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81화 (281/561)

#32. 뱀 (7)

김연화는 한국 엽사단이 아프리카 땅을 밟자마자 돌발행동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인물이다. 정부의 통제를 무시한 채, 이 대륙의 주술사들을 굴복시키고 돌아오겠다며 자취를 감춰버렸던 것. 혼자서 사라진 게 아니라 「연화암」의 핵심 전투단인 「연화천군」까지 끌고 가는 바람에, 정부는 기존에 계획했던 법인별 임무 할당을 처음부터 다시 짜내야만 했다.

그때만 해도 그저 미친년이 미친 짓을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게 먹혔다고?”

“놀랍게도,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입니다.”

내 물음에 답하는 수연은 보기 드물게 표정으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김연화 대표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연화천군의 규모는 처음보다 다섯 배 가까이 늘어나있었다더군요. 그녀에게 감복한 마흔아홉 명의 주술사들이 저를 따르는 각성능력자 전사들의 일부를 선별하여 바쳤거나, 혹은 주술사 본인이 직접 동행한 결과라고 합니다.”

“…….”

“정부와 각국 정보당국들이 김연화 대표의 협조를 구해 합동심문을 진행한 결과, 그렇게 추가로 합류한 현지인 주술사들 중엔 본디 「활과 화살」에 가담했던 자들도 다수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설마 주술사 왕의 일곱 사도들 중에서 이반자가 나온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탄자니아 쪽에서 한 개 주(州)의 전도 총책을 맡았던 주술사가 하나 있기는 해도, 나머지는 지위가 그렇게 높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정보를 입수할 채널로서는 가치가 있겠군.”

“예.”

어쩐지 두통이 느껴진다. 관자놀이를 꾸욱 꾹 눌러가며, 나는 일단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어이가 없긴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두고 비현실적이라고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술사 왕이라는 전례가 있으니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인종의 차이와 문화적 차이, 그리고 언어적 장벽을 극복할 수만 있었다면.

그간 대륙 반대편을 찍고 온 내가 할 말은 아니겠으나, 그 미친 무당이 대체 얼마나 멀리까지 싸돌아다녔기에 휘하에 밤부티족의 근황을 아는 자가 존재하는 걸까. 밤부티의 터전은 콩고민주공화국의 북동쪽 변경에 있건만.

‘내가 그 여자의 명함을 어디에 두었더라?’

국민외교센터의 브리핑 룸에서 받았던 원색 요란한 명함. 연화암엔 당연히 업무용 연락창구가 존재하지만, 협조를 구하자면 본인에게 직접 연락을 하는 쪽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었다. 공능법인의 대표쯤 되면 전화 단말을 하나만 쓰지는 않을 터. 내게 건넸던 명함은 필시 아무에게나 건네는 것이 아니었겠지.

그러나 나는 이내 내가 그 명함을 버려버렸음을 떠올렸다. 설마하니 이렇게 저급한 사이비 따위가 필요해질 일이 있겠는가 싶었던 까닭.

이제껏 다과를 집어먹으며 가만히 듣고만 있던 경태가, 핸드폰을 만지작대더니 오- 하고 감탄사를 흘렸다.

“그 사람, 모르는 사이에 되게 유명해졌군요. 검색해보니까 장난이 아닙니다. 방송에도 나오고, 뉴스 기사도 있고, 관련된 동영상들도 줄줄이 뜨고.”

“잠깐 보자.”

“옙.”

나는 경태가 건네주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대동소이한 내용의 뉴스 기사들이었다. 김연화가 믿기지 않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 성과를 토대로 민간인 구조와 중요 자산 보호, 정보수집 등에서 중대한 기여를 하기 시작했다고.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건 형형색색 요란한 글씨를 박아놓은 동영상의 썸네일들이었다.

