만화보다 싫은 꼴로 만들어 놓는 사람들 쪽이라고.”
경태에게 말려든 키무라는 어느새 내 존재조차 잊은 채 열변을 늘어놓고 있었다.
“초월적인 힘만 없다뿐이지, 심보만 놓고 보면 마왕보다 더한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그런 인간들이 끊임없이 똥을 싸지르는 현실보다는 유치한 상상 속의 세상이 더 좋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마왕이라는 만악의 근원 하나만 딱 해치우면 모든 게 바로잡히는 세상! 어디부터 해결해야 좋을지 감도 안 잡히게 더러운 현실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이잖아?”
그러면서 곁가지로 내어놓는 게 자기를 음습하게 협박한 일본 정부에 대한 불만이었다.
일본은 자국인이 외국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살인·상해·감금·절도 및 강도 등 특정 유형의 강력범죄들에 대해서만 한정적으로 속인주의를 적용하는 나라다.
이런 규정들은 당연히 외국에서 활동하는 헌터들에게도 적용이 될 수 있었다. 물자호송이나 교민 구조 등의 비전투 임무를 수행하던 도중에라도 왕의 전사들과 조우하여 교전을 치렀다면, 교전 도중 전사들을 죽였으면 살인이고, 죽이지 않았더라도 폭행죄를 적용할 수 있다.
하다못해 대피시키던 교민이 죽어도 과실치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 그 죽음에 일정 부분의 책임이 있노라고.
고로 키무라가 증언하는 일본 정부의 전언은 이러했다.
「다른 나라들 보는 눈이 있고 너의 유명세도 만만치 않은 만큼, 네가 멋대로 날아가서 ‘자원봉사’를 하는 것까진 어쩔 수 없지만, 그게 국내적으로 정부의 체면에 먹칠을 하게 되면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 그러니 항상 언행을 주의하라…….」 라고.
물론 이렇게 대놓고 말을 한 것은 아니다. 만약의 경우 책임을 피할 수 있도록, 온갖 종류의 수사법과 우회적인 은유를 곁들여 문자 그대로 ‘음습하게’ 의사를 전했을 따름.
제아무리 한 나라의 최상위권 각성능력자라도,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면 결국은 이런 취급이었다. 좀 모자란 수준으로나마 대체품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
‘그럼 이렇게 경솔히 털어놓을 일이 아닐 텐데.’
인간은 외로움을 심하게 타는 동물이다. 다른 인간들이 없으면 인간으로 완성되지도 못하는 동물이기도 하고.
사회경험도, 대인관계도 풍부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고도비만 일본인은, 경태가 보여주는 전문적인 사람 좋음 앞에서 대책 없이 속살을 드러냈다.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쌓여있었을 결핍을 자극받은 결과일 터.
이 얼마나 잡아먹히기 좋은 연약함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서로가 꿈꾸는 바 사이에 약간의 유사성이 있기는 하다.
마왕을 죽이면 평화가 찾아오는 세계. 그리고 원탁을 파괴한 이후의 평온함을 기대하는 나 사이의 유사성.
이 유사성은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다.
내가 무언의 신호를 주자, 경태는 적당한 선에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아. 나중에 또 보자구.”
“으응…….”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내 존재감을 새로이 인지한 눈치인 키무라는, 양 어깨를 반 뼘쯤 끌어내리고는 어중간하게 손을 흔들어 경태를 송별했다.
그리고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마침내 사냥에 착수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카라비니에리 사바우디」 발로레 기동대를 위시한 다국적 헌터들의 에스코트 미션보다 30분 먼저 이륙하여, 사냥감들이 지나갈 예상 경로 아래에 매복지점을 설정했다.
내가 구상한 사냥 방식은 간단했다.
모래폭풍의 불투명함 속에 도사려, 마소에 대한 구속력을 덫으로 삼는 것.
집단으로 공중수송을 수행하는 제트 바이크들의 비행고도는 모래폭풍과 그 위쪽 하늘의 애매한 경계지대로 설정하는 게 보통이었다.
만약 단독 임무이거나 동행하는 편대의 규모가 작다면, 흙빛으로 몰아치는 폭풍 내부에서 오직 계기에만 의지하여 비행하는 편이 더 안전하겠지.
그러나 일정 규모 이상의 집단비행은 경우가 다르다. 우선 원활한 교신이 필요하거니와, 적이 출현했을 때 반드시 회피를 선택할 이유가 없으니까. 적성 세력이 만만하다면 즉석에서 사냥하여 추가적인 수익을 거둘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더불어 계기에만 의존하는 비행이 반드시 안전한 것만도 아니다. 기체가 벼락에 맞을 경우, 민감성이 높은 전자기기들은 오작동을 일으킬 공산이 있는 까닭.
