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뱀 (15)
장갑판을 덧댄 상용 트럭에 기관총좌, 대형 스피커, 라디오 안테나, 연막생성기 등을 올린 기형적인 생김새의 독전차량이 황무지를 질주하며 주술사 왕의 전사들을 독려한다.
「Mchawi baba ni mwenye nguvu ya mungu! Tawakali kwa hongo!」
아무리 경태라도 연막 너머로 한참 먼 곳을 달리는 적을 명중시킬 재간은 없다. 나는 스스로 대물저격총을 들어 독전차량의 운전석을 겨냥했다.
콰웅!
소염기에서 불꽃이 튀고 총구 주변의 흙먼지가 물결친 직후, 거친 땅을 달리던 독전차량이 요란한 기세로 전복되어 땅을 굴렀다. 비록 운전자의 골통을 부수는 데엔 실패했으나, 놀란 운전자가 휠을 확 꺾어버리는 바람에 사고가 발생한 것.
내 사격술의 미진함은 아쉽지만, 모로 가든 서울만 가면 됐지.
전복된 독전차량으로부터 부상당한 생존자들이 기어 나왔으나, 어차피 이들은 그리 중요한 표적도 아니었다.
부아아아앙-!
배기음을 높이며 달려오는 것은 급조폭발물(IED)과 폐타이어를 만재한 다수의 승용차들이었다. 중동 테러리스트들이 미군을 공격할 때 곧잘 써먹는 수법. 위력부터가 대단할뿐더러, 연막차장의 수단으로서도 매우 우수하다.
동시에 박격포로 가해오는 공격준비사격. 그러나 대충 방향만 맞으면 충분했던 조명탄들과 달리, 고폭탄들은 형편없는 탄착군을 선보였다. 이래서야 이쪽을 웅크리게 만드는 제압사격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어렵다. 회로에 장전해두었던 발화억제가 무색해지는 상황.
탄이 흩어지는 정도를 보면, 탄착지점 관측의 어려움을 탓하기 이전에 장비의 수준과 포수들의 실력이 뒤떨어지는 것이었다. 저들의 박격포에 달려있는 조준기는 2차 대전기의 유물만도 못한 수제품이었으니.
‘하기야, 조준경 하나 값이면 박격포 본체 여러 세트를 사고도 남지.’
그러한 가격 격차는 밀수시장에서 더욱 크게 벌어진다. 진짜 핵심전력도 아닌 자들에게 갖춰줄 만한 장비가 아닌 셈.
무엇보다, 국제연합군의 오판을 이끌어내려면 딱 이 정도 무장 수준이 적절할 터였다. 의외의 일격을 얻어맞긴 했어도, 그 수준은 상정한 범위 이내라는 오판을.
그래도 화력 하나는 대단하다. 꽝꽝 터지는 한 발 한 발이 발밑을 강하게 흔드는 진동을 일으킬 정도. 힘이 넘쳐나는 각성능력자들답게, 주술사 왕의 박격포반이 보통은 차량에나 싣고 다녀야 할 4.2인치 박격포를 도수운반으로 들고 뛰어다니는 탓이었다.
폭탄차량의 운전자들은 시한신관을 작동시킨 뒤 운전대를 고정시키고 차량에서 뛰어내렸다. 경사지를 달려 올라오는 고기동성 폭탄들을 보며, 혀를 찬 나는 대마법사의 마력장을 부분적으로 전개했다.
푸드드드득…….
발화억제의 범위에 들어온 자폭차량들은 들어온 순서대로 시동이 꺼졌다. 관성으로 조금 더 올라오다가 뒤로 굴러 내 마력장을 벗어나는 차량들. 그러나 각각의 시한신관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으므로, 그 모든 폭탄들은 은엄폐를 반복하며 비탈길을 오르던 주술사 왕의 전사들 사이에서 폭발했다. 저 멀리, 지휘차량 속 지휘관의 낯짝이 일그러지는 게 보인다.