「한국의 미녀 무당이 아프리카 평화유지활동의 희망으로 떠오르다? 전 세계 언론들, “한국의 주술엔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 아프리카 대륙이 K-무속에 열광하는 이유 집중 분석!」

「일본이 질투하고 중국이 시기하는 한국 문화의 영향력! 이제는 주술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다! “한국 주술을 몰라서 인생 절반 손해 봤다. 연화 킴 맥아더 장군선녀님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는 현지 주술사의 솔직한 고백!」

「CIA가 정식으로 협조를 구하는 K-무당의 위엄! 국제 고위험 수렵협회장 “한국이 수출하는 헌터 인력은 대체가 불가능한 중요 자원이다.”라고 발언하다!」

「장군선녀와 주술사 왕의 대결, 선녀의 승리가 유력하다! 연화 킴 맥아더에게 진심으로 감복한 현지 주술사들! 이러다간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한국의 영향권에 들어올지도?! 한국의 문화승리로 일대일로가 끝장날 위기에 처한 중국의 애타는 속마음!」

…….

쓰레기 같은 정보들을 걸러 가며 스크롤을 내리던 나는, 김연화가 최근 들어 새롭게 전파하기 시작했다는 주술적 가르침에 관한 내용을 발견했다.

「생명과 영혼의 힘은 움직이기 전까지는 단단히 몸을 감은 상태의 뱀과도 같다. 단전 아래 회음부에서 잠자고 있는 이 뱀을 깨워 단전과 배꼽과 심장을 거쳐 정수리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영혼의 힘을 다스리는 방법의 요체다. 회음부, 단전, 배꼽, 심장은 각각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기운을 품고 있으며-」

김연화의 가르침을 읽던 나는 미간을 좁혔다.

‘이건 요가수트라에 수록된 회로 운용인데…….’

생명과 영혼의 힘을 뱀에 비유하는 것도 그렇고, 기운이 움직이는 경로나 각각의 관문이 지닌 속성을 설명하는 부분도 요가수트라의 그것-쿤달리니와 차크라-을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었다. 사이비치고는 나름 공부를 했다고 해야 할까.

지, 수, 화, 풍의 기운이니 오행의 속성이니 하는 것들은 아무 의미도 없고, 본격적인 회로 운용이라고 봐주기도 어려울 만큼 유치한 수준. 디테일 면에서 원전에 한참 못 미치기도 한다. 그러나 회로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양생법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했다.

일단 배우는 자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어디란 말인가.

과거 대마법사들에게 살해당한 히말라야의 수행자들도 요가수트라를 등불 삼아 영적인 성장을 이루었던 것이다. 대마법사들의 기준으로는 미물과도 같았을지언정.

경태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준 나는 다음 보고들을 이어서 받았다.

사상 최대 규모의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멕시코에선 배불뚝이 페루쵸가 할리스코 주(州)의 유력한 차기 주지사로 점쳐지고 있었다. 지지율 조사 결과 오차범위 밖에서 2위를 따돌리며 1위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으니, 남은 며칠간 이변이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승리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말인즉, 배불뚝이가 과달라하라의 복구 책임을 넘겨받으리라는 뜻.

기사단장이 일으킨 「고기방패들의 전쟁」으로 시가지 전체가 전장이 되었던 과달라하라는, 적잖게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당시의 피해를 복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마르띠네즈 제독에게 돈이 많이 필요해지겠는데.”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수연이 까딱 긍정했다.

“다양한 제안들을 보내고는 있습니다만, 형님에게까지 보고를 드릴 만큼 타당성을 갖춘 사업계획은 없었습니다. 다만-”

“다만?”

“「바닥의 권리」에 대한 일시적 양도조치를 1년 더 연장해줄 수 없겠느냐고 문의하더군요. 페루쵸가 주지사직에 취임한 후 각종 조달사업의 중개권으로 갚겠다면서.”

일찍이 나는 「사막의 사람들」 마샤트 파벌의 보호를 위해, 그리고 제독에 대한 간접적인 지원을 위해, 푸에르토 바야르타에서 거둘 비공식적 세금의 권리를 한시적으로 제독에게 넘겨준 바 있었다. 나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명확하지 못한 대가로군. 주 정부의 금고가 거덜 난 지 오래인 마당에, 무슨 사업이 얼마나 있을 줄 알고.”

