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78화 (278/561)

#32. 뱀 (4)

그레이스-331을 베크룩스로 보내고서부터 다시 이틀이 지나, 원탁의 노예매매에 관한 마지막 단서를 쫓아 감비아 동부에 도달했을 때, 나는 시에라리온의 산간에 남겨두었던 권민호 이하 4인의 연락이 두절되었다는 보고를 접수했다.

이 소식을 듣고서부터 나는 줄곧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슴 속에 감도는 서늘한 공백감. 이는 삼합회의 의뢰로 미얀마에서 비전투손실이 발생했을 때, 그리고 갑수가 수류탄을 제 몸으로 덮어 산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느꼈던 감각이었다.

그만큼 무시할 수 없는 손실이다.

숫자로는 고작 넷이라곤 해도, 그 넷은 정예 중의 정예에 속한 넷이었다. 국제사업부에 순환근무를 보낸다 치면 각자가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책임질 만큼의 능력을 갖췄던 녀석들.

당장의 피해는 적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손실이 착실하게 누적되면, 그만큼 런던 공략의 승산은 낮아지고 만다. 가랑비에 옷이 젖어들듯이.

원탁을 무너뜨린 이후엔 이런 종류의 불쾌감을 느낄 일이 없겠지. 그때는 정말로 다 끝난 다음일 테니까.

따닥-!

피부 검은 노예상인이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

“이보시오, 친구. 듣고 계신 거 맞소?”

나는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있는 상인을 바라보았다. 하얀 터번을 쓴 이 노예상인, 모 국가수반의 둘째 사위로서 음지에서 장인의 이해를 전적으로 대변한다는 자, 이드리사 은디아예는 임마누일이 소개해준 정보중개인의 하나였다. 아마 이면에선 르완다 정보보안국과도 거래를 트고 있을 인물. 과연 자기가 거래하는 상대의 정체를 알고는 있을까 싶기는 해도.

“미안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솔직하게 사과하자, 이드리사는 어깨를 으쓱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꽤나 피곤해보이시는구려.”

타닥, 타다닥. 사헬지대의 바람에 밀려온 모래가 벽에 부딪히며 내는 소음. 메마른 덤불이 무성한 황무지의 변두리, 흙벽돌로 벽을 짓고 그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올린 가옥 안에서, 테이블 너머의 상인은 내게 진한 커피를 권하며 된 발음의 프랑스어로 회상했다.

“그들은 아주 좋은 고객이었지. 그 이방인들이 아니었다면 카사망스에서 나오는 노예들은 제값을 받기 어려웠을 거요. 조금 과장을 섞는다면, 그들은 이곳에 존재하는 시장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오.”

“카사망스?”

“모르시나? 하긴, 멀리서 왔으면 이 부근 사정은 잘 모를 수도 있겠군.”

노예상인이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말을 잇는다.

“요 남쪽 국경을 넘어가면 나오는 우리 세네갈의 주가 바로 이교도들의 소굴인 카사망스요. 식민통치를 받는 동안에도 올바른 신앙을 지켜냈던 다른 지방들과 달리, 그 동네는 백인 선교사들의 요사스러운 혓바닥에 넘어가버렸지. 그렇지 않은 나머지들도 원시적인 정령숭배나 하고 있고 말이오. 하여간 디올라인들의 열등함이란.”

“이교도들을 상대로 노예사냥이라도 하셨던 겁니까?”

“어허. 노예사냥이 아니라 엄연한 지하드올시다. 성전 말이외다, 성전.”

상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점잖은 태도를 가장했다.

“그 열등하고 어리석은 이교도들이 주제를 모르고 독립국을 건설하겠다며 날뛰고 있으니, 그들을 상대로 하는 믿는 자들의 싸움은 자연히 성전이 되는 것이지. 아는지 모르겠소만, 성전은 우리 믿는 자들이 가장 정당하게 노예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오. 정당한 신앙의 형제들을 도와주면서 우리의 이익도 추구할 수 있는 유익한 길이지.”