그러니 가급적 전방시야가 확보된 상태에서 비행을 하되,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비로소 먼지구름 속으로의 급속강하를 택하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티딕, 틱-
자그마한 모래 알갱이들이 제트 바이크 동체에 부딪히며 내는 자잘한 소리들.
부하들과 더불어 지상에 기체를 주기한 채 사냥감들을 기다리던 나는, 모래폭풍 저편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다수의 광점들을 확인하고 명령을 내렸다.
“손님들이 온다. 맞이할 채비를 해라.”
사냥감들의 전술대형은 취약한 아랫배를 드러낸 채로 무방비하게 다가왔다.
저들의 상대가 왕의 전사들이었다면 폭풍의 불투명함이 하방(下方)의 안전을 담보해주었을 테지. 이 같은 폭풍 속에서도, 소형 제트 엔진의 섬광을 육안으로 포착할 수 있는 거리는 레이더의 탐지거리보다 짧기 마련이니까.
나는 「발화」의 출력을 끌어올려 내 기체를 급격히 솟구치게 만들었다. 전신을 짓누르는 중력가속도의 압력. 마력장을 최대로 전개하자, 실시간으로 창백해지는 사냥감의 표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법으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들에게, 거대하고 강력한 마력장의 기습적인 출현은 그 자체로 재난이나 다름없는 일. 마소 장악력을 억제당한 사냥감들은 사용하던 「발화」의 출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확연히 약해진 제트 노즐의 불빛들이 속도를 잃고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떨어지는 포물선들의 기울기는 기수의 역량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기울기가 가장 완만한 건 사냥 전부터 눈여겨보았던 키무라 마사노리.
그러나 내가 앞서의 관찰과 회로해석을 통해 그 기울기를 예측해둔 상태였으므로, 키무라의 기체가 그리는 하강곡선의 오차범위는 나와 내 애들이 짜놓은 화망에 완벽하게 갇혀있었다.
나는 기수 아래 달린 미니건의 발사 트리거를 당겼다.
「부욱-! 부우우우욱-!」
당연하게도 트리거를 당긴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다수의 미니건 포화가 가장 뛰어난 사냥감을 엄습한다.
이 공역(空域)에 존재하는 모든 마소의 흐름을 장악한 나의 배려 속에서, 무제한으로 마소를 공급받는 내 사냥개들은 우세한 기동력으로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예광탄의 빛줄기들이 예리한 각도로 교차하는 가운데, 화망에 물린 기체는 불티와 파편을 흩뿌리며 비틀거렸다.
콰쾅!
넓은 범위의 먼지구름이 폭발섬광을 받아 번뜩인다. 키무라의 기체에 달려있던 무유도 로켓의 유폭이었다. 추진체가 터질 때 탄두가 떨어져나가 치명적인 피해는 면했으나, 우측 안정날개가 박살나 버리면서 기체의 안정성이 최악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변수라고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체가 팽이처럼 회전하며 추락하는 시점에서, 이 사냥은 사실상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정말로 끝을 볼 때까지 방심해선 안 되겠지.
경태 이하의 부하들은 착실한 몰이사냥을 이어갔다. 비행고도와 기동력의 일방적인 우위를 토대로, 하나하나 찍어 누르듯이 사격을 가하여 격추수를 늘려가는 과정. 기수를 들어 올릴 재간이 없는 사냥감들 입장에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공격방식이었다.
위에서 아래로 가하는 공격은 특히 조종석을 노리기 좋았다.
내 부하들은 1~2초 내외의 끊어 쏘기로 방탄유리 안쪽의 머리와 몸통들을 터트렸다. 각각의 조종석이 핏빛으로 폭발할 때마다, 추력을 상실한 기체들은 가일층 급격한 기울기로 지상을 향해 내리꽂혔다.
쿠궁-! 쿵-!
묵직한 기체들이 지면에 고속으로 격돌하는 굉음들. 연이은 충돌의 갈피에 탄약이 터져 주홍빛 섬광을 방출하기도 한다. 바람에 날리는 모래먼지들이 빛을 반사하여,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밤이 번뜩이는 듯하다.
몇몇 사냥감들은 이 와중에 무의미한 비상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콰아아아앗-!」
조종석의 보호유리를 폭발 볼트로 날려버리고는, 휴대형 제트 팩으로 빠져나오는 조종사들.
