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86화 (286/561)

#32. 뱀 (12)

6월 10일 목요일 오전 7시. 나는 야전텐트 내에서 간단하게 조리한 아침을 먹으며 베이징의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검토하고 있었다. 베이징 시 지저의 모든 시설물과 구조물들의 정보가 종합적으로 표기된 지도 데이터를.

시할구(市辖区) 별로 나누어 패키징한 데이터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파일은 러기드 노트북으로 살펴보기 버거울 만큼 용량이 컸다. 옆으로 한 번 미끄러뜨릴 때마다 잠깐씩 랙이 걸릴 만큼.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천안문 광장 앞 대로를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복잡한 지하의 시설 경로와 지반구성들을 눈에 새겼다.

‘확실하게 믿을 순 없는 정보이긴 하지만…….’

정보의 출처는 역시 3인의 경독이다. 처음에 한 사람만 국안부로 들어가도 족하다고 했더니, 내 총애를 다투듯이 국안부에 자리와 연줄을 만들어놓은 중하급 공산귀족들.

딱히 그들을 의심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건설사들이 당국에 제공한 정보가 백 퍼센트 정확할 리가 없다. 설마하니 그들이 설계도 그대로 시공을 했을 리가 있겠으며, 지표지질 조사, 수맥확인, 물리탐사 및 시험굴 조사 등등의 절차를 확실하게 지켰을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 정도의 자료만으로도 내가 대략적인 밑그림을 그려보기엔 충분했다.

여기서는 일단 기초적인 구상만 해두고, 후일 현장을 방문해서 계획의 세부사항들을 수정하면 그만이겠지.

경독들에겐 베이징에서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살짝 귀띔을 해놓은 상태였다. 지금 살피는 지도 데이터 역시 너희에게 공적을 만들어주는 데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받아낸 것.

공적 욕심으로 가득한 셋은, 확실한 정보를 입수할 때까지 일단 너희만 알고 있으라는 당부를 어기지 않을 것이다. 공연히 설레발을 쳤다가 다른 경쟁자들에게 기회를 빼앗기기라도 하면 배가 몹시 아플 테니까.

저 오쿠노시마에서 잠수정 접안 및 화학무기 채굴을 목적으로 인공 동굴을 만들 때와 같이, 베이징의 지표 아래에 비밀스러운 지저공간들을 만드는 건 내게는 매우 손쉬울 일이었다.

기존에 존재하는 지하 경로들과 비밀 통로들 사이에 감춰진 연결점들을 만들어놓고, 그렇게 완성한 미궁을 위구르인들에게 도상연습으로 숙지시키면 거사 이후의 추격전에서 추적자들에게 무제한적인 소모를 강요할 수 있겠지. 길을 헷갈리기 쉬운 길목마다 위구르어 암호로 이루어진 표식을 새겨두어도 좋을 것이다.

베이징은 런던을 위한 하나의 예행연습이 되어줄 터.

“형님.”

디지털 위장 패턴 수렵복 차림을 하고서 텐트로 들어온 수연이 조용하게 보고했다.

“위성전화가 켜졌다는 보고입니다.”

“……위치는?”

“콩고 민주공화국 중서부, 일레보(Ilebo) 외곽의 기름야자 농장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성전화는 당연히 악마숭배자들이 주워간 결사대의 그것을 의미한다. 내 조직이 애용하는 위성전화 회사는 소유주가 자신의 단말기를 추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으므로, 단말기에 전원이 들어오기만 하면 곧바로 좌표를 확인하는 게 가능했다.

“전화는 받지 않나?”

“예. 그쪽에서 걸어오지도 않습니다.”

“유인이겠군.”

“아마도 그렇겠지요.”

예상은 했지만, 정말이지 가시를 곤두세운 두 고슴도치 간의 거리 좁히기가 따로 없다.

하기야 피차 숨고 도망 다닌 세월이 얼마인데. 나보다 훨씬 긴 세월을 도망자로 살아온 그레이스에게 나만큼의 편집증도 없기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 터였다.

나는 콧등에 깍지를 얹고 생각한 끝에 입을 열었다.

“일단은 무시한다. 지금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할 때겠지.”

“알겠습니다.”

시간 여유가 많다면 직접 가서 슬쩍 돌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으나, 당장은 이곳에서도 내 눈을 필요로 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려 텐트 밖을 내다보았다.

붉은빛이 감도는 고원의 토양 위엔 다국적 헌터 단체들의 집단 숙영지가 마련되어 있었다. 남쪽으로는 듬성듬성 바위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황량하고 거친 산지가 존재했고, 서쪽으로는 작은 규모의 금광이, 북쪽으로는 간선 도로를 중심으로 무질서하게 건설된 가난한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주술사 왕의 군세 「활과 화살」, 그리고 주술사 왕을 중심으로 뭉친 군벌들의 초국가적 동맹 「후루 연합전선」은 이링가 주에서 싹트는 혼란을 놓치지 않았다. 연방정부와 갈등을 빚는 헤헤족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규모 미상의 게릴라 전투단들을 침투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각성능력자들의 기동은 도로와 지형에 구애받지 않는다. 때문에 「활과 화살」 및 「후루 연합전선」을 상대하는 싸움은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거의 존재하지 않다시피 했다. 각각의 군세가 고착된 전선을 형성했다고 생각한 다음 날, 적 전체가 백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장소에서 재집결을 마치는 경우도 부지기수.