한정된 사업 풀 내에서 손익분기점을 찍는 이익을 뽑아내면, 제독은 분명 달갑잖은 반응을 보여줄 터였다. 화장실은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기분이 다른 법이니까. 여측이심(如廁二心). 호의를 베풀어주고도 욕을 얻어먹는 경우인 것이다.

수연의 시선이 미세하게 기울어졌다.

“거절할까요? 나름 고심해서 보냈을 제안들을 모조리 쳐내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불만을 사겠지.”

나는 턱을 매만지며 물었다.

“슬슬 마샤트도 배를 탈 때가 되지 않았나?”

“조만간입니다. 항구에 마지막으로 도망자가 도착한 게 벌써 27일 전의 일이니, 조금만 더 시일이 흐르고 나면 그녀 또한 현실을 받아들이겠지요.”

자기 파벌의 생존자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으며, 설령 남아있다 한들 몰락한 추장대행에게 다시 합류할 마음은 없으리라는 현실을.

그럼에도 계속해서 항구에 체류하고 있는 마샤트는, 그저 긴 시간을 들여 자기만족의 선을 긋고 있을 따름인 것이었다. 스스로에게 자기최면을 거는 과정.

“그녀를 받을 준비는 되어있고?”

“심리 상담을 비롯해, 현실도피를 유도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두었습니다.”

“잘했다.”

“제독과의 관계를 재고하시겠습니까?”

“글쎄.”

자기 자신에 대한 설득을 마친 마샤트가 내 아래의 그늘로 들어오고 나면, 마르띠네즈 제독은 거래처로서의 가치 하나를 영구적으로 상실하게 된다.

그럼 그에게 남는 가치는 셋. 경쟁력이 낮은 1차 무기 공급자로서의 가치. 멕시코 내 보유 자산들의 관리자 겸 보호자로서의 가치. 그리고 마지막으로, 될성부른 정치인이 된 배불뚝이 페루쵸와의 연결점으로서의 가치.

지금 상황에선 무엇 하나 매력적인 것이 없다. 물론 페루쵸의 정치편력이 화려해질수록 기대이익이 커지겠으나, 그 배불뚝이가 제독의 기대에 부응하여 딸을 잃은 아버지의 청렴함을 유지해나간다면 기대이익의 성장률은 아주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릴 것이다.

요컨대, 아주 길게 보고 투자를 해야 하는 상품이라는 뜻.

런던 공략에 시간제한이 걸린 마당에 장기투자가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을 이어나간 끝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분간은 좋은 대우를 유지해주도록 하지. 대신 우나쁘로쁘(멕시코 항만보안대) 출신 정예 인력을 얻어내는 쪽으로 방향을 잡아보자.”

“런던에 투입할 또 다른 팀을 꾸리는 겁니까?”

“아니. 내가 뭘 믿고 그들을 런던에 밀어 넣나. 단지 국제사업부 밀수처 해상운송 인력을 부분적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뿐이야.”

중요도가 낮은 운송의 경호업무는 용역으로 대체해도 무방할 터. 그렇게 본사 인력의 여유를 만들어 놓으면 필요할 때 그만큼 많은 전력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군요. 그럼 제독은 무엇으로 달래시겠습니까? 제가 느끼기로는 몸이 많이 달아있는 듯했습니다.”

“정치는 결국 먹고 사는 것에 관한 문제지. 「양광백포」를 통해 확보 가능한 식자재 물량엔 얼마의 여유가 있나? 가오슈센에게 꼬리가 밟히지 않을 선에서 말이야.”

양광백포. 나와 가오슈센이 공동 출자로 세웠으며, 단순한 1차 생산을 넘어 중국 정부가 국가적인 노력을 들여 확보하는 식량자원들을 큰 비율로 떼어와 가공, 유통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는 초대형 농업회사.

이 회사를 이용하여 내 아랫것들의 풍족한 식생활을 보장한다는 당초의 목표는 진즉에 초과달성을 이룬 지 오래였다.

