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88화 (288/561)

#32. 뱀 (14)

내가 사전에 예비전장에 대하여 치밀한 조감(鳥瞰)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경태와 수연과 함께 검토한 바, 후루 연합전선의 위장공세는 표면적으로는 이링가 주의 주도(州都)이자 헤헤족 영역의 중심지인 이링가 점령을 노리는 것이었다.

헤헤족의 언어로 요새를 뜻하는 단어(Lilinga)에서 이름이 유래한 도시 이링가는, 그 이름처럼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요해지였다. 이 도시와 도시 외곽의 은둘리 공항이 주술사 왕의 손에 떨어지면, 평화유지군은 이링가 주 내의 모든 거점을 유지할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달리 병력과 물자를 전개할 장소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뿐더러, 이링가 시의 낙성은 헤헤족의 완전한 이반을 야기하기 쉽다.

그러면 당장 탄자니아의 수도 도도마가 주술사 왕의 사정권에 들어온다. 각성능력자들의 군세가 지닌 기동성을 고려하면, 이링가에서 도도마까지는 채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 거리.

만약 헤헤족의 영역(우헤헤) 북변에서 경보병만 집결시켜 들이친다고 가정하면, 반나절은커녕 한 시간 내로 수도 외곽을 위협할 수 있다.

탄자니아는 저마다 정체성이 다른 다양한 부족들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이며, 그런 연방국가에서 수도가 넘어간다는 것은 일반적인 국가들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일이었다.

평화유지군을 속이기엔 충분한 무게의 전략목표.

여기에 낚인 평화유지군 장교들은, 주술사 왕의 추종자들이 이제까지의 게릴라 전략을 포기하고 전면공세를 취할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었다고 판단할 것이었다.

“Tu katika kilindo cha Hongo! Hongo ni mwenye haki!”

뜻 모를 전장의 외침 사이에서 알아들을 수 있는 건 되풀이되는 홍고(Hongo)라는 단어 하나뿐. 짙은 연막에 힘입어 평화유지군과 헌터들의 축성진지로 쇄도한 삼륜차 기병대는, 짐칸에 걸터앉은 투창기 사수가 폭탄투창을 날리는 것으로 공격을 개시했다.

꽈광! 콰콰쾅!

안정날개가 날린 폭탄투창들이 150미터가 넘는 거리를 날아와 주둔지 곳곳에 떨어졌다. 전 세계 테러리스트들의 친구이며, 중국에서도 지긋지긋하게 보았던 지향성 폭발 성형 관통탄들.

지향성이라고는 해도 화력의 7할은 전 방위로 뿜어진다. 다국적 식품회사의 로고가 선명한 폭탄들의 소나기는 미처 입사호로 피하지 못한 헌터들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놓았다.

“아파, 아파, 아파……!”

폭압에 내팽개쳐진 헌터 하나가 내가 있는 입사호 근처까지 굴러와 허덕인다. 통조림 캔 파편에 쓸린 팔다리에선 심각한 출혈이 발생한 상태. 아프리카 고원의 따가운 햇살 때문인지, 착용한 방어구라곤 방탄복 한 벌이 전부인 인간이었다. 칼 같은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던 내 부하들과는 사정이 완전히 다르다.

나는 나를 향해 손을 허우적대는 예비 시체를 무시하며 무전기에 대고 알렸다.

“한 번 더 날아온다. 셋, 둘, 하나. 지금!”

요소요소에서 대응사격을 하던 부하들이 일제히 엄폐를 실시한 직후, 곧바로 두 번째의 폭발성 소나기가 쏟아진다.

콰르릉!

거칠게 일어나는 유폭. 막 이륙할 채비를 마친 제트 바이크가 투창에 직격당한 것이었다. 비록 연료는 없으되, 파일런에 장착한 무장들이 문제였던 것.

통조림 폭탄의 관통체가 유탄으로 채운 박스 탄창을 뚫으면서 시작된 폭발은, 나란히 달려있던 미니건의 탄약들을 줄줄이 터트리면서 수백 발의 탄자와 예광탄이 튀어나가도록 만들었다. 나란히 이륙을 준비하던 다른 발화능력자가 기겁을 하며 몸을 피한다.

