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98화 (298/561)

#33. 흉물 (1)

심장이 두근거리고 내장이 조여든다.

니쿠수빌라로부터 「콜레로의 뱀」에 대한 진술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니쿠수빌라의 기억이 밤의 어둠과 심리적 불안에 의해 과장·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인간의 기억은 의외로 왜곡되기 쉽다. 실체가 아예 없는 환각까지는 아닐지라도, 뇌하수체에 불사암이 생겨 성장호르몬이 과다 분비된 비단뱀이나 각성체 나일악어 따위를 보고서 평소에 품고 있던 신화적인 두려움을 뒤집어씌운 게 아닌가 했던 것이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도 현실적인 설명이었기에.

전형적인 PTSD에 가까운 니쿠수빌라의 생체신호들이 진술의 신빙성을 깎아먹었던 탓도 있다. 반대자들을 몰살시키는 부족 통합전쟁의 와중에 힘겹게 목숨을 부지한 생존자라면 정신적인 외상이 있는 게 당연했다.

‘설마 그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증언이었을 줄이야…….’

피아의 간격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흉물이 기는 궤적을 따라 멀리 우거진 나무들이 흔들린다. 어지간한 네발짐승의 전력질주에 버금가는 민첩성.

뱀을 닮은 흉물과 임전태세를 갖춘 우리들 사이엔 거지들의 야전숙영지가 자리하고 있었다. 의도치 않게 중무장한 비렁뱅이들을 고기방패로 삼게 된 상황.

오래 지나지 않아, 잠을 자던 거지 무리들 가운데 일부가 다가오는 재난을 감지하고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자연각성능력자들 중에서 특별히 촉이 좋은 몇몇이 거대한 흉물의 존재감을 감지한 것이다.

숲이 끝나는 경계지대에서, 수천 개의 코로 숨을 들이쉰 뱀은 전신을 염동력으로 코팅한 채 땅속으로 파고들었다. 길고 굵은 몸뚱이가 쑤욱 녹아들듯 가라앉는다.

지면이 액체처럼 유동하는 것을 본 나는, 뱀의 존재가 암시하는 가능성들로 말미암아 충격을 받은 와중에도, 그 원리의 기발함에 대하여 마법사로서의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염동력을 활용한 토양의 액상화(液狀化)라니.

먼저 토양에 염동력을 침투시켜 물의 역할을 대신하고, 같은 힘으로 진동을 일으켜 토양의 강성과 전단강도를 감소시키며, 스스로의 몸에 염동 코팅을 씌워 마찰계수를 감소시키는 일련의 과정.

이는 내가 상상해보지 못한 영역에 존재하는 염동술식의 응용법이었다. 기술적인 완성도를 논하기 이전에 기본적인 발상 자체가 대단한 것. 연비가 나쁜 염동의 응용기술이긴 하나 뱀의 체급이 낮은 연비를 상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이상으로 놀라운 것이 서로 다른 아기들의 영혼을 하나의 구조로 결합해놓은 방식이지만.

이로써 나는 다시금 저 뱀이 대마법사의 걸작임을 확신했다.

‘문제는 그 대마법사가 과연 어느 진영에 속해있는가, 인데…….’

니쿠수빌라의 진술을 믿는다면, 콜레로의 뱀은 주술사 왕이 자신의 사도에게 내려준 신령한 짐승이다. 후루 연합전선이 만들어놓은 이 전장에 저 뱀이 나타난 것 역시 주술사 왕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상황증거가 되겠고.

저 흉물은 정녕 원탁이 가동하던 아기공장들의 부산물인가?

만약 그렇다면, 주술사 왕의 배후에 있는 것은 원탁의 대마법사인가, 아니면 공장을 공격하여 원탁의 작품을 강탈한 악마숭배교단의 마녀인가.

어쩌면 주술사 왕 자체가 둘 중 하나의 위장신분일 수도 있겠지. 원탁의 대마법사가 스스로를 흑인으로 위장한다는 게 상상이 잘 안 가긴 해도.

나는 끝도 없이 이어지려는 생각의 흐름을 끊었다. 지금 당장은 뱀의 위협에 대처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경태는 내가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전달해주는 흉물의 상세를 듣고 기가 막힌 표정을 지어 보였다.

