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82화 (282/561)

#32. 뱀 (8)

내가 스텔라 포르투나로 복귀하기 하루 전, 다르에스살람 우팡가 이스트(Upanga East) 소재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마무르는 현지의 수니파 공동체 관계자들 몇몇과 도합 다섯 시간에 달하는 기나긴 대화를 나누었다. 교리에 관한 심층적인 토의, 세태를 논하는 한담, 평범한 담소, 알라의 적들에 대한 성토 등.

이 대화의 갈피에, 마무르를 비롯한 대화의 참가자는 쿠란과 하디스의 은유들을 활용하여 은밀한 메시지들을 숨겨놓았다. 대화 속의 또 다른 대화가 존재했던 것이다.

「싸장님은 오해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비밀스러운 만남은 저쪽에서 먼저 요청하였다.」

스피커폰에서 높은 음량으로 흘러나오는 마무르의 변명. 명치 어림이 답답하게 막히는 느낌이 드는 와중에, 눈꺼풀 안쪽의 열기가 짜증을 심화시킨다. 두어 시간 남짓한 수면으로는 8주야에 걸쳐 쌓인 피로를 풀기 역부족이었다. 지금 나 스스로가 매우 날이 선 상태임을 자각하며, 나는 눈을 감고 미간을 누르며 속을 다스렸다.

“그래서, 내게 알리지 않고 그 요청에 응한 건 문제가 아니다?”

「그거는 미안하다는 거예요. 그러나 그 또한 필요한 일이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필요? 어디에?”

「싸장님 아래에 있는 믿는 자들의 수준을 파악하기 위하여.」

“…….”

자신의 수준을 헤아리려 했다는 말에, 동석해있던 메리옘이 조금 당황하는 기색을 드러낸다. 직전까지는 분노 어린 시선으로 스피커폰을 노려보던 참이었다. 그 분노의 정체는 필시 저의 구원자를 번거롭게 만든 이교도에 대한 적개심이었겠지.

나는 한숨과 함께 물었다.

“일단 물어보지. 그게 당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소?”

「당연히 의미가 있습니다. 나는 싸장님의 아래에 믿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는 알지 못하였어요. 나는 그 깊이를 측량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왜?”

「그들의 믿음이 충분히 깊다면, 만에 하나라도 싸장님이 우리 신앙의 형제들에게 해가 되는 계획을 추진할 경우, 믿는 자의 양심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믿는 자들은 신앙의 형제들을 배반하지 않아요.」

“……요컨대 나와 내 조직에 대한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시험이었다 이거요?”

「옳아요. 내가 숨겨놓은 언어적인 시금석들은 진정한 믿음에 대한 앎이 부족한 자들이 발견하지 못할 것들이었어요. 나는 싸장님의 아래에 있는 믿는 자들이 시험을 통과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감사하십시오. 신실한 자들과의 인연을 당신에게 선물해주신 알라의 은총에. 이로써 싸장님에 대한 나의 믿음엔 추가점수가 더해진 것이다.」

이쯤 되면 어이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을 지경이다. 나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무르가 행한 시험의 허점을 지적했다.

“정말 이쪽을 시험할 요량이었다면, 최소한 그렇게 대놓고 의심스러운 상황을 만들진 말았어야 하는 거잖소,”

「대놓고 의심스러운 상황?」

광신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대꾸했다.

「이 마무르의 행적 어디에 그런 불완전한 것이 있었는지? 싸장님은 화가 난다고 괜한 트집을 잡지 마십시오. 나는 지적능력이 남다른 알라의 전사예요. 나의 계획은 완벽하였고, 계획의 실천엔 아무런 흠도 존재하지 않았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뜬금없이 시비를 건 게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고?”

「시비라니? 내가 언제 무슨 시비를 걸었습니까?」

이번에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

「나는 공감능력이 남다른 알라의 전사예요. 비록 진정한 목적은 싸장님의 사람들을 잠시 떼어내는 것이었어도, 그 불쌍한 광인에 대한 나의 연민엔 한 점의 거짓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를 알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도 있어요.」

“…….”

「나는 오히려 거꾸로 궁금합니다. 싸장님은 내가 동정하였던 정신착란 동정남이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정말로 그렇다면 반성하십시오. 싸장님의 인간성엔 결함이 있습니다.」

어처구니없지만, 극단주의 이슬람 광신도가 알라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는 게 거짓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런 맹세를 거짓으로 했다간 영혼이 지옥에 떨어진다고 믿는 게 교리 좀 익혔다는 근본주의 무슬림들의 평균이니까.

내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마무르는 혼미한 장광설을 열성적으로 쏟아냈다.