내게 직접 빚을 진 정규 조직원들과, 목숨을 빚지진 않았을지언정 조직을 위해 일하는 준 조직원 취급의 피고용인들, 그리고 그들의 직계가족들까지 합치면 머릿수가 10만을 훌쩍 넘어가지만, 양광백포는 중국 대륙의 14억 인구를 겨냥하여 끊임없이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회사였으니까.

수연의 대답은 빠르게 나왔다.

“이윤을 얼마나 남기는가에 따라 달라질 문제겠으나, 이익을 남기지 않더라도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최저수요쯤은 감당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제독 한 사람에게 몰아주기엔 과분한 물량이니, 술타나 칸드라키라나에 대한 동시지원을 고려해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술타나는 왜? 그쪽에서도 아쉬운 소리를 하던가?”

“이 역시 따로 보고드릴 사안이었습니다만, 술타나의 「라스카르」가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정식으로 잠비 인근지역의 치안 및 생활안전 유지를 보조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래?”

“예. 날이 갈수록 극단주의 이슬람 반군들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에서, 따로 대가를 받지 않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며 계속해서 친정부적인 포지션을 어필한다는 전략이 효과를 보았다는 모양입니다.”

“단지 그것뿐인가?”

“정부로부터 비공식적인 제안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슬람 반군의 세력 확장을 지속적으로 저지해주면, 그 성과에 따라 욕야카르타의 술탄과 같이 세습직 주지사 자리를 내어주고, 또 군주 칭호의 사용도 허락해주겠다고.”

“독이 든 성배로군. 정부가 바라는 건 술타나와 이슬람 반군의 양패구상일 텐데. 구체적으로 언제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보장도 없고. 그냥 무상으로 용병을 부리겠다는 심보 아니냐.”

“그래서 술타나는 일을 맡기에 앞서 정부가 자신의 혈통을 공인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대외활동을 할 때 잠비 술탄국의 후예를 자처할 수 있도록.”

“주민들의 지지를 얻어 여론을 만들어놓겠다 이거로구나.”

“그렇습니다.”

이거 잘하면 그 골초 꼰대가 정말로 왕국을 되찾을 수도 있겠군. 비록 전제군주제도 아니고 독립국도 아니지만, 그래도 한 지역의 최고 권력자로서 부끄럼 없이 군주의 칭호를 쓸 수 있게 된다는 게 어디인가. 꼰대의 결핍을 채우는 데엔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다.

“그쪽의 실무진은 은근히 각성능력자 전투단 지원을 희망하는 눈치였다고 합니다만, 지금의 우리가 전력을 나눌 처지는 아니지요. 최대한 많은 예비대를 쥐고 있어야 할 때니까요.”

나는 수연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 차라리 식량을 싸게 팔아주는 편이 낫겠지. 네 뜻대로 진행해라.”

“예.”

“술타나의 신변엔 이상이 없다고 하던가?”

폐가 거무칙칙하게 물들어있는 골초의 건강은 수시로 확인해야 마땅한 사업상의 불안요소. 인도네시아에 남겨둔 부하들에게도 유의하여 살피라는 당부를 해놓았다. 당연히 수연이 받은 보고에도 관련된 내용이 있었을 터.

“건강상의 이상 징후는 없었다고 합니다.”

“다행이군.”

“단지, 아들이 모종의 문제로 술타나의 속을 썩이고 있다는 소문이 돈다더군요.”

그런 사소한 것까지 보고가 올라왔나. 나는 싱겁게 대꾸했다.

“우리가 그 꼰대의 가정사까지 신경 쓸 이유는 없지. 다음 보고를 듣겠다.”

수연은 계속해서 밀린 보고들을 이어나갔다. 모든 보고를 듣고 결재를 끝내는 데엔 한 시간 반가량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나는 이제 휴식을 취하고자 자리에 누웠으나, 채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도로 눈을 떠야만 했다. 메리옘이 급하게 나를 찾은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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