“땅을 액상화시키고 그 안에서 움직이는 초대형 뱀이요? 그딴 거랑 대체 어떻게 싸우죠?”

싸우려면 못 싸울 것은 없다. 문제는 필연적으로 발생할 인명손실. 그것도 한두 사람이 죽는 수준으로는 끝나지 않을 터였다. 경태도 그걸 알기에 질겁을 하는 것이고.

저런 괴물을 상대로 기존에 구축해놓은 축성진지는 의미가 없었다. 즉각적인 전투인원 산개 및 재배치, 원격으로 기폭 가능한 폭발물 매설, 그물로 기능할 윤형철조망 전개 등의 명령을 빠르게 쏟아낸 경태가 입술을 잘근거리며 내 지시를 구해왔다.

“어쩔까요? 싸움이 벌어지는 즉시 바로 쨀까요? 미리 째버리면 나중에 조금 의심을 받을 거고…….”

“아니.”

나는 시선을 뱀에게 못 박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희는 거리를 두고 물러나며 화력지원에 전념해. 저 뱀은 내가 상대하마.”

“뭔가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경태의 질문에, 나는 대답 대신 염동술식을 활성화하여 숨겨두었던 지팡이 검을 불러들였다. 텁- 하고 손에 잡히는 차가운 질감.

겉보기만으로 알아보는 놈이 없도록 외장을 싹 갈아치운 인형술사의 제례검은, 비록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무기는 아니지만, 지금으로선 저 뱀을 상대로 유효타를 기대할 수 있는 치명적인 공격수단이었다.

경태가 두 눈을 크게 뜬다.

“설마 그걸로 싸우시게요?”

“그래. 이걸로 결합구조를 끊어버릴 거다.”

“어, 무슨 결합구조요?”

“……싸움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당부한 대로 화력지원을 부탁한다. 살상지대로 끌어들이면서 인명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힘쓰도록.”

“으-”

경태는 내 걱정으로 속이 타는 표정을 지어 보였으나, 전투가 임박한 상황에서 단호하게 내린 명령에 토를 달진 않았다. 나는 칼 손잡이를 비틀어 언제든 뽑을 수 있게 해놓고, 이제 비렁뱅이들의 숙영지 아래에 도달한 흉물을 노려보았다.

‘저게 마녀가 개발하고 원탁이 도둑질한 마법술식의 부산물이라면, 그냥은 보내줄 수 없지.’

근간이 되는 원리를 파악해놓아야 앞으로 또 뭐가 더 튀어나올지를 예상하고 대책을 마련할 게 아닌가. 아니면 내가 그 코드를 활용할 방안을 찾아보거나.

무엇보다, 저 뒤틀린 뱀은 지성을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신경신호의 흐름으로 미루어, 저 인공적인 생체기계의 핵심 연산장치는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박혀있는 성인의 뇌 하나였다.

이 뇌로부터 불쾌한 기시감이 느껴지는 게 이상했으나, 어쨌든 제압을 해놓고 심문을 시도할 가치는 있을 것이다.

대화가 성립한다면 말이지만.

상대가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 불분명한 상태에서 대화부터 시도하기는 곤란하다. 하물며 저것은 일반적인 사람과 달리 오직 뇌에 흐르는 신호만 보고서 진위(眞僞)의 생체징후를 가늠해야 하는 까다로운 상대이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로선 저것의 생사여탈권을 틀어쥐고 대화를 강요하는 편이 이상적이었다. 최대한 안정적인 상황에서 진술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그 즉시 죽여 버릴 수 있도록.

겸사겸사 상대의 마법적 자살을 저지할 방책도 마련해야겠지.

가난한 용팔이들의 숙영지에선 공포와 혼돈이 들끓어 올랐다.

“땅속에! 땅속에 뭔가 있어!” “시팔! 이거 뭐야! 차가 왜 가라앉아! 땅은 또 왜 이 지랄이고?!” “꺼내줘! 꺼내달라고!” “자기! 살려줘! 자기! 야! 손! 손! 두고 가지 마, 김승우 이 좆같은 새끼야!” “엄마아아악!” “드러누워! 일단 드러누우면 더 안 빠진다!” “무기를 버리라고 빡대가리들아! 차도 그냥 포기해!” “안 돼! 아직 할부도 안 끝났단 말이야!” “내 제트 바이크!” “점마는 밧줄 잘 붙잡고 있다가 왜 갑자기 빨려 들어가는데?!”

