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70화 (270/561)

#31. 승천의 계단 (13)

원탁의 대마법사들은 아이들을 좋아했다.

구체적으로는 만 8세에서 19세 사이의 연령대에 해당하는 아이들을.

갓 태어난 아기의 영혼은 지나치게 작고 보잘것없다. 영혼을 갈아 마력을 뽑아내는 과정 또한 일단은 마력을 소모하는 마법인지라, 젖먹이의 영혼을 갈아봐야 들어가는 마력을 제외하면 남는 게 얼마 없는 것. 맛은 있으되 살점이 많지 않은 계륵이다.

영혼을 분리하여 도구제작에 써먹어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잠재적인 성능의 상한선이 너무 낮게 그어지기 때문에.

효율을 따지자면 역시 20년 이상 숙성된 성인의 영혼이 가장 우수하다. 갈아서 마력을 뽑든 떼어서 도구에 접붙이든 간에, 성년의 인간보다 좋은 결과를 보여주는 재료는 존재하지 않았다. 영적으로 작용하는 마법에 대한 대마법사들의 연구가 언제나 인간의 영혼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까닭.

그것은 곧 인간이 신성을 얻기 위한 연구의 일부에 불과하였으므로, 수명의 한계에 쫓기는 대마법사들은 인도적인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 따위에 시간을 낭비하려 들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마법사들은 동물의 영혼을 갈아서 자신의 영혼에 흡수하는 행위를 극도로 혐오했다. ‘신위에 올라야 할 제 영혼의 순수성을 더럽히는 행위’라고. 외과 시술에 가까운 「세례」와는 경우가 달랐던 셈이다. 세례는 영국 정부가 요구하는 연구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응용기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적당히 자란 아이들의 영혼은 수급이 용이한 양질의 땔감이었다. 성인의 그것만큼 품질이 우수하지는 않지만, 대신 보육시설 운영을 통해 장기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수급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보육시설엔 정부의 예산지원이 나오니, 비용절감 측면에서도 이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다고 해야겠지.

스승새끼가 한국에 오자마자 보육원부터 차렸던 건 원래 모국에서 하던 짓을 그대로 되풀이했던 것에 불과했다.

보육원에서 자라는 동안, 스승새끼가 내 영혼에 회로를 새기고 몸을 갈아탈 준비를 끝마친 그날이 오기까지, 나는 계속해서 사라지는 아이들의 빈자리를 보아왔다.

스승새끼는 그 아이들이 제 발로 보육원을 뛰쳐나갔노라 둘러대었으나, 나는 그 말이 좀처럼 이해가 되질 않았었다. 비록 스승새끼가 좆 같이 굴기는 했을지언정 끼니만큼은 거르지 않도록 해주었으니까.

구걸을 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아도 먹고 잘 수 있는 곳에서 왜 제 발로 달아난단 말인가? 가뜩이나 산중에 뚝 떨어지다시피 세워진 시설이라, 나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 도전에 가까운 일인데. 스승새끼에게 비위를 맞춰주는 일은, 밥벌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거북한 것도 아니었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보육원 뒤편에 묻혀있는 무수한 유골들이었다. 나는 황금기의 눈을 얻고서야 비로소 그 유골들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제물로 자라나는 내내, 선택받지 못한 아이들은 주기적으로 영혼이 갈려 대마법사의 회로에 흐르는 마력이 되었던 것이다…….

“형님?”

나를 부르는 경태의 목소리.

“아무래도 영 심기가 불편해 보이시는데, 주술사 마빡에다 철갑탄이라도 한 발 박아주고 뜰까요? 저런 짓거리를 계속 벌여왔으면 다들 알아서 원한에 의한 저격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아니면 경쟁관계인 다른 주술사의 살인청부라거나.”

“됐어. 그냥 옛날 생각이 좀 났을 따름이니. 그보다, 뒷정리는?”

“다 끝났습니다.”

끝났다는 말에 돌아보면, 먼저 시체들을 뿌려두었던 자리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이렇게 마저 정리를 하기 전엔, 피와 살을 발라내고 남은 뼈들이 각성수들의 뿌리와 줄기에 마치 자석처럼 들러붙어있었다. 뼈에 포함된 인(燐)과 칼슘, 콜라겐, 그리고 골수의 영양분을 끌어당기는 나무들의 마법적 인력이 원인이었다. 작용하는 인력의 비중을 따지면 골수의 지분이 가장 크게 잡혔겠지.

시체들을 잡아먹은 나무들은 처음 보았을 때보다 한 뼘은 더 자라나있었다.

나는 삶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한 인신공양의 현장을 마지막으로 일별한 뒤, 눈을 돌리며 부하들에게 고갯짓했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지.”

우리는 도로와 평행선을 그리며 남하하여 두 번째 타격목표로 향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바닥에 쌓인 화산재가 두꺼워져, 나는 이동하는 내내 염동력을 활용한 빗자루질로 발자국을 지워야 했다.