웃기는 소리다. 수니파 이슬람의 정통 율법은 노예제도를 긍정하지만, 성전으로 얻은 노예를 돈을 받고 파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되어있는 행위였으니까.

나는 메리옘의 말을 떠올렸다.

「이맘 알 부하리가 거짓된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기록한 바, “심판의 날 내가 몸소 고발할 세 부류의 죄인들이 있으니, 그중 하나가 자유인을 노예로 만들어 돈을 받고 파는 자로다.”라 하였으며, 알 부하리의 기록은 가장 정통성 있는 하디스의 하나입니다.」

「이를 알고 계시오면 노예상인들을 쫓으시는 여정에서 거짓된 선지자의 백성들을 설득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리라 사료되어, 귀하신 분께 감히 제 미천한 앎을 바칩니다.」

메리옘은 노예상인에 대한 현지 무슬림들을 설득해서 정보를 얻어내는 상황을 예상했던 모양이나, 현실은 이렇듯 정반대의 상황을 던져주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 보통 이렇지.

“그래서, 얼마나 파셨습니까?”

내 물음에, 상인은 대수롭지 않게 답을 돌려주었다.

“대략 한 1만 5천 명쯤?”

많이도 팔아치웠군.

“카사망스에서 조달하는 걸로는 그치들이 요구하는 양을 반의 반도 채울 수가 없어서, 우리는 저 멀리 모리타니에서까지 상품을 실어 와야 했지. 상상이 가시오? 그 기나긴 교역로를 유지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노예상인은 계속해서 상세한 정보들을 풀어놓았다. 수다스럽다고 느껴질 정도로. 묵묵히 듣고 있던 나는, 들으면 들을수록 이 상인의 과도한 협조성이 의심스러워졌다.

이런 내 속내를 읽은 듯, 떠들던 이야기를 멈춘 상인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왜, 내가 너무 친절한 것 같소? 못내 의심스러운 눈치요만.”

“세상에 이유 없는 친절은 없는 것이고, 대가를 받기도 전에 상품부터 건네는 상인이 정상은 아니지요.”

임마누일은 그저 다리를 놓아주었을 뿐, 나를 대신해 미리 뭔가 대가를 지급한 것이 아니다. 아무렴 이 노예상인이 그저 내게 정보를 전해주기 위해서만 아까운 시간을 내었겠는가. 내가 아무리 저의 본거지까지 찾아왔다고 해도.

상인은 다시금 어깨를 으쓱였다.

“브라츠키 크루그의 대외사업 최고 책임자가 제 이름을 걸고 소개해줄 정도라면, 당신네들은 제법 덩치와 수완이 있는 자들이겠지. 그냥 알고 지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만큼. 당신도 알겠지만, 사업이라는 게 원래 인맥으로 하는 것이잖소?”

“단순한 인사 선물이다 이겁니까? 우리는 직접적인 거래가 막혀있는데도?”

“반쯤은 그렇지. 브라츠키 크루그와 당신네들의 신사협정이 어떻든 간에, 앞날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까. 단순히 정보교류만 이어가더라도 이익이 될지 모르고, 또 우리라고 해서 언제까지나 이쪽 지역에서만 장사를 하란 법은 없으니 말이오.”

“그럼 남은 반은 뭡니까?”

“사소한 복수.”

“복수?”

내가 의아함을 드러내자, 터번을 쓴 상인이 하얗게 이를 드러냈다. 웃는 것도 같고, 화가 난 것도 같은 표정. 신경신호의 색채는 후자에 더 가까웠다.

“말했듯이, 그들의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우리는 아주 많은 공을 들여 공급선을 확장해야만 했소. 모리타니에서 이곳 감비아에 이르기까지, 두 개의 강을 타고 하나의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기나긴 운송 루트를 구축했단 말이오. 그런데-”

나는 남은 말을 듣지 않아도 사정을 알 것 같았다.

