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300화 (300/561)

#33. 흉물 (3)

「염동」은 출력 대비 회로점유율이 높고 연비가 나쁜 마법이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염동력에만 의지하는 비행보다는 발판을 만들어 달리는 형식이 존재감을 줄이기에 유리했다. 에너지 사용의 효율 면에서 신체강화를 능가하는 마법은 없으니까.

지저를 기는 흉물이 나를 감지하지 못할 고도를 달리며, 무전으로는 부하들의 포위기동을 감독하며, 나는 흉물의 피가 보여주는 혈중 산소포화도의 색채와 전반적인 세포들의 상태를 주시했다.

저것이 인간의 영육을 조립하여 제조한 생체기계인 이상, 호흡을 하지 않고서도 살아남을 재간은 없다.

시시각각 짙어지는 질식의 생체징후를 읽으며 흉물이 부상할 때를 예측하던 나는, 뱀의 머리가 솟구치는 순간, 몸을 뒤집어 최대속도로 수직강하를 시도했다.

기습적으로 마력장을 팽창시키고, 투명한 발판들을 연속으로 걷어차며 나 자신을 포탄처럼 내리꽂는 공격.

내 존재를 감지한 흉물이 마법적인 저항을 시도했으나, 늦었다.

으직-

제례검의 칼끝이 뼈를 부수며 파고드는 소리. 단단한 것을 꿰뚫는 충격이 검신을 타고 손아귀까지 전해진다. 신체강화의 회로점유율을 최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손목이 부러지는 듯한 충격이 엄습했다. 몸 전체에 가해지는 충격은 그다음이었다.

“흐으……!”

시야가 어둡게 번뜩이고, 입에선 불가항력으로 바람 새는 소리가 샌다. 도저히 유의미한 언어를 뱉을 수가 없다. 육체가 동일한 부피의 고통으로 대체된 것만 같은 감각이었다.

「으애애애애애애앵-!」

뱀은 모든 입으로 울부짖으며 발악을 시도했다. 이를 악문 나는 칼을 붙잡고 버티며 마력장을 팽창시키고 회로점유율을 조절, 염동 술식을 구축하여 즉각적으로 방출했다. 토양의 액상화를 파괴하는 간섭.

쿠웅-! 하는 땅울림과 함께 흉물의 거체가 덜커덕 흔들렸다. 그 충격으로 칼날은 더욱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다. 연산중추로 기능하는 뇌와 가까운 곳, 흉물을 이루는 영적 결합구조의 가장 치명적인 연결고리에 칼끝이 닿는다.

이는 곧 내가 뱀의 마력회로 운용에 직접적인 훼방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뜻.

영혼을 적출하는 검의 기능은 중간 단계에서 중지하는 것만으로도 영적인 충격을 가하는 게 가능했다. 회로의 안정적인 운용을 방해하는 요긴한 방편이었다. 내 회로의 점유율을 따로 잡아먹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다.

이로써 내가 불허하는 마법의 구사와 마법적인 자살 모두가 봉쇄된 뱀은, 죽는 순간까지 발악을 이어가는 것 외엔 스스로 목숨을 끊을 방법이 없어졌다.

나는 방음결계를 두르고서 소리쳤다.

“멈춰라, 그레이스!”

요동치던 뱀의 대가리가 갑작스럽게 정지한다.

거친 숨을 고르며, 나는 전기적·화학적 신호들로 번뜩이는 흉물의 연산중추를 내려다보았다. 기시감이 의심으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이런 식으로 남는 장사가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깨닫고 보면, 내가 흉물의 연산중추를 보고 느꼈던 기시감은 그레이스-596과 그레이스-331로부터 기인한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더 도움이 된 것은 그레이스-331 쪽이었다. 신선함이 떨어지는 시체를 인형으로 되살리겠다고 씨름하는 과정에서, 호르몬 분비·소화·심폐기능 등 인체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기능들을 복원하고자 밤새도록 수리하고 또 수리했던 그레이스 복제체의 뇌.