폭탄투창의 화약은 연기가 많이 발생하는 흑색화약이었다. 이 정도면 연막차장에 목숨을 건 수준.

‘알아서 연막을 깔아주니 편하군.’

나는 염동과 발화억제로 부하들을 보호했다. 쏟아지는 폭탄의 수량이 워낙에 많아 간혹 입사호 안으로 떨어지는 것들이 있었지만, 내 투시와 마법의 영향권 내에선 터지지 않는 깡통들일 뿐이었다. 허공에서 붙잡아버리거나, 아니면 뇌관의 기폭을 막아버리거나. 대마법사의 전력을 발휘할 필요까지도 없는 일이었다.

휘리릭-

나는 허공에서 붙잡은 투창들을 적당한 위치에 투사하여 기폭시켰다. 어차피 처리해야 할 폭발물이고, 개마가 담당하는 구역만 탄착흔이 적게 남아있으면 외부인이 보기에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테니까.

「솔개 파파가 개마 사령에게. 이쪽은 진입 준비가 완료되었다는 통보. 표적 정보 및 타격 경로 확인 바람.」

무전을 보낸 것은 적당한 사유로 미리 내보내둔 제트 바이크 편대 가운데 하나였다. 공능법인 개마와 형제 법인들이 보유한 공중 전력은, 알리바이로 남긴 일부를 제외하면 외부 임무에 투입하거나 배치 지점을 변경하는 식으로 전력을 보전하도록 해두었다.

나는 무전에 답신을 보내었다.

“잠시 대기. 지금 진입하면 충돌 우려가 있다.”

「확인. 잠시 대기.」

다른 법인들의 비행전력이 어지러이 날아오르는 중인 데다, 짙은 연기로 인하여 시야보다 계기에 의존해 비행을 해야 하는 상황. 제트 바이크를 위시한 능력자 전용 탈것들의 속도를 감안할 때, 알량한 근접 레이더만 가지고는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나는 날파리들의 굼뜬 움직임에 눈을 찌푸렸다.

‘빨리들 꺼져줄 것이지.’

아니면 죽어서 떨어지거나.

초연 충만한 난장판으로부터의 이륙에 성공한 다른 헌터집단의 날파리들은, 소속을 불문하고 일단 이 혼돈의 도가니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우선시하고 있었다. 조직성이 결여된 각자도생의 움직임들.

이 부근에선 오직 나와 내 애들이 담당하는 구역만이 혼돈에서 벗어나있었다.

꽈웅-!

이제까지와는 결이 다른 포성이 메아리쳤다. 포성의 근원은 장갑 전체를 하얗게 칠해놓은 평화유지군 소속 프랑스 주력전차였다. 충격파에 휘말린 흙먼지가 작고 둥근 모래폭풍처럼 피어오른다.

이웃한 평화유지군 주둔지의 유일한 전차 전력인 프랑스 전차소대는 불그스름한 적 증기전차들의 진행경로를 흐트러진 일자진으로 가로막았다. 아직 혼란을 다 수습하지 못한 아군 진영이 적 기갑세력에게 돌파당하는 일을 막기 위하여.

기습으로 시작된 전투, 장애물과 기복이 많아 기동과 사선 확보가 제한되는 지형, 통상시야로는 수십 미터 앞을 보기 어렵게 만드는 짙은 연막 등등의 요인들로 말미암아 상호간의 교전거리는 채 2백 미터도 되지 않는 상황.

포수가 경황이 없었는지, 아니면 시야 확보가 안 되었는지, 첫 번째 전차가 급하게 쏜 초탄은 형편없이 빗나갔다.

직후 묵직한 반격탄들이 무더기로 날아들어 전차들의 대열을 난타한다. 탄속은 느릴지언정 무거운 만큼 강력한 고폭탄들. 그러나 이쪽 역시 명중률은 형편없다. 증기전차에 있는 조준장치라곤 원시적인 광학조준기가 전부였고, 이들 역시 자기들이 쳐놓은 연막에 영향을 받고 있었으므로.