야음을 틈탄 각성능력자들의 분산기동은 현대적인 정찰자산을 총동원해도 포착하기 지난한 것이었다.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카카카캉! 카캉! 카카캉!」

이른 시간부터 요란하게 울리는 총성. 소리만 들어서는 거친 교전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수연이 눈썹을 꿈틀거리기에, 나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신경 쓰지 마라. 또 굿판이니까.”

“…….”

이내 무전으로 같은 내용이 전파된다. 무당의 제자들이 잡귀를 몰아낸답시고 예고도 없이 총질을 하고 있으니, 전체 인원들은 동요하지 말고 자리를 지키라고.

나는 혀를 한 번 차고서 물었다.

“카라비니에리 사바우디의 동향은 어떠냐?”

“평화유지군이 할당하는 보조임무만 수행할 뿐, 딱히 눈에 띄는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역시 인형술사가 죽었을 때 원탁과의 접점이 끊어진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인형술사의 유류품을 꼭 닮은 황금 인장반지로 내 주의를 끌었던 인간, 카라비니에리 사바우디 발로레 기동대의 대장 피에르프란체스코 베네벤타노는, 누가 이탈리아 사내 아니랄까 봐 꾸준히 수연과의 개인적인 연락을 시도했다. 기동대를 끌고 개마가 활동하는 영역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건 덤이었고.

덕분에 그쪽의 동향을 파악하기도 쉬웠다. 공적인 채널에 대하여 교차검증을 할 사적 채널이 생긴 셈이었으니까.

수연이 철저히 공능법인 개마의 임원으로서 대응하자, 놈은 개마에 이익이 되는 정보들을 미끼처럼 내어주며 수연의 환심을 사려고 들었다. 이걸로 당신네 법인 내에서 당신의 실적을 챙기면 좋으리라고.

그러한 정보의 태반은 놈의 조국이 자국의 1선 엽사단체들에게만 제공하는 1급 대외비들, 그리고 카라비니에리 사바우디가 독자적인 경로로 확보한 고가치 정보들이었다. 그 정보들은 종종 미비한 경우는 있을지언정 완전히 틀린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쪽은 가만히 있었는데 스스로 낚여주는 꼴이 한심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게 눈알이 정상인 인간 수컷의 일반적인 반응이라고 봐야 할지.

중국이 전 세계에서 미인계로 거두는 이익들을 보면 답은 후자에 더 가깝겠지.

나는 손끝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이탈리아 놈들이 아직 원탁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악마숭배자들과 제국주의자들이 물밑싸움이 한창인 지금 뭐라도 움직임을 보여야 정상인데.’

설령 피에르프란체스코의 아버지 발다싸레가 노예를 사들이는 자들의 반대 파벌에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발다싸레는 죽은 인형술사가 개인적으로, 파벌과 무관하게 거둬들인 추종자라는 뜻이 된다. 이 가정이 옳다면, 인형술사는 성 모리스와 라자러스의 기사단(OSML)이라는 커다란 먹잇감을 혼자서 집어삼킬 작정이었던 셈.

휘하에 거느린 추종자들의 실력과 규모는 원탁 내의 서열 다툼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그런 의미에서, 인형술사가 제국주의자다운 욕심을 부렸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수연이 말했다.

“원하신다면 제가 나중에 베네벤토로 가서 적정을 살피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베네벤타노라는 성이 보여주듯이, 피에르와 발다싸레의 가문은 베네벤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과거엔 귀족이었고, 현재는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유지쯤 되는 가문.

나는 시선을 기울이며 되물었다.

“갈 핑계는 있고?”

“고향 이야기를 먼저 꺼낸 자가 그자입니다. 자기가 나고 자란 도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면서, 혹시라도 여행을 오거나 하게 되면 꼭 연락을 달라는 식으로 추파를 던지더군요. 저택과 사유지를 구경시켜주고, 또 자기 가족들도 만나게 해주고 싶다고.”

“가족을 만나게 해? 아내와 자식이 있는 인간이?”

“예.”

“제정신이 아니군.”

“제정신이든 아니든, 사업상의 이유를 꾸며 방문한다면 의심을 받지 않고 발다싸레와의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됐다. 끈 떨어진 놈들에게 그렇게까지 기회비용을 낭비할 이유가 없어. 기껏해야 마스터 웨스트버튼의 또 다른 유산에 불과할 놈들인 것을.”

인형술사의 의도대로 OSML을 완벽하게 잠식할 수 있다면 좋기야 할 것이다.

그러나 결속력은 느슨하고 규모는 방대한 기사단을 다 잡아먹으려면 지나치게 많은 시간과 자원이 들어갈 터. 원탁과 싸울 힘을 기르겠답시고 그 짓을 하는 건 주객전도 그 자체였다. 조직의 규모를 고려할 때 소화불량에나 걸리지 않으면 다행일 터.

