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69화 (269/561)

#31. 승천의 계단 (12)

5월 25일 화요일. 대통령이 참관하는 가운데 은쿠랑가 대령으로부터 최종 브리핑을 받은 나와 내 애들은, 오후 10시를 기하여 두 번째의 야간비행을 개시했다.

먼젓번과 달리 비행거리가 겨우 백 킬로미터에 불과한 관계로, 편도비행에 소요되는 시간은 30분 남짓이면 충분했다.

콩고 민주공화국과 르완다의 국경을 가르는 가장 인상적인 지형지물은 최고봉이 4천 5백 미터에 달하는 성층화산이었다. 용암과 화산재가 계속해서 쌓이고 또 쌓여 만들어낸 첨예하기 짝이 없는 지형.

이 같은 지형 조건으로 인하여, 나는 최초 비행에 돌입하는 고도를 전번보다 2천 피트 더 높인 1만 7천 피트로 잡아야 했다.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략 2.5킬로미터 거리를 두고 비껴내는 화산의 존재감은 굉장히 위압적으로 느껴지는 것이었다.

탄자니아에서 마주했던 울루구루 산맥은 그저 질량이 거대할 따름이었으나, 이 카리심비(Karisimbi) 화산은 내부에 엄청난 파괴력이 도사리고 있었기에 그러했다. 혈관처럼 뻗어있는 용암의 맥과 거대한 압력으로 들어차있는 열의 덩어리가.

「화산을 이런 식으로 보는 건 처음인데,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굉장히 괴물처럼 생겼네요.」

경태의 말마따나, 고고도에서 조감하는 화산은 통상시야를 기준으로도 제법 흉측한 형상이었다. 마그마와 쇄설류가 전 방위로 흐르면서 자글자글한 주름들을 남겨놓았기 때문.

이 화산을 지나치니 곧바로 미케노(Mikeno)라는 이름의 또 다른 화산이 다가온다. 최고봉의 높이는 카리심비에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수평적인 크기로는 대여섯 배쯤 될 듯한 괴물. 낮게 깔린 구름 아래의 분화구에선 구름을 닮은 연기가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화산 주변의 촌락들은 마치 등고선을 그리듯 선형(線形)에 가까운 분포를 보였다. 촌락과 촌락 사이의 농경지들은 용암이 흐르는 형상을 꼭 닮아있다. 화산이 빚어놓은 지형 위에 그대로 경작지를 조성해놓은 탓이었다.

「목표 지점이 보입니다.」

무전으로 들어오는 선두의 육안관측 보고.

최초 타격목표인 은기코는 반경 20킬로미터 이내에 다섯 개의 화산이 존재하는 마을이다. 그중 대통령이 브리핑에서 언급한 바 있는 두 개의 화산, 은냐무라기라와 은니라공고는 각각의 용암 체임버가 나머지 셋을 합쳐놓은 것보다 더 커다란 쌍둥이였다.

그 쌍둥이 중 하나인 은니라공고가 분화한 게 고작 사흘 전의 일이기에, 작전지역 상공의 대기질은 썩 좋은 편이 못되었다. 선두에서 비행하는 부하의 육안관측 보고가 다소 늦게 들어온 게 그 증거였다. 피부에 스치는 바람의 질감부터가 낯설다.

‘대충 감은 잡겠군.’

내가 통상시야를 인지하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함께 인지하는 정보량이 워낙 막대한 까닭에 부하들 입장에서 보이는 시계(視界)를 오판하기가 쉬웠다.

선두의 육안관측 보고는 그러한 오판을 예방하기 위한 절차적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다. 자칫하다간 부하들에게 사리에 맞지 않는 지시를 내리는 수가 있으니까. 예를 들어, 착륙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다거나.

“착륙지점은 깨끗하다. 예정대로 강하하도록.”

내 지시에 「발화」의 운용을 중지하고 무소음 활공으로 전환하는 부하들의 모습. 대기질과 별개로 바람은 양호하여, 활공비는 하강하는 내내 안정적으로 1대 3을 유지했다. 3미터를 나아갈 때마다 1미터씩 규칙적으로 낮아지는 고도. 바람에 섞인 화산재의 향은 전장의 초연을 떠올리게 하는 측면이 있었다.

쿠구구구-

지상으로부터 작고 은은한 울림이 올라온다. 화산을 중심으로 발생한 작은 여진은, 지면의 흔들림을 보건대 리히터 규모로 3을 조금 넘을 법했다. 대통령이 장담했던 것처럼 작전 수행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착륙지점 상공에 도달한 부하들이 낙하산을 펼쳐 나선형 하강을 개시할 때, 나는 그냥 수직으로 강하해버렸다. 보는 눈이 없으니 감속 및 착륙에 염동력을 활용한 것. 대마법사의 힘을 아끼지 않는 조건이면 감압병 또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바직.

전투화 아래에 밟히는 마른 나뭇가지 하나. 조용하게 땅을 밟은 나는, 통상시야를 기준으로는 달도 별도 흐릿한 천구(天球)를 올려다보았다.

연기와 화산재에 가려진 하늘은 이번 침투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환경적 요소였다. 침투용 낙하산에 칠흑 같은 특수도료를 도포해두긴 했어도, 눈 좋은 각성능력자가 유심히 하늘을 관찰하기라도 했다간 발각당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환복 및 정리를 마친 내가 냄새를 맡고 몰려드는 모기와 체체파리들을 갈아버리는 사이, 부하들은 차례차례 조용한 착지를 이어갔다. 나는 그런 부하들의 낙하산을 염동력으로 접어주었다. 부하들이 단독으로 수행하면 10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이니까. 내가 능력을 쓰면 10초 이내로 끝내줄 수 있다.

