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뱀 (1)
망자의 눈은 아직 혼탁해지기 전이었다.
잠시 그 생기를 잃은 투명함을 들여다보던 나는, 이어 그레이스-331의 사후경직 상태를 점검했다. 혀를 쭉 내민 채로 굳어진 턱. 손목, 어깨, 무릎 등의 관절 또한 굳어있기는 매한가지. 그러나 손과 발에는 여전히 생전의 부드러움이 남아있다.
사후경직은 온도가 높을수록 빠르게 나타나고 사라진다. 비록 이곳이 평지보다 온도가 낮은 산간이긴 하나, 그래봐야 연중 내내 더운 적도 인근 국가의 산간이었다. 눈으로 어림한 공기의 온도는 대략 26도 선에 머물렀다.
내가 하는 양을 보고 있던 경태가 묻는다.
“직장(直腸) 내부온도는 어떻습니까?”
“정상 체온보다 2.7도쯤 낮다.”
“어디 보자……. 그럼 길게 잡아봐야 사망 후 두 시간? 아니면 세 시간? 정도 지났겠네요. 교전 흔적을 보면 무저항으로 붙잡혀 죽은 건 아닌 듯하니, 근육 내 ATP 잔량도 많진 않았을 거고…….”
망자의 체온 측정은 보통 항문 안쪽 직장의 온도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곳의 체온이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까닭.
그리고 시체는 생각보다 빠르게 식지 않는다. 직장의 내부온도는 사후 1시간까지는 큰 변화가 없는 게 보통이었다.
근육 내에 저장되어있는 에너지, ATP의 잔량은 사후경직의 속도와 직결된다. 인간의 몸은 죽어서도 계속해서 ATP를 소모하며, ATP가 바닥날 즈음부터 칼슘이 근육세포 내부로 들어가 본격적인 경직이 발생하기 시작하는 것. 그러므로 그레이스-331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발버둥 치다 죽었다면, 사후경직의 진행이 다소 빨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것 치곤 다친 부위가 없어서 이상하긴 한데.’
331을 죽인 대마법사가 전시를 목적으로 시체에 대고 「생명」을 운용했을 가능성은 있겠다.
가만히 망자를 응시하던 나는 내 영의 회로에 「생명」을 돌려, 331의 굳어진 턱을 풀고 기다란 혀를 밀어 넣어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고통스럽게 말려 올라간 눈동자까지 제자리로 돌려놓으니 생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는 교보재가 완성된다.
경태가 흥미롭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예쁘기는 진짜 비현실적으로 예쁘네요. 딱 히틀러가 좋아할 미인상입니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으냐.”
“사진이나 영상, 몽타주 같은 걸로 보는 거랑 실물로 보는 건 완전히 다르니까요. 엄밀히 말하면 실물이라고 하긴 어렵겠지만, 아무튼 유전적으론 동일할 거라 하셨으니 말입니다.”
“이 기회에 냄새를 확실하게 기억해두도록 해라. 너희 모두.”
비록 시각만큼 정확하진 못할지언정, 후각은 시각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이다. 황금기의 눈을 지닌 나조차도 그러한데, 평범한 눈을 가진 부하들은 말할 것도 없다.
“으음, 이거 참…….”
경태 이하의 부하들은, 못내 난감해하는 기색으로, 내 지시에 따라 사주경계를 유지하며 교대로 331의 냄새를 맡았다. 눈깔병신인 나로선 머리로만 이해 가능한 정상인들의 정서.
이전에도 거인의 뱃속에서 확보한 샘플들로 동일한 교육을 하긴 했으나, 인간의 후각적인 기억능력은 다른 동물들보다 명백하게 떨어지는 편. 나조차도 예외는 아니다. 하다못해 부하들이 나만큼의 후각 강화가 가능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즉 이렇게 상태가 좋은 샘플이 생겼으면 당연히 보수교육을 실시해두어야 한다.
‘기억이 선명하게 유지되는 동안 성과를 얻었으면 좋겠군.’
원탁의 하수인들과 교전을 벌이는 세력이 칠각기사단이라는 게 확실해진 지금, 내가 기대하는 성과를 얻을 가능성은 결코 낮지 않았다.
이 세상에 최소 세 자릿수 이상의 그레이스 복제체들이 암약하고 있다고 치자.
그들의 활동무대가 현 시점에서 높은 비율로 사하라 이남의 검은 대륙에 편중되어있다고 가정해보면, 내 부하들이 단순히 어느 도시의 거리를 거닐다가 그레이스의 냄새를 감지한다 한들 이상할 것이 없었다.
물론, 교란용 미끼로 뿌려둔 복제체들이라면 모를까, 진짜 그레이스나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는 복제체들은 자신의 체취를 최대한 지우고 다니겠지. 내가 그러하듯이.
