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91화 (291/561)

#32. 뱀 (17)

후루 연합전선의 군세는 길도 없는 황무지로 내몰리면서도 이링가 공략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그래야만, 평소처럼 녹아 없어지듯이 흩어져 후일을 도모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니까.

예컨대 도시 자체를 들이치진 못하더라도, 평화유지군 항공보급의 허브인 은둘리(Nduli) 공항을 무력화시키기만 하면 체급이 무거운 정규군들은 한동안 정상적인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워진다. 로켓 바이크나 드론 바이크로는 수송기들을 완벽히 대체할 수 없고, 투입하면 투입하는 만큼 가용전력이 감소하는 딜레마를 감수해야 한다.

이렇게 주도면밀한 유인으로 인하여, 평화유지군 당사국 대부분은 후루 연합전선의 낚시질에 그대로 끌려갔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중공군의 포위망 안으로 들어가는 한국전쟁 당시의 연합군이 떠오르는 구도였다.

물론 예외는 있었다.

목전의 미끼와 승리에 눈이 돌아간 다수와 달리, 은근한 불안감을 느낀 소수의 국가들은 후방지원 및 보급호송 임무를 자처하거나, 평화유지군 사령관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스르지 않는 한도 내에서 퇴로를 확보해두고자 했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그림자를 감지한 미 해병대 1사단이 장진호에서 그러하였듯이.

평화유지군 예하 한국군 부대인 타라자(희망) 부대는 이 같은 예외에 속했다. 부대 자체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되, 지휘통신의 편의성을 핑계로 사령부를 안전한 도시권에 두고, 전투수행능력이 증명된 민간 협력자들에게 퇴로 확보를 맡김으로써 만약에 대비하려 했던 것.

그러한 민간 협력자들 중엔 당연히 나와 내 애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타라자 부대장은 우리에게 형식적인 감사를 표해왔다.

「귀사의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역시 우리나라의 공능법인들 중에서는 개마만 한 곳이 없군요. 앞으로도 자알- 부탁드리겠습니다.」

반쯤 비꼬는 어조가 묻어나는 인사에, 나 또한 껍데기뿐인 답변을 돌려주었다.

“별말씀을.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타라자 부대장이 요구한 것은 두 가지였다. 개마의 주력은 후방지원을 맡아줄 것. 그리고 최소 한 명 이상의 법인 중역을 포함한 정예 타격대 하나는 타라자 부대를 따라올 것.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소리를 아주 음습하게도 하시는군.’

지난 전투에서, 나는 다른 법인의 할당구역에 진출해달라는 타라자 부대장의 요구를 묵살한 바 있다.

어차피 그것은 우리의 업무가 아니었고, 정상적인 경로로 들어온 요청도 아니었다. 원칙을 지키자면 부대장은 개마에 파견되어있는 파견장교를 통해 협조를 구해야 하니까. 그리고 협조는 결코 명령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한국군의 고위 지휘관들은 대개 계급적 권위의식에 도취된 꽉 막힌 인간들투성이다. 병사들을 소모품으로 깔아놓은 조직의 상류층들이지 않은가. 나는 합동훈련 당시 비닐 밥을 먹던 병사들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러므로 부대장은 생각했을 것이다. 비록 이것들이 전투력 하나만큼은 확실하지만, 위급할 때 ‘명령’을 들을 만한 놈들은 아니라고.

따라서 필요한 게 인질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바로 이 부분에서 맞아떨어졌다. 나는 처음부터 나 자신을 포함한 일부 타격대만을 포위망 안으로 진출시킬 계획이었으니.

용병은 돈을 벌기 위해 목숨을 담보로 걸 수 있을 만큼 물욕에 굶주린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손쉬운 사냥감들을 눈앞에 두고 몸이 달아오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 탄자니아 방면의 후루 연합전선이 다 잡은 사냥감처럼 보이는 지금, 타라자 부대장의 협조 요청은 내가 부하들 다수를 안전지대로 빼놓는 데에 좋은 핑곗거리가 되어줄 것이었다.

어쨌든 “전투 후의 재정비가 필요했다.”는 단순한 핑계보다는 나을 테지.

“함정이라는 거예요.”

마무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렇게 경고했다.

“감사하십시오. 늦지 않게 나 마무르를 보내시어 경고를 전하시는 알라의 은총에. 평화유지군을 자칭하는 서구의 위선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거두고 있는 승리는 진짜가 아닙니다. 싸장님은 그 뒤를 따라가선 안 된다. 그곳엔 함정이 있을 뿐. 나는 나의 빛나는 지성과 믿는 자들의 정보력으로 이를 파악하였다.”

“알고 있소.”

“알고 있어요?”

마무르의 눈이 가늘어진다.

“싸장님은 내게 구라를 치지 마십시오. 알라께선 정직한 자를 좋아하신다.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어째서 저 어리석은 자들과 함께 사지로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야 수상한 구석이 없을 테니까. 양지에서 용병집단을 굴리려면 당연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오. 용병집단이 위장에 불과한 나로서는 더더욱 그러하지.”

“흐음…….”

