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85화 (285/561)

#32. 뱀 (11)

르완다 정보보안국의 린더 은쿠랑가 경찰대령은 주술사 왕의 출신을 의심했었다. 그가 옛 헤헤족 대주술사의 이름을 계승한 것은, 본인이 헤헤족 출신이라서가 아니라 본인과 전혀 무관한 땅에 분란을 일으키기 위한 포석일 가능성이 있노라고.

그 예견은 오늘에 이르러 현실로 나타났다.

수연이 정황을 살펴 내린 판단에 따르면, 주술사 왕 본인이 나서서 무언가를 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다만 탄자니아 연방정부가 현지 물정에 어두운 평화유지군 및 그 보조전력들을 등에 업고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려 들었을 따름.

일찍이 나 또한 막막함을 느낀 바, 아프리카 부족들의 세력 분포나 통시적인 은원관계 등은 외부인이 파악하기 불가능할 만큼 난해한 것이었다. 이 난해함으로 인하여 외국의 정보기관들은 많은 부분에서 탄자니아 연방정부에 의지하고 있었다.

연방정부에게는 이런 상황이 헤헤족의 권리를 축소하고 중앙정부의 힘을 강화할 절호의 기회처럼 보였던 것이겠지.

수연이 보고했다.

“헤헤족의 전통적인 영역인 우헤헤(Uhehe)는 이링가 주(州)의 경계와 대략적으로 일치하며, 이 이링가 주는 탄자니아 내륙 물류의 중심지이자 나라 전체에서 손꼽을 만큼 풍요로운 농경지이기도 합니다. 이곳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면, 그로부터 발생하는 이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겠지요.”

“그래서 외국 정보기관들을 가지고 놀았다?”

“연방정부는 그저 확증편향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외국의 정보기관들은 이미 헤헤족과 주술사 왕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었던 상태였으니까요.”

애써 거짓을 꾸밀 것도 없이, 의심을 심화시킬 간접적인 정황들만 제공해도 목적을 이루기에 충분했으리라는 말. 이렇게 하면 나중에 책임을 회피하기에도 좋다. 어쨌든 우리가 제공한 정보 자체엔 문제가 없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보고를 들으며, 나는 미국이 아프간에서 벌였던 삽질을 떠올렸다.

‘하여간 역사는 반복된다고 해야 하나…….’

미국이 소련에 맞서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을 지원할 적에, 청렴하고 유능하며 종교적으로도 지극히 개방적이었던 아흐마드 샤 마수드 대신 이슬람 극단주의 탈레반 꼴통들에게 지원을 몰아주었던 이유는 단 하나. 현지 정보를 직접 파악할 시스템을 구축하기 귀찮았던-혹은 능력이 없었던-CIA가 파키스탄 정보부(ISI)에 정보수집 및 인력관리 외주를 맡겼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보다도 어리석었던 짓.

파키스탄 정보부는 멍청한 미국 놈들의 확증편향을 심화시키며, 미국의 돈으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동시에 진정한 믿음의 형제들을 무장시키는 데 힘썼다.

이렇게 곱씹다보니, 한편으로는 르완다의 대통령이 했던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네만, 자네가 브리핑을 듣고 나서도 임무 내용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내놓지 않는 게 다소 어이없기도 했어. 이 새끼, 여기가 아프리카라고 모든 걸 쉽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거든. 자네도 알겠지만 세상에 그런 놈들이 워낙 많지 않은가.」

대통령의 말처럼, 세상엔 그런 놈들이 정말로 많았다. 검은 대륙의 주민들을 무의식의 층위에서 낮잡아 보는 인간들이. 각국 정보기관들의 실무자들 가운데 이 같은 무의식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자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럴 땐 내가 눈깔병신이라는 게 다행으로 느껴진다. 내 복합적인 시야는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인종의 차이를 거의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니까.

나는 한심해하는 마음을 담아 정면으로 시선을 던졌다.

「챠륵, 챠륵, 챠르르르륵-」

정신 사납게 울려 퍼지는 방울 소리. 아프리카 고원의 쨍하게 빛나는 태양 아래에서, 입에는 옥수수 파이프를 물고 머리엔 필리핀 육군 원수모를 쓴 무당 김연화가 덩실덩실 춤을 추듯 작두를 타고 있었다. 허리춤에 잔뜩 매달린 방울들이 햇빛을 반사하며 연신 금속성의 맑은 울림을 퍼뜨린다.

시퍼렇게 날을 세워놓은 초대형 작두는 겉보기로만 예리해 보이는 눈속임이 아니었다. 크기를 제외한다면 냉병기로 쓰기에 손색이 없을 정도.