지저의 흉물은 그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지상의 생명들을 공황에 빠트릴 수 있었다. 거대한 생체질량이 지나가는 자리에선 어김없이 구불구불한 수렁이 만들어졌다. 수풀도 관목도 액화된 토양의 흐름에 휩쓸린다. 염동력으로 방향성을 부여한 걸쭉한 대류(對流)는 땅을 밟고 선 모든 것들을 지저로 끌어들이려 들었다.

여기에 흉물의 강력한 마력장은 인간들의 마소장악력을 큰 폭으로 저하시켰다. 강화계수가 낮은 능력자들은 뱀이 가까울 땐 비각성자보다 조금 나은 수준까지 신체능력이 떨어졌다. 전율하는 거인의 뱃속에서 내 힘이 억제되는 것과 같은 이유.

“제압사격 개시! 휩쓸리면 우리까지 죽는다! 저 뱀인지 뭔지는 아직 자극하지 마!”

경태의 명령에 부하들이 위협적인 화망을 전개했다. 우리를 향해 도망오던 무장난민들이 욕설과 비명을 내지르며 방향들을 틀었다.

이대로라면 아주 많은 비렁뱅이들이 살아서 달아날 상황.

마침내 뱀은 인간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콰아아아-!

질량이 어지간한 고래에 필적할 합성 생명체의 급속 부상. 흙과 모래를 물처럼 흘리며 솟구쳐 나온 뱀은, 인간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온몸으로 푸르스름한 전광(電光)의 줄기들을 쏟아냈다.

공기절연을 파괴하는 방전은 서로 다른 마력장의 경계를 넘어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헌터들이 착용한 금속성 장비들- 그리고 인간 육체의 기본적인 전도성은 벼락을 불러들이는 피뢰침처럼 기능했다.

지켜보던 경태가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

“우와, 씹. 저거 실화냐?”

빛나는 뱀이 지나가는 자리에 죽음이 넘쳐흘렀다. 인공 벼락이 핥고 지나간 자들은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로 죽었다. 그럼에도 전장에 가득한 비명의 합창은 살아서 흩어지는 자들이 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비명들은 방전의 소음을 압도하는 웃음과 울음소리들의 급류에 휩쓸렸다.

「응애」 「꺄르르륵」 「으에에엥」 「흐에에엥」 「므아」 「쁘아」 「흐에에에에-」

뱀의 몸뚱이에 달린 아기의 입들이 침을 흘리며 내는 소리들. 내가 느끼기에도 기괴할 만큼 큰 성량들은 강력한 육체강화의 한 단면일 것이었다.

칼자루를 쥔 손아귀에 땀이 차는 게 느껴진다. 저것은 이제껏 내가 마주한 사냥감들 가운데 가장 위험하면서도 가치가 높은 짐승이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성급한 충동을 억눌렀다.

‘아직은 아니야.’

근접전을 벌인다면 마력장을 최대로 전개하는 데엔 문제가 없다. 사방에 널린 어중이떠중이들은 뱀의 존재감과 나의 존재감을 구분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나 패닉에 빠진 잡것들이 마구잡이로 쏘아대는 총탄들은 문제가 된다. 눈먼 탄환에 대한 경계는 필연적으로 내 주의력과 마력회로의 점유율을 잡아먹을 것이기에. 믿어도 좋은 건 내가 직접 육성한 부하들의 실력뿐이다.

뱀의 주인인 주술사 왕을 포함하여, 적들이 추가적인 전력을 투입하지 말란 법도 없다. 그 경우 우리는 신속하게 철수를 단행해야겠지.

나와 내 애들이 전장과 전장의 배후지대를 주시하며 때를 기다리는 가운데, 뱀을 닮은 흉물은 사방팔방으로 도주하는 인간들의 목숨을 착실하게 수확했다.

