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71화 (271/561)

#31. 승천의 계단 (14)

새벽 3시 정각. 4개소에서 동시에 발생한 폭발은 순간적으로 강렬한 진동과 굉음을 빚어냈다. 은기코에선 간접적인 충격만으로 수십 채의 민가가 반파되었을 정도. 이 지역의 후투 반군 전체가 석 달은 쓰고도 남을 탄약들이 한꺼번에 터진 결과였다.

끈질기게 계속되던 공양제례 역시 폭발의 여파로 중단되었다. 거대한 화염과 연기가 지면을 뚫고 솟구치자 주술사를 위시한 모두가 개미 떼처럼 흩어지기 시작한 것.

각성능력자의 힘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달아나는 피투성이 주술사에게선, 조금 전까지 두르고 있던 위엄이 단 한 조각도 남아있지 않았다.

원시적인 제례의 현장엔 배가 갈라진 제물들만이 남게 되었다.

‘UN군은 움직이지 않는 건가?’

명목상 재건지원부대가 주둔하는 평화유지군 기지엔 비상이 걸렸으나, 첨예한 경계태세에 돌입했을 뿐 폭발 현장으로 순찰대를 급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를 두고 경태는 이렇게 평가했다.

“너무 크게 터지니까 겁먹은 것 아닐까요? 이게 소규모 침투 및 파괴공작의 결과인지, 아니면 정체불명의 무장 세력이 대규모 공세를 가하는 과정인지 알 도리가 없으니 말입니다. 지금쯤 아마 저쪽 통신회선들에 불이 나있겠죠.”

4개 갱도진지를 선으로 이어놓으면 총연장이 대략 15킬로미터 어림에 이른다. 만약 이 넓은 정면에 걸쳐 지역 점령을 목적으로 동시 공격을 감행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의 규모는 작게 잡아도 사단(師團)급 이상이어야 한다.

이 일대에서 그 정도의 병력을 집중할 수 있는 세력이라곤 콩고 민주공화국 정규군과 르완다 정규군이 전부. 대형 반군들이 손을 잡고 연합전선을 구성한다는 가능성도 있기는 하나, 그 희박한 가능성보다는 르완다 정규군의 기습이라고 판단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계속 기다려보면 뭐라도 추가적인 반응이 있기야 있겠습니다만, 이 일에 그렇게까지 시간을 투자할 생각은 없으시죠?”

나는 경태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화룡점정을 찍지 못한 게 아쉽긴 하나, 당초의 계획은 날이 밝기 전에 다시 국경을 넘어 돌아가는 것이었다. 목을 움츠린 거북이가 다시 머리를 내밀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을 순 없는 노릇.

대통령의 코를 눌러주기엔 4개소의 거점을 전부 터트린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무엇보다, 정보보안국 또한 프랑스 군의 동향에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을 터. 내 수고는 그저 내 능력을 증명하는 것 외엔 다른 효용이 없는 낭비가 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에게는 그게 시험으로서의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어쩔 수 없지. 복귀할 채비를 해라.”

“다들 들었지? 준비해!”

가까운 거리에 윙슈트 점프를 하기 좋은 지형들이 다수 분포하고 있었지만, 그런 지형들은 예외 없이 연기가 솟아오르는 분화구가 지척이었다. 그리고 나는 대통령이 입에 담은 전문가들의 분석을 백 퍼센트 신뢰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도 그러할 테니까.

황금기의 눈을 가진 나라도 지각 너머의 에너지 흐름을 낱낱이 읽어낼 능력은 없다. 화산 내부의 압력변화까지는 관측 가능하지만, 그 압력의 뿌리인 지각 너머의 대류(對流)는 내 눈으로도 보지 못할 영역에 존재한다.

지각이 아주 얇은 곳에서조차 대류의 표층이나 관측할 수 있으면 다행이겠지. 중간에 끼는 정보량이 너무 많아 해상도가 떨어질 것은 당연하고.

그러므로 우리는 화산을 우회하여 북북서로 향하는 경로를 잡았다. 르완다의 지원을 받는 민병대와의 합류지점을 향하여.

총 이동거리는 대략 32킬로미터 언저리, 멕시코에서 급박한 달리기를 할 때보다 많이 성장한 부하들은, 숲과 언덕과 야지를 가로지르는 세미 마라톤을 반시간 만에 간단히 완주해냈다. 다 끝내고도 체력과 호흡에 여유를 많이 남긴 달리기였다.

“아니 근데 진짜…….”

경태가 난감한 어조로 하는 말.

“이 친구들은 왜 전부 죽어있는 거야?”