“알라께서 그들에게 불행을 내리시길. 그 신용을 모르는 불신자들은 야반도주나 마찬가지인 철수를 감행해버렸소. 아직 미납 대금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아무런 사전연락도 없이, 이쪽엔 미처 인도되지 못한 악성재고를 남겨놓고 말이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

“손해가 크셨던 모양입니다.”

“그간의 거래 전체를 고려한다면 금전적으로는 이득을 봤지. 재고도 어떻게든 정리할 수 있을 것이고. 하지만 낭비해버린 기회비용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열이 뻗칠 수밖에. 놈들이 아니었으면 주술사 왕의 군세와 부딪힐 일도 없었을 텐데.”

“……이 일과 주술사 왕이 관계가 있습니까?”

“그가 카사망스로 화살을 쏘아 보냈소. 우리를 ‘악의 심장’ 중의 하나로 명확하게 지정해서, 열등한 디올라인들의 투쟁을 거들어주겠답시고 게릴라전에 능한 소수정예 각성능력자들을 파견했지. 우리의 상품 조달 활동이 그의 귀에까지 들어갔던가 보오.”

화살을 쏘아 보냈다는 말은 주술사 왕이 그의 군세인 「활과 화살」의 전투원들을 고무시키거나 원정대를 편성하여 파견할 적에 즐겨 사용하는 표현으로 알려져 있었다.

「나의 아이들아. 나는 활이요 너희는 화살이니, 너희가 내게 귀의하고 내가 너희에게 권능을 실어주면 너희는 너희의 힘만으로는 닿지 못할 곳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이라.」

「그러니 너희는 두려움을 잊고 강맹하게 쏘아져 나가라. 보다 멀리. 보다 높이. 너희가 꿰뚫어야만 할 악의 심장들을 향하여. 그럴 때마다 이 세상은 한 발짝씩 낙원에 가까워지리니. 낙원의 도래에 기여한 자, 죽어서도 내 안에 머물며 영원한 복락을 누릴 것이다.」

그의 영향력이 미치는 땅에서 자주 전파를 탄다는 이 가르침. 이게 주술사 왕의 육성인지, 아니면 왕을 수행하는 측근의 대독(代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하간 작금의 검은 대륙에서 이 말을 들어보지 못한 자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었다.

‘매번 이런 식이로군.’

주술사 왕의 급속한 영향력 확대는 옛 제국주의 국가들이 뿌려놓은 갈등의 씨앗들이 있기에 비로소 가능한 것이었다.

무에서부터 새롭게 조직을 건설하는 게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는 조직과 집단들을 광신으로 물들여 위계질서를 세우기만 하면 끝나는 것.

내가 르완다 대통령의 의뢰를 받아 침투했던 콩고 민주공화국의 키부 주(州)만 하더라도 17개의 전통 있는 반군집단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곳이었다. 고작 한 개 주의 반군만 헤아려도 그러할진대, 아프리카 전체로 범위를 넓히면 얼마나 많은 열매들이 주술사 왕의 수확을 기다리고 있을는지.

옛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런 면에서도 그들의 원죄와 싸우고 있는 셈이다.

독립하는 식민지들에게 국경선을 그어 줄 때는 만족스러웠겠지. 이렇게 해놓으면 절대로 우리를 따라잡지 못하리라고. 우리에게 책임을 물을 만큼의 힘을 기를 수 없으리라고.

디바이드 앤 룰. 식민지를 유지하는 내내 분열과 차별과 갈등을 조장하여 이득을 보았던 제국주의자들이, 아프리카가 이 꼴이 날 줄 모르고서 국경선을 그었을 리가 있나.

노예상인이 말했다.