후투족 르완다 해방 민주군(FDLR)의 두 번째 갱도진지는 학교를 출입구로 써먹는 곳이었다.

맨땅에 기둥을 세우고 양철지붕을 올려두었을 뿐인 학교는, 가만히 뜯어보건대 갱도의 출입구를 은폐하는 선을 넘어 아이들을 소년병으로 훈련시키는 기능까지 수행하는 듯했다. 낡은 칠판엔 총기의 분해조립 방법이 조악한 그림으로 그려져 있고, 갱도 진지 내부엔 무기를 휴대한 어린 녀석들이 많았으니까.

‘끼리끼리 잘들 노는군.’

후투족 반군에게 치를 떠는 르완다 대통령도 소년병을 잘 써먹기는 매한가지인 인간이다. 콩고 민주공화국 내부에 친 르완다 반군(M23)을 육성할 적에, 제 나라의 어린 것들을 무장시켜 국경 너머로 보낸 바 있으니까.

UN군에게 사로잡힌 그 어리고 못 배운 것들은 자신들이 반군이 아닌 르완다 정규군에 입대한 줄로 알고 있었다. 기초훈련도 정규군의 기지에서 받았다고.

이것 참. 기분이 점점 더러워지는데…….

그럼에도 일은 일이었다.

어리거나 말거나, 그리고 잠들어있거나 말거나, 무기를 휴대한 인간은 위험성이 높은 맹수다. 아까 청소한 첫 번째 갱도진지와 마찬가지로, 이번 갱도진지에서도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는 것들은 술과 음행과 카드놀이에 빠져있었다.

죽은 여자의 몸 하나를 두고 돌아가며 난행을 즐기는 꼴들을 보건대, 정신상태가 벌써 돌이키지 못할 지점을 지나쳐버린 것들이다.

최전선에 내세울 일회용 고기방패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완성된 놈들.

기다리던 경태가 의문을 표한다.

“명령, 안 내려주십니까?”

나는 고개를 까딱였다.

“시작해.”

이번 공략은 먼젓번보다 훨씬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갱도진지의 규모 자체가 아까에 비해 작았기 때문. 이번 갱도진지는 주둔지라기보다는 문자 그대로의 보급거점에 더 가까웠고, 그만큼 경계 병력도 적게 배치되어 있었다.

경태가 경계선 정리를 끝낸 뒤, 나는 갱도진지의 환기구에 대고 먼젓번과 동일한 방식으로 투명한 죽음을 밀어 넣었다. 머리가 맛이 간 어린 것들과 어린 것들을 그렇게 만들어놓았을 나이든 것들은 짧은 고통에 시달린 끝에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이동하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타격목표 근방에 이르러서는 포집을 중단하여 마력장의 반경을 축소한다. 그릇을 이루는 얄팍한 염동박막은 출력만 놓고 보면 하찮은 수준이다. 다만 술식이 정교할 따름. 그러므로 죽음을 부어넣는 순간 대마법사의 존재감은 없다.

지금이 낮 시간대였다면 이렇게까지 남용하진 못했을 수단이다. 부자연스러움을 남기지 않으려면 끽해야 한 번의 사용이 고작이었겠지.

그러나 알리바이는 현장이 발견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

낮이라면 모를까, 어느 외부인이 이 늦은 시간에 반군기지를 드나드나. 본격적으로 국경을 넘는 공세를 가할 작정이 아닌 이상 반군들 또한 야간작전을 기획할 때가 아니다. 갱도진지에 들어가 있는 놈들의 상태만 봐도 분명해지는 일.

시야를 넓게 잡고 경계에 임하던 내게 경태가 보고한다.

“작업 완료했습니다.”

“이번엔 조금 시간이 걸렸구나.”

“이미 보셔서 아시겠지만, 여긴 탄약보다 일반보급품의 저장비중이 높아서 말입니다. 갱도를 다 무너뜨리려다 보니 폭발물의 배치를 조금 바꿔야 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발파에 관해선 경태가 나 이상의 전문가이니.

“다음으로 가자.”

최초 임무 개시로부터 아직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건만, 정리한 거점은 벌써 두 개째다. 최대한 보수적으로 잡은 타임 테이블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르완다 대통령은, 딴에는 굉장히 어려운 임무를 내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렴, 첫 타격목표부터가 각성능력자들의 대대급 주둔지 겸 보급창이 아니었던가.

‘그 뻔뻔한 낯짝이 망가지는 꼴을 보고 싶은데.’

나와 내 애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완전수행이 불가능에 가까운 연속타격 의뢰를 천연덕스럽게 던져주던 대통령의 뻔뻔함. 그 속내엔 첫 번째 목표만 제대로 박살내도 남는 장사라는 진의와 더불어, 임무를 완벽하게 소화해내지 못한 우리의 성과를 깎아내릴 계산이 깔려있지 않았을까 싶다.

표적변경에 관한 내 동의를 받아내고서 만족스럽게 자평했겠지. 실력 있는 놈들의 교만함을 효과적으로 이용해먹었노라고.