우리가 합류하기로 했던 친 르완다 민병대, 「마이 마이 우다비티(Mai-mai Uthabiti)」의 소대 규모 전투단은 합류 예정지점에서 모조리 찢어발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처참하게.

멀리서 이 현장을 목격한 나는, 주변을 면밀하게 관찰하고서야 부하들에게 접근을 허가했다.

‘이것들, 변변한 저항 한 번 못해보고 몰살당했군.’

죽은 민병대원들이 휴대하고 있었을 자동화기들은 탄창이 빈 것이 드물었다. 여분의 탄창들 또한 꽉 찬 상태로 나뒹굴고 있는 상황. 즉 이들은 탄창 하나를 비울 기회조차 없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이게 말이 되나?

나는 주인을 잃은 총기 하나를 염동력으로 끌어다 손에 쥐었다. 흠집 가득한 목제 개머리판은 어깨와 닿는 부분의 마감재가 빠져있고, 총열 안쪽은 심하게 마모되어있는 냉전기 독일의 자동소총. 그러나 이렇게 낡았어도 총기로서의 핵심적인 기능은 온전하게 보존된 물건이었다.

요컨대, 풀 오토로 갈기면 3초 이내로 탄창을 비울 수 있다는 뜻.

이곳은 사방이 트인 개활지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화전을 일군 흔적들이 보이긴 해도, 자연적인 은폐물들이 울창하게 우거져있는 삼림지대였지.

고로 잔탄이 남은 총기들의 존재는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총기를 관찰하던 나는 또 한 가지 부자연스러운 점을 발견했다. 노리쇠가 전진한 상태임에도 약실에 남아있는 총탄의 존재를.

‘불발탄?’

총탄 뒤쪽의 뇌관(Primer)엔 공이(Firing pin)에 찍힌 자국이 확실하게 남아있었다. 이 땅에선 수명이 지난 탄약이 흔히 유통되고, 보관환경도 열악한 경우가 많으니 불발탄이 생기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내 눈에 보이는 탄약의 상태는 양호하다는 게 문제였다.

철컥.

노리쇠를 당긴 나는 방음결계를 두껍게 두른 뒤 방아쇠를 당겨보았다.

타앙!

이미 한 번 공이에 찍혀 온전치 못한 뇌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탄약은 그대로 격발되어 총성과 초연을 퍼트렸다.

현장분석에 착수한 경태 이하의 부하들 또한 내가 지시를 내리기 전에 비슷한 불발탄들을 여럿 발견하여 보고해왔다. 전문가들이 보기엔 지나치게 눈에 띄는 이상이었으니.

경태가 묻는다.

“「발화억제」겠죠?”

“아마도.”

내 긍정에 경태가 턱을 만지작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흠……. 사수의 마력장을 총기 하나 커버하지 못할 만큼 위축시키는 회로 출력에, 자연적으로는 보기 드문 능력인 「발화억제」까지……. 점점 더 괴상해지네…….”

경태가 말하는 괴상함은 나 역시 공감하는 바였다.

「국제 고위험 수렵협회」니 「프랑코포니 수렵협회」니 하는 온갖 이름의 국제 협회들이 능력 분포에 관한 통계를 내놓은 바, 신체강화 이외의 능력을 보유한 각성능력자들 가운데 발화억제 능력 보유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대체로 0.01% 안팎에 머물렀으니까. 그들 대부분은 「발화」를 먼저 획득한 삼중각성능력자들이었다.

‘가장 쉬운 설명은 이곳에 대마법사가 다녀갔다, 라는 것이겠지만…….’

대마법사가 뭐 하러 먼 걸음을 하면서까지 이런 민병대를 공격한단 말인가.

이는 원탁이 내 존재를 포착하고 나와의 합류계획까지 파악한 결과라고 가정해 봐도 설명이 안 되는 일이다. 그들이 내 행적을 무슨 수로 알아냈느냐는 둘째 치고, 일단 알아냈으면 미끼를 살려둔 채로 함정을 파야 정상이지 않은가.

여기엔 그저 학살의 결과만이 남아있을 따름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처음부터 경계하고 있던 하늘에서도 미사일이 날아온다거나 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무슨 수단으로든 이 지점을 관측하고 있었다면, 미사일이든 항공폭탄이든 진즉에 떨어졌어야 정상이겠지.

게다가 울창하게 우거져 하늘을 가릴 정도인 수림은 항공관측과 위성관측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장애물이었다. 아무렴, 르완다 대통령만 한 인물이 아무 생각 없이 접선 지점을 정했을까. 설령 그랬어도 내가 동의하지 않았을 터.

