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79화 (279/561)

#32. 뱀 (5)

스텔라 포르투나로 복귀하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시에라리온에 들러 권민호 이하 4인을 남겨두었던 장소를 탐색했다.

이번에도 매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버려진 공장의 새까만 야경은 사흘 사이에 눈에 띄게 달라져있었는데, 이는 각성한 식물들이 그새 뿌리와 줄기와 가지들을 뻗어 공장의 바깥 경계를 침식해 들어온 탓이었다. 인간의 꾸준한 관리가 없고서는 자연 속의 인공물들이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

당연하게도 내 부하들의 죽음이 남긴 흔적들은 적잖이 지워져버린 상태였다. 수습할 수 있었던 건 4인분의 백골들이 전부.

부하들의 골격구조를 일상적으로 들여다보는 나는, 염동력을 활용하여 남아있는 뼈들을 재조립해보는 것만으로도 각각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한 사람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깨지거나 금이 가거나 부러지지 않은 뼈마디가 드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주기 위한 묵념을 마친 나는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잘 보관해라. 돌아가서 장례를 치러줘야 하니.”

세계 최강의 군대가 실천으로 보여주듯이, 유해 수습과 장례는 충성도 관리의 한 방편이다. 국제사업부 밀수처에서도, 팀 전체가 몰살당하거나 정말로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고선 상품 운송 도중 발생한 사망자들의 유해를 수습해오는 것이 관례였다.

“뭔가 상대편의 소리가 녹음된 것은 있습니까?”

이렇게 물어오는 경태는 숙연한 분위기인 나머지 부하들과는 달리 평소와 같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이어폰을 한쪽 귀에 꽂은 채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딱히 없다. 아직까지는.”

이곳의 책임을 맡았던 권민호는, 자신들이 숨어서 공장을 감시하던 자리 근처에 지향성 집음기와 녹음장치를 숨겨놓았다. 내가 적의 손에 넘어가선 안 된다고 당부했던 마력탐지 나침반은 그 아래에 깊숙이 파묻어 놓았고. 눈깔병신인 나라면 반드시 발견하리라 생각했겠지.

내게 무언으로 허락을 구하고서 이어폰의 남은 한쪽을 가져간 경태는, 잠시 후 흠, 하고 끄덕거렸다.

“집음기가 지향하던 방향에선 자연적인 소음조차 끊어졌군요. 뒤늦게 도착한 손님들 중에 방음결계를 제법 넓게 전개할 수 있는 실력자가 있었다는 뜻이겠네요.”

맞는 말이다. 평범한 자연각성 염동능력자들이라도 능력을 다루는 숙련도가 높다면 제 주변의 음파 진행을 방해하거나 차단하는 게 가능하지만, 집음기의 좁은 원뿔형 탐지범위를 정확하게 가로막는 건 그와 완전히 별개의 일이었다.

‘그러려면 우선 집음기의 존재부터 알고 있어야지.’

따라서 권민호 이하 4인을 살해한 자들 사이엔 적어도 그레이스 복제체 수준의 마법사가 끼어있었다고 봐야 합당하다.

그렇다고 녹음된 게 아주 없지는 않았다. 녹음기의 파일 앞부분엔 권민호의 육성이 담겨있었으니까. 권민호는 자신들이 상대방과의 접촉을 시도하기 이전까지의 상황을 음성기록의 형식으로 남겨놓았다. 나는 한창 무음만이 이어지던 녹음 파일을 앞으로 돌려보았다.

