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웨인과 웨이네타 (4)
보는 사람을 막막하게 만들 만큼 광활한 야생에서, 사냥꾼이 사냥감을 찾는 기본은 바로 물이 흐르거나 고여 있는 자리를 주시하는 것이다. 제아무리 드넓은 산야를 제 영역으로 삼아 종횡하는 짐승이라도 언젠가는 목을 축이러 물가를 찾아야 하는 법이니까. 그러므로 물이 흐르는 주변 어딘가엔 반드시 짐승의 흔적이 남아있다.
내가 외교부의 보급운송 의뢰를 수락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 대륙에서 아기공장을 돌리는 원탁의 계파는 영국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바, 영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행정·물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당연히 원탁과 포튼 다운은 자력으로 보급을 추진해야 할 터.
원탁의 수색견들이 이 봉쇄된 도시로 흘러들어왔다면, 그들을 위한 보급은 하늘길을 통해 밀어주는 수밖에 없다.
고로 나는 내 조직 차원에서 하늘길을 자주 오갈 구실을 만들어 놓았다. 놈들을 자연스럽게 발견할 기회를 늘리기 위하여. 설령 놈들이 외주를 맡기더라도 상관없다. 전반적인 물류의 흐름을 시야에 두고 있으면 결국 가닥이 잡히기 마련이니까.
여타의 헌터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 바닥은 좁은 바닥」이라 하겠다.
「까앙-! 까앙-!」
도시 곳곳에선 늦은 시각까지 인력 항타기(杭打機)로 철주를 박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도시의 바깥 경계도 아닌 땅에 철주를 꽂는 것은, 흉물의 침입에 대비하여 철조망을 그물처럼 깔아 고정시키기 위함이었다.
잘 쳐진 철조망은 흉물에게서 잠영(潛泳)과 부상의 자유를 박탈하는 수단일 뿐더러, 흉물이 온몸으로 흩뿌리는 방전을 무력화할 접지선으로도 기능할 수 있었다.
다만 철조망과 철주의 물량이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평화유지군 세력은 뱀이 침투하기 어려운 화력거점들을 구축하고, 그 외엔 중요도가 높은 장소들에 한하여 그물을 깔아두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물류집적소는 여기서 후자에 속하는 경우.
나와 내 애들이 몇 번째인지 모를 왕복비행을 마치고 착륙하자, 처음과는 다르게 신속한 검수와 화물인수가 이루어졌다. 임기응변에 불과했던 엉성한 행정이 그럭저럭 자리를 잡은 결과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여러분은 저희들을 끊임없이 놀라게 하시는군요.”
검수장교는 얼굴에 피로감이 가득한 와중에도 어렵게 지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여러분이 정오부터 지금까지 운송한 화물의 무게만 자그마치 백 톤이 넘어갑니다. 평화유지군의 한 사람으로서 여러분의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여러분은 이 도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영웅이에요.”
“영웅이라니. 칭찬이 과하십니다.”
“과하다니요? 여러분이 가져다주신 식량만으로도 시민들의 하루치 최저배급량을 채울 수 있을 지경인걸요.”
현재 평화유지군이 설정한 이링가 시민 1인당 최저 식량배급량은 일일 열량 1천 kcal에 맞춰져 있었다. 그 기준으로 계산할 때, 평화유지군과 헌터 세력을 제외한 일반 시민들의 식량 수요는 하루에 약 76톤.
절대로 충분하다고는 못할 배급이지만, 부족한 대로 일단 규칙적인 배급이 이루어지기만 하면 전면적인 폭동을 지연시키는 효과 정도는 기대할 수 있다.
경태는 내게 자그맣게 이야기했다.
“마녀 아줌마가 너무 싫어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동감이다. 원탁의 엽견들을 찾는다는 명분이 있고, 평화유지군에 대한 시민들의 적개심은 하루에도 몇 번씩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이긴 하나, 그래도 그레이스로선 제가 차린 밥상에 재가 뿌려진 기분이 들 수 있겠지.
우리가 하루의 절반에 걸쳐 소화한 비행 스케줄은 돈에 미친 헌터들조차 별 미친놈들을 다 보겠다며 고개를 흔들 만큼 빡빡한 것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엔 우리가 쉬지 않고 강행군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그러나 진실을 알고 보면, 우리가 왕복하는 거리는 다른 헌터들의 절반 이하에 불과했다. 수익성을 도외시하고 「화성무련」의 중국 엽사들을 끌어들여, 릴레이 운송이 가능하도록 별도의 중간 집하지점을 마련했기 때문.