그러니 객관적으로 볼 때, 사방에 널린 시체들의 괴상함이야 어쨌든, 이 현장에 내 신상에 위협이 될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 신경이 곤두선단 말이야.’

대체 무엇이 내게 잉걸불 같은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

경태가 자신 없는 태도로 말했다.

“그나마 떠오르는 건 주술사 왕이 친히 공격에 나섰을 가능성 정도인데,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다.”

주술사 왕이 지닌 각성능력자로서의 역량은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근거가 부족한 추측들만이 난립할 뿐.

다만, 주술사 왕의 전투코끼리에 대해선 비교적 상세한 정보가 알려져 있는 편이었다.

중장갑 전투코끼리 「드람메자(Drammeja)」. 해석하면 「북을 두드리는 자」. 달릴 때의 땅울림이 전쟁터의 북소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이름.

기실 주술사 왕의 군사적인 악명은 절반 이상이 이 아프리카 코끼리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교차검증을 마친 소수의 목격정보들만으로도 지상 최강의 자연각성체로 공인받은 철갑 괴물이라면, 지금 내가 보는 현장을 만들어내고도 남을 능력이 있다.

비록 현장에 대형 포유류의 발자국 따윈 남아있지 않으나, 중국 쪽에서 확보한 정보에 따르면 드람메자는 「허공답보」를 구사하는 개체이니 발자국이 남지 않을 수도 있겠지.

어디까지나 주술사 왕이 범인이라는 전제 하의 이야기지만.

경태의 자신감 없는 태도는 당연한 것이었다. 일단 물증부터가 없을뿐더러, 주술사 왕쯤 되는 인물이 고작 한 개 소대 규모의 각성능력자 집단을 치겠답시고 몸소 왕림했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일이었으므로. 주술사 왕은 저가 지닌 최강의 패를 함부로 내돌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라리 드람메자에 필적하는 또 다른 자연각성체가 존재할 가능성을 고려하는 편이 낫지.

경태가 내 의사를 물었다.

“여기선 뭘 더 건질 게 없어 보이는데, 그냥 이대로 이탈할까요? 저-쪽으로 한 3킬로미터만 올라가면 점프를 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나는 다시금 흩뿌려진 시체 조각들을 돌아보았다. 언뜻 야성적인 분노의 표현처럼 보이는 이 집단살해의 현장은, 단순한 살해 이상의 집요하고 편집증적인 파괴라는 점에선 인간성이 엿보이는 흔적 같기도 했다.

각각의 인육 조각들은 부패는커녕 이제 막 파리가 붙기 시작한 참이었다. 금빛이 감도는 작은 파리들은 직접 앉아서 산란을 하고, 체급이 큰 쉬파리 암컷들은 인육 위를 날아다니며 폭격하듯 애벌레를 투하한다.

흩어진 인육들이 이토록 ‘신선한’ 상태임에도 내 눈이 멀리서 공격자를 포착하지 못했다는 건, 공격자의 기동속도가 보통이 아니라는 뜻.

“형님?”

“잠시만.”

일출까지의 여백이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으나, 나는 손을 들어 경태의 입을 막았다.

‘냄새였군.’

이제야 겨우, 아까부터 줄곧 내 신경을 곤두서게 만든 요소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 죽음이 만연한 자리에 미미하게 감돌고 있는 정체불명의 냄새 하나.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희미하기 짝이 없는, 어디선가 분명 맡아본 듯한 느낌을 주는 기이한 냄새.

숨을 깊게 들이쉴 때마다 선득선득한 감각이 신경을 내달린다. 그러나 주변의 모든 공기를 염동력으로 붙잡아두고 후각을 한계까지 강화했음에도, 허공에 녹아있는 냄새는 그 정체를 알아내기엔 지나치게 옅어져버린 상태였다. 의식을 아무리 집중해도 그저 막연한 불안감만 더해질 따름.

조금만 더 빨리 깨달았다면 좋았을 것을.

나는 수 분여에 걸쳐 후각적 더듬기를 이어나간 끝에 무익한 노력을 그만두었다.

새벽 4시 16분. 무분별한 개간으로 곳곳이 벗겨진 구릉지대의 어느 봉우리에서 우리는 키갈리로 돌아가는 비행을 시작했다. 출발지점의 높이가 충분치 못했던 탓에 자체 추력으로 고도를 높여야 했고, 그에 따라 국경을 넘어올 때에 비해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해 뜨기 전의 짙은 어둠을 가로지르는 비행은 추가적인 변수 없이 안전하게 완료되었다.

다시 만난 르완다의 대통령은 우리가 거둔 성과에 떨떠름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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