공중전을 염두에 둔 제트 바이크들의 무게는 공허중량으로 따져도 1톤을 가볍게 넘어간다. 그러니 기체를 버리고 몸만 빼내면, 격감한 「발화」의 출력으로도 어떻게든 제 한 몸 추락을 면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아니면 하다못해 낙하하는 속도라도 줄이거나.
그런 그들을 향하여, 내 부하들은 피 냄새를 맡은 백상아리처럼 쇄도했다.
「부우욱-!」
인간의 몸은 부드러운 표적이었다. 제아무리 생체강화가 더해진다 한들, 인간의 피륙만으로는 초당 스무 발 꼴로 가해지는 철갑탄 사격을 견뎌내지 못한다. 극한까지 단련한 염동체술의 사용자라면 또 모를까.
제트 바이크 기수들치고 방탄복 같은 방호장구를 충실하게 갖춘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데 그딴 게 무슨 소용이냐는 식.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지 않는 안일한 사고방식들이었다.
따라서 어둠 속으로 몸을 내던진 인간들은 사선에 걸리는 족족 부드럽게 찢어졌다. 차갑고 메마른 바람결에 뿌려지는 뜨거운 핏물들. 이는 온도의 색채가 보이는 내게 눈에 아주 잘 들어오는 선명함이었다.
떨어진 몸뚱이들은 타고 있던 기체들보다 요란하게 박살이 났다.
그래도 일부 기체들은 살아서 불시착을 감행한다. 애당초 사냥을 개시한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았기에, 땅에 닿기 전 모조리 죽여 버리기엔 시간이 부족했던 탓이었다.
피에르프란체스코 또한 긴급착륙을 시도하는 쪽이었다.
그냥 내버려두었으면 지면에 대낙각(大落角)으로 격돌하여 박살이 났을 터이나, 나는 줄곧 죄고만 있던 마소 장악력의 고삐를 얼마간 풀어줌으로써 살길을 열어주었다.
그리하여 추가적인 추진력을 얻은 이탈리아 수컷은, 긴급절차에 따라 공중에서 무장을 분리시킨 후, 결정적인 순간에 기수를 들어 지면과의 격돌을 회피했다.
잔뜩 겁에 질린 와중에도 기계적인 대응이 나오는 걸 보면, 천박한 됨됨이와는 별개로 한 기동대의 대장을 해먹을 깜냥은 있는 듯하다.
나는 사냥감의 머리 위를 근접비행으로 날았다.
좌아아아악-!
수직이착륙이 기본인 제트 바이크엔 바퀴형(形) 랜딩 기어가 달려있지 않았다. 고로 피에르의 기체는 지면과 격렬하게 부대끼며 미끄러졌다. 수납식 스키드와 외부무장 장착대가 부러져 날아가고, 매끈한 동체는 마찰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른다.
저마다 다른 속도로 미끄러지던 기체들은 그리 넓지 않은 산포도(散布度)를 형성하며 멈춰 섰다. 산포도를 이루는 각각의 점들은 이내 쏟아지는 기총 공격에 노출되었다.
오직 피에르 하나만을 제외하고.
‘아니, 아직 하나가 더 살아있기는 하지.’
가장 먼저 공격을 가했고, 맹렬한 추락으로 말미암아 당연히 즉사하리라 생각했던 변수. 키무라 마사노리는 의외로 아직까지 살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비록 그 움직임이 가까스로 바닥을 기는 수준이기는 하지만, 즉사를 면했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운이 좋은 게 아니었다.
나는 속도를 줄이며 고도를 낮추었다.
후우우우웅…….
기체 내부에까지 울리던 제트 노즐의 소음이 잦아든다. 내가 기체를 착륙시키자, 먼저 내려온 부하들이 피에르의 신병을 확보한 채 나를 맞이했다.
중년의 이탈리아 수컷은 무릎을 꿇은 채 덜덜 떨며 우리를 올려다보았다. 사타구니는 축축하게 젖어있다.
“다, 당신들은 누구요? 왕의 전사들로는 보이지 않는데, 무슨 이유로 우리를 공격한 거요?”
우리가 비록 바이저를 쓰고 있다곤 하나, 정체를 유추할 단서는 얼마든지 있었다. 그럼에도 피에르는 우리의 정체를 곧바로 간파하지 못했다. 판단력이 저하된 상태인 것이다.