「아십니까? 그것은 결코 개인의 비극이 아닙니다. 한국의 온라인 환경엔 같은 종류의 가엾은 불신자들이 많이 존재하는 것. 남녀를 불문하고 너무도 많이.」

「그들의 삶은 공허해요. 생활수준이 높으면 뭐합니까? 연애를 못하는데. 나라가 잘 살면 뭐합니까? 결혼을 못하는데. 짝을 찾지 못하는 자들의 마음속엔 미움만이 가득합니다. 그들은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미워하는 자들이다. 남녀가 사랑을 나누고 그 결실을 보는 것은 알라께서 사람에게 허락해주신 가장 큰 행복입니다. 사랑의 멋짐을 모르는 한국인들이 불쌍해요.」

「그러므로 한국인들은 알라를 믿어야 합니다. 오직 진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만이 진실된 사랑을 할 수 있으며, 오직 전능하신 알라만이 그들의 공허한 삶을 충만케 할 수 있어요. 남자들은 전사의 자격을 증명하고 여자들은 그 전사들에게 명예롭게 주어져야 한다. 소명을 거부하는 여자들은 돌로 쳐 죽여서 본보기로 삼고-」

“그만. 사설은 그쯤 해두고 본론으로 돌아갑시다.”

수다스러운 광기를 듣다 못한 내가 제동을 걸었으나, 마무르는 포기하지 않고 결이 다른 헛소리를 내뱉었다.

「내 말이 듣기 싫습니까? 그것은 싸장님의 삶도 공허하기 때문이다. 나는 싸장님이 홀몸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듣고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싸장님은 지금껏 가정도 꾸리지 않고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 당신은 알라께서 내려주신 얼굴을 낭비하고 있다.」

“그만하라고 했소.”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사내는 가정을 이루어야 비로소 완전한 성인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러니 하루라도 빨리 알라께 귀의하여 진실된 사랑을 찾으시라는 거예요. 이게 다 싸장님 잘되라고 드리는 충고입니다.」

정말이지 들어주기 괴로운 개소리들이로군.

한편으로는 기시감도 느껴진다. 칸드라키라나가 비슷한 말들을 지껄였었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희언들을.

핏줄은 약점이다. 가족은 없어야 한다.

광신도의 수다가 끊어지면서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본론을 겨냥한 질문으로 정적을 깼다.

“그래서, 거기 들어가 만난 상대의 정체는 해적함대의 사람이 맞소?”

메리옘이 해석한 비밀대화의 내용엔 바다와 군주에 관한 암시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을 지적하는 내 물음에, 마무르는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맞습니다. 정확하게는 후루 연합전선의 지지자로서 해적함대를 돕는 자이지만, 큰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싸장님 아래의 신실한 자가 문제를 참 잘 풀었어요. 그에게 나 마무르의 칭찬을 전해주십시오. 알라의 축복을 받은 언어의 천재가 너를 높이 평가하였다고.」

“그가 당신을 찾은 이유는 뭐요? 후루 연합전선에 끌어들일 만한 사람으로 보였나?”

「정확합니다! 싸장님 당신은 영명한 불신자!」

“…….”

「그의 이름은 파라지(Faraji). 파라지는 일찍부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하였어요. 나의 종교적 열정과 빛나는 지성이 매우 특별하게 보였다고. 시일을 두고 내 진정성을 가늠한 그는, 마침내 자신이 기여하고 있는 거룩한 싸움을 나와 공유하기로 마음먹은 것입니다.」

“이 지역에서 그자가 수행하는 역할은?”

「파라지는 해적함대에 정보를 제공해요. 항구엔 어떤 배들이 얼마나 정박하고 있는지, 인근 해역을 통과하는 무장선박 및 군함들은 어느 항로를 경유하여 어떤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지, 평화유지군과 평화유지군에게 협조하는 현상금 사냥꾼들의 동향은 어떠한지, 강을 거슬러 타격할 만한 내륙의 목표들은 무엇이 있으며 납치할 가치가 있는 외국인들은 어디에 얼마나 머물고 있는지 등등을 알려줍니다.」

“혼자서 감당할 만한 일이 아닌데.”

「그렇습니다. 본인의 말을 믿는다면, 파라지 형제는 해적함대가 다르에스살람에 깔아놓은 신경망의 중심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역할이에요. 내가 하는 게임에서도 서포터 노예가 와드 박기를 게을리하면 그 판은 말아먹기 십상인 것.」

나는 게임 어쩌고 하는 헛소리를 흘려들으며 물었다.

“그래서, 당신은 그를 얼마나 믿소?”

「믿지 않아요.」

딱 잘라 부정하는 마무르.

「우리는 이제 갓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단계에 불과합니다. 그의 진짜 이름은 파라지가 아닐지도 모르고, 그가 밝힌 스스로의 신분은 그가 섬기는 더 높은 이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그가 내 앞에서 털어놓은 성전에 대한 열정이다. 그러한 열정엔 같은 알라의 전사들이 아니고선 흉내 내기 어려운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

“흠…….”