그때 뜻하지 않게 눈에 새긴 331의 뇌의 구조적 특징들은 흉물의 연산중추와 일치했다. 또한 회로에 염동술식을 장전하는 연산과정은 그레이스-596의 방식과 흡사했다.

내 기억이 완전치 않아 확신을 하기는 어려웠으나, 심증으로 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331을 인형화하면서도 설마 이걸 쓸 기회가 있을까 싶었는데, 인형 그 자체가 아니라 인형을 만들어낸 경험이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줄이야.

“잠시 대화를 하지. 너로서도 손해를 볼 건 없을 거다.”

죽을 때 죽더라도 일단 대화는 해보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권유.

내가 호흡을 정돈하고서 건네는 말에, 혼란과 의문과 공포와 적의를 담아 작은 눈알들을 굴리던 뱀이 망설임 끝에 여러 개의 입을 열어 옹알이 같은 화음으로 문장을 구성했다.

「아까부터 느꼈지만, 이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로군.」

잠시 뜸을 들이고서 다시 이어지는 말.

「너, 대체 정체가 뭐냐? 뭔데 내 정체를 간파하고, 「빛과 진리의 원탁」의 마법을 원탁내각의 대의원들 수준으로 구사하는 거지? 정황상 원탁의 관계자처럼은 보이지 않는데.」

다행스럽게도 입과 혀가 단순히 울고 웃고 물어뜯기만 하는 장식품은 아니었군. 가까스로 잡은 기회에 숨이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다시금 호흡을 다스리며 침착하게 답했다.

“글쎄……. 일단은 너희와 통화를 희망했던 사람이라고 해두겠다.”

「통화?」

“시에라리온, 프리타운 남쪽 근교. 해변과 호수 사이에 낀 산지의 폐공장에서 너희가 가져간 내 부하들의 위성전화 단말기. 설마 모른다고 할 셈인가?”

「…….」

흉물은 모든 입들을 다물었으나, 내게는 연산중추에 일어나는 신경신호의 파문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시 떠올린 부하들의 죽음- 인적자원 손실이 심중에 묵직하게 자리 잡는다. 흉물 속에 박힌 그레이스 복제체의 뇌가 고뇌하는 사이, 경태가 무전으로 내 안위를 확인했다.

「무사하십니까, 형님?」

“보이는 대로. 거기서 더 접근하지 마라. 아니, 아예 뒤로 물러가있어. 곧 마법으로 대규모 공격을 연출할 테니, 추격을 포기하고 철수하는 과정을 연출해. 혹시나 우리 머리 위에 위성이 떠있을지도 모르니까.”

수상한 정황은 지워야지.

나 하나 정도는 흉물에 올라타 있어도 무방하다. 위성궤도에서 이루어지는 야간 적외선 관측의 해상도로는 흉물과 겹쳐진 나를 구분해내지 못할 테니. 생김새가 뱀을 닮긴 했으나, 아기들을 뭉쳐 빚은 흉물은 당연히 변온동물이 아니었다.

「……괜찮겠습니까?」

“제압은 완전하고 새로운 위협요소는 없다. 그러니 돌아가서 위험도가 높은 목격자들을 죽여. 뭘 보고 들었는지 확인하고, 의무지원이든 뭐든 눈에 띄지 않게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복귀해주십시오.」

나는 나를 바라보는 뱀의 시선을 확인한 후 강력한 「열화」 발사체들을 빚어 연속으로 사출했다. 그리고 인위적인 모래폭풍을 일으켜 내 부하들의 감속에 시각적인 당위성을 만들어주며, 칼자루를 단단히 쥔 채 흉물에게 말을 건넸다.

“들었으면 움직여라. 하늘이 닫힌 곳에서 계속 이야기하지. 허튼수작은 하지 말고.”

