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승천의 계단 (15)
대통령이 떨떠름해하는 이유는 친 르완다 민병대 「마이 마이 우다비티」가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우리를 간이 비행선 이착륙장으로 안내하기로 했던 소대 규모 전투단만이 아니라, 근 1천에 달하는 민병대가 깡그리 몰살을 당했다는 보고를.
내게 숙소로 내어준 저택의 거실에서,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앉은 마른 얼굴의 대통령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대들이 시체의 신선함을 확인했다는 시간과 우리 쪽 요원들의 사후 현장 확인 보고를 대조해보면, 그대들을 마중 나갔던 전투단이 아마 우다비티 최후의 생존자들이었을 거야. 본거지가 궤멸당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로 습격을 받은 게 아닌가 싶네.”
“배후는 짐작 가는 곳이 있으신지?”
“일단 주술사 왕이 한 짓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보네. 「활과 화살(우타웨 나 브옘베)」 및 「후루 연합전선」의 주력은 현재 카메룬 동부에서 평화유지군과 대치를 이어가고 있고, 「드람메자」의 최신 목격정보도 이틀 전 카메룬에서 들어왔으니. 뒤쪽은 아마 서방세계의 첩보기관들도 입수하지 못한 정보일 게야.”
내게 이렇게 알려줄 필요가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 대통령은, 대화의 초점을 민병대 몰살에 맞추고 싶은 기색이었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준비한 철수 경로가 무력화된 책임에 대해선 은근슬쩍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
조금은 수치스럽기도 하겠지. 일개 범죄조직의 타격대는 세계 정상급의 특수부대에게도 까다로울 임무를 완벽하게 완수해냈는데, 자타가 공인하는 명장인 자신은 결과적으로 퇴로 하나조차 제대로 준비해주지 못한 셈이니.
하는 짓이 조금 아니꼽기는 하나, 몇 푼 안 되는 이윤조정 때문에 대통령에게 수모를 안길 이유는 없었다.
나는 모르는 척 상대의 의도에 어울려주었다.
“그 괴물 코끼리가 하루에 1천 킬로미터씩 내달렸을 수도 있잖습니까. 관측을 피하기 위해 낮 시간대의 기동이 제한된다고 해도, 장갑차를 구겨서 던져버리는 출력의 염동력이면 얼마든지 극복 가능한 거리입니다.”
“그럴 리가 없다……라고는 못하겠군. 그대의 말과 달리, 그 코끼리는 낮에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니까.”
대통령의 말에, 나는 그를 보는 시선을 기울였다.
“낮에도 자유롭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러시아 대외정보국이 「활과 화살」에 다량의 다중 스펙트럼 위장막을 공급해 줬거든. 그 위장막의 이름이 아마 「가시나무(Терновник)」라고 했던가? 표면적으로는 밀수의 형태를 취하긴 했네만, 뭐, 다 알아내는 방법이 있었다고만 해둠세.”
“…….”
또 한 번,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고급 정보.
어쩌면 이건 브라츠키 크루그가 얽힌 거래일지도 모르겠다. 브라츠키 크루그의 원년 멤버들 중엔 소련 해체기에 군을 나온 장교 출신들이 다수 존재하고, 그들은 아직까지도 군에 몸담았던 시절의 사적인 커넥션들을 유지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니까.
당장 주정뱅이 임마누일부터가 구(舊) 소련의 장교였던 인간이다.
대통령이 턱짓으로 나를 가리켰다.
“그대가 유능한 무기 상인이라면 분명 취급하는 상품 목록에 포함되어있는 물건이겠지. 그 성능 역시 잘 알고 있을 테고.”
“……러시아가 이번 기회에 이 대륙에서 서구권 국가들의 영향력을 거세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로군요. 덤으로 중국도 견제하고.”
“서유럽의 불행은 동유럽의 행복이 아니겠나.”
다중 스펙트럼 위장막, 달리 기동위장체계(MCS)라고도 부르는 이 물건은 본디 기갑차량의 생존성 향상을 위해 개발된 것.
그저 시각적인 교란이 고작이었던 기존의 위장막과 달리, 이 신형 위장막은 적외선과 전파를 흡수함으로써 열 영상 관측 및 레이더 탐지를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린다. 위장막 본연의 기능인 시각적 위장 역시 훌륭하게 해내는 건 물론이고.
그런 위장막을 맞춤제작으로 뒤집어썼다면, 주술사 왕의 전투코끼리는 가깝게 접근하기 전까진 그 존재를 포착할 방법이 전무한 생물재해로 변모한 셈이었다.
