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뱀 (21)
우리는 조여드는 포위망을 여러 차례 돌파하여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대까지 물러났다. 이링가 시로부터는 동남쪽으로 약 12킬로미터 떨어진 지점.
여기라고 해서 마냥 안전한 건 아니었지만, 적의 주요 공격축선들이 비껴가는 위치였으므로 잠시 숨을 돌리고 가기엔 충분했다. 험지를 달리며 교전을 치른 장비들은 이쯤에서 정비를 한 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주술사 왕의 군세가 가해온 공격 중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이링가 은둘리 공항 활주로에 떨어진 단거리 탄도미사일(스커드) 두 발이었다. 탄두중량이 근 1톤에 달하는 두 발의 미사일은, 어떻게든 재정비를 꾀하던 평화유지군 세력을 공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좆같은 깜둥이들이 어떻게 저딴 걸 쏴대는 거야?! 말이 안 되잖아!」
공용 무전망을 가득 채웠던 대동소이한 절규들.
나도 다소 어이가 없긴 했다.
‘후티 반군이 팔아넘긴 물건인가? 아니면 이란?’
예멘의 후티 반군은 지리적으로 아프리카와 가깝고, 국제연합군을 엿 먹일 동기도 충분하다.
동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서구세계의 통제력이 약화되면, 후티의 앞마당이라고 할 수 있는 홍해 지역의 혼란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비록 그들이 시아파 광신도들이긴 해도, 서구세계에 대한 협상력 강화를 위해서라면 종파가 다른 소말리아 해적들의 세력 확장을 용인해줄 법도 했다. 어차피 해적질은 후티의 주력사업이 아니므로 경쟁관계가 성립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해상에서 가해지는 압력이 줄어드니 환영해 마지않을 일이겠지.
경태는 이런 추측을 내놓았다.
“미사일은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져오고 발사기술만 지원받은 게 아닐까요? 설마하니 북한이 팔았을 린 없고, 이란이나 후티라도 미사일을 직접 넘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니까요. 발각당하기라도 했다간 뒷감당이 안 되잖습니까.”
지금 중국과 탈레반의 대결이 한창인 아프가니스탄엔 냉전기의 유물이 많이 잠들어있으며, 그러한 유물들 중엔 옛 소련이 만든 단거리 탄도미사일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소련이 아프간 땅에 괴뢰정권을 수립하며 넘겨주었던 50여 개의 발사차량과 2천여 발의 탄도미사일은, 괴뢰정권이 무너진 후 온갖 군벌들의 손을 거쳐 험준한 산악지대 곳곳으로 흩어져버렸다. 전문 운용인력들의 죽음으로 무용지물이 된 것은 덤이었고.
훗날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미군이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발사차량들을 파괴해버리긴 했으나, 흩어진 미사일까지 모조리 찾아서 처리한 건 아니었다.
‘어쩌면 개중 상태 양호한 몇 발이 흘러나왔을 수도 있겠지.’
파키스탄 땅을 거쳐야 하는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묵인을 얻어내지 못하더라도, 파슈툰 사람들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통과가 가능하니까.
온 사방에 초능력자들이 널려있는 세상에서 미사일의 운송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르완다 대통령이 언급했던 러시아제 다중 스펙트럼 위장막을 씌워서 운반하면 끝.
중요한 건 발사기술이 어디에서 넘어왔는가 여부겠지.
여하간 이 미사일 공격이 평화유지군 세력에게 선사한 충격은 매우 심대한 것이었다. 공항의 기능은 즉각적으로 마비되었고, 주술사 왕의 군세에 대한 공포와 보급단절이 야기한 두려움은 걷잡을 수 없는 수준까지 부풀어 올랐다.
“형님. 이거 좀 보십시오.”
정비반이 차량을 점검하는 사이, 경계배치를 점검하고 돌아온 경태가 위성인터넷에 연결된 러기드 태블릿을 가져왔다. 화면엔 외신 종군기자들이 실시간으로 전하는 이링가 시의 현황을 띄워놓고서.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겠습니다. 차라리 카불이 더 낫겠는데요?”
아프간의 수도 카불은 5월 말부터 탈레반의 파상공세에 노출되어있었다. 아프가니스탄 정규군이 너무 빠르게 무너지는 바람에, 카불 정통정부를 지원하겠다고 나선 중국은 사실상 단독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실정.
「팔일철기」 중에서도 염동력을 각성한 전마와 정예 기수들을 추려내어 별도로 편성하고 훈련시킨 부대, 하늘을 달리는 기병 「천마웅풍대」가 탈레반에게 쇼크를 주지 못했다면, 중국군은 지금쯤 마오쩌둥을 상대하던 장개석의 심정을 절절히 느끼고 있었을 터였다.