여기에 증기기관총 난사가 더해진다.

빠바바바바박-!

총구에 맺혀 떨어지는 뜨거운 물방울들. 주술사 왕의 성난 추종자들은 맹렬한 적의를 담아 증기기관총의 밸브를 여닫았다. 희뿌연 수증기가 터져 나올 때마다 달아오른 철탄들이 사출되어, 허공에 한없이 직선에 가까운 포물선의 궤적들을 그어댄다.

증기전차에 탑재된 증기기관총들의 위력은 일반적인 개인화기들보다는 강력한 수준이었다. 연사속도가 다소 느리긴 해도, 꾸준히 두들기면 프랑스 전차들의 외부 관측 장비들 일부를 망가뜨릴 수는 있을 정도.

그러나 이 또한 명중률이 낮으면 의미가 없다.

맹렬한 살의를 품고 치열하게 화력을 낭비하는 양측의 모습은, 대개의 전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광경이었다. 세계 최강 최정예의 군대인 미군조차 실전에선 얼마나 많은 헛총질을 해대는지.

프랑스 전차들이 금속성의 불티를 튀기며 적을 눌러두는 사이, 국제연합군의 장갑차량들이 자리를 잡았다. 전장을 파악하지 못해 방어적인 포지션을 취하긴 했으되, 어쨌든 전투태세를 갖추기는 한 것. 기갑세력이 온전히 남아있으면 적어도 간선도로가 뚫리는 일은 없다.

이 와중에 멀리서 울려오는 천둥을 닮은 포성들.

따닥-! 따다다다닥!

전장에 연기를 물고 벌겋게 타오르는 뜨거운 우박들이 쏟아진다. 우박의 정체는 불붙은 석탄들이었고, 석탄을 쏘아 보내는 포는 마오주의자들의 최대 수출품인 드럼통 대포였다. 장약을 잰 후 격목으로 막고 불붙은 석탄을 부어 산탄처럼 격발시키는 것.

탄자니아는 동아프리카 최대의 석탄 매장지들을 보유하고 있으나, 그 품질은 옛 강도국가들이 딱히 욕심을 내지 않을 만큼 낮다.

주술사 왕의 군세가 산탄을 조달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터. 저들은 전장 환경을 난전에 최적화시키고자 온갖 수단들을 준비해둔 상태였다.

땅을 구르는 우박이 늘어남에 따라 전장의 불투명함이 더해진다. 철저한 준비가 낳은 거대한 혼란이었다.

“형님! 타라자 지통실에서 우리더러 신익 시큐리티 담당 섹터까지 진출해서 고수방어랑 감제를 해달라는데요?! 어떻게 할까요?!”

경태가 전장의 소음을 뚫고 보고하는 말. 타라자(Taraja/희망)란 타라자 부대, 즉 평화유지군 소속 한국군 부대를 의미했다. 그리고 신익 시큐리티는 외교부 긴급대응팀과 계약한 또 다른 공능법인.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럴 여유 없다고 해! 우리는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버겁다고!”

“옙!”

우리에게 주어진 차단진지는 간선도로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고지와 그 주변지대를 둘러싸는 형태였다. 이웃한 또 다른 고지와는 교통호로 연결되어있고, 그 너머에 있는 곳이 신익 시큐리티가 담당하기로 한 진지였다.

어차피 지금 가해지는 건 위장공세다. 짙게 깔린 연막은 이쪽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임과 동시에 저들이 자신들의 작위적인 움직임을 감추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저들은 일부러 공간을 비워두고 있다. 기습을 맞아 혼란에 빠진 자들이 저도 모르게 그리로 흘러들어가도록.

어느 정도 연막이 걷히고 나면, 국제연합군과 그에 협조하는 헌터들은 자신들이 ‘우연히’ 유리한 공간을 점유한 상태임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면 저쪽은 ‘불가피한’ 퇴각을 감행할 테지. 몰이사냥을 당하는 멧돼지 떼와 같이, 민간인 흉내를 내어 숨어들 여지가 없을 만큼 인구밀도가 낮은 황무지를 향하여.

