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흉물 (2)
마소를 장악하는 흉물의 힘은 대마법사인 나보다도 윗줄이었다. 마력회로의 출력에서 내 쪽이 밀리는 것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아기들의 영혼이라 한들, 수천수만을 뭉쳐놓고 보면 단순한 출력만큼은 나를 능가하는 게 당연했다.
쿠르르르-!
내가 비껴낸 뱀의 몸통, 수많은 아기의 얼굴들이 폭포수처럼 흐르며 내 곁을 스쳐 지나갔다. 공격이 빗나간 뱀이 즉각 청백색 방전의 줄기들을 흘리며 나를 휘감으려 들었다. 쇠 비린내에 가까운 강한 오존 냄새가 코끝을 스친다.
그러나 이런 식의 전류 공격은 이미 훨씬 더 강력한 형태로 경험한 적이 있었다. 바로 전율하는 거인의 소화 작용.
그때의 경험을 토대로 회로점유율의 낭비를 최소화하며, 나는 도파관 채널의 그물을 빚어 번뜩이는 전류를 흘려냈다. 허공에서 구부러진 방전 줄기들이 엉뚱한 지면으로 내리꽂힌다.
이어 올가미처럼 조여든 뱀의 몸통이 내가 있던 공간을 없애버렸다. 몸통 사이에 끼었다면 그대로 으스러졌을 터.
그러나 회로와 술식 운용의 정밀성에서 기인하는 기민함의 차이는 단순한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격차였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이 순간 내가 누리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비교우위.
「각 팀! 사선 통제 똑바로 해! 쉬지 말고 쏴 갈겨!」
무전망에 경태의 질타가 울려 퍼진다. 뱀의 몸통 곳곳은 이 순간에도 터지고 아물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부하들의 화력지원이 결정타를 먹이기엔 부족할지라도, 흉물이 마력회로의 점유율을 자기회복에 낭비하도록 만들 수는 있었다. 흉물의 전투능력을 간접적으로 저하시키는 것이다.
하늘로부터는 부우우우욱-! 소리를 내며 간헐적인 미니건 소사가 쏟아진다. 내가 휴대한 적외선 비컨을 피해서 가하는 엄호사격. 이런 사격들을 몸으로 받아내며, 올가미를 푼 뱀은 중량감 넘치는 움직임으로 나를 후려치려 들었다.
크기가 크기여서 둔중해 보이지만 실제 속도는 체감을 능가한다. 가볍게 치여도 교통사고 이상의 충격을 받을 물리공격이었다.
염동력 발판을 걷어차며 입체적인 회피기동을 성공시킨 나는, 내 아래에서 흐르는 작은 얼굴들을 향하여 인형술사의 제례검을 내리 찔렀다.
「끼에에에에에에엑!」
칼이 흉물의 몸통에 박히는 순간,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던 얼굴들이 모조리 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얼굴들로 바뀐다. 물리적인 상처는 작았으되, 영혼을 적출하는 검이 아기의 영혼을 뜯어내며 입힌 충격은 훨씬 더 강력한 것.
내가 검을 회수하며 뜯어낸 영혼은 단 하나. 그러나 서로 다른 영혼들의 결합구조에선 하나의 구조적 연결점이 사라진 것이었다. 검상(劍傷)을 중심으로 뱀의 몸통이 강렬한 경련을 일으킨다. 일부 근육이 잠시나마 뇌의 통제에서 벗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뽑아낸 영혼을 즉시 소각하여 마력으로 전환한 나는, 땅을 딛고 자세를 추스르며 연계기를 찔러 넣었다. 또 하나의 작은 영혼이 칼끝에 걸려 뽑혀 나온다.
아기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거대한 몸통의 일부가 벼락을 맞은 듯이 반응하는 가운데, 격렬하게 몸을 뒤튼 뱀이 사나운 기세로 움직이며 새로운 마법을 장전했다.
몸집만큼이나 크고 굵은 마력회로에 강대한 힘이 흐르는 게 보인다. 인간 이하의 기능만 남아있는 아기들은 더욱 큰 소리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시체들의 울음이었다.
