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74화 (274/561)

#31. 승천의 계단 (17)

우리의 추적은 계속되었다.

때로는 자력비행으로, 때로는 현지에서 구한 차량에 탑승해서, 때로는 밀림과 산지를 급속행군으로 주파하고, 때로는 수상비행기와 야지비행기(Bush Plane)의 신세를 지며.

이는 르완다 정보보안국이 넘겨준 로우 데이터를 분석하여 노예상인들의 발자국을 더듬어가는 과정이었다. 분석은 수연의 감독 하에 본사의 비서실과 지원팀이 수행하고,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는 족족 실시간으로 내가 진두지휘하는 타격대에 통보하는 식이다.

임마누일이 연결해준 정보중개인들과의 교섭 또한 수연의 소관으로 진행 중이었다. 공능법인의 임무 수행마저 수연 녀석이 총괄하고 있는 탓에 처음엔 업무과다를 이유로 책임자를 분리할 생각을 했었지만-

‘그놈의 일 욕심은…….’

수연 본인이 감당 가능한 수준이라 자신했으므로 일단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일에 대한 집착이 심한 녀석이긴 하나, 그 집착으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도 한 가지 우려되는 게 있다면 녀석의 정신적인 체력이다. 녀석도 사람은 사람인 만큼, 언젠가는 방전되지 않을까 하고. 본인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하는 소모와 한계점이라는 게 존재할까 봐서.

비서실장 겸 기조실장, 사실상 조직의 2인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녀석이 완전히 기진해버리기라도 하면, 나로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여 나는 수연을 근접 수행하는 비서실 소속 부하에게 일러두었다.

“네 상급자의 휴식과 식사와 수면시간을 면밀히 체크하라.”라고.

본인에게 직접 말하기는 못내 불편한 감이 있었다. 평소 나부터가 내 휴식에 관한 녀석의 권고를 최소한도로만 받아들이는 편이었으니. 지시를 받은 부하 또한 내 언행의 불일치에 생각이 미쳤는지 다소 미묘한 반응을 내보였다.

여하간, 자료 분석을 통해 확실하게 위치를 특정해낼 수 있었던 거점은 몸바사 항의 봉제공장이 유일하였으되, 또 다른 거점이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후보지역들은 제법 많은 수를 뽑아낼 수 있었다. 원탁의 하수인들에게 납품을 했을 가능성이 높은 현지 소상공인들의 활동지역 역시도.

그렇다면 남은 일은 직접 확인해보는 것뿐.

나는 그 모든 지역들을 내 눈으로 탐색하고자 했다.

다소 무식한 방식이긴 하나, 하루에 수천 킬로미터를 능히 움직일 수 있는 기동성이 있고 보면 이러는 편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확실해? 여기가 맞아?”

경태가 낮게 으르렁거리자, 피부 검은 현지 노예상은 부들부들 떨며 끄덕였다.

“맞아요. 확실해요. 그들은 이곳에서 물건을 받아갔어요.”

“……젠장. 또 한발 늦었네.”

경태가 이마를 짚고 내뱉는 탄식. 나 역시 비강을 가득 채우는 탄내에 눈살을 찌푸렸다. 곳곳에서 아직까지도 실 같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화재현장. 철수한 놈들과 엇갈린 간격이 케냐의 봉제공장에서보다 훨씬 더 가깝다.

이 현장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연속적인 철수와 연속적인 공격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을 가능성을 강렬하게 암시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그로부터 배제되어있다는 사실에 이가 갈리는 조바심을 느꼈다.

엿 같은 엇갈림이 이걸로 두 번째. 만약 세 번째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더 이상 가설이 가설이 아니게 될 테지. 되도록 일이 벌어지기 전에, 혹은 늦어도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발견했으면 좋겠는데…….

“위대한 주술사시여.”

노예상인이 침을 질질 흘리며 애걸했다.

“저를 살려주십시오. 제게 자비를 베풀어주신다면 추격대를 설득해서 돌려보내겠습니다. 아니, 저들이 당신의 발치에 엎드려 황금과 제물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추격대. 그래, 추격대가 있었다.

최대한 빠르게 현장에 도달하려 애쓰다보니, 이 현지 노예상의 납치는 다소 거칠고 난폭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직접적인 목격자는 없었을지언정, 같은 패거리-혹은 상납을 받고 보호를 제공하는 반군 새끼들이 비상을 걸 만큼의 흔적을 남겨놓고 온 것이다.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 잡것이 좀 가볍기만 했어도.’

처음 사로잡았을 때, 현지 노예상인은 끌고 다니기 불편할 만큼 무거웠고, 무엇보다 부피가 컸다. 미국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초고도 비만 환자였던 것. 각성능력자가 아니었던들 제 발로 걷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무지막지한 체형이었다.

각성하고 나서 증가한 에너지 효율로 말미암아 살이 찐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이 체형이었던 것인지.

그래서 납치 현장으로부터 최소한의 거리를 확보한 즉시, 나는 이 여자의 살을 뭉텅뭉텅 잘라냈다. 마력장을 넓게 전개하여 「생명」을 운용하지 않았더라면 과다출혈로 사망했을 급격한 체중감량.