“걱정하지 마시오. 내 목숨은 내가 알아서 간수할 수 있소.”

“어떻게 걱정을 안 하겠습니까?”

이마에 손을 짚고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건방진 무슬림.

“싸장님 당신은 알라를 믿지 않는다. 알라를 믿지 않고 스스로의 능력만을 믿는 불신자는 교만에 빠지기 쉬워요. 지금이라도 몸을 빼내십시오. 저 욕심 많은 중국인들이 다 된 밥상에 숟가락을 올리려 들지 않는 것을 보면 냄새가 나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경고를 해준 사람이 바로 나요. 당장은 움직이지 말라고.”

“무엇이?”

“정확히는 그들 중에 있는 내 부하에게 경고를 해두었지.”

중국인들에게 경고를 해주었다는 소리를 듣고 눈썹을 꿈틀거렸던 마무르는, 뒤이은 설명에 눈매를 누그러뜨렸다.

여기서 말하는 중국인들이란 며칠 전 드디어 탄자니아 땅을 밟은 화성무련의 엽사들을 뜻했다. 련주로서 그들을 통솔하고 있는 미주는, 작금의 판에 발을 들이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서 중국 엽사조직들의 목줄을 잡고 버티는 중이었다.

나는 미주와의 통화를 회상했다.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제가 이들을 언제까지 붙잡아둘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련주의 명문화된 권한이라는 게 그렇게까지 강력한 것이 아닌지라-」

“상관없어.”

「예?」

“상관없다고 했다. 정 반항적으로 구는 놈들은 알아서 하라고 놓아줘버려. 그런 것들이야 대부분 적대적인 계파 소속일 테니, 본보기로 삼기에도 적합하겠지.”

「저기, 본보기라 하심은……?」

“모르겠나? 나는 그놈들의 목숨 따위를 걱정해주는 게 아니야. 다만 이번 일을 이용해 네게 권위를 더해주고 싶을 뿐이지.”

「아.」

“네가 공식적으로 강한 우려를 제기했다는 사실만 확실하게 주지시켜 놔라. 현재의 상황은 아무리 봐도 의심스럽다고. 평화유지군이 박살이 나고 나면, 좋든 싫든 네 통제를 따랐던 것들은 미주 네게 대국을 보는 전략안이 있다며 찬사를 늘어놓을 거다.”

처음부터 엽사들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는 약한 모습을 보여주면 아무리 좋은 선구안을 선보인들 효용이 적겠으나, 석벽호표의 이름값과 미주 개인의 능력이 있으니 그럴 일은 없을 터.

미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입니다.」

“다행? 뭐가?”

「아, 그, 형님께 실망을 끼쳐 드릴까 봐 걱정……이었습니다.」

“내가 그쪽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겨우 이 정도 일로 실망을 할 리가.”

「그렇군요.」

이때 수화기로 들은 숨소리는 아마도 작은 웃음이었을 것이다.

「지시하신 사항들은 최선을 다해 이행하겠습니다. 달리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딱히.”

「알겠습니다. 그럼, 보중하십시오. 다시 뵐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내 무사를 기원하는 말은 몹시도 사근사근한 어조였다.

나는 의식의 초점을 현재로 되돌렸다.

“여하간 잘도 여기까지 걸음 할 생각을 하셨구려. 그것도 손님까지 데리고서 말이오. 이곳이 사지임을 안다면, 사방에 주술사 왕의 전사들이 매복하고 있을 것 또한 알았을 터인데.”

여기까지 데려온 손님의 정체는 마무르가 선을 대어놓은 루구루족 일맥의 관계자였다.

내가 보고 받은 경위는 이러했다.

사흘 전, 루구루족 내부에 갑작스러운 세력 변동과 통합, 숙청 등이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마무르는, 신앙의 형제들의 안전을 확인하겠답시고 저지대 루구루족의 영역으로 들어갔다. 이는 계획에도 없던 돌발행동.

이때 마무르에게 붙어있던 내 부하는 둘이었다. 경호실 소속이 하나, 메리옘 그룹에서 차출한 녀석이 하나. 경호실 소속의 부하는 당연히 지원을 요청하려 했지만, 마무르는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이라며 독단적인 행동을 강행했다.

이미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는 경호실 소속 부하는 총을 들이밀고서 통제에 따를 것을 요구했으나, 마무르는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쏠 테면 쏴보시라는 거예요. 위험에 처한 신앙의 형제자매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나는 알라의 전사이며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할 것이다.」

이에 어쩔 수 없이 말려든 감시역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도보로 이루어졌다. 그것도 길도 없는 야지를 통해서. 마무르가 비밀스러운 침투를 고집했던 까닭이다.

그렇게 들어간 루구루족의 영역은 고지대와 저지대를 가리지 않고 눈에 띄지 않는 죽음들로 가득했다고 한다. 외부인들의 관심 밖에서 번개같이 진행된 「베나」 씨족의 부족 통합전쟁이었다.

이슬람을 믿는 씨족의 생존자들과 접촉한 마무르는 그들을 내 조직의 간접적인 보호가 미치는 안전지대까지 대피시킨 후, 이번엔 정보원 겸 씨족의 사자를 데리고 내가 있는 곳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나서가 바로 지금이었다.