나는 대응 술식을 구축하며 생각했다.
미친놈들. 잘도 이딴 걸 만들었군.
황금기의 눈이 보여주는 흉물의 존재는 영적인 차원의 다형성 군체(多形性 群體)라 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생명들이 기능적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생체기계로 작동하는 고깔해파리처럼, 서로 다른 육체와 영혼들을 조립하여 거대한 전쟁괴수를 탄생시킨 것이다.
산모의 영혼을 자동화된 가공선반으로 삼아 태아의 회로를 성형한다는 발상까지는 이미 가능성을 검토한 바다.
그러나 그 기술로 모듈화된 조립식 영혼을 탄생시킬 줄은 몰랐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들러붙도록 만들어져, 사전설계에 따라 정해진 위치에 들어가지 않고선 오래지 않아 스스로 붕괴해버릴 불완전한 영혼들을.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라고 해도 좋을 발상.
이 아이디어를 실용화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산모와 아이들을 갈아 넣었을지. 그리고 이 기술의 진정한 지향점은 또 어디에 있을는지.
콰앙-!
폭발 섬광이 번뜩이고 뱀의 머리가 틀어진다. 내 부하들 중 누군가가 쏘아 보냈을 지원화력. 뱀의 마법이 흐트러짐에 따라, 방어용으로 구축하던 술식을 해제한 나는 검을 고쳐 쥐고 흉물의 사각지대를 파고들었다.
몸통에 붙은 아기들의 눈알이 내 움직임을 쫓아온다.
이처럼 사각지대라는 게 존재할 수가 없을 것만 같은 괴물이지만, 이 수천 쌍의 눈에서 들어오는 시각정보를 통합 처리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
괴물의 시각은 그저 머리통에 달린 일부만이 선택적으로 유효하게 기능할 따름이다. 그 ‘선택적으로’를 구현해 냈다는 게 대단하기는 해도.
「애애애애액-! 애애애앵-!」
아우성치며 뻗어 나오는 작달막한 손들 사이로 칼을 그어 넣는다. 고속으로 움직이며 넣은 베기가 뱀 자체의 속도와 맞물려 수십 개의 얼굴들을 쫙 갈라놓았다. 핏빛으로 벌어지는 얼굴들이 핏물 섞인 눈물들을 흘려댔다.
개중 일부는 부들부들 떨다가 곧 작동을 중지했다. 결합구조 파괴에 따른 연쇄적인 붕괴현상이었다. 눈을 감은 얼굴들이 작은 혀들을 빼어 문다.
한 번의 긴 칼질은 영혼을 뽑고 태우고 다시 뽑아내는 연속공격이었다. 내 회로의 처리능력에 힘입어 고속으로 적출해낸 영혼의 수는 아홉. 그러나 흉물의 질량이 질량이라 치명타와는 거리가 멀다.
영혼 적출로 말미암아 마력회로가 흔들린 흉물은 복잡한 술식 구축을 포기했다. 대신 터져 나오는 것은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발화」의 섬광.
“윽-!”
공기가 단번에 뜨거워지며 가열팽창으로 인한 충격파가 발생한다. 빛과 열에 시야를 교란당한 부하들이 일시적으로 화력지원을 중지했다.
뱀이 허공에 방출한 화염은 자기 자신에게마저 피해를 입힐 만큼 맹렬한 것이어서, 복사열만으로도 반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살상지대를 형성했다. 살을 내어주고 뼈를 취하겠다는 살의가 노골적으로 엿보인다.
나는 고통을 인내했다. 호흡을 멈추는 게 조금 늦어 비강과 허파가 익어버리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내가 멈칫한 찰나, 뱀은 연속적인 섬광을 터트리며 몸통으로 조여 오는 공격을 시도했다. 살아있는 생물의 운동보다는 지형지물의 변화처럼 느껴지는 움직임. 내가 섬광에 시각이 마비되었다면 당할 수밖에 없었겠지만, 황금기의 눈은 이 순간에도 멀쩡하게 시야를 제공하고 있었다. 염동비행으로 몸을 솟구친 나는 화상을 입은 얼굴가죽들을 또 한 차례 칼로 그어버렸다.