대체 왜 저 위치에서 폭발들이 일어나는지 이해가 안 가겠지.
그러나 투시력이 없는 한 의문은 의문으로만 남을 것이다. 후일 국제연합군 관계자들이 전장 분석을 할 경우, 훈련도 내지 통제력 부족으로 인한 간격 조정 실패쯤으로 결론지을 터이고.
“화, 황 해병님. 방금 그거 느끼셨습니까?”
돌아보면, 조금 떨어진 입사호 내부에서, 팬티만 입은 복부비만 중년 헌터 둘이 호랑이 냄새를 맡은 토끼들처럼 굳어있다. 안전한 곳을 찾아 기어코 여기까지 도달한 불청객들이 대마법사의 마력장을 느낀 것이다. 불완전한 전개였다고는 해도, 결코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순 없는 장악력과 반경을 지닌.
나는 그들 배후의 내 부하들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주었다. 치우라고. 부하들은 각자의 냉병기를 뽑아 불청객들의 목숨을 끊어버렸다. 한 놈은 골통이 박살 났고, 다른 한 놈은 칼날이 심장을 뚫고 튀어나왔다.
죽은 자들과 그들의 무기는 그들이 생전에 필사적으로 기어올랐던 비탈에 던져졌다.
폭탄 차량들의 연쇄폭발이 돌격의 첫 물결을 붕괴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주술사 왕의 전사들은 길도 없는 경사지를 용맹하게 달려 올라왔다. 총탄을 두려워하지 않는 광신도들의 돌격.
나는 그 돌격에 맞춰 마력장의 반경을 축소시키는 동시에, 무전기에 대고 목소리를 높여 이제껏 대기시켜두었던 공중 전력을 불러들였다.
“개마 사령으로부터 솔개 파파에게! 기지점 알파 하나로부터 알파 둘, 브라보 하나, 브라보 하나 좌로 하나 오 더하기 삼공의 경로로 기총 소사를 요청한다! 간격 표준, 속도 표준, 추가 재진입 2회! 고도를 유지하며 바로 들어올 것!”
「요청 확인. 진입하겠습니다.」
환경소음이 시끄러운 이쪽과 달리, 저쪽에서 돌아오는 대답은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기지점이란 ‘이미(旣) 아는(知) 지점(點)’을 의미한다. 즉 사전에 찍어놓은 이정표(웨이 포인트) 같은 개념. 내가 불러준 이정표들을 잇는 선을 따라, 솔개 편대의 제트 바이크들이 미니건 연사를 갈기며 지나갔다.
분당 1천 발로 낮춰놓은 연사속도와 제트 바이크의 빠른 비행속도로 말미암아, 솔개 편대의 화력지원은 왕의 전사들에게 유효한 타격을 가하지 못했다. 죽어 넘어진 수를 다 더해도 열다섯에 불과할 지경.
그러나 제압사격으로서는 넘치는 효과가 있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것과 무모한 것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니까. 예광탄 섞인 철갑탄의 호우는 가시거리가 축소된 와중에도 반경 수십 미터를 위협하는 선명함이었고, 그 선명함은 잠시 동안 사선 근처에 있는 전사들의 발을 붙잡아놓았다.
이에 따라 잠시 정체되는 인의 물결.
이렇게 한 번에 가해지는 압력을 줄여놓기만 하면, 내가 거느린 최정예 전투단의 방어선은 절대로 뚫리지 않는다.
짧은 가시거리로 인해, 부하들이 치르는 전투는 반사 신경을 한계까지 시험하는 형태로 수렴했다. 관건은, 연기를 뚫고 나오는 전사들을 얼마나 빨리 포착해서 사살하는가.
이런 면에서, 나는 내 마력장의 반경 내에 배치된 부하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파라락-
작고 가느다란 소리와 함께 신기루처럼 피어올랐다가 사그라지는 빛의 실루엣들. 이는 내가 부하들에게 투시력과 「발화」를 활용하여 제공하는 홀로그램 사격 유도신호였다. 이 방향에서 곧 적이 출현하리라고.
