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80화 (280/561)

#32. 뱀 (6)

비록 평상시 얼간이 같은 언행을 보여주기는 해도, 마무르는 결코 멍청한 인간이 아니다. 모든 행동엔 이유가 있다고 봐야지.

각성능력자 헌터들이 모여드는 장소엔 다수의 경찰과 군 병력이 배치된다. 일찍이 임마누일이 나를 불러들였던 호텔이 그러했고, 지금 스텔라 포르투나가 닻을 내리고 있는 이 호수가 또 그러하듯이.

마무르가 말썽을 일으킨 장소는 다르에스살람 한복판의 번화가였다. 외국인 헌터들의 소비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

이토록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 주먹다짐을 벌이면 체포를 면하기 어렵다.

군경이 꾸린 순찰대야 뇌물이나 좀 받고 현장에서 훈방해주고픈 마음이 굴뚝같겠지.

그러나 현지 민심의 악화를 우려하는 온갖 협회니 연맹이니 하는 단체들이 군경의 치안행정에 협조를 해주고서 홍보자료를 뽑아가는 중이고, 탄자니아 연방정부 또한 외국인 헌터들이 공권력의 아래에 있음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고 있었으므로, 실질적인 처벌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연행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마무르는 지금 어디에 있지?”

내 물음에 수연이 답했다.

“국제공항 인근의 외국인 각성능력자 격리시설에 구류되어 있습니다.”

“출입 인원은 확인하고 있고?”

“시설 주변으로 감시망을 구축해둔 상태이긴 합니다만, 드나드는 인원과 차량의 수가 너무 많아 외부에서의 관찰엔 한계가 있습니다. 출입자 명부를 입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명부를 손에 넣는다 한들 그 신뢰도엔 의문이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이 나라 공무원들의 뇌물 선호를 고려하면 출입자 명부를 완전히 신뢰하기 어렵다. 거기에 종교적인 동기까지 엮인다면 더더욱 그러하고. 결국 수연은 마무르가 현재 우리의 감시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는 상태임을 재확인해준 것이었다.

“통화 연결은 가능한가?”

“예. 지금 통화해 보시겠습니까?”

“……됐다. 그건 메리옘의 ‘채점’이 끝난 다음으로 미루지.”

“알겠습니다.”

심증만 가지고 추궁하는 건 좋지 못하다.

내 짐작이 정확하다면, 마무르는 비밀스럽게 접촉할 상대와 어떤 식으로든 약속을 주고받았을 것이다. 동행한 내 아랫것들이 알아차릴 수 없는 방식으로.

그 같은 의사교환이 꼭 종교적 은유와 암시를 섞은 대화로 이루어졌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나, 감시역들은 그간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였으므로 다른 무언가를 놓쳤을 가능성은 낮은 편이었다.

그러니 나로선 메리옘의 받아쓰기 채점 결과를 기대해보는 수밖에.

“다른 보고사항은?”

“있기는 하지만, 시급을 요하는 사안은 없습니다.”

언중언으로 휴식을 먼저 취하라고 권유해오는 수연. 기나긴 강행군을 끝내고 돌아온 터라 나 역시 일단 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무슨 일들이 얼마나 쌓였는지 모르는 상태로는 신경이 쓰여서 눈을 붙이기도 어려울 터.

“회의실로 가지.”

“……예.”

내가 이럴 것을 예상했는지, 회의실엔 이미 브리핑 준비가 되어있었다. 수연은 내 의사를 확인한 뒤 주방에 연락하여 간단히 먹을 것을 내오도록 시켰다.

“먼저, 인도의 일곱 자매 주에서 대대적인 반란이 임박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일곱 주의 모든 반군들이 공동전선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잡다하고 산발적이었던 기존의 반란들과는 격이 다른 사건이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출처는?”

“중국 국안부의 판하이산 경독입니다.”

“중국이 배후에서 지원한 건가?”

“그렇다고 하더군요.”

인도의 일곱 자매 주(Seven sister states)란 인도 동북부에 위치한 아삼, 메갈라야, 트리푸라, 미조람, 나가랜드, 아루나찰 프라데시의 일곱 개 주를 의미한다. 북으로는 중국과 접해있고 동으로는 미얀마를 마주하고 있는 땅. 억압받는 소수민족들의 터전.

이 땅에서 인도는 오랫동안 폭압적인 통치정책을 고수해왔다.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보안군에 위임하여 상시 계엄과도 같은 상태를 유지하며, 그 보안군의 장교들에게 최근까지도 완전한 면책특권을 부여했던 것.

반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어떤 짓을 저질러도 기소를 당할 일이 없는 군인들의 치안 유지란, 당연히 온갖 종류의 가학적인 범죄들로 점철된 것이었다. 살인, 약탈, 방화, 강간, 그리고 민간인 거주구역에 대한 체계적 파괴행위 등.

그중에서 내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건, 특정 공동체에 대한 징벌로서 행해지는 조직적인 강간이었다. 처음 들었을 땐 여기에 대체 무슨 논리가 있는가 싶었지. 대가리에 카스트가 박혀있는 새끼들은 사고방식 자체가 다르구나, 하고.