그러니 우리로선 인명손실의 위험을 무릅쓸 하등의 이유가 없다. 머리 위로 총포탄이 날아다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반쯤 방관자의 심정으로 지극히 방어적인 전투를 수행했다.

“이쪽이 확실해?! 이리로 가면 개마가 있는 진지라고?!”

“확실하다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그리고 목소리 좀 낮추시지 말입니다!”

초연 자욱한 경사지를 따라 일군의 불청객들이 기어 올라온다. 샤워라도 하다가 기습을 당했는지, 팬티 차림으로 총만 움켜쥐고 있는 중늙은이 헌터가 둘이었다.

나는 이 둘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어제 아침, 산책을 돌 때 긴빠이 어쩌고 하는 괴상한 소란을 일으켰던 자들. 소속이 「해병대 엽사회」라고 했었지, 아마.

연신 폭음과 함성과 비명이 울려 퍼지는 전장에서, 속옷만 입고 필사적으로 기어오는 두 인간의 위화감은 나로 하여금 대마법사 로더필드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새끼, 옷은 입고 다니겠지?’

지금 이 대륙에서 악마숭배자들을 찢어죽이고 다니는 것으로 의심되는 원탁의 마스터, 염동의 거장 로더필드는 인류의 의복문화를 경멸해마지않는 인간이었다. 이는 도착적인 성적 기호 따위가 아니라 종교적인 신념의 표출이었다.

스승 새끼의 기억 속에서, 놈은 원탁내각의 대회의가 열릴 때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자리를 지켰다.

「동지들이여. 그대들 또한 「정수」를 통해 황금기의 기억을 엿보지 않았는가? 존재 자체가 문명이었던 위대한 자들에게 의복 같은 허례허식은 필요치 않았다!」

다른 대마법사들은 이 완고한 교조주의자에게 제발 그 ‘덜렁거리는 것’만이라도 가리고 다닐 것을 요구하였으나, 교조주의자는 그러한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퇴락한 현생 인류의 의복문화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써야 하는 나약함의 산물일 뿐! 그대들은 어찌하여 그런 퇴폐적 습속 따위에 얽매이는가? 우리끼리 모이는 자리에서조차 우리가 회복해야 할 태초의 모습을 부끄러이 여길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수치심은 불완전한 약자들의 전유물! 절대자에게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

미친 소리 같지만, 이는 철저하게 원탁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입각한 것. 다른 대마법사들은 교조주의자의 말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다.

뿌붑-! 뿌붑-! 부우우우우-!

전장에 울리는 뿔 나팔 소리. 끊어지는 박자는 사전에 약정한 신호일 것이다. 시각적으로 불투명한 전장에선 뿔 나팔 같은 원시적인 신호체계도 충분히 유효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주술사 왕의 나팔수들이 가늘고 긴 나선형의 흑색 나팔을 불어대는 사이, 나와 내 애들이 지키는 고지 주변으로 여러 발의 박격포 조명탄 사격이 가해졌다. 수백만 촉광의 빛을 발하는 원색의 조명탄들은 초연에 침침하게 흐려진 하늘에서도 분명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나팔 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발사된 조명탄들이 공격과 화력집중의 신호였는지, 불빛이 보이는 범위 내의 모든 적들이 방향을 바꾸어 이 고지로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그 양상과 속도가 옛 궁기병들의 스웜 전술을 보는 듯하다.

동시에 적 지휘관 또한 한 개 중대 규모의 예비대와 특수제작 병기들을 투입해왔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쉽게는 안 넘어가나.’

우리야 적의 속셈을 짐작하는 만큼 적극적으로 싸울 마음이 없지만, 이를 모르는 저들 입장에선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둘 수가 없었다. 온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온전한 전력을.

전장의 국면이 전환되었을 때 우리가 현 위치에서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면, 거짓 패주를 꾸미는 과정에서 예상보다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므로 패주에 앞서 이쪽을 적당히 눌러놓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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