카카캉! 카카캉! 카카캉!
경태 녀석이 삼점사를 당길 때마다, 초연을 뚫고 튀어나오는 왕의 전사들이 하나씩 하나씩 확실하게 무력화된다. 경태는 꽉 채워놓은 탄창을 5~6초에 하나 꼴로 비워댔다. 말이 삼점사지 사실상 연사에 가까운 조준사격이었다.
실전감각과 사격에 대해선 악마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도 좋을 녀석.
중장갑을 착용한 전사들조차 삼점사 한 번에 고꾸라진다. 총탄은 매양 장갑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안면의 일부를 부수고 들어갔다.
경태를 중심으로 한 베테랑 예비대는 고정된 방어선의 소방수였다. 전장 전체를 감제하는 내 지시에 따라, 일시적으로 적의 압력이 높아질 지점을 미리 선점하여 화력을 보강하는 것이다.
뿌붑-! 뿌붑-! 부우우우우-!
아까와 같은 뿔 나팔 소리가 들리고, 가까운 하늘에 다시 한 번 강렬한 천연색의 조명탄들이 쏘아진다. 더욱 강한 공격을 재촉하는 신호였다.
시야가 나쁘다고는 하나, 계속해서 총성이 이어지고 간헐적으로 초연을 뚫는 섬광이 계속되는 중이니, 이쪽이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저들의 지휘관도 파악하고 있을 테지. 부족하나마 무전으로 들어가는 보고들도 있을 것이고.
‘의욕들이 너무 앞섰어.’
왕의 전사들이 가하는 공세는 지나치게 저돌적이었다. 메리옘 그룹이 폭주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녀석들을 스텔라 포르투나 경비업무로 묶어놓고 온 게 정답이었다. 나를 숭배하는 광신도들의 첫 실전으로 삼기에 이런 양상의 혼전은 어울리지 않는다.
적들은 서로 다른 병종 및 제대들 간의 협동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약점을 감추기 위해서라도 연막차장에 그토록 목숨을 걸었던 것이겠지만.
쉽게 말해 저들은 아직 하나의 군대로서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경태 역시 같은 감상이었는지, 전투의 한중간에 무전으로 외치는 말이 이러했다.
「이 친구들! 용맹하기는 한데! 부족연합이라는 티를! 다 못 벗은 것 같지 말입니다!」
이는 후루 ‘연합’전선의 태생적 한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서로 다른 땅의 서로 다른 부족들과 서로 다른 주술사들과 서로 다른 군벌들이 주술사 왕에 대한 믿음 하나로 뭉쳤으니, 완전한 하나가 되려면 앞으로 앓아야 할 진통이 많이 남아있을 터.
그래도 적측 지휘관이 투입한 예비대만큼은 비교적 체계가 살아있었다.
「Sukuma mbele!」
증기전차 세 대와 보조를 맞춰, 바퀴 달린 이동식 엄폐물을 밀고 올라오는 일군의 중장갑 전사들. 분해조립이 간편하도록 만들어진 이동식 엄폐물은 인력으로 움직이는 원시적인 장갑차와도 같은 것이었다. 정교한 설계는 아닐지나 실전적 창의성이 흘러넘친다.
적 지휘관이 그린 그림은 전 방위적인 공격으로 우리의 화력과 주의를 흩어 놓고, 그사이 도달한 예비대가 차단선을 돌파하는 것이었을 터.
내가 없었다면 분명히 먹혔을 것이다. 불투명한 전장 환경으로 말미암아, 이쪽으로 예비대가 접근한다는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을 테니.
쿵-쿵-쿵-쿵-
증기전차의 실린더 구동음이 가까워진다. 일반적인 보일러와 제어계통 없이, 발화능력자가 물속에 불을 일으키는 단순무식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증기기관. 압력용기엔 다만 압력계가 하나 붙어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증기기관답지 않게 공간적 효율이 높고, 증기압을 확보하는 속도도 매우 빠르다.