대통령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주술사 왕은 아닐 거야. 강력한 전략예비를 그런 식으로 내돌릴 만큼 식견이 짧은 자였다면, 그와 그의 군세는 결코 지금과 같은 성세를 일구지 못했을 터이니.”
나는 이어질 말을 가만히 기다렸다.
혹시나, 그 ‘냄새’에 대한 단서가 나오지는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대통령은 내 기대에 부응하는 대신 조금 엉뚱한 이야기를 꺼내었다.
“지금으로선 신뢰도가 낮은 정보들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보는 정도가 최선일 듯하네.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았거나, 증거가 부족하거나, 지나치게 허황되다 여겨 방치해두었던 정보들을 말이야.”
“예를 들면 어떤 게 있습니까?”
“혹시 「킨도키」라고 들어봤나?”
기억을 더듬던 나는, 그 단어가 한국 외교부에서 제공한 현지 수렵용어 교육 자료에 수록되어있었음을 어렵게 떠올렸다.
“그건 난폭한 자연각성체를 뜻하는 단어라고 들었습니다만…….”
해당 자료에선 킨도키가 폭식체(Omniphagor)에 대응하는 단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불사암으로 인해 질병 같은 허기와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한 공격성을 앓게 된 야생의 각성체. 오쿠노시마에서 마주쳤던 붉은 토끼가 그러한 폭식체의 대표적인 예다.
내 말을 들은 대통령은 싱거운 웃음을 터트렸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군. 킨도키는 다분히 주술적인 개념일세. ‘악령에게 사로잡힌 생명’이라는 뜻이지. 뭐, 부분적으로는 자네가 말한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겠네만,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 그러할 따름일세. 악령이 꼭 동물에게만 깃드는 건 아니잖은가.”
“그렇군요.”
요컨대 동물과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개념이란 말이지. 인도네시아의 「어두워진 눈(글랍 마따)」과 비슷한 용법이라고 이해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리고 최근 명성을 떨치는 사이비 주술사들은 이런 식으로 가르친다네. 킨도키를 잡아먹으면 자신의 주술적인 힘을 강화할 수 있다고.”
“……주술적인 식인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이십니까?”
“본래는 몇몇 군벌들의 영역에만 퍼져있었던 믿음이었다네. 그랬던 것이 요즘은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모양이야. 예전엔 숲을 숭배하는 밤부티 사람들을 주로 잡아먹었지만, 근래 들어선 강력한 각성능력자의 피와 살을 가장 영험한 약으로 친다고 하더군.”
“그게 이번 일과 상관이 있습니까? 제가 본 피습 현장은 잡아먹기 위한 사냥이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뭐, 조금 더 들어보게. 아직은 사실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풍문일 뿐이네만, ‘킨도키 중의 킨도키’가 나타났다는 말이 있어. 이제껏 존재했던 그 어떤 악령보다도 더 강력하고 위험한 악령에게 몸과 마음을 빼앗긴 괴물이, 그간 제 족속들을 잡아먹어온 원수들에게 원한에 찬 복수를 행하고 있노라고.”
“그런 풍문을 입에 담으시는 이유가 있겠지요.”
“세 가지 정도.”
대통령은 잠시 숨을 돌리고서 말을 이었다.
“사람인지 짐승인지도 모를 그 괴물에 관한 모든 소문에서 예외 없이 언급되는 요소가 세 가지 있는데, 첫째는 괴물이 사람을 찢어죽이기를 좋아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복수의 대상이 하나같이 반군집단들이라는 점이며, 마지막은 「악령의 머리는 아름답고 신성해 보이는 금빛으로 빛났다.」라는 목격자들의 진술이라네.”
아름답고 신성해 보이는 금빛이라. 악마는 천사의 모습으로 찾아온다는 흔한 레퍼토리의 변주인가.
기실 성경이 묘사하는 천사의 모습도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것이지만.
나는 그보다 다른 것을 물었다.
“목격자가 있습니까?”
“괴물과 마찬가지로, 대개는 실존 여부가 의심스러운 이야기 속의 목격자들이지. 아니면 머리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는 촌부들 내지 소문에 묻어가려는 주술사들이거나.”
“…….”
“다만 신경 쓰이는 건, 이 같은 내용들이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왜곡 없이 퍼졌다는 점이야. 그것도 아주 단기간에. 이런 종류의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군살이 붙거나 왜곡되는 게 보통이고, 퍼지는 속도에도 한계가 뚜렷하지 않은가.”
“넓은 지역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입니까?”
“나이지리아, 카메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차드, 콩고 민주공화국…….”