주변은 형형색색의 천을 늘어뜨려 장식했고, 작두를 타는 무당의 머리 위로는 수천 장에 달하는 부적들이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이 많은 부적들을 계속해서 날아다니게 만드는 힘의 정체는 김연화가 투사하는 염동력이었다. 보는 이들에게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고도 남음이 있는 전문적인 연출이라고 해야 할까.

자연각성 능력자의 원시마법답게 광범위한 염동력의 제어엔 한계가 있었으므로, 소용돌이에 휘말린 듯 마구잡이로 날아다니던 부적들의 일부는 바닥으로 떨어지거나 허공에서 찢어지거나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럴 때마다 미친 무당은 품속에서 새로운 부적 뭉치를 꺼내어 하늘을 향해 뿌려댔다.

“물렀거라! 본 만신이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신의 위엄으로 명하노니, 이 땅에 드리운 사특한 기운들은 썩- 물렀거라!”

무당이 호통을 치자, 무당의 추종자들은 요란한 무악(巫樂) 연주로 화답했다. 꽹과리를 치는 놈도 있고, 징을 때리는 놈도 있고, 장구를 치는 놈과 길게 태평소를 불어대는 놈도 있다.

이 난리굿은 이링가 지역의 민심을 위무할 민사심리전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위무보다는 위압이라고 해야겠지만.’

헤헤족의 분위기가 날로 더 어수선해지고, 주술사 왕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주술적인 축복을 해주었다는 소문까지 돌자, 김연화는 커다란 굿판을 벌여 공개적으로 주술사 왕의 기운을 눌러버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예전이었다면 이는 간단히 무시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일궈놓은 성과들이 있다 보니, 평화유지군과 각국 정보당국들은 「현지의 문화에 최적화된 위무활동」이랍시고 무당의 계획을 지지해주었다. 주술사와 주술사의 대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저주를 두려워하는 현지인들이 행동을 조심하게 되지 않겠느냐며.

한국 정부 또한 공능법인 개마에 강력하게 요청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귀 법인의 최정예 전력을 현장 통제에 투입해달라고. 사실상 주술사 왕에게 공개적으로 도전장을 던지는 행위나 마찬가지이니, 주술사 왕의 지지자들이나 헤헤족 각성능력자 반군집단, 혹은 「활과 화살」의 습격이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가 이 웃기는 난리굿을 현장에서 보고 있는 이유였다. 이 땅의 주술사들을 홀리는 수작이 어떤 형태인지 한 번쯤 봐두고 싶기도 했고.

굿판의 외곽엔 다수의 현수막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하늘을 수놓은 부적들과 같이, 노란 바탕에 주사(朱砂)를 갈아 휘갈긴 듯 붉은 글씨를 적어놓은 현수막들.

「계룡산 작두만신 연화 킴 맥아더」

「죽지 않는 노병, 불멸의 장군신 더글라스 맥아더」

「한미동맹을 영원하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한미동맹 운운하는 정치적인 문구들을 적는 데 대해서는 각국 관계자들이 난색을 표했다고 들었다. 그러나 김연화는 “내 안의 장군신께서 그것을 바라고 계신다! 원수의 뜻에 거스르지 마라!”라며 꿋꿋하게 요구사항을 관철했다고.

결과적으로 나온 타협안은 그런 내용들을 한국어로만 적는 것이었다. 영어와 스와힐리어로 병기된 건 오직 민감하지 않은 내용들뿐.

한쪽에선 언론 기자들과 온라인 방송을 병행하는 헌터들이 저마다 카메라를 들이밀고 있다.

개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은 일전에 보았던 안개섬인지 안개점인지 하는 놈이었다. 스텔라 포르투나를 시완두 호수에 처음 정박시킬 적에, 보트를 타고 접근해서는 인사랍시고 기묘한 물구나무를 선보였던 그놈. 그놈이 수다스럽게 떠들어대는 말이 이러하다.

“개쩌미 여러분덜, 제 뒤로 저게 보이십니까? 외국인들이 K-굿판을 보면서 아주 그냥 정신을 못 차리고 있씀니다! 크흑! 우리는 우리 문화의 잠재력을 아직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말 위대합니다, 대한!”

광대 같은 감정과잉이 거슬리긴 하나, 이 현장을 지켜보는 현지인들의 멍한 낯짝들을 보건대 이들이 컬처 쇼크를 느끼고 있는 건 분명해보였다. 먼 동방에서 온 대주술사가 정화의식(우토하라)을 치른다는 홍보는 굉장히 많은 수의 주민들을 굿판으로 끌어들였다. 안전요원들이 쳐놓은 통제선 바깥은 발 디딜 틈 하나 없을 지경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경태가 탄식하듯 내뱉었다.

“어휴. 어질어질하다…….”