이는 현지 노예상이 나를 위대한 주술사라 부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살이 급속도로 아무는 기적을 경험한 노예판매인은 그때부터 감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쫓아오는 놈들이 차량에 달아놓은 깃발을 보았다.

‘적, 흑, 청. 자칭 십자군 놈들이로군.’

검은 십자군, 혹은 신성구세군(Holy Salvation Army). 보다 널리 알려진 이름으로는 주님의 저항군(Lord’s Resistance Army). 우간다 최대의 반군집단이자 중앙아프리카 최대의 노예공급자라고 해도 좋을 기독교 이단 꼴통 놈들.

140만에 달하는 난민들이 있고, 알 샤바브 계통의 극단주의 이슬람 반군과 기독교 계열 주님의 저항군이 경쟁적으로 노예를 팔아대는 이 나라- 대영제국의 옛 식민지에서, 원탁의 하수인들은 또 얼마나 많은 제물들을 챙겨갔을는지.

기독교 이단 무장집단의 탄생이 옛 식민모국의 디바이드 앤 룰, 즉 현지 부족들 간의 차별과 갈등을 부추기는 통치전략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감안하면, 빛과 진리의 원탁은 여전히 대영제국의 유산을 누리고 있는 셈이었다.

「우득-!」

사람의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 우간다 현지 노예상의 숨줄을 악력으로 으스러뜨린 나는, 대번에 절명해버린 상인을 쓰레기처럼 내팽개쳤다.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대한 짜증을 담아.

신성구세군이 매년 유통하는 노예의 5분의 1, 즉 최소 4천 이상을 취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거상의 죽음이었다.

나는 추하게 널브러진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내 칼질에 여기저기 각이 지도록 깎여나간 기괴한 몸뚱이는, 이 대륙 곳곳에 그어진 기괴한 국경선들을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었다.

“다음은 어디냐?”

시체를 걷어차 가까운 각성수 근처로 굴리며 묻는 말에, 경태는 짧게 음- 하더니 답을 내놓았다.

“국경을 한 번 더 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쪽으로요.”

“근처에 비행을 시작하기 적합한 지점이 있나?”

“어, 자력비행보다는 가까운 백나일(White Nile) 줄기로 이동해서 수상비행기를 호출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니면 14킬로미터 거리에 헌터들이 만들어놓은 간이 활주로도 있고요.”

세계 어딘가에 돈 될 건수가 생겼다 하면 허겁지겁 모여드는 게 헌터들의 생리다. 특히 이 부근은 치안 부재에 힘입어 대놓고 밀렵이 이루어지는지라, 빈번하게 뜨고 내리는 온갖 종류의 비행체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행적을 세탁하기에 좋은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평화유지 보조임무를 맡은 헌터들이 부지런히 뒷주머니를 차고 있는 것.

하루가 다르게 격해지는 대륙 규모의 혼란은 내 추적에 있어선 긍정적인 요소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으로 가는 게 낫겠군. 쫓아오는 놈들을 처리하고서 출발한다.”

“다 죽입니까?”

“바람이 좋다. 불을 놓기로 하지.”

“아하. 맡겨주십시오.”

전원이 「발화」를 구사 가능한 부하들은 그저 질주하는 것만으로 타오르는 궤적을 남길 수 있었다. 더불어 후방으로 빠진 내가 광범위한 영역에서 습기를 제거했으므로, 바람을 탄 불길은 매우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다.

바박! 슈르르르-!

갑작스러운 화마에 자극받은 각성수들이 저마다 조건반사적인 마법들을 폭발시킨다. 저가 붙잡아두었던 수분을 결계처럼 두르는 나무들이 있는가 하면, 해충을 죽일 때나 쓸모가 있을 스파크를 터트리거나, 다가오는 불에 또 다른 불을 더하거나, 거친 염동 폭발을 연속적으로 일으키는 나무들도 있었다.

현상으로서의 화재를 시각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또 집중된 인지구조라는 게 존재하지 않기에 나오는 난잡하고 혼란스러운 반응들. 기상학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 비를 바라며 기우제를 지내던 인간들의 무지와 조금은 겹쳐 보이는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어떤 식으로든 물을 다루는 개체들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각성수가 뿌리내린 자리들은 화마가 쉬이 침습하지 못했다.

불길로 짠 그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혹은 이쪽으로 치고 들어올 수 있는 제한된 경로들.

달리 말해, 이는 모여드는 적들에게 화력을 집중하기 좋은 자리들이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화력집중점이라 하겠다. 바람을 살핀 경태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계산으로 연출해낸 전장. 아무렇게나 불을 질렀다면 적들은 간단히 우회를 시도했을 것이다.

발라클라바와 보안경을 착용한 경태는 뜬금없는 괴성을 지르며 공격을 이끌었다.

“알라 후 아크바아아아르!”

……?