「……현재 시각 21시 33분, 현장으로 접근하는 무장인원들을 포착. 방위 2-7-3, 거리 110, 숫자는 열여섯…… 아니, 열일곱. 4인 1조로 편성에 교대로 전진하며 진입로와 퇴각로를 확보하는 중.」

「전술적 이동의 형태는 영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의 규범과 일치하지 않고, 지휘책임자로 보이는 1인은 이동대형의 중심에서 개별행동을 보임.」

「무장은 각 조마다 NSV 중기관총이 한 정, 안지오 20밀리가 한 정, HK-417이 두 정. 각각의 소총엔 유탄발사기가 장착되어 있음. 개별행동을 하는 1인은 안지오 20밀리와 장검……으로 보이는 냉병기를 휴대함. 방호복은 제조사를 파악할 수 없으며, 야시경은 전원 PSQ-20으로 동일, 장구류는…….」

「……무장인원들 가운데 체격조건이 로더필드의 정보와 유사한 자는 없음. 개별행동을 하는 자가 원탁의 고가치표적일 가능성은 낮다고 판단됨.」

「단, 생김새와 성별은 가늠하기 어려움. 위장 패턴이 들어간 케이프(Cape)를 착용 중. 이 표적이 무음영역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미루어-」

원탁 내의 유일한 참전용사인 로더필드를 제외하면, 원탁의 마스터들 중에서 총화기와 냉병기로 무장한 채 하수인들과 함께 일선에 나설 만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인형술사 웨스트버튼만 하더라도, 저가 탄 배가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조차 생체인형과 하수인들에게 둘러싸인 채 귀족의 품위를 챙기고 있지 않았나. 전장과 눈곱만큼도 어울리지 않았던 고전적인 정장 차림은 지금 돌이켜봐도 조금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권민호가 내린 판단은 내가 가르친 마스터들의 성향에 기초한 것.

나는 4인의 부하들이 정체불명의 무장인원들-아마도 악마숭배자들일 가능성이 높은-과 접촉하기로 결정한 경위, 그리고 최초의 접근이 이루어진 과정을 다시 한 번 주의 깊게 청취했다.

최초의 접촉에서 가장 위험한 역할을 담당한 건 권민호였다.

유사시를 대비해 다른 녀석들에게 제 뒤통수를 겨냥하고 있으라 당부한 권민호는, 다른 무기와 장비들을 다 내려놓은 후, 등 뒤에 자폭용 폭탄을 품은 채 저편으로 넘겨줄 위성전화만을 쥐고 늦은 밤의 손님들에게 다가가기로 결정했다.

「발화」를 이용하면 굳이 기폭장치에 기댈 것 없이 순식간에 폭탄을 터트릴 수 있다. 상대가 대마법사여서 이쪽의 마력장을 쥐어짜더라도, 몸에 붙어있다시피 한 폭탄을 터트리지 못할 리가 있을까.

그럼에도 기폭에 실패한다면, 그때는 뒤에서 총을 겨누고 있던 대기조가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리면 그만이다……. 라는 게 동료들과의 사전 논의에서 권민호가 내놓은 의견이었다.

‘……위성전화는 가져갔나?’

권민호의 두개골엔 관통흔이 남아있었다. 자폭은 놀랍게도 실패. 그러나 보험으로 준비해두었던 동료의 저격은 성공. 그리하여 파괴를 면했을 위성전화 단말기는 이 현장 어디에서도 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내 부하들의 죽음 이후 저쪽에서 가져갔을 가능성을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단순히 총성과 폭음을 듣고 기어들어온 현지 주민이, 어딘가에 팔아먹을 요량으로 주워간 것일지도 모르지만.

전화를 걸어 확인해본 바 저편의 전원은 꺼져있는 상태였다. 칠각기사단이 단말기를 가져갔다는 전제하에, 위치 추적에 대한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나서, 그들끼리의 의사결정을 거친 연후에 비로소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어오지 않을는지.

이쪽에 대한 역추적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보급한 위성전화 단말은 언제 노획당하더라도 역추적이 지난하게끔 유령회사 명의로 계약한 것이었으니까.

악마숭배교단의 보고체계와 의사결정 구조는 과연 얼마나 건전하고 효율적으로 구축되어 있을는지.

너무 오래 기다리도록 만들지 않아주었으면 좋겠는데.