인형술사 웨스트버튼은 욕심이 너무 많았다. 그 부분까지 더해서 과연 제국주의자다웠다고 해야 할 테지만.

수연이 까딱 고개를 숙였다.

“그럼 당분간은 이제까지와 같은 정도의 주의만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조금 석연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수연쯤 되는 녀석이 고작 이 정도 판단을 위해 내 의견을 구했다는 점이 이상해서.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겠군.’

아무래도 이런 쪽의 업무에 특화된 인력을 본사에서 끌어와 현장 사무원으로 위장시켜놓을 필요가 있을 듯하다.

문제는 그런 인력들이 대부분 최소한의 전투훈련만을 이수한 비각성자 내지 자연각성자들이라는 점이지만, 수연 녀석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면 몇 사람쯤 회로를 열어주거나 교정해주는 수고는 수고라고 하기도 뭣하겠지. 위험수당과 성과급을 잘 쳐주면 지원자를 모으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보고를 더 받은 뒤, 수연을 내보낸 나는 노트북을 덮고 다 먹은 식기를 정리했다.

건기에 들어선 고원의 바람은 습도가 0%에 가까웠다. 그래서 나는 공기 중의 물을 그러모으는 대신 수통에 들어있는 물로 세안과 양치, 세신을 끝마쳤다. 물에 대한 구속력을 정교하게 활용하면 한 줌의 물로도 온몸을 닦아내고 남음이 있었다.

텐트를 나와 쨍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에 서자, 집단 숙영지의 소음이 껍질을 한 겹 벗겨낸 선명함으로 귀에 들어온다.

우선은 누군가가 수렵정보 채널에 맞춰 크게 틀어놓은 위성방송의 소리.

「……호주 정부는 자국에 상륙한 자연각성체 수마트라 호랑이 「탄타눌라 타이거」에게 생포시 3백만 달러, 사살시 백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습니다.」

「이에 현지의 환경단체들은 캔버라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무조건적인 생포로의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는데요, 이들은 아무리 사람을 죽인 각성 맹수라 할지라도 개체 수가 채 2백도 남지 않은 멸종위기동물을 죽이는 건 올바르지 않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동물의 생명권 보호를 외치는 환경운동가들과 국민의 생명보호를 우선시하는 환경당국의 갈등이 나날이 깊어져만 가는 가운데-」

다음은 헌터들을 따라다니는 장사치들이 판촉에 열을 올리는 소리.

“자, 싸다 싸! 50구경 660그레인 풀 메탈 재킷이 50발에 260달러! 운송비를 감안하면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 지금부터 2천 발만 한정 판매하겠습니다!”

“수제 장비 제작주문 받아요! 티타늄 합금 방어구에서부터 대구경 커스텀 건에 이르기까지! 저희 AJ 건스미싱(Gunsmithing)에서는 헌터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빠르고 신속하고 완벽하게 만들어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헌터들이 일으키는 일상적인 소란.

“하나, 우리는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임을 자랑스러운 명예와 전통으로 자부한다! 하나, 우리는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충성을 다하며 국가의 안전보장과 번영에 기여한다! 하나, 우리는 해병의 긍지 아래 상경하애(上敬下愛)의 정신으로 단결과 화합을 도모한다! 하나, 우리는 호국충성 해병대의 역군으로서-”

“아니 씨발 이거 뭐야. 누가 우리 천막에 이딴 거 걸어놨어? 「해병대 엽사회」 인천지회? 이거 뭐하는 새끼들이야?”

“아 거 사람들 하고는. 우리도 다 나라를 위해 일을 하는 애국자들인데, 그깟 천막 하나 잠시 긴빠이 좀 했기로서니 뭐 그리 쩨쩨하게 따지고 드나. 같은 한국인들끼리 너무 그러지 맙시다. 가뜩이나 나이도 어려 보이는 사람들이 말이야-”

이런 소란스러움을 느린 걸음으로 산책삼아 가로지른 나는, 집단 숙영지 밖 간이 하치장(荷置場)에서 등짐을 부리는 현지인 짐꾼 하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피아의 거리는 5미터쯤 되었다.

“…….”

내가 빤히 응시하자 머뭇머뭇 눈치를 보던 각성능력자 짐꾼은, 이내 시선을 피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는 짐꾼에게선 긴장한 동물의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박동이 빨라지는 심장과 긴장으로 달아오르는 신경계가 보인다.

‘대담하군.’

작금의 아프리카에서 각성능력자를 활용한 물류는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의 한 조각으로 자리 잡은 상태.

그러므로 주술사 왕의 추종자들이 짐꾼을 가장하여 움직인다 한들, 평화유지군과 외국인 헌터들이 그 정체를 파악하기는 지난한 일이었다. 길도 없는 산과 강을 달리는 수십만의 개인 운수사업자들을 무슨 수로 하나하나 붙잡아 검문검색을 실시한단 말인가. 그저 자기 발로 달릴 뿐인 이들에겐 면허도 없고 신분증도 없다.

여긴 모든 국민들이 의무적으로 등록번호를 발급받아야 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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