태블릿의 스피커에선 사나운 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물러서십시오! 이건 영국 정부의 자산입니다! 물러서지 않으면 발포하겠습니다!」
한정된 물자를 두고 벌어지는 격렬한 이전투구의 현장. 물자를 지키려는 쪽이든 빼앗으려는 쪽 모두가 패잔병의 몰골들을 하고 있다. 필시 주술사 왕의 공세가 시작된 이래 수면은커녕 식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을 자들이었다.
하기야, 주술사 왕에게 빼앗기거나 파괴당한 물자집적소가 얼마란 말인가. 배터리를 충전할 시간이 없어서 버리고 온 탈것들도 한가득일 것이고.
「카카캉!」
허공에 대고 갈기는 경고사격에도 아랑곳없이, 푸른 눈의 중무장 용팔이 하나가 잽싸게 통제선을 넘어 전투식량 상자를 낚아챈다.
그러나 그의 도주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경계 병력에게 제지당한 게 아니라, 통제선 바깥에 몰려있던 같은 처지의 하이에나들에게 붙잡힌 것. 육체적 초인들의 아우성 속에서 목제 상자는 순식간에 박살이 났고, 쏟아진 내용물은 삽시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땅에 떨어지고 발에 짓밟혔다.
「비켜, 좆같은 사생아 새끼들아!」
눈이 돌아간 헌터 하나가 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으깨진 전투식량을 핥아먹는다. 외신 기자의 카메라가 그 짐승 같은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냈다.
방송을 보는 일반인들은 대체 얼마나 굶었다고 저 지랄을 하나 싶을 것이다. 그러나 신체강화능력자가 극한상황에서 소모하는 열량은 비각성자와는 궤를 달리하는 것.
나만 하더라도 부하들의 교전 시 급양 기준을 하루에 최대 2만 kcal까지 잡고 있다.
전차의 연비를 아무리 높여도 승용차보다는 많은 연료를 퍼먹을 수밖에.
이링가 시의 인구는 약 15만가량. 각성능력자 전투인력이 많은 평화유지군 세력은 이링가 시의 전체 인구가 몇 달간 소비할 식량을 단기간에 거덜 낼 수 있는 집단이었다.
“이거 백 퍼센트 이 꼴을 보려고 일부러 몰아넣은 거 아닙니까?”
동의를 구하는 경태에게, 나는 눈을 화면에 두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겠지.”
주술사 왕의 군세는 상처 입은 사냥감들이 이링가 시로 모여들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전술적으로 더욱 큰 피해를 입힐 기회가 얼마든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주술사 왕은 이쪽의 공항 활주로만 파괴한 것이 아니다.
모로고로 북서쪽에선 음쿤디 강에 걸린 유일한 다리가 끊어졌고, 마침내 출현한 루구루 전투단은 우드중와(Udzungwa) 산간에서 동서를 연결하는 도로를 봉쇄했다. 광활한 산맥에 낀 협곡을 따라 130킬로미터 이상 이어지는 가느다란 2차선로는 평화유지군 세력의 수송대열을 습격하기에 좋은 길목이었다.
따라서 사실상 육상보급이 불가능해진 지금, 이링가 시에 보급을 추진할 수 있는 수송수단은 야지 이착륙이 가능한 경비행기, 그리고 아무데서나 뜨고 내리는 게 가능한 제트 바이크와 드론 바이크 정도가 전부였다.
거리엔 잠재적인 약탈자와 폭도들이 가득하다. 대형 수송기가 낙하산으로 화물을 투하하면, 해당 화물이 수취인에게 무사히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
당연하게도, 비행이 가능한 다국적 용팔이들은 때는 이때다 하고 ‘위험수당’에 할증을 붙이고 나섰다. 기존의 계약을 파기하고 위약금을 지불하면서까지 대목 장사를 시작한 것이다.
종군기자가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자, 목숨을 걸고 황금을 좇는 자들은 냉소적인 논변으로 자신들의 장사를 정당화했다.
「공급이 부족해지면 가격이 오르는 건 자유시장경제에선 당연한 현상 아닙니까? 계약 파기에 따른 법적 책임을 다 지겠다고 하는데 대체 뭐가 문제랍니까? 계약서에 적힌 금액, 한 푼도 빠짐없이 정직하게 물어주겠다니까요?」
「도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 이보세요, 기자님. 당신이 직접 저 하늘을 날아보고 말을 하세요. 대공포 사격에 대공미사일에 플라잉 니그로들까지 나를 죽이겠다고 날아오는데, 그 위험한 공역을 뚫고 사람이랑 물자를 실어 나르는 값이 어떻게 예전과 똑같을 수가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목숨을 가지고 돈을 벌지 말라뇨? 하……. 우리는 애초에 우리 목숨을 걸고 돈을 버는 사람들인데요? 다른 사람들을 위한답시고 우리 목숨값을 후려쳐야 합니까?」
‘우리’라는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다국적 용팔이들 사이에 직업적 유대감이 형성되었다는 방증이다. 좋게 말하면 유대이고, 나쁘게 말하면 담합이 될 테지만. 다른 국적의 헌터들이 서로 어울리는 꼬락서니들을 보니 자연스럽게 윤곽이 잡힌다.