언뜻 광신도의 자아도취에 가깝게 들리는 호언이지만, 외부인이 쉬이 따라 하기 어려운 문화적 코드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폐쇄적인 것이 무슬림들의 공동체인데, 알라의 전사들은 그 공동체 안에서 울타리 안의 울타리를 치고 있기까지 하니.

이번에도 가만히 듣고 있던 경태가 언제나처럼 뜻 모를 혼잣말을 읊조린다.

“하긴……. 한낱 커뮤니티 첩자질도 티가 나기 십상이니까.”

나는 굳이 혼잣말의 의미를 묻지 않았다. 보나마나 또 경태 또래의 문화적 코드 같은 것일 테지.

“요컨대 백 퍼센트 신뢰할 순 없을지언정 그가 해적함대를 위해 일한다는 것 자체는 믿어도 괜찮으리라는 말이로군.”

마무르는 내 말을 가벼운 음색으로 긍정했다.

「옳아요. 그는 간접적으로나마 해적군주와 주술사 왕의 세력에 닿아있는 사람. 나는 싸장님이 일찍이 루구루 사람들과 접촉하려 한 이유가 그들의 뒤에 있을지 모를 주술사 왕의 사제라고 생각한다. 내 추측이 맞습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양해하십시오. 싸장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 나의 일탈행위를. 파라지가 루구루 사람들에 비해서는 가치가 낮은 끄나풀일지 모르나, 그래도 최소한 해적함대와의 연락책으로서 싸장님이 새로운 이익을 찾는 데엔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아니꼽긴 하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제라도 내게 양해를 구하고 싶다면, 그 전에 먼저 당신이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지 않소?”

「그게 무엇입니까?」

“믿는 자로서의 맹세.”

「…….」

“당신의 영혼을 걸고 알라의 이름으로 맹세하시오. 오늘 내게 털어놓은 이야기엔 한 점의 거짓이 없으며, 나를 기만할 목적으로 감추고 있는 사정도 없고, 앞으로는 절대 이런 식의 돌발행동을 저지르지 않겠노라고.”

「그것은 곤란하다.」

마무르는 평소보다 진지한 어조로 얄미운 소리들을 늘어놓았다.

「앞의 둘은 백 번 천 번이라도 맹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는 아니에요. 한국인들은 말합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고. 그것은 매우 현명한 지혜. 싸장님은 돌다리다. 싸장님이 진정한 믿음으로 묶인 형제가 되기를 거부하는 한, 나는 끊임없이 싸장님을 두들겨보아야 할 책임이 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나를 믿고 의지하는 다른 형제들을 위하여.」

결국 나는 앞의 두 가지에 대해서만 맹세를 받아내는 선에서 만족해야 했다.

두통과 졸음이 밀려온다. 나는 한숨을 삼키며 말했다.

“목적을 다 이루었으면 그만 거기서 나오시오. 다섯 공장들의 기술자 제2진을 수송할 준비가 완료되었다 하니.”

「오, 그것은 기다리던 소식이다!」

“혹시 나오는 데 내 도움이 필요하오?”

「아닙니다. 나를 연행한 경찰도, 이 시설의 관리자도 모두 파라지의 친구들이자 신앙의 형제들인 것. 대기하십시오. 나는 신속하게 당신의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예상 소요시간은 3시간 이내이다.」

“알겠소. 그럼 이만 끊읍시다.”

「잠깐.」

“또 뭔가 용무가 있소?”

「싸장님, 정말로 진정한 믿음을 가질 마음이 없습니까? 싸장님이 예언자의 백성이 되어주기만 하면 우리의 협력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어요. 나는 싸장님을 신실한 전사의 길로 인도할 것.」

“…….”

솔직히 말해, 그런 생각을 아예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 형식적으로나마 무슬림 흉내를 냄으로써 이득을 좀 취해볼까 하는.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될 게 분명했다. 아무렴, 멍청이가 아닌 이상에야 “나 입교했소.” 한마디만으로 내게 믿음을 줄 리가 있나. 마무르의 말마따나, 광신도들에게는 광신도들만이 감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도중에 포기한다면 아예 시작을 안 한 것만 못한 꼴이 되겠지.’

그랬다간 광신도들의 눈에 배교자로 비칠 테니까. 이슬람의 교리에서, 배교자는 이교도나 무신론자보다도 더 취급이 좋지 못한 죄인들이다.

「만약 싸장님이 신앙의 형제가 된다면 나는 내 동생을 소개시켜줄 수도 있다. 나의 일곱 번째 누이는 올해로 여덟 살이 되었어요. 여자가 결혼하기에 딱 좋은 나이. 눈이 크고 얼굴이 갸름하니 장차 미인으로 자랄 게 분명하다. 같은 핏줄인 나 마무르의 잘생긴 얼굴을 참고자료로 제출합니다.」

“닥치고 나오기나 하시오.”

나는 기어이 역정을 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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