순간 저 녀석이 왜 저러나 싶었지만, 잠깐의 의아함이었을 뿐. 그 의도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았다. 이어 불길과 연기의 저편으로부터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적성 광신도들의 외침.

“빌어먹을 알라쟁이 새끼들이었구나! 공격! 공격해라! 신께서 이교도들의 죽음을 바라신다!”

피부 검은 재림예수의 잡병들은, 대열이 삽시간에 붕괴해버린 혼란 속에서도 지리멸렬한 반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피아의 격차를 종교적인 격노만으로 극복할 순 없었다. 실력의 차이, 장비의 차이, 그리고 바람을 받는 입지의 차이를. 노예상인을 찾아 나선 추격대의 규모는 한 개 소대를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규모 면에서도 내 부하들을 능가하지 못하는 것.

단시간에 부상을 당한 추격대의 지휘관은 이를 갈며 후퇴를 지시했다. 이쪽의 모습을 포착하지도 못한 채 감행하는 치욕스러운 퇴각이었다.

“저주받을 이교도들아! 결코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너희는 반드시 죗값을 치를 것이다! 주 하느님의 지상대리인이신 조셉 님의 이름으로!”

현지 노예상 납치 및 실종의 혐의를 알 샤바브 이슬람 반군의 우간다 지파에게 뒤집어씌운 경태는 빙글빙글 웃으며 만족스러워했다.

“캬, 자연스러웠다. 알라방패 성능 좋구만.”

“…….”

그렇잖아도 현지 노예시장의 점유율을 두고 경쟁을 벌이는 관계였을 두 반군집단은 이번 일을 가볍게 넘길 수가 없을 것이다. 아예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체면을 차리는 데 필요한 만큼의 죽음을 쌓으려고 하겠지.

짐작컨대, 이 야만의 땅에서 이와 같은 충돌은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일 터였다. 무장한 광신도들은 천국에 들기 위해 적의 죽음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니.

상인의 죽음을 그러한 세력다툼의 일상으로 위장한다.

경태의 말마따나, 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만 가시죠.”

“그래.”

약간의 두통이 느껴진다. 탄내를 많이 맡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행에 피로가 쌓인 탓인지. 나는 습관처럼 관자놀이를 누르며 선행하는 경태를 뒤따랐다.

백나일 강줄기에서 재차 이어지기 시작한 우리의 수탐경로는 대영제국의 옛 식민지들을 복잡하게 연결하는 선으로 수렴되었다. 카메룬에서 나이지리아로, 나이지리아에서 다시 카메룬으로, 그로부터 다시 가나를 거쳐 시에라리온에 도달하는 선.

이 선을 다 긋는 데엔 5주야 하고도 한나절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총 이동거리가 1만 킬로미터를 넘어가는 강행군은 마치 유령을 쫓는 듯한 여정이었다. 이 기나긴 추적행에서, 나는 세 번째와 네 번째와 다섯 번째의 잿더미들을 발견했다. 그 잿더미들은 한 번은 치밀하게 계획된 함정이었고 한 번은 보관 중이던 상품들을 모조리 불태우면서까지 황급히 철수한 흔적이었으며 또 한 번은 공격자들의 손에 철저하게 파괴당한 폐허였다.

그러다 마침내 발견한 여섯 번째의 현장은 다 타버리고 남은 잿더미 따위가 아니었다.

끼익- 끼익-

늦은 시각, 야트막한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공장형 시설 입구에서, 짙은 어둠 속 교수대에 매달린 시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망자의 머릿결이 생기 없이 흩날린다. 사타구니에서 발끝까지는 오물이 흐르다 마른 줄기들이 남아있었다. 상체는 하얗고 창백하였으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거뭇한 기운이 감돌았다.

죽은 이는 여자였고, 발가벗겨진 채 전시된 경고의 메시지였다. 이것은 감히 원탁에 대적한 자의 말로라고.

「HOSTIS HUMANI GENERIS」

쇄골에서 가슴 사이의 살갗에 핏빛으로 날카롭게 새겨진 라틴어 문장. 이는 「인류의 적」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날카로워지는 신경을 다스리며 시야를 넓혔다. 교수대 주변에 남아있는 교전 흔적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경고 메시지라고 봐도 좋았다. 강박적으로 흔적을 지우는 나와 달리, 이곳에 왕림했던 처형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강력한 염동력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

교수대로 다가갈수록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냄새가 짙어진다. 시체의 발아래 흩뿌려진 배설물의 악취가 아니라, 내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여자의 냄새가.

서걱-!

예리하게 날을 세운 염동력이 교수대의 밧줄을 끊어놓는다. 보이지 않는 힘에 붙잡힌 시체는 스르륵 미끄러지듯 내 앞으로 끌려왔다.

나는 망자의 머릿결을 코에 대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래, 이 냄새였다.

동일한 유전자. 동일한 체취. 일찍이 전율하는 거인의 뱃속에서 처음 맡아보았고, 콩고 땅에선 너무도 희미하여 그 정체를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바로 그 냄새.

나는 매달려있던 시체, 그레이스-331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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