솔직히 나도 조금은 인지부조화가 오는 느낌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현지 주술사들의 굴종을 받아내고 주술적인 영향력을 확보했다니.

연출이 좋다고는 하나, 눈으로 직접 보고 있어도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무전기에서 평화유지군 소속 한국군 타라자(희망) 부대 통제장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현장경계를 담당하고 계신 엽사분들께 알립니다. 인근의 요새형 거주지로부터 1개 소대 규모의 각성능력자 무장집단이 나와 이곳으로 향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무장은 리-엔필드 볼트액션 소총 다섯 정, 사양 확인이 불가능한 수제 중화기 아홉 정, 더블 기네스 수준으로 추정되는 고장력 활 열한 자루, 투창기와 폭탄투창 다섯 세트-」

「대열 중심의 가마에 타고 있는 비무장인원은 복장과 휴대물품을 볼 때 해당 부족의 주술사로 추정됩니다. 비록 무장을 하고는 있으되 이쪽을 공격할 의도는 없는 것처럼 보이니, 엽사분들께서는 경계를 강화하여 주시되 자극적인 행동은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장교가 말한 집단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아프리카 부족들의 전통적인 집단 거주지는 대개 폐쇄적이고 방어적인 형태로 건설된다. 바깥엔 울타리를 두르고, 울타리를 벽으로 삼아 가호들을 배치하며, 가운데엔 공터가 존재하는 형식. 이는 중국에 존재하는 요새형 거주지 토루(土楼)의 원시적인 형태에 가까웠다.

이러한 주거지들은 마법이 돌아온 이후 진정한 의미에서의 요새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일단 각성능력자의 노동력이 있고, 환경적 위협은 증가했으니 당연한 변화라고 해야겠지.

피부 검은 주술사가 탑승한 가마는 형형색색의 전통 직물을 깃발처럼 화려하게 달아놓았다. 주술사들은 어디를 가나 통하는 게 있다고 해야 할까.

가마를 멘 원주민 각성능력자들은 미끄러지는 듯한 달음박질로 속도를 높였다. 하루 이틀 호흡을 맞춘 게 아닌지, 사람이 지는 가마치고는 흔들림이 매우 적다.

평화유지군과 헌터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저토록 거창하고 거추장스러운 가마를 타고 와서 싸움을 걸진 않겠지만, 그렇잖아도 많았던 미치광이들이 더욱 많아진 세상이지 않은가. 일단 보호 대상인 김연화부터가 제정신이 아닌 년이다.

원주민 주술사의 가마 행렬이 접근하자, 징과 꽹과리와 태평소가 어우러지던 무악이 잦아든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통역이 평화유지군 병사들의 보호를 받으며 나아가서는, 손짓발짓을 섞은 대화로 원주민 주술사의 방문목적을 확인했다.

스스로를 모토음칼리 마하힐라(MotoMkali Mahahila)라고 밝힌 원주민 주술사는 처음부터 잔뜩 골이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본 선녀의 행사가 이 땅의 사기를 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더럽히고 있다?”

커다란 작두 위에 곧게 선 채 마하힐라의 말을 전해 들은 김연화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너 어리석은 마하힐라여. 네가 오행과 사주와 천간의 이치를 들어보았느냐? 또 사람의 기운을 다스리는 위대한 사행(蛇行)의 묘리를 아느냐? 본녀는 음양과 풍수의 진리에 두루 통달한 만신 중의 만신이니라. 너는 그런 무도한 언사로 스스로를 부정 태우지 말라.”

무당이 한국어로 하는 말은 추종자에 의해 영어로 옮겨졌고, 이는 또 다른 추종자에 의해 현지의 언어로 다시 한 번 옮겨졌다.

이런 식으로 번거로운 통역을 거쳐 가며 도발적인 말들이 오가기를 잠시. 눈을 찌푸린 무당이 쥘부채를 쫙 펼치며 넓고 옅은 「발화」를 일으켰다.

화르르르륵-!

아직까지도 하늘을 날아다니던 수많은 부적들이 한꺼번에 불살라지며 재를 흩뿌린다. 무수한 불꽃들 아래 서있는 무당은 시각적으로 매우 그럴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위로, 괴황지(槐黃紙)들을 태운 재가 검고 흰 진눈깨비처럼 분분히 떨어져 내렸다.

무당의 추종자들은 그 진눈깨비를 온몸으로 맞으려 애썼고, 혹자는 바닥에 떨어진 재를 핥으려 들기도 했다.

주술신앙에 취약한 원주민 관객들은 화려하면서도 기이한 시각적 연출과 추종자들이 보여주는 열띤 광기에 압도당하는 기색들이었다. 심지어 마하힐라를 호위해온 부족전사들조차 숨을 삼키는 모습들이 보인다.