대통령은 중부 아프리카 일대의 여러 나라들을 차분한 어조로 나열했다. 대부분은 주술사 왕의 영향권에 들어있는 국가들을. 단지 이것만으로도, 이 시대에 돌기 쉬운 흔한 괴담 같기만 했던 풍문은 추가적인 조사가 요구되는 정보로 격이 올라갔다.
“체계적으로 소문을 퍼트리는 세력의 존재가 의심스럽군요.”
“나한테까지 보고가 올라온 이유가 그걸세. 주술사 왕의 주술적인 영향력을 같은 형태의 영향력으로 침식하려는 공작의 초기 단계가 아닌가 하고. 사실, 주술사 왕이 구축한 영향력이라는 게 의외로 견고하지가 못하니까 말이야. 이 가설이 맞다면, 배후엔 어느 서구권 국가의 정보기관이 도사리고 있겠지.”
소문의 배후에 서구권의 정보기관-아마도 대통령은 프랑스나 벨기에의 정보기관이라고 말하고 싶겠지만-이 있다는 전제 하에, 그리고 소문 속의 괴물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콩고 땅의 친 르완다 민병대가 괴물의 표적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일견 최소한의 개연성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건 좀 의심암귀가 아닌가 싶은데.’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과 불안이 빚어내는 허상의 귀신.
겉으로 티를 내고 있진 않으나, 내가 보는 대통령의 생체징후엔 만성화된 피로의 색채가 묻어났다. 나 자신에게서 자주 보아 익숙한 색채가.
세상에 완벽한 인간은 없다. 이제까지의 행적이 철인에 가까운 눈앞의 대통령도, 인간은 인간인 만큼 얼마든지 편집증적인 경계와 불안을 앓을 수 있는 것.
하물며 독재자로서 보낸 시간이 근 30여 년이 다 되어 간다면, 철인의 정신이라도 슬슬 녹슬기 시작할 때가 된 게 아닐까?
내가 보기에 소문의 배후는 주술사 왕일 확률이 오히려 높아 보인다. 허상의 괴물을 만들고 그것을 스스로 무찔러 명성을 높인다는 단순한 활용법도 있으니. 세상에 고통이 있지 아니하면 구세주의 존재가치는 그만큼 떨어지는 법이다.
구세주의 사업이 당위성을 얻기 위해서는 인세에 아주 많은 고통이 흘러넘쳐야 한다. 원탁의 마스터들이 그 추종자들에게 베푸는 「동반 승천」 내지 「휴거」의 약속 또한 고통 가득한 세상으로 말미암아 강력한 힘을 얻는 것.
낮은 확률로 원탁이나 O7A가 엮인 일일 수도 있지. 괴물을 ‘만들어 낼’ 능력을 진실로 보유한 세력들이니. 능력의 유무와 별개로, 그렇게 해서 얻을 이익이 무엇인가 싶기는 해도. 이익이 없지는 않겠지만, 거기에 과연 대마법사의 인시(人時)를 투입할 가치가 있겠는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게 대통령은 슬쩍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쩐지 불순한 생각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군.”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내가 시치미를 떼자, 대통령이 아까처럼 어깨를 으쓱인다.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말게. 처음에도 말했듯이, 신뢰도가 낮지만 재검토할 가치는 있는 정보의 사소한 예시일 뿐이라네. 우다비티 역시 종종 킨도키 사냥을 나가곤 했으니까.”
그런 것 치곤 서구권 정보기관 운운할 때의 신경신호가 심상치 않았는데 말이지. 이 대통령에게는 분명 강박증이 존재한다. 지나온 과거를 보건대, 없으면 더 이상할 강박증이.
나만 하더라도 강박증을 앓고 있지 않은가.
강박적으로 존재를 숨기고, 강박적으로 흔적을 지우고, 강박적으로 나에게만 의미가 있는 선들을 그어대고……,
이런 나를 알기에, 내가 언제나 부하들의 조언에 귀를 열어두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편치 않은 부하들의 개성을 함부로 쳐내지 않고, 내 뜻한 바와 완벽하게 일치하지는 않는 부하들의 재량을 나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고, 다소 껄끄러운 말이라도 논리적인 구색을 갖췄다면 최소 한 번은 진지하게 곱씹어보는 등.
그러지 않으면, 나 스스로가 녹슬고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수가 있으니까.
“기왕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대통령이 안경을 고쳐 쓴다.
“지금껏 들려준 이야기들이 대충 사실이라고 치고, 내가 그대에게 이와 관련된 의뢰를 맡기려 한다면, 그대는 의뢰를 받아들일 의사가 있는가?”