그도 그럴 게, 언제 교전을 치르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하들의 소모율을 관리하지 않을 수가 있나. 위장에 불과한 작업으로 전투력을 저하시키는 건 본말전도 그 자체다.
미주의 영향력은 중국 엽사들의 갑질을 합리적인 선에서 억제해주었다. 엽사들은 우리가 저들의 ‘련주’에게 성의를 표했으리라 짐작하고들 있을 것이었다.
‘이걸로 시간적인 알리바이는 갖춰졌고…….’
보급 관계자들은 우리의 비행에 소요되는 시간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을 터. 이 패턴화 된 시간 간격을 준수하기만 한다면, 그 사이 새까만 심야의 모래폭풍 속에서 무슨 짓을 벌이더라도 용의선상에 올라가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피에르프란체스코를 잡기 위한 사전준비다.
우리에게 호의적인 진술을 해줄 관계자들의 수는 언제라도 많을수록 좋다. 나와 내 애들은 조종석에 따로 챙겨온 물품들을 현장에 나와 있는 관계자들에게 나눠주었다.
붙임성이 탁월한 경태가 보기 좋게 웃으며 앞으로 나선다.
“대단한 건 아닙니다만, 이번에도 이것저것 소소하게 챙겨와 봤습니다. 조금씩 나누면 모두에게 돌아가고도 남을 겁니다.”
“아이고. 대단한 게 아니긴요. 매번 이렇게 호의를 베풀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한국군 장교가 대표로 말을 받고, 나머지 관계자들도 국적과 소속을 가리지 않고 너 나 할 것 없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우리가 준비한 물건은 절반 이상이 식량이었으며, 그 외엔 위생용품과 방한용품, 의약품, 일회용 고체연료 등이었다.
메마른 고원의 밤은 기상이 좋을 때에도 한국의 10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대낮에도 햇볕이 잘 들지 않고, 끊임없이 바람이 부는 지금은 체감온도가 거의 영하에 가까워져 있었다. 이런 환경에선 각성자와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쉬이 배가 꺼지기 마련.
“자, 다들 먹고 하십시오. 먹고.”
관계자들에게 양해를 구한 경태가 손뼉을 치며 외치는 말에 항타기 치는 소리가 뚝 끊어진다. 제트 바이크들의 비행 소음과 모래바람을 뚫고 어정거리며 다가오는 인간들 중엔, 전에 한번 본 기억이 있는 공익근무요원이 끼어있었다. 전보다 많이 줄어든 생체질량과 차가운 바람 속에서도 식은땀을 흘리는 꼴이 거의 병자의 행색에 가까웠다.
모여든 이들은 며칠씩 굶은 거지들처럼 음식을 탐했다. 배급으로 나오는 먹거리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형편없는 까닭일 것이었다.
정말로 보급 사정이 최악일 땐 현지에서 재배된 쌀로 밥을 지어 반찬도 없이 나눠주거나, 설익은 생옥수수를 알아서 구워먹으라고 던져주는 수준이었으니.
“이리로들 오십시오. 자리를 뜨끈-하게 데워드리겠습니다.”
경태를 비롯한 부하들은 지표 아래를 「발화」로 구워 구들장처럼 열기가 올라오는 자리들을 만들어냈다. 화력이 화력이라 빠르게 끝나는 일들이었다.
이 와중에 누군가는 음식을 먹다 말고 아이처럼 훌쩍거리며 엄마를 찾는다. 윤혜원이 일전에 공짜라고 표현했던 인력들 중 하나였다.
나는 얼굴이 눈에 익은 외교부 긴급대응팀 사람에게 작은 상자를 하나 건넸다.
“이건 윤혜원 사무관에게 전해주십시오.”
“아, 예.”
이러고서 제트 바이크들을 한쪽으로 옮겨서 주기시켜 놓은 우리는, 이후 잠시 헌터들을 위해 마련된 휴식공간을 찾았다. 목적은 사냥의 변수가 될 수 있는 제3자들에 대한 사전 탐색.
교육대학 건물 한 동을 빌려 마련한 휴식공간 내부에선, 「카라비니에리 사바우디」 발로레 기동대가 참여하는 에스코트 미션에 함께 들어갈 헌터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중수송 임무에서 함께 움직이는 헌터들의 숫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피에르프란체스코는 제 능력과 배경을 십분 활용하여 최대한 많은 동행들을 확보해놓은 상태였다.
개중엔 「하늘을 나는 0.1톤」 키무라 마사노리도 끼어있었다,
다른 헌터들을 등진 채 휴게실 구석에 쭈그리듯 홀로 앉아있었지만, 마력장의 출력과 푸짐한 체구, 그리고 인종적 차이가 한데 어울려 눈에 띄는 존재감을 발휘한다.