“여로에 도사린 위험 따윈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아요.”

마무르는 턱을 들고 자랑스레 대꾸했다.

“나는 길을 찾는 능력이 남다른 알라의 전사예요. 내가 가고자 하면 알라께서 길을 알려주시며, 알라께서 알려주시는 길엔 오직 사람이 믿음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만큼의 위험들만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신실하게 믿는 자인 나는 이제까지 길을 찾지 못해 고생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

“잘나셨군.”

이유와 결과가 어찌되었든 간에 또다시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이 불쾌하여 빈정거렸으나, 마무르는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요, 나는 잘났어요. 삼위일체 같은 개족보로 선지자 예수를 욕보이는 이교도들조차 사망의 골짜기를 두려움 없이 거닌다고 떠들어 대는데, 올바른 신앙을 가진 내가 그보다 못할 리가 있습니까?”

“그만.”

나는 손을 들어 광신도의 수다를 끊었다.

“다 좋은데, 굳이 직접 올 필요가 있었소? 경고는 전화로 전해도 충분했을 것을.”

내 말에 마무르는 머리를 갸우뚱했다.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나는 길을 찾는 능력이 남다른 알라의 전사라고.”

“……?”

“비록 불신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싸장님은 빨갱이들을 무찌르기 위한 성전의 갸륵한 협력자다. 그런 싸장님이 사지에 발을 들였으니 내가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믿는 자는 알라의 도구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선 나 마무르가 바로 싸장님을 위해 예비 된 알라의 인도하심일 수 있는 것이에요.”

“요컨대 나를 구하러 온 것이다?”

“옳아요.”

“필요 없소.”

“싸장님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이미 목숨을 건 숭고한 결심을 했기 때문에.”

“…….”

“싸장님이 사지로 들어간다면 나 또한 사지로 들어갑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위기가 찾아왔을 때 나는 알라께서 내려주신 나의 능력으로 생명의 길을 찾아 안내할 것이다. 그러면 싸장님은 감동의 눈물을 주룩주룩 흘릴 것이며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신앙에 귀의할 게 틀림없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가 없는 아름다운 계획.”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지? 나는 잠시 이 광신도의 사지를 묶어 강제로 끌고 가라고 해버릴까 하는 강한 충동을 느꼈다.

한숨으로 짜증을 다스리며, 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신의 거취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기로 하지. 기왕 왔으니 소개나 해주시오. 현지인의 입으로 돌아가는 사정을 들어보고 싶군.”

내가 눈을 돌린 방향엔 이슬람 신자일 루구루 사람이 좌불안석으로 앉아있었다. 눈알을 굴리는 품새가 적잖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듯하다.

‘하필 이때 부족통합 전쟁이 시작된 게 우연의 일치일 리는 없지.’

그 갑작스러움과 빠른 진행속도를 보건대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왔을 것이 분명하고, 그 준비는 당연히 거대한 함정을 파는 계획의 일환이었을 터.

루구루족의 영역인 울루구루는 헤헤족의 영역인 우헤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함정이 작동하기 시작하면, 루구루족 주술사들과 전사들로 이루어진 전투단이 평화유지군의 후방을 들이쳐 포위망의 일부를 구성하겠지.

마무르가 어깨를 으쓱였다.

“여기 있는 형제는 음라리 부족의 사람이며 「땅을 지키는 자」 아바시의 장자이다. 이름은 니쿠수빌라라고 한다.”

“땅을 지키는 자? 족장 같은 개념인가?”

“비슷해요. 브론즈 레벨 족장이라고 이해하면 적당하다. 루구루의 안에 베나가 있고 베나 안에 음라리가 있고 음라리 안에 다시 여러 파생부족들이 있는데, 니쿠수빌라 형제는 그런 파생부족들 중 하나에서 족장의 피를 이어받은 것.”

이어 마무르는 니쿠수빌라에게 나를 소개했다.

“형제여. 인사하십시오. 이쪽은 오마르 알 바시르. 알라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태어난 밀수꾼이다. 아직 신앙의 형제는 아니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예정인 것. 알라의 전사인 나 마무르가 안전을 보증한다.”

소개는 영어로 이루어졌다.

하기야 족장의 아들쯤 되는 인간이 영어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이 나라의 국어는 스와힐리어이지만, 일선 학교들은 영어로 된 교과서를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하니까.

스와힐리어 교과서는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그러나 영어로 된 교과서는 기부로 들어오는 물량이 많다. 가격경쟁 자체가 성립하질 않는 것. 외교부 관계자들이 헌터들을 상대로 동아프리카 현지에서 언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으리라 장담한 이유였다.

영어로 된 무료 교과서의 최대 공급자는 당연히 영국이었다. 옛 식민지의 언어적 자립을 저해하는 음습한 ‘선의’라 하겠다.

불안하게 눈을 굴리던 니쿠수빌라는 투박한 영어, 떨리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당장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그러고는 묵직한 두려움을 담아 더하는 말이 이러했다.

“뱀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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