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뱀 (3)
동쪽 능선에 막혀있던 이른 아침의 햇살은,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면서 산비탈의 기울기를 따라 단숨에 밀려왔다. 울창하게 우거진 열대의 숲을 뚫고 들어오는 광선 같은 빛줄기들. 각각의 빛줄기는 공기 중에 떠도는 먼지와 안개를 유채색의 가시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통상시야를 기준으로 금빛 가득한 풍경이었다.
습도와 온도가 올라가자 한층 더 짙어진 야생의 숲 내음이 비강을 가득 채운다. 밤새도록 오감을 확장해놓고 있었던 나는, 감각의 과포화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후각의 민감도를 재조정했다.
지난밤, 부하들은 전투력 유지를 위해 교대로 잠을 재워주었으나, 나는 황금기의 눈에 의한 감제를 포기할 수 없었으므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결국 기다리던 손님들은 해가 뜰 때까지도 나타나지 않았지만.
악마숭배자들이 나타나주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포플러 숲에서 마주쳤던 놈들과 같은 저질스러운 방계 교단이 아니라, 칠각기사단 직할의 진짜배기들이. 그게 또 다른 그레이스 복제체가 포함된 전투단이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겠지. 그건 내 부하들을 통한 접촉보다 훨씬 더 안전한 조우가 되었을 터.
그럼으로써 그레이스와 나는 서서히 거리를 좁힐 수 있었을 것이다. 가시를 곤두세운 두 마리의 고슴도치가, 서로에 대한 경계를 서서히 줄여가는 과정과 같이.
“익, 익, 익, 익, 그겍, 게겍-!”
……이거 또 지랄이군.
나는 펄떡펄떡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는 그레이스-331을 짜증스럽게 내려다보았다. 추하게 일그러진 안면근육, 불규칙적으로 벌름거리는 콧구멍, 비틀린 입가에 줄줄 흘러내리는 침, 사팔뜨기가 되어버린 눈에선 일말의 지성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이게 기대보다 잘 나온 결과물이었다. 온갖 오작동과 고장들이 속출할 것은 진즉에 예상했던 바이고, 어쨌든 스스로 숨을 쉬게는 만들었으니까. 뇌를 제외한 나머지 장기들은 어찌어찌 살아있는 상태를 흉내 내고 있었다.
머리를 한창 주물러 댈 땐 사지가 뱀처럼 뒤틀렸었지.
부북-! 부부북-! 푸드드득-!
앞으로 먹인 게 있다 보니 뒤로 나오는 것도 있었다. 거친 방귀 소리에 이어 대변이 뿜어지는 소리. 근육의 이완과 수축이 격렬하게 제멋대로였기에, 배설물이 나오는 모양새 또한 자연히 그러했다. 그나마 통상시야를 기준으로 변이 갈색이라는 사실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터. 나는 한숨을 참으며 마력으로 물을 그러모아 331의 배변 처리를 해주었다.
마치 몸만 커다란 장애아를 돌보는 기분이다.
내가 하는 일을 본 경태가 송구한 표정을 짓는다.
“에구……. 제가 괜한 건의를 해놔서.”
“받아들인 건 나다.”
“그래도요. 저희만 눈을 붙인 것도 죄송스럽고.”
“휴식은 명령이야.”
어떤 조직이든, 정점에 있는 자가 아랫사람들 하나하나에 비해 더 많은 짐을 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지 않으면 조직 전반의 건전성이 저하되기 십상이니까.
그리고 331이 비록 이런 상태이긴 하나, 조금만 더 안정화시키는 데 성공하면 유지보수에 들어가는 품이 거의 없는 수준까지 감소할 것이다. 그다음엔 냉동수면 실험을 해봐야겠지.
잠시 그레이스-331을 응시하던 경태가 내게로 시선을 돌린다.
“결정은 내리셨습니까?”
이는 이곳에 메신저를 남기는 문제에 관한 질문이었다.
결국 기다리던 손님들은 날이 밝을 때까지 나타나지 않았지만, 331이 포함된 칠각기사단 전투단은 토막토막 흩뿌려진 장비들의 무게만 봐도 결코 사소한 전력이 아니었을 터였다.
그런 정예 타격대와의 연락이 두절되었다면, 조금 늦게라도 척후 내지 조사단을 파견할 개연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원탁의 하수인들을 쫓는 섬나라 첩보요원들이 냄새를 맡고 뒤늦게 도착할 가능성 역시도.
“…….”
나는 잠시 산기슭 아래의 해안지대를 눈에 담았다.