「쩌저적-!」

돌연 단단한 콘크리트가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어 비스듬히 서있던 담벼락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는 이 순간에도 공장 내부를 향해 영토 확장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각성수들의 소행. 예민하게 반응했던 부하들은 내 수신호를 보곤 곤두섰던 신경을 이완시켰다.

녹음 파일의 두 번째 재생을 마친 나는, 사주경계를 유지하던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정리해라. 이곳을 뜬다.”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공장의 전경은 아까와는 또 달라진 것이었다. 길게 잡아도 이틀이면 탐욕스러운 녹음에 완전히 삼켜지겠지.

이러한 전경을 눈에 담으며, 나는 내가 잃은 인적자산들의 가치를 곱씹었다.

아무리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어도, 권민호가 폭탄을 터트릴 겨를이 없었다는 건 적의 실력이 상정 이상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권민호를 제외한 나머지 3인이 즉각 자폭을 감행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와의 계약을 준수하고자 망설임 없이 목숨을 끊어버리는 그 충실함.

……가슴 속의 서늘한 공백감이 깊어진다. 새삼스럽지만, 정말로 아까운 인력들이었다.

이틀 후, 탄자니아의 시완두 호수로 돌아온 나는, 스텔라 포르투나의 갑판에 오르기 무섭게 성전연합의 사자에 관한 당혹스러운 보고를 받았다.

“마무르가 현지 경찰에게 연행을 당해? 왜?”

실제 신분이 발각당하기라도 했나?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마무르가 현재 사용하는 신분은 내가 만들어준 것이다. 조직 산하 공능법인이 각성능력자 전문 헤드헌터의 소개로 단기고용 계약을 맺은 외국인 헌터의 신분. 만약 이러한 위장이 들통 났다면, 같은 형식으로 연막을 친 메리옘 그룹 역시도 실체가 노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조직 산하 공능법인은 기본적으로 「개마」로부터 분화된 것. 정확하게는 보국훈장 수훈으로 국가유공자가 된 2선급의 부하들을 얼굴마담으로 내세워, 「개마」의 형제뻘 되는 공능법인들을 줄줄이 창설한 것이다. 명목상으론 신생 법인들이 외부에서 전문 경영인을 들여오는 형식으로.

이러한 법인들은 일단 법인대표부터가 보국수훈자이거니와, 공공의뢰 수행의 대가로 주어지는 공익점수가 하나같이 최상위권이어서, 대한민국 정부가 직접 신용을 보증하는 수준의 헌터 단체들이 되어있었다.

정부가 법인의 신용을 보증하고, 법인은 다시 채용한 인력의 신용을 보증하는 구조.

내가 말로 꺼내지 않은 우려를 읽었는지, 수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분이 탄로 난 게 아닙니다. 시비가 붙어 쌍방폭행 혐의로 잡혀간 것이라 하니까요.”

“……시비? 쌍방폭행?”

“자세한 사정은 동행했던 감시역에게서 들으시죠. 대면보고를 위해 잠시 불러들였습니다.”

수연이 눈짓을 하자, 죄를 지은 것처럼 우울하게 서있던 2인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선다. 하나는 경호실 산하 무장타격대에 속한 녀석이었고, 다른 하나는 메리옘 그룹에서 차출한 표준아랍어 통역이었다. 언어적 성취가 우수하여, 일상적인 대화 정도는 충분히 알아들으리라고 메리옘이 추천했던 인적자원.

“어떻게 된 거냐?”

먼저 무장타격대의 부하에게 묻자, 부하는 한숨을 쉬고 싶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게, 시비가 붙었다고 해야 할지, 이쪽에서 도발을 했다고 해야 할지……. 제가 보기엔 마무르 그자가 생면부지의 상대에게 밑도 끝도 없이 모욕적인 말들을 던진 것인데, 본인은 오로지 연민의 감정을 표현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연민의 감정……?”