“아무튼, 이렇게 정보를 수집하고 다니는 걸 보면, 당신들이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일 리는 없겠지. 나는 내가 제공하는 정보가 나비의 날갯짓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오. 오직 전능하신 알라께서만 그 인과를 아실 태풍의 태동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이드리사. 당신의 호의에 감사를 표합니다.”

“인샬라.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이유가 어찌되었든, 좋은 선물을 받았으니 이쪽도 답례를 하도록 하지요.”

“흐음?”

내가 손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부하 둘이 미리 준비한 선물을 가져왔다. 노예상인을 만나기 전, 약간의 시간을 할애하여 「생명」으로 키워낸 두 개의 분재를. 화분은 현지의 흙으로 빚어 마력을 태우는 불로 구워냈고, 재료가 될 나뭇가지 또한 대충 눈에 보이는 대로 꺾어서 조달했다. 어디를 가나 손쉽게 제작 가능한 뇌물.

아마 이것만으로도 피부 검은 노예 수백 인분의 몸값이 나올 터였다.

“하나는 당신이 가지시고, 나머지 하나는 당신의 뒤를 봐주시는 분께 전해주시지요.”

“오, 이런…….”

이드리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본사이(Bonsai)라니, 값지면서도 품격 있는 선물을 준비해오셨군. 이토록 생김새가 훌륭한 바오밥 본사이는 처음 보오. 장인어른께서도 기뻐하실 거요.”

사실 분재 외에도 준비한 것이 하나 더 있기는 했다. 자잘하게 합성해놓은 다이아몬드 원석 한 주머니가.

이쪽 지역의 범죄조직들 사이에서 다이아몬드 원석은 주요 결제수단 가운데 하나로 통한다. 인접한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지가 모두 다이아몬드 산출지이니까. 이는 곧 출처 불명의 원석을 역추적에 대한 걱정 없이 대량으로 뿌려도 무방한 환경이라는 뜻.

이드리사의 협조적인 태도로 오늘은 쓸 필요가 없어졌지만, 아프리카 남부나 동부의 사정 역시 크게 다르지 않으니, 원석을 빚는 데 들인 품은 어떤 식으로든 쓸모로 돌아올 것이다.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용건이 끝났으니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이드리스.”

“나 역시 그렇소. 신께서 우리의 또 다른 만남을 예비해두셨기를 바랄 따름이오.”

이 노예상인은 현시점에서 추적할 수 있는 단서의 끝에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내가 추적한 것만으로도 물경 십만이 넘어가는군.’

십만. 원탁의 하수인들이 구입한 노예들의 머릿수.

이 정도 규모의 자원을 연구에 투입했으면, 이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대마법사가 누구이든 간에 뭐라도 유의미한 결과를 낼 법하다.

경태의 예상대로 이게 독자적인 군사력을 육성하기 위한 계획이라 치면, 길게 잡아도 한 세대 이내에 거대한 각성능력자 군단들이 출현할 것이다. 원탁의 마스터들을 신으로 숭배하는 초능력자들의 전투단이. 이 전투단들은 인력공장 따위를 돌림으로써 스스로 군비를 조달하는 것까지도 가능할 터였다. 비근한 예로, 신장 위구르 땅에서 기업형 둔전병들을 굴리는 중국의 성공사례가 있지 않은가.

희박한 가능성이라곤 하나, 대전략을 수립할 땐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안전한 법. 만약 원탁이 그레이스가 복제체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성장가속까지 재현해내는 데 성공할 경우, 군단의 완성에 필요한 시간은 한 세대가 아니라 수년 이내로 단축될 수 있었다.

이는 곧 런던 공략을 도모하는데 강력한 시간제한이 걸린다는 의미.

그 이후로도 공략이 아예 불가능해지진 않을 것이나, 원탁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격차가 엄청나게 벌어질 것은 자명하다.

시간제한, 시간제한이란 말이지…….

어차피 그렇게 길게 끌고 갈 생각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호흡이 조금 뻑뻑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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