산간 아래로 멀지 않은 곳, 서섹스니 요크니 켄트니 하는 영국 본토의 지명들을 아무렇게나 옮겨 붙여놓은 옛 영국령 아프리카의 서부 해안지대엔, 이른 시간부터 대륙 반대편과 유사한 혼잡스러움이 끓어오르는 중이었다. 한쪽에선 인력발전소와 인력공장들이 돌아가고, 다른 한쪽에선 소 대신 각성능력자 아이들이 쟁기를 끌며, 머물 자리가 없는 자들이 모여든 응달엔 병마와 죽음의 색채가 짙게 깔려있었다.
저 혼돈을 내포한 발전상이 제국주의자들의 욕망을 얼마나 빨아들이고 있을는지.
“넷을 남기겠다. 기간은…… 손님들이 끝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사흘로 하지. 인원은 네가 선발해라.”
“옙.”
지시를 받은 경태는 먼저 짧은 브리핑으로 정확히 임무를 규정한 후 자원자를 받으려 했으나, 전원이 일제히 손을 들었으므로 큰 의미가 없는 절차가 되었다. 과연 내게 가장 충성스러운 인력만 모아놓은 집단이라고 해야 할까.
엄밀히 말하면 「라즈베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부하들의 충성심이 경호실보다 더 위라고 해야겠지만, 그 녀석들의 충성은 결이 조금 다른 충성이니까.
“권민호. 김석훈. 노영학. 문지환. 나와.”
경태에게 호명당한 네 명은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들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경태는 열중쉬어 자세를 취한 넷 중 하나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지휘책임은 우리 민호가 맡아라. 알았지?”
“예, 실장님!”
나는 경태로 하여금 저에게 맡겨놓았던 마력 탐지 장치를 이곳에 남는 녀석들에게 넘겨주도록 했다. 이는 거인의 뱃속에서 자결한 그레이스-596의 유류품 가운데 하나, 나침반형 아티팩트를 내 힘으로 복제한 것이었다. 측정반경 이내에 존재하는 가장 강력한 마력의 근원을 찾아, 그 방위와 거리,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마소 및 마력의 흐름을 알려주는 물건.
이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으면, 강력한 각성체나 각성능력자의 접근에 무방비로 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몰래 뒤를 밟을 때에도 유용할 터이고.
“그냥 아무 일 없이 조용하게 끝날지도 모르지만, 최악의 상황엔 교전보다 자살을 우선시해야 하는 임무다. 따로 남길 말들은 없나?”
내 물음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넷은 이내 다시 부동자세를 취했다. 책임자인 권민호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없습니다. 본사에 남겨둔 유서로 충분합니다.”
전투임무에 투입되는 군인들이 미리 유서와 유품을 남겨놓듯이, 나를 수행하는 부하들 또한 목숨이 위험한 임무를 맡을 때마다 매번 유서를 갱신하는 절차가 존재했다. 이 절차는 경태나 수연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직 나 한 사람만이 예외일 따름.
“그래.”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네 명의 부하들과 차례로 시선을 맞추었다.
“너희는 내가 아주 많은 노력과 비용을 들여 육성한 귀중한 인적자원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너희가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피치 못할 상황에선, 너희가 너희들 각자의 의무를 수행할 것을 기대한다.”
각자의 의무. 부하들과 내가 개인 대 개인으로 맺은 부채상환의 계약.
부하들은 내 말을 아무런 동요 없이 듣고 있었다. 이런 일로 흔들릴 녀석들이라면 애당초 경호팀에 들어오지도 못했겠지. 나는 내 머리를 톡톡 두드려 보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동료의 생포를 저지해야만 하는 상황에선, 반드시 여기, 머리가 확실하게 파괴되게끔 해라. 악마숭배자들은 너희의 사체조차도 온전하게 손에 넣어선 안 돼. 놈들이 숭배하는 교주는 어떤 면에선 나를 능가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를 대마법사니까. 나침반 또한 적의 손에 넘어가선 안 되고. 알겠나?”
“예!”
갓 죽은 신선한 시체가 상대라면, 내가 구사하는 수준의 「소생」으로도 망자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게 가능하다. 물론 한 번 죽은 인간을 상대로 논리적인 대화는 불가능하겠지만, 정돈되지 않은 언어의 갈피에서 키워드 몇 개를 포착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법했다.
예컨대, 마녀나 마녀의 복제체가 내 부하들을 상대로 비슷한 짓을 시도한다면, 죽은 부하들의 입에서 한국어가 튀어나오기만 해도 내게는 조금 위험한 일이다.
그러니 유사시 부하들은 본인의 머리를 박살을 내놓아야 한다. 하드디스크를 물리적으로 파괴해버리듯이.
“노파심에 해두는 당부다만, 상대가 속한 진영을 확신하기 어렵다면 아예 접촉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그런 경우엔 무리가 없는 선까지 뒤를 밟아 보고를 우선시하도록.”
“예!”