그러나 냄새를 흘리고 다니는 미끼들도 어쨌든 칠각기사단과 접선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 테니, 그들과 접촉하면 결국은 악마숭배 피라미드의 정점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간접적인 접촉으로 관계설정을 시작한다는 점에선 오히려 이쪽이 더 만족스럽다 하겠다.
“이렇게 보란 듯이 경고를 남겨두었다는 건-”
경태가 인간의 파편들로 가득한 주변을 둘러보며 하는 말.
“습격자들을 아주 신속하게 섬멸해서, 습격에 가담한 인원들 가운데 이쪽의 상황을 보고하거나 살아서 돌아가거나 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뜻이겠지요.”
“그렇겠지.”
“예전에 보신 그 그레이스-596이 대마법사엔 못 미쳐도 자연각성자보다는 훨씬 우월한 마법사라고 평가하셨었는데, 요 331 아가씨가 그 596이랑 비슷한 수준이었으면…… O7A의 공격대를 요절낸 쪽엔 대마법사가 있었겠군요.”
내가 돌아보자, 경태는 어깨를 으쓱였다.
“마력장을 순수한 출력으로 찍어 누르지 않고서야, 중무장 각성능력자 전투단을 상대로 이렇게 일방적인 학살극이 가능할 리 없으니 말입니다.”
정확한 판단이었다.
먼저 조우한 그레이스-596이 나를 애먹일 수 있었던 건 전율하는 거인의 뱃속이라는 환경적 특수성 덕분. 그 환경 속에서, 나와 596의 격차는 강제적으로 하향 평준화되었다.
만약 평범한 장소에서 마주쳤더라면, 그리고 내가 존재감을 감추지 않아도 무방한 상황이었더라면, 나는 596의 마소장악력을 박탈하여 일방적인 제압을 완료했을 것이다. 596의 마력회로 집적도는 결코 대마법사에게 정면으로 대적 가능한 수준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제압 이후의 마법적 자살까지 막지는 못했겠지만.
복제체들의 힘이 원본에 미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복제체들에게 지나치게 강한 힘을 줘버렸다간, 최악의 경우 자식들이 어머니의 자리를 넘보려 들 위험성이 있을 테니까.
마녀에게 생각이라는 게 있으면 그러한 상황에 대비해두었겠지.
부스럭-
다리가 길고 날씬한 고양잇과 동물 하나가 유혈 낭자한 학살의 현장을 기웃거린다. 금빛 몸뚱이에 박혀있는 검은 점들. 일반적인 고양이의 얼굴을 그대로 두고 몸집만 좀 키워놓으면 비슷한 모습이 될 듯하다.
이쪽의 눈치를 살피며 귀를 쫑긋거리던 각성체 서벌(Serval)은, 내 부하들의 적의를 가늠하며 살금살금 거리를 좁혀오다가, 사방에 널린 악마숭배자들의 육편 가운데 하나를 물고 재빠르게 달아났다. 순간적인 가속은 시속 백 킬로미터를 가볍게 넘기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스캐빈저들이 자꾸 물어가 버린 탓인지, 정육점의 고기들처럼 토막이 나있는 악마숭배자들은 바깥쪽으로 갈수록 그 유해가 망실된 비율이 높았다. 조각을 다 모아도 한 사람 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들.
“이야, 우리 서벌이는 달리기를 잘하는 프렌즈로구나.”
경태가 이상한 소리를 하기에, 나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프렌즈? 왜 복수형을 쓰는 거냐?”
내가 보지 못한 다른 개체가 있었을 리 없다. 그러나 경태쯤 되는 녀석이 헛것을 보았을 리도 없다. 내가 진지하게 묻자, 경태는 어색함 반 곤란함 반으로 미소 지었다.
“별거 아닙니다. 인터넷 유행어 같은 거죠. 나중에 시간이 나면 설명드리겠습니다.”
요즘 세대의 코드는 이해하기 어렵군. 왜 멀쩡한 문법을 해체하는 것인지.
경태는 다시금 그레이스-331에게로 눈을 돌렸다.
“호스티스 후마니 게네리스……. 이건 무슨 의미입니까?”
“인류의 적.”
“그걸 굳이 라틴어로 쓴 이유가 뭘까요?”
“글쎄……. 「장엄한 황금의 책」의 색인을 라틴어로 기록하는 이유와 같지 않을까 싶다.”
“불변의 진리를 불변의 언어로 기록하듯이, 불변의 죄 또한 불변의 언어로 기록한다, 뭐 이런 겁니까? 네가 저지른 죄악의 무게는 영원토록 변치 않으리라……. 대충 이렇게 허세 가득한 느낌으로?”
“아마도.”
“근데 죄목이 좀 특이하네요. 거창하기도 하고. 인류의 적이라니. 이건 오히려 원탁의 대마법사들에게 더 어울리는 혐의 같은데 말입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 인간들이 현생인류를 어떻게 취급하는지.”