“상대는 대로변의 노천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한국인 엽사였습니다. 저희는 그냥 지나가는 길이었습니다만, 그 헌터가 식사 중에 혼자서 하는 말을 들은 마무르가 갑작스럽게 이상한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러더니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는 일방적으로 시비를 걸어버린 겁니다.”

“그 엽사가 뭐라고 했기에?”

“음, 그것이, 「크- 이게 섹스지!」 라고…… 했습니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아마도 음식의 맛에 대한 감탄의 의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면 갈수록 영문을 모르겠군. 부하가 애써 보충하는 당시의 상황은 나로선 이해하기 난해한 부분들이 너무 많았다.

“너, 이름이 위르케쉬라고 했었지?”

내 시선을 받은 애젊은 위구르인은 손끝을 가늘게 떨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렇습니다. 귀하신 분이시여.”

“두려워 마라. 너를 책망하려는 게 아니니. 당시의 대화, 「받아쓰기」용으로 녹취해둔 것이 있겠지?”

“물론입니다!”

지난날의 광저우에서, 내 지시를 받은 메리옘이 다른 위구르인 그룹들에 대한 감시와 동생들의 언어교육을 병행할 방편으로 시작했던 「받아쓰기」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수단과 방법과 목적이 조금 더 다채로워졌을 따름.

언어적 성취가 우수하다고는 하나, 위르케쉬의 문해력이 메리옘에 미칠 수는 없는 노릇. 일단 교육기간이 그렇게까지 길지 않았거니와, 메리옘은 내 아래로 들어온 이후로도 나날이 제 지식의 깊이를 제고하는 데 힘써왔으니까. 내게 받은 몇 번의 칭찬이 강한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았다.

따라서 마무르를 비롯한 무슬림들이 경전에 대한 지식에 기초하여 심도 있는 은유를 사용한다면, 그에 대한 해석을 기대해볼 수 있는 인재는 메리옘이 유일했다.

이것이 감시역을 붙여놓고도 받아쓰기가 필요한 이유.

위르케쉬에게서 시비가 발생한 시간을 확인한 나는, 해당 시간대에 녹음된 파일을 찾아 재생했다.

이내 마무르의 빠르고 수다스러운 육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그대, 불신자여. 닭을 튀긴 요리에 맥주를 곁들여 먹는 행위는 절대로 성행위와 같아질 수 없습니다.」

「지식으로 알고는 있었다. 한국의 온라인 환경에 당신처럼 말하는 비참한 자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을. 연애능력의 심각한 결핍과 자기 자신에 대한 좌절감으로 말미암아 정신착란에 시달리는 가엾은 불신자들!」

「하지만 오프라인 환경에서 이렇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 것이에요. 믿는 자인 나는 당신이 드러낸 광증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해소 불가능한 성욕을 식욕으로 갈음하려 시도하는 당신은 지금 인간성의 가장 낮은 단계에 있습니다. 말하자면 브론즈 등급 인간 수컷이다!」

「나는 백 퍼센트 동정일 당신을 동정해요. 사용하지도 않을 성기를 뭐 하러 달고 있어요? 당신의 정신상태가 개선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생식기관은 죽는 날까지 존재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의 어머니께서도 슬퍼하실 것.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가정하에.」

「당신에게는 알라가 필요합니다. 그분을 믿고 그분의 전사로서 자격을 증명하면 그분께서는 무한하신 능력으로 당신의 결핍을 채워주실 것이다. 알라 후- 아크바르. 알라를 믿으십시오. 예언자의 백성이 되십시오. 오직 올바른 믿음만이 비참하기 짝이 없는 당신의 삶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상대의 욕설은 뒤늦게 터져 나왔다. 아마도 어안이 벙벙해서 듣고 있다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망언이 끝날 즈음이 되어서야 부아가 치밀어 올랐던 게 아닐는지.

나는 심히 어이가 없어졌다.

이 광신도 새끼, 감시를 떨궈내려고 같잖은 수작을 부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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