이 와중에 무리를 지어 발악하는 헌터들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내는 명중탄은 뱀의 염동차장에 걸려 위력이 저하되었고, 가까스로 입힌 상처들은 뱀의 「생명」에 의해 허무하게 아물어 무의미해졌다.

빠악-!

뱀의 이마에서 피가 튄다. 굵직한 대구경탄이 염동차장을 뚫고 들어가 가한 타격. 그러나 약화된 총탄은 경화된 뼈에 도탄당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스르르 지워지는 총상. 뱀이 커다란 머리를 돌리자, 수십 쌍의 눈알과 시선이 마주친 헌터가 절규한다.

“이런 씨바아아알!”

마지막 순간까지 탄창이 빈 총의 방아쇠를 달각거리던 헌터는, 곧 해일에 휩쓸리듯 뱀에게 잡아먹혔다.

내게는 뱀의 뱃속에서 벌어지는 일이 보였다. 식도와 위장에 해당하는 공간에 돋아난 아기의 손들이 산 채로 삼켜진 인간의 몸뚱이를 잡아 뜯고, 그렇게 뜯어낸 것을 자그마한 입들이 게걸스레 먹어치운다. 아기들의 치아는 비정상적으로 날카로웠다.

그것을 실제로 소화시키는 것은 그물망처럼 연결된 ‘진짜’ 위장들. 생체강화의 영향을 받는 태아들의 위는 거친 음식물을 어렵지 않게 녹여버렸다.

우리가 편을 갈라 재무장시킨 헌터들은 그렇지 않은 헌터들과 다를 게 없을 만큼 간단히 박살이 났다. 전의를 상실한 시점에서 얼마의 무장을 갖췄는가는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었다. 기껏 공급한 무기들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다.

우리에게 들러붙었던 모든 비렁뱅이들을 통틀어, 살아서 도망치는 데 성공한 자는 열에 하나 꼴도 되지 않았다. 실신해서 쓰러지거나 공포에 압도당해 머리를 처박거나 하여 아직 숨이 붙어있는 자들이 소수 있기는 해도.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차례가 돌아왔다.

「스으으으-」

이쪽을 보는 흉물의 대가리가 의문에 가까운 감정을 담아 슬쩍 기울어진다.

짐작건대 뱀이 이제껏 우리를 내버려둔 이유는 셋. 첫째로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지 않았고, 둘째로 사냥터에서 달아나려 시도하지도 않았으며, 셋째로 더욱 쉬운 사냥감들이 가득한 완충지대가 존재했기 때문.

이제는 결정을 내릴 때였다.

“내가 신호하면 공격을 개시해라.”

적이 추가전력을 투입하려면 진즉에 투입했어야 정상이다. 적들은 아무래도 이 전장을 흉물의 독무대로 준비해놓은 모양.

지시를 남긴 나는 제례검을 뽑아들고 뱀의 전면으로 걸어 나아갔다.

조금 떨어진 참호에서 상황을 파악한 마무르가 지랄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싸장님이 미쳤어요! 당신들은 당장 싸장님을 붙잡아 오십시오! 저 괴물은 샤이탄(사탄)의 역사함이 틀림없다! 우리도 신속히 도망쳐야만 하는 것! 어서어어어!”

저 인간, 발을 구르기는 아까부터 구르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리를 지키니 저 또한 도망가지 않은 건 의외였다. 나름대로 용기가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의무감이 투철하다고 해야 할지.

절묘한 때에 터진 광신도의 지랄병 덕분에 팽팽하던 신경이 조금은 이완된다.

“지금! 쏴!”

간합을 재던 내가 내 영혼의 회로를 최대출력으로 활성화시키자,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마주한 흉물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중추가 되는 뇌에선 강한 당혹감과 흐트러진 적의의 색채가 엿보였다.

내 예비 동선을 철저하게 비워두는 엄호사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흉물과 나는 서로를 향한 충돌궤도로 돌입했다. 흉물의 공세는 이제까지의 관성에 휩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정면으로 가까워진다.

나를 향해 벌어지는 커다란 입 속에서, 뱀의 이빨을 대신하는 건 「생명」으로 변형시킨 자그마한 갈비뼈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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