내 말을 들은 흉물이 많은 눈들을 깜박이더니 곧 뱀을 꼭 닮은 움직임을 재개했다. 재배효율이 극도로 낮은 황량한 경작지들 사이를 고속으로 주파한 흉물은, 산으로 이어지는 작은 여울로 파고들어 경사진 숲속에 도달했다.

“멈춰.”

내 요구에, 상처 입은 흉물은 별빛이 닿지 않는 숲의 응달에서 구불거리는 질주를 멈추었다. 황금기의 눈이 제공하는 가시거리 이내엔 이렇다 할 위협이 존재하지 않았다. 최종적인 안전을 확인한 나는, 그래도 지속적인 사주경계를 유지하며 물었다.

“다시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확인하겠다. 네 번호는 몇 번이냐?”

「…….」

“내가 대단한 걸 물어본 게 아닐 텐데. 너를 네 ‘어머니’의 이름으로만 부를 순 없지 않나.”

어머니라는 표현은 전율하는 거인의 뱃속에서 죽은 596이 사용했던 것. 나를 빤히 바라보던 흉물이 경계심을 담아 되묻는다.

「어머니라……. 우리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로군.”

「어려워?」

“짧게 정리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스승새끼가 원탁을 배신한 해를 기준 삼아 “그해의 원탁이 너희에 대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안다.”는 식으로 답할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너희들의 어머니가 원탁의 마스터 엘름스테드의 살해자이자 칠각기사단의 로드 라운위사인 그레이스이고, 너희가 오랫동안 빛과 진리의 원탁을 적대하고 있으며, 그레이스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복제체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는 것까진 안다. 너희와 원탁이 최근 이 아프리카 대륙에서 암암리에 혈전을 벌이는 중이라는 사실도 알고.”

「…….」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게 되겠군. 그래서, 너는 몇 번이냐?”

「……684번.」

“그레이스-684라고 부르면 되겠나?”

「그냥 684번이라고만 해.」

“좋아.”

심문할 땐 쉽고 간단한 질문부터 먼저 던지는 게 원칙이다. 이미 한 번 답을 했다는 사실은 심리적 저항을 극복하기 위한 마중물이 되어주니까.

그와 별개로, 스스로를 번호로 지칭하는 흉물의 태도는 내게 뭉근한 불쾌감을 선사했다. 눈앞의 흉물을 향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이유조차도 알 수 없는 이상한 불쾌감을.

“684번. 너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너희가 내 부하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 전에 분명 뭐라도 오간 말들이 있을 텐데.”

「……나는 당시 그 현장에 있지 않았다. 그저 통상적인 정보 공유로써 대략적인 상황 전개를 전파받았을 뿐. 해당 임무를 담당했던 건 다른 자매가 이끄는 전투단이었지.」

“전파받은 내용은?”

684의 대답은 곧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의 이 시간은 나도 이 뱀도 예기치 못하게 성립한 것이니까. 매번 입을 열 때마다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그러나 내가 던진 질문은 답을 해도 딱히 위험할 구석이 없는 것이었다. 684는 뜸을 들인 끝에 느리게 재차 입을 열었다.

「듣기로, 원탁의 적을 자처하는 상세불명의 세력이 협력을 바란다며 우호적인 접촉을 시도해 왔으나, 심문을 위해 포획하려 들자 아군사살과 자폭을 감행했다고 하더군.」

“그 외엔?”

「그 외엔 죽은 자들의 인상착의와 자폭방식, 노획물인 위성전화에 대한 정보 정도가 내가 전파받은 전부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몰라.」

“전혀 모르나?”

「거꾸로 묻겠다. 너 같으면 그 이상의 정보를 전체 분견대를 대상으로 상세하게 전파할 것 같은가? 칠각기사단의 존재를 안다면, 그리고 원탁과 우리의 적대관계를 안다면 우리 기사단이 정보를 취급하는 방식도 짐작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말하는 흉물의 중추에 거짓과 기만의 색채는 존재하지 않았다.

“정보 보안은 정보를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이거로군.”