요컨대, 특정 국가의 정보기관에게 정면으로 훼방을 놓는 일감도 맡을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지나간 대화의 가벼움으로 질문의 무게를 덜어내는 화법.
“시간이 남고 조건이 맞는다면 못할 것도 없지요. 각하께서 스스로의 신용과 가치를 양호한 수준으로 유지해주신다면 말입니다.”
“시간이 남으면? 게다가 내 신용과 가치라고? 하하, 하하하!”
적당히 무례한 태도를 연기하니, 대통령이 이를 드러내며 소리 내어 웃는다.
“건방져. 정말로 건방져.”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
웃음을 갈무리한 대통령은 유쾌한 어조로 대꾸했다.
“솔직히 말해 지난 임무는 골탕 좀 먹어보라고 내어준 수준이었지. 절반만 제대로 터트리고 돌아오면 다행일 거라고.”
어느 정도는 짐작한 바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네만, 자네가 브리핑을 듣고 나서도 임무 내용에 대해 아무런 이의도 내놓지 않는 게 다소 어이없기도 했어. 이 새끼, 여기가 아프리카라고 모든 걸 쉽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었거든. 자네도 알겠지만 세상에 그런 놈들이 워낙 많지 않은가.”
“저는 그저 저와 제가 키워낸 부하들의 실력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건 오히려 내 쪽이었지. 자네들이 초장거리 비행으로 이미 역량의 일각을 선보였음에도, 일개 밀수회사의 타격대가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나겠느냐며 못내 얕잡아 보는 마음이 있었단 말이야.”
“…….”
“이제는 확실히 알았네. 그대와 그대의 부하들이 국가적인 역량을 기울여 육성해야 하는 수준의 최정예 타격대라는 사실을.”
내가 가만히 듣고만 있자, 대통령은 책상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체를 기울인 그의 얼굴에 비스듬히 음영이 진다. 나를 내려다보는 목마른 시선.
“듣고 싶군. 그대의 부하들은 출신들이 어디인지, 그런 인재들을 어디서 어떻게 발굴하고 영입했는지, 이제껏 어떤 방식으로 훈련을 시켜왔고, 그 프로그램들을 굴리는 데 얼마의 예산과 자원이 필요했는지.”
지금의 대통령은 과거 군인이었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비록 국가수반으로서 정장을 입고 있을지언정, 정신적으로는 단 한 순간도 군복을 벗은 적이 없었을 인간.
“그런 문제라면 이쪽의 제 부하와 대화를 하시지요. 그런 분야의 실무에 관해선 저를 전적으로 대리한다고 해도 좋을 녀석이니.”
나는 바통을 경태에게로 떠넘겼다.
이어지는 경태와 대통령 사이의 대화는, 경태가 종종 알려주는 젊은 세대의 표현을 빌리자면 ‘덕질’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잘도 이렇게 죽이 맞아 떠들어대는구나 싶어질 지경.
하기야 대통령은 미 육군 지휘참모대학을 나온 군사 엘리트이고, 경태를 가르친 교관들 또한 과반수가 미군 특수부대 출신들이었으니 대화가 잘 통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었다.
나는 길어지는 대화를 적당한 선에서 끊어놓았다.
“각하. 죄송하지만 제가 시간이 많지 않군요. 이런 쪽으로의 조언이나 인력파견을 원하신다면 정식으로 컨설팅을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
약간의 못마땅함을 담아 나를 응시하던 대통령은, 대기하던 정보보안국장 은쿠랑가 대령에게 손짓했다.
“가져가게. 내가 약속했던 ‘진심’일세.”
은쿠랑가 대령이 내게 건네는 건 미국 표준 군사규격에 해당하는 USB 메모리였다.
“그대가 원하는 정보는 그 안에 다 들어있을 거야.”
창문의 빛을 등진 대통령이 뒷짐을 진 채로 턱짓을 해보인다.
“듣자니 다른 정보중개인들을 추가로 소개받기로 했다던데, 그들의 도움 따윈 필요 없을 것이라 자부하네. 자네 입장에선 그래도 교차검증은 해봐야겠지만……. 금전적인 대가는 임마누일에게 전달을 맡길 테니 나중에 알아서 찾아가도록 하게나.”
내가 USB를 받아들자, 대통령이 작별인사를 고했다.
“그대를 알게 되어 즐거웠네, 회장. 다음엔 「환대의 마을」에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군.”
환대의 마을(Village Urugwiro)은 르완다 대통령의 관저에 붙은 이름이었다. 고독의 완전체는 경호를 받으며 내게 주어진 숙소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