규제가 미비한 자유시장의 실패와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그래도 비정상인 자들이 소수 있기는 하다. 애국심에서든 이타심에서든, 기존의 계약을 그대로 준수하거나 목숨값을 깎아가며 일하는 자들.
그러나 그런 자들의 기여는 봉쇄당한 도시의 수요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나는 이어지는 보도를 흥미롭게 감상했다.
‘훌륭해. 수완이 아주 좋아.’
주술사 왕은 명백히 분열을 유도하고 있다. 평화유지군 당사국들간의 분열, 정규군과 용병기업들 간의 분열, 그리고 이방인과 현지 주민들의 분열.
어쩌면 주술사 왕 또한 이 방송을 보며 자신이 연출해낸 무대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을지 모르지.
이 봉쇄가 장기화될수록, 또 위기에 직면한 평화유지군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전파를 탈수록, 각국 정부는 날로 악화되는 국민여론에 직면하게 될 터였다.
주요 당사국들의 전쟁수행의지를 파괴하는 효과적인 전략이다.
잠시 숙고하는 사이, 화면은 다른 취재진이 있는 곳으로 전환되었다.
「보시다시피 이 상점의 모든 진열대는 이렇게 텅 비어있습니다. 주민들의 사재기에 이어 폭도들의 약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매장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습니다. 새벽부터 시작된 약탈과 방화는 도시 전역의 상점가를 폐허로 만들어놓았습니다.」
「이 도시의 주민들은 다가오는 위험에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시정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화유지군이 패배했다는 소식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전달되어 도시 전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소문이 확산되는 과정에 주술사 왕의 개입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기자의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은 평화유지군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놈들도 똑같아요. 똑같이 도둑질을 한다고요. 폭동을 막는다고 와서는 자기들이 식량을 가져간다니까요?」
「우리는 우갈리(옥수수 떡)를 팔 마음이 없었어요. 수중에 있는 거라곤 우리 가족이 사흘간 먹을 양이 전부였거든요. 하지만 그들은 길을 지나가던 우리를 에워싸고 가진 걸 다 내놓으라고 위협했죠. 돈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사람이 지폐를 먹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당장 오늘 저녁에 뭘 먹어야 할지 막막해요. 기자님은 혹시 먹을 것을 가지고 계신가요?」
「애당초 백인과 황인들이 주술사 왕의 분노를 산 게 문제예요. 싸움은 당신들이 걸었는데 왜 우리까지 피해를 봐야 하죠?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당신네 이방인들은 주술의 무서움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어요. 주술사 왕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주술사인데, 그와 싸우면 부정을 타는 게 당연한 거죠. 강대한 주술사는 먼 곳에서도 저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단 말예요.」
「너희 저주받은 자들은 당장 이 도시를 떠나야 해! 너희들이 여기에 있으면 도시에 있는 모두가 액운을 맞게 된다고!」
이런 흉흉한 분위기 속에서, 일군의 평화유지군 순찰대가 근처를 지나가자 주민들은 곧장 입을 다물어버렸다. 순찰대를 이끌던 벨기에 장교는 기자의 질문에 피로가 묻어나는 음성으로 답변을 주었다.
「평화유지군이 사실상의 약탈행위에 가담하고 있다니, 처음 듣는 이야기로군요. 그건 아마 오해일 겁니다.」
「예. 오해요. 여기 주민들이 다 교육수준이 낮지 않습니까? 헌터들이 한 짓을 평화유지군이 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는 거지요.」
「기자님도 아시겠지만, 국적을 불문하고 헌터들이 대체로 좀 그런 게 있잖습니까? 능력이야 어쨌든 인성은 저질스러운 인간들이 다수죠. 그냥 운 좋게 초능력을 얻었을 뿐인 3류 인생들이 알량한 힘만 믿고서 얼마나 거들먹거리는지 원.」
「각국 군의 대민범죄가 전혀 없지야 않겠습니다만, 대부분의 대민범죄는 돈밖에 모르는 천박한 인간들의 짓입니다.」
「저희는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기자님도 괜히 돌아다니지 마시고 안전한 곳에서 머물러주시기 바랍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와 살해가 빈발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경태는 감탄사를 흘렸다.
“크으-! 기가 막히게 멋진 발언 아닙니까, 형님? 주민들은 무식하다고 까고, 헌터들은 천박하고 저질스럽다고 까고. 주술사 왕이 들었으면 아마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기립박수를 쳤을 겁니다. 헌터들이 이 방송을 접하면 반응들이 아주 볼 만하겠네요.”
“…….”
침묵으로 긍정하며, 나는 태블릿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도시가 있는 방향의 지평선에선 여러 줄기의 가느다란 연기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