나는 무의미한 질문을 무시하고 피에르의 상태를 점검했다. 골절과 타박상, 열상이 제법 있기는 해도, 어느 것 하나 목숨을 위협할 중상은 아니었다. 각성능력자의 몸뚱이로는 한 달쯤 내버려두면 알아서 나을 부상들이다.
당장 수리가 필요한 부분이 없음을 확인한 내가 턱짓을 하자, 부하들은 케블라 로프로 피에르의 사지를 단단히 구속하여 화물용 케이스에 구겨 넣었다. 골절부위에 압박을 받은 피에르가 눈물을 흘리며 비명을 질러댄다.
“아악! 아아아악! 그만! 제발 그만!”
화물을 완전히 수납하고 나니, 좁은 공간에 갇힌 비명은 작고 답답한 소음으로 새어나올 따름이었다. 작은 숨구멍들이 뚫려있는 케이스는 운송이 끝날 때까지 지린내 나는 화물의 숨을 붙여둘 것이고, 모자란 산소는 화물의 판단능력을 흐려놓을 것이었다.
이제 남은 건 증거인멸과 마무리뿐이었다.
추락한 기체들의 블랙박스를 파기하고, 기수들의 시체를 포함하여 교전 정황을 유추할 단서들을 처리하며, 마지막 생존자를 죽여 살인멸구를 끝내는 일.
키무라는 최초 추락 지점으로부터 백 미터 이상 이격된 지점까지 기어간 상태였다. 중상을 입은 몸으로 잘도 저렇게까지 움직였구나 싶을 정도.
공교롭게도 그곳엔 그레이스-684가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남아있었다. 쓰러진 기둥과 무너진 담벼락들. 땅에 반쯤 삼켜지다 만 전차와 장갑차들. 아무래도 마을 하나를 임시거점으로 삼았던 패잔병들이 흉물의 습격에 궤멸당한 장소인 듯하다.
나는 전투의 흔적에서 684의 전력 향상을 읽어냈다.
‘새로운 몸에 더욱 적응한 모양이군.’
이 같은 폐허에서, 키무라가 몸을 숨긴 곳은 종탑이 반파된 성당 건물이었다.
이 순간에도 황량한 고원엔 세찬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으므로, 커다란 체구가 기어간 자국은 빠른 속도로 희미해지는 중이었다. 추적자가 내가 아니었다면 끝까지 살아남는 데 성공했을 수도 있을 터.
비록 여기저기 무너지고 금이 가 있기는 했으되, 성당은 최근 1, 2년 사이에 증축을 한 것이 분명했다. 가난한 대륙의 벽촌에 있는 성당치고 규모가 제법 성대한 것은, 필시 각성능력자 신도들이 신심으로 힘을 보탠 결과일 테지.
덕분에 제트 바이크에 탑승한 채로는 키무라를 죽이기 곤란하게 되었으므로, 나는 성당 입구에 기체를 대어놓고 경태를 대동하여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성당을 통째로 파괴해버리는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도 죽지 않으면 괜히 더 번거로워지기만 할 테니까. 직접 총알을 박아주는 편이 더 깔끔할 것이다.
“힉, 히익…….”
대마법사의 장악력을 접한 키무라는, 시선을 내게 고정시킨 채 제대가 있는 방향으로 박박 기어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일그러진 얼굴은 침, 눈물, 콧물 등의 분비물로 범벅이 되어있다. 마치 괴물에게 뒤를 밟힌 싸구려 공포영화의 등장인물 같은 반응이었다.
키무라의 눈은 반쯤 풀려있는 상태였다. 고통과 출혈, 그에 따른 발열 등이 원인일 것이었다. 피에르 이상으로 사고가 마비되어있는 사냥감은, 따닥따닥 부딪히는 이빨 사이로 힘겹게 유언이 될 한마디를 내뱉었다.
“마왕……!”
타앙! 궁륭 아래에 날카로운 총성이 메아리친다. 이마에 구멍이 뚫린 키무라는 그대로 드러누워 시체가 되었다. 경태는 초연이 오르는 총구를 내리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되어 유감이야, 키무라 군. 근데 이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우리 형님보고 마왕이라니, 좀 너무하지 않아? 일본인다운 예의는 어디에 갖다 버린 거야?”
망자에게 일본어로 건네는 농담은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가벼웠다.
나는 키무라의 시체를 처리하는 것으로 사냥을 마무리했다.
이후 알리바이 확보를 위한 화물 운송을 위해 중간 집하지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마침내 그레이스가 전화를 걸어왔다는 보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