짐작건대, 현대적인 미디어로부터 소외된 삶을 살아온 자들이라 이런 식의 장면 연출에 더더욱 면역이 없는 것이 아닐는지.

이 모든 열기의 중심에서, 연출력이 남다른 사이비는 무표정한 얼굴로 꾸짖듯이 내뱉었다.

“무도(巫道)를 걷는 자는 신통으로 말해야 하는 법! 그대 마하힐라여, 불만이 있다면 이 위로 올라오라! 함께 칼날을 밟으며 누구의 신통이 더 위인지 겨루어보자! 일단 눈높이가 맞아야 대화를 해보든가 말든가 할 게 아니냔 말이야!”

이중 통역이 이루어지자, 마하힐라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과하게 찡그리는 얼굴은 동요를 감추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신경계엔 긴장과 두려움의 색채가 뚜렷하다.

그러나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노릇.

“그대는 설마 이 정도도 못할 만큼 격이 떨어지는 자인가?”

무당이 비웃음을 물고 행하는 또 한 번의 도발.

분개하여 가마에서 내린 마하힐라는 작두를 앞두고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를 꽉 깨물고서 첨예한 칼날 위로 다가갔다. 그의 부족원들도, 현장에 배치된 안전요원들도 그를 만류하지 않았다. 후자 쪽은 이런 상황이 발생할 경우 가로막지 말라는 사전교육을 받은 상태이기도 했다.

“아아아아악!”

햇빛에 데워진 작두날이 핏빛으로 젖어든다. 한쪽 발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굳은살로 어찌 버티는가 싶었으나, 완전히 올라서는 순간, 중심을 잡느라 애쓰는 과정에서 먼저 디딘 발이 사악 갈라져버린 것. 마하힐라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며 더욱 큰 자상을 입고 말았다. 허벅지까지 베인 오른 다리로부터 대량의 피가 쏟아져 나왔다.

발을 보호할 만큼 섬세한 염동력도, 칼날을 밟는 노하우도 없는 자의 최후.

“한심한지고!”

들것에 실려 가는 주술사를 내려다보며 혀를 찬 미친 무당은, 착- 소리가 나도록 부채를 접고서 허리를 굽혀 마하힐라의 피를 손가락으로 찍어들었다. 그러고는 그 피를 핥아 맛보더니, 미간에 주름을 잡고 저의 추종자들에게 지시했다.

“피에서 짙은 음기가 느껴진다! 저자는 필시 질투에 사로잡혀 잡귀에게 정신을 내주었던 것이 틀림없다! 연화천군은 당장 양진(禳鎭)을 행하여 이곳에 양기가 충만토록 하라!”

이어지는 건 추종자들의 공포탄 사격이었다. 총구를 어댑터로 막아놓고 갈겨대는 여러 구경의 공포탄 연사. 각각의 총에는 노란 부적들을 덕지덕지 붙여놓았다.

한 차례 시끄러운 연사가 끝나자, 머리 위의 하늘에 마력을 태우는 불을 넘실거리도록 만든 김연화는, 흩어지는 초연의 중심에서 춤을 추듯 칼날을 밟으며 제자들에게 판소리 같은 가르침을 내렸다.

“제자들은 들으라! 귀는 곧 음이요 음의 상극은 양이라. 양기를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이 불의 기운을 충만케 하는 것이니, 우리의 지혜로운 선현들은 매양 화약을 터트리고 총포를 쏘아 삿된 것들을 몰아냈느니라! 대한제국의 고종 태황제께서도 개귀신이 달을 삼키자 하늘에 기관총을 쏘라고 명하시어 양진과 벽사(辟邪)를 행하셨도다!”

“알겠느냐? 총을 쏘고 포를 놓음이 한 가지로 통하는 벽사의 방술인즉, 너희 아직 부족한 자들이 삿된 것을 빠르게 몰아내고 싶다면 화력집중만 한 특효약이 없는 것이야! 만약 화력으로 귀신을 몰아낼 수 없다면 그것은 그저 너희가 쓴 화력이 부족한 것일 뿐이다!”

“강한 화력! 강한 퇴마! 이것은 맥아더 장군신께서 내리신 가르침이기도 하니라! 사격으로 모자라면 포격을! 포격으로 모자라면 폭격을!”

들으면 들을수록 점점 더 어이가 없어지는 내용이었다. 요가수트라의 내용을 이식한 교리를 접했을 땐 그래도 나름 공부를 한 사이비인가 싶었는데.

김연화의 춤사위 아닌 춤사위는 거의 한 시간에 걸쳐 이어졌고, 굿판을 보는 현지인들은 피 묻은 작두 위의 무당에게 갈수록 더한 두려움과 경외심을 느끼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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