「히이이이이-」
비명의 음계가 달라진 것은 작은 폐들이 익어버린 탓일 터였다. 고속으로 회복하고는 있으되 아직은 정상적인 기능을 찾지 못한 호흡기관들.
사냥감의 이탈을 감지한 뱀은 염동력으로 충격파를 일으켰고, 나는 그것을 동일한 유형의 충격파로 상쇄했다. 내게로 향하는 충격파만 지우면 그만이었으므로 회로점유율 관리는 내 쪽이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
머리카락과 살이 타는 내음이 지독한 가운데, 뱀이 모든 코를 활용해 크게 숨을 들이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충격파를 일으켰던 염동의 코드가 그대로 회로에 잔류하여 새로운 형태로의 발현을 준비하는 과정 역시도.
비록 형태는 다를지언정, 마법으로 일으키는 진동이라면 이쪽 또한 어지간히 다뤄본 바다.
염동코팅을 뒤집어쓴 채 몸을 솟구친 뱀이 우악스러운 힘으로 지저로의 급속 잠항(潛航)을 시도하는 순간, 나는 뱀이 퍼트리는 진동에 간섭하여 토양의 액상화를 저지했다.
완전히 막을 필요까지도 없었다. 지향성의 진동으로 표층만 굳혀도 충분했으므로.
쿠웅-!
「캐애애애애액!」
굳은 땅을 전력으로 들이박은 뱀이 수천 개의 입으로 지르는 괴성. 혀를 씹은 입들이 많은 탓에 끊어진 혓바닥들이 후드득 쏟아졌다. 충격량만 보면 화물트럭이 격돌하는 수준이다.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흙먼지가 일어난다.
뱀이 정신을 차리기 전 나는 다섯 개의 자상을 추가로 선사해주었다. 상처가 벌어질 때마다 세차게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혈류.
피할 수 있는 건 피했으나 마법을 써서 막아내지는 않았다. 뱀의 피에는 독성이 없었고, 그딴 데 낭비할 회로가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칼질에 힘을 싣는 게 이익이었으므로.
생체강화의 회로점유율을 극대화한 나는 뱀의 피로 목욕을 하다시피 하며 찰나의 연속공세를 마무리 지었다. 고대의 유산인 제례검은 내가 발휘하는 모든 힘을 받아내고도 이빨 하나 나가지 않는 견고함을 과시했다.
쏴아아아-!
분노한 흉물이 거대한 몸집을 채찍처럼 휘둘러 모래폭풍을 일으켰다. 거력이 실린 돌과 자갈의 우박은 순수한 물리력만으로도 여간한 각성능력자를 무력화할 공격이었다. 곳곳에서 까강 깡 쇳소리와 함께 금속성 불꽃들이 튀어 오른다. 앞서 땅에 반쯤 삼켜지다시피 한 전투차량들이 돌을 맞아 일으키는 불티들이었다.
뱀은 땅을 휩쓰는 채찍질을 이어가며 방향을 틀었다. 커다란 머리가 새롭게 겨냥하는 건 내 부하들이 있는 방향이었다.
방해가 된다 이거지.
앞서 빛과 열의 장막을 쳤던 것도, 지금 모래폭풍을 일으킨 것도, 나만이 아니라 내 부하들까지 염두에 두었을 이중적인 견제들이었다.
뱀은 내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돌진했다. 내 부하들을 집어삼켜 열량을 확보하겠다는 계산도 있을 것이었다. 추격과 병행하여 칼질을 넣을 때마다, 죽어서 너덜거리는 가죽이 병변(病變)처럼 떨어져 나온다. 지금껏 피해를 누적시킨 결과물이었다. 본체로부터 투둑투둑 분리되는 변형된 아기의 유해들.
개중 일부는 조금 더 살아서 꿈틀거리기도 했다. 결합이 끊어졌을지언정 목숨이 바로 끊어지지는 않은 것들이었다.
「으애애앵…….」
영혼도 온전치 않고 육체도 온전치 못한 생체 톱니바퀴들은 빠른 속도로 생명이 잦아들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마력장으로 느껴지는 미약한 죽음들.