「그래.」

짧게 답한 뱀이 몸통을 느릿하게 뒤틀었다. 앓는 소리를 내는 걸 보니 너덜거리도록 다친 몸으로부터 통증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빠르게 살이 차오르고는 있으되, 영혼들의 결합이 파괴된 부분에선 정제되지 않은 마력이 분수처럼 새어나오는 중이었다.

「나로선 어머니의 생각을 짐작만 할 따름이지만…… 만약 원탁에 적대하는 또 다른 세력이 있는 게 사실이라면, 그 세력에 대한 상세는 기밀로 취급하는 게 옳지 않은가? 일선에서 활동하는 인력은 언제든 원탁의 포로가 될 수 있으니.」

그레이스의 입장에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원탁에 적대하는 또 다른 세력이 있다 치자. 원탁이 그 세력의 존재를 아직 모르는 상태라면, 해당 세력의 비밀스러움은 그 자체로 원탁의 허를 찌를 비수와 같다.

설령 원탁이 그 존재를 알고 있다 한들, 해당 세력이 칠각기사단과 접촉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별개의 보안을 요구하는 사항이 된다.

그러니-

「그러니 네 부하들에 관한 정보가 대략적인 수준에서라도 어머니의 모든 딸들에게 전파된 게 오히려 이례적인 일이라고 해야겠지.」

“과연.”

「비슷한 세력과 접촉할 경우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생포를 시도하라는 지시도 붙어있었다. 어머니께서 너희의 존재를 가볍게 흘려 넘기진 않으셨다는 증거다. 모르긴 몰라도, 네 부하들의 죽음이 조금은 인상적으로 느껴지셨던 게 아닌가 싶다.」

“…….”

그런가.

그렇다면 내 부하들- 권민호, 김석훈, 노영학, 문지환 4인의 죽음이 완전히 헛되었던 것만은 아닌 셈이다. 녀석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그레이스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684를 경유한 내 전언을 받게 되었을 테니.

어떤 일의 성패는 때로 아주 작은 차이에 의해 달라지기도 한다. 권민호 이하 4인의 죽음은 내가 그레이스에게 준 첫인상이기도 하다.

뱀이 일그러진 아기들의 입을 오물거렸다.

「너의 이름은 뭐지?」

“내 이름?”

「나는 내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게 비록 이름은 아니라지만, 대화가 성립하려면 최소한의 교환이 있어야지. 무엇보다…….」

“무엇보다?”

「여기서 대화가 잘 풀린다면, 진짜 이름이든 위장신분이든 어머니께 전할 이름 하나는 있는 쪽이 편하지 않은가? 그쪽이 바라는 통화의 편의성을 위해서라도.」

자신이 살아서 내 손을 벗어날 가능성에 대한 우회적인 언급은, 이 흉물이 지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은근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흠…….”

흉물의 중추, 684의 뇌를 내려다보며 잠시 망설이던 나는, 스승새끼의 기억으로부터 그가 경멸하던 천것들의 희화화된 대표성을 끄집어냈다.

“웨인. 웨인 슬롭(Wayne Slob). 이 이름으로 하지.”

684는 짧은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진짜 이름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악취미가 심한 편이군.」

“원탁의 대적자로서는 제법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닌가?”

「…….」

웨인 슬롭. 이 가상의 인물은 혐오스러운 섬나라의 희극인이 빚어낸 계급적 경멸의 이정표다. 이 캐릭터의 등장을 전후하여, 영국 중상류층이 공유하던 하류층에 대한 경멸은 차브족(Chav族)이라는 명확한 정체성으로 발전했으니까.

엄밀한 의미에서 차브족은 하류층 중에서도 반사회적인 일부일 뿐이며, 섬나라의 상류층 또한 말로는 그렇게 이야기한다.

어디까지나, 말만으로는.

사회 하류층을 예비 범죄자와 사회 부적응자, 그리고 프레카리아트(Precariat)의 집합체로 싸잡아보던 스승새끼의 시각은 영국의 보수적인 상류층들 사이에서 딱히 특별한 것이 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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