근래 들어서는 인도의 사법부가 제동을 거는 추세이긴 하나, 보안군의 명문화된 법적 지위 자체는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었다.

그런즉, 오랫동안 여름을 기다려온 일곱 자매 주의 매미들은 중국의 유혹을 달콤하게 받아들였을 터. 그동안의 반목을 잠시 미뤄두고, 일단은 인도의 압제자들부터 몰아내고 보자고.

‘어쩐지 중국 놈들이 여기저기 대책 없이 들쑤시고 다닌다 했지.’

미얀마도 건드리고, 아프가니스탄에도 손을 뻗고. 내우외환을 겪는 와중에 뭘 믿고 저 지랄을 떨고 있나 했더니, 인적 첩보 역량으로는 세계 제일을 자부하는 빨갱이들답게 나름의 거대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스스로 피를 흘리기가 싫어 인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해보려던 1세계의 국가들은, 그동안 야심차게 투자해온 유망주가 갑작스러운 악재를 만나 폭락을 거듭하는 꼴을 보게 될 것이었다.

“설마 싶긴 하지만, 구체적인 자료를 넘겨준 게 있나?”

“네. 스크린을 보시죠.”

수연이 리모컨을 조작할 때마다 화면엔 간체자로 가득한 문서들이 지나갔다. 중요한 부분들마다 확대와 강조가 들어가 있어, 머리에 꽉 찬 피로의 열과 한자 특유의 빽빽한 질감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의외로군. 이 정도의 기밀을 자발적으로 가져다 바치다니.

“판하이산 그놈이 나를 시험해보는 건가?”

내가 이 기밀을 서구권 정보기관에 팔아먹을 경우, 중국 국안부가 다대한 공을 들인 프로젝트는 시작하기도 전에 암초에 부딪힐 터.

수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에게 생각이 있다면, 형님께서 의구심을 품고 자료의 상품화를 미룰 경우를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진위 여부가 드러나게 되어있는 자료니까요. 가족의 안위를 걸면서까지 감행할 가치가 없는 모험입니다.”

“내가 정보를 어디에 팔아먹는지 지켜보려는 수작이라면?”

“프로젝트의 규모를 고려할 때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격입니다. 안심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수연의 조언을 곱씹어 보고서 가볍게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김재환이에게는 귀띔해줬나?”

“예. 빠른 대응이 필요한 투자정보라고 판단하여.”

“잘했다. 판하이산 그놈에게는, 흠…….”

“이번 건에 대한 보상은 큰 금액을 일시불로 지급하기보다 안정성에 중점을 두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미래의 경제적 불확실성을 덜어주는 쪽으로 말입니다.”

내 속을 헤아리듯 바로바로 나오는 수연의 대답들은 내 의향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일전에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쳐 죽인 후샨량의 아들 건으로 장타이롱과 대화를 나눌 당시, 장타이롱은 자신 같은 하급 공산귀족들조차 해외송금에 제약이 많다는 한탄을 했었다. 해외의 가족들에게 겨우 2만 달러를 보내려다 트집을 잡히는 마당이라고.

모르긴 몰라도, 고위 귀족이라고 하여 사정이 많이 나은 건 아닐 터였다. 물론 흑해자당이 한창 날뛸 때보다야 형편이 나아졌겠지만, 미국과 중국의 시차도 모르던 가오슈센의 자식새끼는 과거만큼의 사치를 즐기지 못하고 있을 테지.

요컨대, 내가 경독들의 해외 익명계좌에 꽂아주는 돈은 현시점에서 프리미엄이 잔뜩 붙은 상품이 되었다는 뜻.

잘됐지. 그렇잖아도 구체적인 가치 책정이 곤란한 정보인데.

“안정성에 중점을 둔다면, 지급 수단은 고려해둔 게 있나?”

“일시납 연금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나쁘지 않군. 네가 알아서 진행해라. 판하이산에겐 마음 편히 있으라 전하도록 하고. 반란이 일어나기 전까진 이 정보를 어디에 팔아먹거나 하지 않을 테니.”

“예.”

세 경독의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지나친 안정감을 느껴도 곤란하겠지만, 돈에 대한 중국인들의 욕망은 남다른 구석이 있으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같은 처지로 해외에 나와 있는 입장에서, 세 경독의 가족들은 서로 간에 긴밀한 교류를 나누고 있을 터. 고로 어느 한 경독이 얻은 성과는 다른 경독의 가족들에게 부러움과 질시를 불러일으키겠지. 공산귀족들의 사회에서, 남자의 능력은 그 남자를 쟁취한 여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이지 않은가.

아내의 잔소리와 자식들의 칭얼거림은 기러기 아빠들의 자존심을 후려치는 채찍과도 같을 것이다. 가뜩이나 체면을 목숨처럼 여기는 중국인의 자존심을.

따라서 나는 확신한다. 그들이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날은 절대로 오지 않으리라고.