우리는 세 번째, 네 번째 타격목표도 어렵지 않게 정리했다. 모든 임무를 끝마쳤을 때, 시곗바늘은 새벽 1시 11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폭발이 제대로 일어나는지 확인한 후 현장을 이탈하는 것뿐.

아울러, 운이 다소 따라준다면, 연쇄폭발이 발생했을 때 UN군 기지가 어찌 반응하는가에 따라 추가적인 수확을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바라는 결정적인 증거까지는 못될지라도, 르완다 정보보안국에겐 그럭저럭 괜찮은 단서가 되어주겠지.

최초 타격목표였던 은기코로부터 남남동으로 6킬로미터쯤 이격된 무명의 봉우리는 폭탄을 설치한 보급거점들을 감제하기에 적합한 고지였다. 지대가 도로변에 비해 2백 미터 이상 높아 화산이 터져도 안전할 자리이기도 했고.

“형님.”

“왜?”

“시간이 생각보다 좀 많이 남지 않았습니까? 달리 할 일도 없고요.”

“그런데?”

“바람이 부는 방향에서 짐승의 냄새가 나는데, 혹시 먹을 만한 동물이면 좀 특별한 열량보충을 해도 좋지 않을까 해서요.”

“…….”

“안 될까요?”

경태 녀석의 소지품 중엔 히말라야 암염과 후추가 포함되어 있었다. 처음부터 기대하고 있었겠지. 이럴 기회가 있었으면 하고.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라, 나는 기대감으로 가득한 경태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충동적으로 허가를 내주었다.

“……1시 방향. 거리 약 150미터. 주변에 달리 위협이 될 요소는 없고, 목표는 수풀로 덮인 땅굴에 들어가 있다. 각성체는 아니지만 새끼가 딸린 어미이니 공격성을 주의해라. 4인 1조로 5분을 주마.”

“감사합니다, 형님! 3분 내로 잡아오겠습니다!”

좋아하는 모양새가 참으로 개를 연상케 하는 녀석이다.

이 시간의 바람은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민가가 1.5킬로미터 북쪽에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충성스러운 사냥개는 얼마 지나지 않아 큼지막한 암컷 혹멧돼지(Warthog)와 네 마리의 자그마한 새끼들을 잡아왔다. 사냥만큼이나 신속하게 돼지들을 해체한 부하들은, 발골을 마친 고기를 땅에 묻어서 구워냈다. 어디서나 불을 피워낼 수 있는 「발화」의 응용이었다.

레스팅이 이루어지는 사이, 경태는 잘라낸 돼지머리를 내 앞으로 가져오더니 주둥이를 붙잡고 위아래로 여닫아 보였다.

“보십시오, 형님. 하-쿠-나- 마-타-타-!”

“……그게 뭐냐?”

“이럴 수가. 티몬과 품바, 모르십니까? 라이온 킹에 나오는 애들인데요. 얘가 이빨이 좀 작은 거 빼면 품바랑 완전 판박이인데 말입니다. 성별이 다르기는 하지만요.”

“그만 만지고 갖다 묻어라. 그러다 벼룩 붙는다.”

“옙…….”

다른 부산물은 다 파묻고서 머리만 남겨놓은 이유가 이거였나. 이 녀석의 감수성은 종종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었다.

열량을 보충하는 사이 또 한 번의 가벼운 여진이 지나갔다. 전방위에 걸쳐 은은하게 울려오는 땅울림과, 진동을 감지한 야생의 소란스러움들. 약한 불로 조리된 새끼돼지 뱃살의 부드럽고 기름진 맛을 음미하며, 나는 먼 은기코의 불빛을 시야에 담았다.

‘저 새끼들은 아직도 저 지랄들을 하고 있군.’

한국의 무당들도 굿판 한 번 벌리면 몇 시간에 걸쳐 신들린 흉내를 내는 게 보통이니, 화산을 진정시키기 위한 공양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꾸만 보육원 시절이 떠올라 밥맛이 떨어진다. 같은 방향에 첫 번째 폭파지점이 있으니 아예 안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경태 말대로 이마에 바람구멍이나 뚫어주고 올 걸 그랬나 싶어질 지경.

“아쉽네요.”

경태가 흐린 하늘을 보며 하는 소리.

“수연 누님도 여기 있었으면 많이 즐거워했을 텐데.”

“즐거워해?”

“예. 살면서 언제 또 형님이랑 이런 경험을 해보겠습니까? 비슷한 경험을 할 수는 있어도 거기가 아프리카 내륙은 아니겠죠. 먹는 게 신선한 품바 고기도 아닐 테고. 가끔은 제가 경호실장이라 미안해질 정도입니다.”

나는 수연이 즐거워했으리라는 것 자체가 의문인데, 이 녀석은 엉뚱하게도 기쁨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수연에 대한 이 녀석의 오해가 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어서, 나는 서로 맞물리지 않는 대화를 가볍게 흘려 넘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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