심저로부터 슬금슬금 불쾌감이 피어오른다.
스승새끼의 보육원이 내 정신에 남긴 부정적인 유산.
이를 상쇄해주는 것은 내 부하들의 민활한 대응이었다. 곧바로 거리를 벌리며 대열을 재편한다. 그렇게 새로운 화력집중점을 설정하며 내어주는 공간은 철조망을 깔고 폭발물을 매설해놓은 살상지대였다.
나는 숨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부하들의 대응으로부터 심대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제껏 마주쳤던 그 어떤 사냥감보다도 더 초현실적인 괴물을 상대로 이만큼의 침착성과 규율을 보여주다니. 기특하지 않은가.
이 정도면 대마법사를 상대로 싸우더라도 같은 수준의 투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콰쾅! 콰르르릉!
지면을 둔중하게 뒤흔드는 폭음들. 곳곳에서 미리 매설해둔 폭탄들이 터진다. 미리 화약의 냄새를 맡기라도 한 것인지, 뱀은 방전의 줄기를 흩뿌려 뇌관들의 오작동을 유발했다. 명백히 지성이 묻어나는 행동.
그러나 뱀으로서도 지중에 매설된 폭탄들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다. 경태가 통제하는 기폭들은 최적의 순간에 이루어졌다. 윤형철조망이 감길 때마다 뱀의 몸뚱이에 덜컥덜컥 제동이 걸렸으며, 그때마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층 더 깊은 유효타를 찔러 넣었다.
그러다가, 조금 과한 욕심을 내었다.
“흡-!”
칼을 빼는 게 조금 늦었던 탓에, 흉물의 몸을 디뎠던 나는 위로 치는 꼬리질에 휘말려 난폭하게 쏘아졌다. 저공에서 근접항공지원을 해주던 제트 바이크 편대와 시선이 엇갈릴 만큼 급격한 상승. 찰나의 오판이 낳은 결과였다.
욕심을 낸 만큼 내가 입힌 상처도 깊어, 흉물은 어지간한 전술차량에 필적할 생체질량을 상실했다. 갈수록 한 번에 일어나는 붕괴의 규모가 커지고 있는 것.
나를 떨쳐내는 데 성공한 흉물은, 공중에서 제동을 거는 나를 겨누어 꼬리를 휘둘렀다. 엮여있던 철조망이 바람 찢는 소리를 내며 펼쳐진다. 철조망의 길이에 비례하여, 말단부로 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는 속도.
이는 음속을 초월하는 공격이어서, 나로서도 동작을 보고 궤도를 예측하는 게 고작이었다.
내가 연쇄적인 회피기동으로 공격권을 이탈하자, 염동충격파로 제 몸통에서 철조망을 벗겨낸 흉물이 모래와 자갈의 폭풍에 열풍을 실어 광범위한 제압을 걸어왔다.
경태가 무전에 대고 외친다.
「형님! 저 새끼 저거 튑니다!」
“대기해!”
경태의 말처럼, 상처 입은 흉물은 저가 들어온 경로를 되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 비하면 누더기나 다름없어진 몰골이다. 온전한 부위가 있다면 뱀이 악착같이 방어해낸 자신의 머리통 정도가 전부. 그 안에 핵심연산장치 역할을 하는 뇌가 박혀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상황 판단을 위한 짧은 지체. 거친 숨을 몰아쉬는 와중에, 나는 우측 상박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깨달았다. 언제 입고 언제 회복했는지 모를 상처의 흔적이었다.
‘유인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후퇴?’
뱀의 입장에선 여기서 꼭 결착을 지을 이유가 없다. 위험을 가늠하던 나는, 뱀이 지저로의 잠수를 감행하는 것을 보고 괜찮은 발상 하나를 떠올렸다.
저것이 황금기의 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지저를 유영하는 중엔 지상을 관측할 방법이 제한된다. 희미한 염동력을 흩뿌려 감각기관을 대신하거나, 진동을 감지하거나, 마력장을 느끼거나 하는 정도가 고작이겠지.
나는 마력장의 반경을 축소하며 허공을 밟는 추격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