뻐엉-!
갇혀있던 증기가 폭발하는 굉음. 증기전차들이 쏘아 보낸 건 흑색화약을 채운 고폭탄들이었다. 연막은 연막탄보다 못하고, 위력은 무연화약보다 낮을지언정, 제압과 연막차장을 동시에 해낼 수 있는 공격수단. 따라서 기만책으로 쓰기에도 유효한 카드.
이에 더해, 전차와 엄폐물을 따라오는 중장 전사들은 투창기로 폭탄 투창들을 날려댔다. 비포장 경사지를 오르기 힘든 삼륜차 기병들이 기슭 바로 아래까지 투창을 실어 날라 보병들을 보조한다. 발 빠른 짐꾼들이 전사들과 기병들 사이를 바지런히 오간다.
차단진지 전후로 흑색화약 폭탄들이 끊임없이 폭발하는 와중에, 나는 인상을 쓰며 무전에 대고 강하게 외쳤다.
“공중강습이 온다! 클레이모어(산탄지뢰) 준비!”
적은 연막으로도 감추지 못할 증기기관 가동소음을 미끼로 써먹었다. 사전에 상대가 준비한 모든 패를 알아두지 않았다면, 그리고 또 투시력 없이 소리만 들었다면, 이쪽은 꼼짝없이 증기전차를 앞세운 요란한 접근에만 매몰되어 있었겠지.
콰아아아-!
하늘에서 로켓강습보병들이 비처럼 떨어져 내린다. 최초 이륙부터 5초 이내에 완료되는 기습적인 단거리 탄도비행. 방어선 안쪽으로 떨어져 우리를 뒤에서부터 무너뜨리기 위한 습격이었다.
“격발!”
대각선으로 하늘을 보도록 설치된 산탄지뢰 서른 개가 일제히 폭발했다. 이는 특종장비로서 공능법인 개마에 주어진 산탄지뢰의 전부. 2만 1천 발의 강철 구슬이 낮은 고도를 휩쓸자, 비명과 함께 사람의 피와 살이 비처럼 쏟아졌다. 경태 녀석이 세심하게 구축한 살상지대엔 빈틈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일격으로 로켓보병 전부를 쓸어버릴 수는 없었다.
각성능력자용으로 연료통을 제거한 로켓 팩의 무게는 놀라울 만큼 가볍다. 내 조직 역시 실험적으로 운용해본 바, 하네스, 조향장치, 연소 체임버, 단열 파이프, 로켓 노즐을 다 합쳐서 채 5킬로그램이 되지 않을 정도. 제조사와 소재, 모델에 따라서는 3킬로그램을 밑돌기도 한다.
그 말인즉, 기수의 무게를 제외하고도 수십 킬로그램의 여유 비행중량이 남는다는 뜻이었다. 기수의 「발화」 역량에 따라서는 자기 체중 이상으로 무거운 중장갑을 걸치고서도 비행을 실시할 수 있다.
“끼에에에에에-!”
흔들리는 역추진으로 참호 내에 추락한 장갑보병이 부릅뜬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른다. 온몸을 감싼 전신갑주는 산탄을 막아낸 흠집들로 가득하다. 산탄 폭풍에 휩쓸렸던 탓인지, 손에 쥔 무기는 냉병기가 전부였다.
다음 순간, 내 근접경호를 맡은 부하들의 과잉화력이 주술사 왕의 장갑보병을 찢어죽이다시피 살해했다. 그 피가 내게까지 튀어, 나는 얼굴을 닦아내며 무전망에 대고 외쳤다.
“모두 머리만 당하지 마라! 후방은 내가 정리하겠다! 전방에만 집중해!”
뇌만 멀쩡하다면, 그리고 치료가 늦지만 않는다면, 내 마법으로 살려내지 못할 중상자는 거의 없다. 나는 이렇게 중요도가 낮은 전장에서 인적자원 손실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