“한데, 이 정보를 나중에라도 어딘가에 판매할 계획이십니까?”

수연이 묻기에, 나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닿는다면. 어차피 일이 터진 다음에는 배후에 중국이 있다는 것쯤이야 공공연한 비밀로 취급될 테니까. 문서 전체를 노출시키는 수준의 거래가 아닌 이상에야 중국도 크게 신경 쓰지 않겠지. 목표를 이미 달성했으니까 말이야.”

“맞는 말씀입니다만, 판매경로가 마땅치 않습니다.”

“임마누일에게 들어둔 것이 있다. CIA 하청업자들이 우리를 궁금하게 여기는 모양이더군. 규모는 얼마나 되며, 어디에 근거지를 두고 있고, 접촉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등을.”

“CIA의 하청이라면…….”

“깊게 생각할 것 없어. 경독들에게 성과를 떠먹여줄 방편일 뿐이니.”

“조직 단위로 이중간첩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까?”

“어디까지나 기회가 닿는다면 말이다. CIA 쪽엔 정보를 팔고, 경독들에겐 말단 하청업자들과 그 끄나풀들을 던져주는 거지.”

CIA의 정직원들이 상대인 것도 아니고, 하청업자들이 상대라면 썩 어렵지도 않은 일이겠지. 일선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이라는 게 죄 계약직 프리랜서들 투성이니.

물론 그 프리랜서들의 수준 자체는 높겠으나, 정직원과 계약직은 기본적인 업무지원에서 차이가 뚜렷한 법이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도마뱀의 꼬리다. 언제라도 갈아치울 수 있는 소모품들. 어떻게 잘라내어도 손해가 크지 않을 염가의 인력들.

냉혹한 예산 절감의 희생양 그 자체.

나로선 그만한 고급인력들을 소모적으로 써버릴 수 있다는 게 부러울 따름이다.

수연이 까딱 머리를 숙였다.

“기억해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건 여기까지 해두고, 다음은 뭐지?”

“조사를 지시하신 밤부티족의 건입니다.”

“벌써 결과가 나왔나?”

“예.”

밤부티. 르완다의 대통령이 악령에 빙의당한 것들(킨도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할 때, 주술적 식인의 주된 표적이라며 지나가듯이 언급했던 자들. 대통령은 그들 부족의 구성원들이 외부인들에 의하여 수시로 킨도키라는 누명을 쓰고 잡아먹혔노라 말했다. 먹으면 영혼의 힘이 강해지는 영약 취급이었다고.

원탁의 하수인들을 추적하는 동안, 나는 ‘킨도키 중의 킨도키’가 밤부티족을 포섭하기 위한 작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었다. 그래서 추적행의 한중간에 수연에게 조사를 지시한 것. 필요하다면 르완다 정보보안국의 조력을 받아도 무방하다고.

수연은 그 결과를 입에 담았다.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정보일 뿐입니다만……. 밤부티족이 근래 들어 특이한 동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특이한 동향이라면?”

“우선은 전통신앙의 변화입니다. 과거엔 숲 그 자체와 여러 신격들을 함께 숭배하는 다신교 신앙이었으나, 지금은 숲의 지배자라는 단일한 신격을 섬기고 있다더군요. 그리고 이러한 변화와 함께 조직적인 무장을 시작했다는 정보도 입수했습니다.”

“그런가.”

“밤부티족을 구성하는 세 개의 대부족, 수아, 에페, 아수아가 같은 시기에 같은 변화를 보였다고 하니, 배후에서 영향을 행사한 세력 또는 존재가 있다고 가정해야 타당할 듯합니다.”

“…….”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역시 주술사 왕과 그의 군세다. 어느 대마법사의 행사라고 보기엔 딱히 이득이 없으니까. 그나마 그레이스와 칠각기사단 정도가 예외일까. 사고를 틀에 가두지 않고자 주의하며, 나는 정보의 소스를 확인했다.

“정보의 입수처는 르완다인가?”

친 르완다 민병대가 통째로 증발하는 사태를 겪고서 그쪽도 나름대로 조사를 해보았으리라 짐작하며 던진 질문이었는데, 수연은 의외로 내 짐작을 부정했다.

“르완다 정보보안국엔 교차검증을 요청했을 뿐입니다.”

“그래? 그럼 처음 정보를 구한 경로는 어디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따로 특이사항으로 보고를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음?”

“혹시 공능법인 「연화암」의 김연화 대표를 기억하십니까? 외교부 국민외교센터의 브리핑에 참석했었고, 현재 외교부 신속대응 동부 제2팀 소속으로 활동 중인 공능법인의 대표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

나는 잠시 미간을 좁힌 채로 눈을 깜박였다. 기억이 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정신 나간 무당년의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오는가 하고. 자칭 계룡산 작두만신 연화 킴 맥아더 어쩌고 하며 주술사 왕과 주력 대결을 펼치겠다느니 어쩌니 떠들어댔던 사이비 미치광이가 아니었나.

눈짓으로 설명을 요구하자, 수연은 심히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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