나는 일본 정부가 대외적으로 자랑스럽게 홍보하는 내용의 일부를 떠올렸다.
‘수평비행 최고기록이 마하 2.4를 찍었다고 했었나?’
웬만큼 이름이 알려진 발화능력자라면, 마력으로 빚어내는 화염의 위력이 어지간한 화염방사기에 필적하는 건 일도 아니다.
고위험 수렵 관련 투자정보를 다루는 세계의 유명 정보지들은, 발화능력자가 발산하는 초당 에너지량을 기준으로 「백 메가줄 초과 클럽(Over One Hundred MJ Club)」, 「세계 500대 발화능력자 현황」 운운하며 유명 발화능력자들의 국적과 소속을 밝히고 줄 세우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런 능력자들을 얼마나 데리고 있는가가 소위 「수렵 기업」과 「이능 기업」들의 성장 잠재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키무라 마사노리는 그런 목록에서 항상 상위권에 들어가는 인물.
백 메가줄이면 초음속 전폭기(F-15)가 최대추력을 발휘할 때 매초마다 소모하는 에너지의 약 두 배 가량에 달한다.
그러므로 단순히 에너지량으로만 비교한다면, 키무라 마사노리의 한계속도라는 마하 2.4는 기수의 능력에 오히려 못 미치는 감이 있는 기록이었다. 기수의 한계라기보다는 기체의 한계라고 봐야겠지.
실전에서라면 초음속은커녕 천음속을 내기도 어렵다. 외부무장의 존재가 기체의 항력을 결정적으로 증가시키는 까닭.
결국 서로 다른 국가와 수렵단체들이 경쟁적으로 과시하는 ‘최고속도’는 그저 기록을 위한 기록에 지나지 않았다. 속도경쟁에 쓰이는 기체들과 실전에 투입되는 기체들 사이엔 레이싱 카와 전술차량만큼의 간극이 존재한다. 넓은 범주에서 제트 바이크라고 함께 묶일 따름.
허나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계획한 사냥방식을 고려할 때, 키무라 마사노리는 깔끔한 살인멸구를 위하여 가장 먼저 기동력을 박탈해야 할 대상이었다.
「치트도 없고 재능도 없지만 그런데도 마왕을 무찌르고 싶은 전생용사를 위한 지침서」
작은 A6 판형에 기괴할 정도로 제목이 긴 책을 정신없이 탐독하고 있던 키무라는, 저의 회로를 관찰하는 내 시선을 뒤늦게 깨닫고서 읽던 책을 엉덩이 아래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얼굴을 붉힌 채 조금 성난 표정으로 물어왔다.
“뭐, 뭐야, 당신?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어?”
당황을 한 탓인지, 아니면 나를 밀어내려는 계산인지, 내뱉는 말은 일본어였다. 짧게 무난한 대응을 궁리한 나는 같은 일본어로 답을 돌려주었다.
“키무라 씨, 맞습니까?”
“그, 그런데……요?”
“저는 공능법인 개마의 부사장 안이라고 합니다. 유명한 분이 보이시기에 인사나 드릴까 하고 보고 있었습니다. 이 바닥에선 인맥도 자산이지 않습니까. 무례하게 느껴졌다면 사과드리지요.”
“아니, 뭐, 사과를 할 것까지는 없는데……요.”
회로에 대한 해석은 필요한 수준까지 끝냈다. 그러나 흐름이 이렇게 되었으니 의례적으로나마 말을 섞고 가는 편이 자연스러울 터.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근처에서 지켜보던 경태 녀석이 물 흐르듯이 끼어들어 대화의 흐름을 가져간다.
“여, 키무라 군. 그동안 잘 지냈어? 우리 부사장님하고 이야기 중이었나 봐?”
분명 단 한 번 길지 않게 말을 섞은 경험이 전부일 텐데, 키무라와 경태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는 그런대로 안면이 있는 지인을 대하는 수준이었다.
경태가 발휘하는 마법 같은 친화력은 상대를 헤아리는 재능이 있기에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었다. 잠시 대화를 나눠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 대한 대략적인 프로파일링을 가능케 해주는 천부적이고도 동물적인 감각.
오가는 말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경태가 키무라의 장벽을 어찌 빠르게 허물었는지 감이 잡혔다. 키무라는 이래저래 콤플렉스가 많은 인간이었고, 콤플렉스는 접근방식에 따라서는 거부감이 아니라 호감을 사는 장치로 작동할 수도 있었다.
조금은 궁금해진다. 만약 내게 거둬지지 않고서도 살길이 있었다면, 경태 이 녀석은 지금쯤 어떤 삶을 살고 있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