“아. 이해했습니다.”
원탁의 세계관 속에서, 현생인류는 진정한 인류의 열화판일 뿐. 그러므로 인류의 적이라 함은 진정한 인류의 부활- 즉 원탁의 승천을 방해하는 자라는 뜻일 테지.
경태가 다시 묻는다.
“혹시 흉수가 누구인지 아시겠습니까? 뭐, 대충 짐작은 갑니다만.”
내게서 마스터들에 대한 스승새끼의 지식을 전달받은 바 있는 경태는, 살해현장 전반에서 느껴지는 악취미를 보고 흉수의 정체를 짐작한 모양이었다.
“……확신하긴 일러. 다른 놈이 흉내를 낸 것일 수도 있으니.”
그레이스-331 이외의 악마숭배자 전투단은 구성원 하나하나가 수십 개의 조각으로 깔끔하게 잘려있었다. 육체만이 아니라, 생전에 두르고 있었을 방어구들마저도.
그렇게 잘린 방어구들은 하나같이 무겁고 방호등급이 높은 것들이었다. 이는 악마숭배자들의 강화계수가 결코 낮지 않았으리라는 증거.
원탁의 대마법사들 가운데 이렇게나 편집증적인 토막 살인을 즐기는 인간은, 내가 알기로는 하나뿐이었다.
로더필드 경(Sir Rotherfield). 다른 마스터들이 한결같이 저평가했던 염동술식에 기이할 만큼 강한 집착을 보였던 자. 그래서 원탁의 동료들로부터 한정된 자원- 즉 산 제물들을 좀 더 가치 있게 쓰라는 원성을 들었던 인간.
‘스승새끼도 멍청한 야만인이라고 경멸했지.’
육신보다 영혼을 더 중시했던 다른 마스터들과 달리, 이 이단아가 추구했던 것은 황금기의 인류에 육체적으로 가까워지는 길이었다. 상고인류의 육체적 절대성은, 그 육체에 넘쳐흐르는 「생명」과 더불어, 육체에 작용하는 ‘의지의 물리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겠느냐고.
쉽게 말해 로더필드는 염동체술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창안한 인간이었다. 본인은 창안이 아니라 복원이자 재현이라고 말하겠지만.
우리의 조사는 공장 내부로 이어졌다. 황금기의 눈으로 공장 밖을 경계하면서 행하는 수색.
공장의 첫 번째 구획엔 아주 많은 수의 병원용 침대들이 즐비하게 들어차있었다. 일반적인 병원용이 아니라, 팔다리를 묶을 구속구가 달려있는 정신병원용 침대들이. 칸막이로 분리된 공간엔 사람의 다리를 고정시키는 검진대와 혈중 산소포화도 측정기, 스팀 살균장치, 각종 수술용 도구들과 조명 따위가 비치되어 있었다.
공장의 두 번째 구획은 크기가 작은 영유아용 침대들과 인큐베이터들로 가득했다.
적외선 조명과 야시경에 의지하여 따라오던 경태가 속이 빈 인큐베이터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역시 아기공장을 돌렸나보군요. 누구들처럼 먹으려고 돌린 건 아닐 텐데.”
누구들처럼, 이라.
마법의 암흑기에도 존재했던 중국의 태아가공식품은, 마법이 돌아온 이후로는 비단 중국의 전유물만이 아니게 되었으며, 생산과 수요도 그만큼 많아졌다. 우리 조직과 연줄이 있는 딜러들이 관련 문의를 해오는 경우가 늘었으니까.
살 생각이 있느냐. 혹은 팔 물량이 있느냐.
한국의 돈 많고 나이 든 것들 중엔 이런 걸 찾는 미친놈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원탁의 하수인들이 아기공장을 돌린다는 시나리오는, 그들이 노예시장에서 여자를 쓸어간다는 정보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증거를 확인했으니 이제는 이유를 고민할 차례. 그 이유란, 어쩌면 칠각기사단이 노예 공급선을 줄줄이 끊어놓으며 이 공장까지 들이친 동기와 모종의 연관성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잠깐.
연관성, 연관성…….
나는 탐색의 발걸음을 멈추고 눈을 찌푸렸다.
원탁의 하수인들은 혹시 그레이스의 마법적 자기복제기술을 모방하려 애쓰고 있었던 것인가? 그게 이 아기공장의 존재 목적이었나?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그레이스 본인이 그러한 원탁의 계획을 파악했다면, 칠각기사단이 평소의 비밀스러운 활동에서 벗어나 대대적인 공격을 가할 이유가 될 법하지 않은가?
나는 원탁내각 대의원들의 열화 복제체가 공산품처럼 쏟아져 나오는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이는 기분이 아주 더러워지는 상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