“약속하마. 너희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너희의 유서를 읽을 사람들은 죽는 날까지 밥을 굶을까 봐 걱정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여생에 최저한도의 생활수준 보장을 걸어주겠다는 약속. 이 약속을 들은 부하들은 어깨에서 힘을 빼고 묘한 미소들을 지어보였다. 자못 결연한 기색이던 권민호 이하 4인은 물론이거니와, 가만히 듣고 있던 나머지 녀석들 모두가 함께. 부하들의 신경계엔 안온한 이완의 색채가 번졌다.
나는 의아한 기분으로 물었다.
“갑자기 왜들 웃는 거지?”
내가 방금 한 말에서 웃음이 나올 부분이 있었던가?
웃음기를 지운 권민호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답했다.
“별것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끼니 이야기를 하시는 게, 역시 회장님은 회장님이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니까요. 다른 친구들도 비슷하게 느꼈을 겁니다.”
“그런가.”
평소와 같아서 안정감이 들었다는 말이로군.
“그럼, 무운을 빈다. 모두 살아서 다시 보았으면 좋겠구나.”
짧은 격려를 마친 나는, 이곳에 남기로 한 부하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수연의 후방지원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내가 수색해야 할 지역 및 지점들 또한 실시간으로 늘어나는 중이었으니까. 여기에 더 많은 전력을 할당하지 못하는 것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같은 일을 해야 할지가 불투명한 까닭이었다.
수연은 또한 경태의 그레이스-331 운송계획에 따라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의 냉동탱크, 그리고 시체를 얼리고 극저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양의 액화질소를 함께 공수해주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을 굳이 먼 곳에서 구하여 실어올 이유는 없었다. 사하라 이남 전반에 걸쳐 각성체 부산물의 신선한 보존 및 운송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었던 까닭.
수요는 충분했다. 연구용 각성체 혈액 샘플 따위를 장기간 보존하려면 액화질소의 사용이 필수적이었고, 전기 공급 및 충전기회의 불안정성을 이유로 액화질소 냉각 시스템을 선호하는 헌터들도 존재했으니까.
불사암이 온전히 붙어있는 상태로 각성체가 배송되기를 바라는 대부호들의 수요 또한 만만치 않았다. 자연스럽게 달려있는 불사암 덩어리는 각성체의 정품인증과도 같은 것. 본체의 양분을 빨아먹는 불사암들의 활동을 완벽하게 정지시키려면 극저온 냉각이 필수적이다.
드문 사례지만, 영하 60도의 환경에서도 기능이 정지되지 않는 불사암 덩어리(크립)의 발견사례가 보고된 적도 있었으므로.
여하간, 331의 냉동보존은 생각보다 쉽게 끝마칠 수 있었다.
나는 각성체 보관용 냉동용기 속의 그레이스 복제체를 내려다보았다.
‘간밤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아서 다행이군.’
조용히 눈을 감은 채 얼어붙은 그레이스-331은, 요란하게 똥을 싸지를 때에 비해 얼굴과 몸이 조금씩 부어오른 상태였다.
원인은 체내 수분의 부피 변화. 결정구조가 없는 비정질 얼음이라고 부피 변화가 아예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약간의 밀도 감소와 그에 따른 부피 증가는 인체의 세포들이 충분히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생명」의 힘이 더해졌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유리질에 가까운 얼음의 모나지 않은 경계면 역시 세포손상 방지에 보탬이 되었다.
지켜보던 경태가 물었다.
“접붙이신 영혼은 제대로 붙어있습니까?”
“음.”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육체와의 결합이 대단히 약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붙어있기는 하다.”
“뭔가, 형님께서 지금까지 보여주셨던 마법들과는 다른 의미로 마법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다른 의미라니?”
“이거, 어떤 의미로는 영생의 한 형태이지 않습니까?”
“…….”
“먼 미래에 다시 깨어날 것을 꿈꾸면서 자기 자신을 얼려서 보관하기로 한 부호들이 한둘이 아닌 걸로 압니다. 비록 이번엔 시체 아가씨를 상대로 쓴 거지만, 살아있는 사람한테도 똑같이 쓸 수 있는 거니까 별 상관은 없지요.”
이렇게 얼어붙은 채로 보존되는 걸 과연 영원한 삶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과학이 진정한 영생을 가능케 할 때까지, 스스로를 냉동 보존하기로 마음먹은 부자들은 그 수가 제법 되는 게 사실이었다.
경태가 짧게 미소 지었다.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영생의 가능성을 보고 나니까 기분이 조금 싱숭생숭해지는군요. 원탁의 하수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들의 주인을 섬기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말입니다.”
나는 뒷짐을 지고 경태를 돌아보았다.
“왜, 너도 영원히 살고 싶으냐?”
그러자 경태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시 한 번 미소 지었다.
“형님과 누님이 함께라면요. 고통보다 즐거움이 더 많을 영생을 거부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이 녀석에겐 유감이지만, 그러한 영생은 내가 긋는 자기만족의 선 바깥에 존재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