“형님. 마을 방향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것 같은데, 뭔가 보이는 게 있으십니까?”

경태가 묻기에, 나는 조금 불쾌한 어조로 답해주었다.

“신경 쓸 것 없다. 주술사 하나가 애들 배를 째고 있을 뿐이야.”

“오우…….”

살짝 질린 표정을 짓는 경태.

재난의 공포가 드리운 땅엔 매양 광기가 함께한다. 그리고 그 광기는 가난하고 배고프고 못 배운 자들의 땅일수록 강해지는 것.

이럴 때 가장 희생되기 쉬운 것이 부모를 잃었거나 부모로부터 버림받는 아이들이다.

대지진 이후 세계 최대의 노예 도매시장으로 부상한 아이티에서도 아이들은 가장 값싸면서도 취급이 험한 상품이었고, 대공황 당시의 뉴욕에선 설탕 10파운드(약 4.5kg) 값이면 못생긴 아이 하나를 구입할 수 있었다.

피부 검은 주술사의 원시적인 인신공양은 제단의 방향을 남서쪽으로 두고 있었다. 은니라공고 화산이 있는 방향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정상 부근에 벌건 빛무리가 몰려있는 대형 화산을 향하여, 주술사는 인간 도축의 핏빛 부산물들을 두 손으로 높이 들어보였다.

그 경건한 자세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사제를 연상케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주술사는 화산의 분노를 달래려 하는 중이었다. 약기운이 감도는 눈은 목전의 핏빛보다 더욱 먼 곳을 보고 있다.

인신공양을 지켜보는 주민들 또한 의식 자체의 끔찍함 따윈 안중에도 없는 기색들이다. 광기 가득한 주술신앙과 자신의 안위를 우선시하는 절박함에 완전히 매몰되어 있는 것.

‘조금 전의 여진이 시발점이었겠군.’

어린 제물들을 미리 준비해두고, 여진이 오거나 추가적인 분화 조짐이 보일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새롭게 배를 가르며 안전을 기원하는 형식이 아닐는지. 이 마을이 여태껏 화산분출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있는 건 오로지 지형 굴곡의 덕을 본 것이건만.

보육원 시절의 기억이 있는지라, 솔직히 보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그러나 의식이 진행되는 현장에 마을 주민들 다수가 몰려있었으므로, 지금부터 우리가 행할 일엔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육안으로 마을 일대의 지형을 살피고 바람의 흐름을 가늠한 나는, 회로에 추가적인 마력을 돌려 염동술식과 탄소에 대한 지배력을 활성화시켰다.

「그 지역엔 형님의 마법에 알리바이를 제공할 만한 자연현상이 존재합니다.」

이번 작전에서, 내 마법의 활용방안에 관하여 수연이 올렸던 제언.

「해당 현상의 이름은 「마주쿠」. 현지 언어로는 ‘사악한 바람’을 뜻한다더군요. 갈라진 지층이나 호수 밑바닥으로부터 분출되는 고밀도의 이산화탄소 덩어리가 특정 지역을 완전히 잠식, 산소호흡을 하는 모든 생명체를 질식사시키는 현상입니다.」

「마주쿠는 화산 활동이 활발할 때 쉽게 발생한다고 하니, 상황에 따라서는 탄소에 대한 지배력을 전술적으로 활용하실 수 있을 듯합니다.」

탄소에 대하여 물리적인 구속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원자결합구조에 탄소가 포함되어있는 다른 물질들에 대해서도 간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그 대상이 이산화탄소처럼 가벼운 물질이라면 단순히 운동 상태를 부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얇은 염동장막을 전개하여 통상시야엔 보이지 않을 거대 용기를 만들어낸 나는, 이산화탄소를 끌어모아 용기 안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이산화탄소를 모으는 건 다이아몬드 원석을 구축하는 것보다 손쉬운 일이었다. 그냥 모으기만 하면 그만이니까. 비중이 높은 질식성 기체는 평범한 공기를 밀어내며 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차올랐다.

필요한 건 다만 약간의 시간뿐. 화산활동으로 말미암아 이산화탄소가 풍부해진 환경이라곤 하나, 마주쿠를 연출하려면 상당히 많은 양이 필요했다. 그것이 아주 국소적인 연출의 요구량임에도 불구하고.

“환기구로 이산화탄소를 부어넣겠다. 먼저 경계망을 제압하도록.”

내 지시를 받은 경태가 부하들에게 손짓했다. 일사불란하게 개시되는 인간사냥. 경태 이하 29인은 내가 실시간으로 중계해주는 적들의 위치와 풍향을 듣고 마치 낫질을 하는 듯한 구도로 신속하게 파고들었다.

가장 먼저 쓸려나가는 건 2인 1조로 정해진 경로를 돌던 열두 개의 각성능력자 순찰조들이었다. 순찰인원이 많은 건 지저에 깔린 갱도진지와 마을 변두리의 시설들이 대대급 이상의 주둔지였기 때문. 심지어 주둔병력 대부분이 각성능력자들이기까지 하다. 수준이야 어쨌든, 제 장악력의 경계를 건드리는 마력장을 감지할 만큼의 능력은 있는.

「쏴.」

경태의 짤막한 명령. 스물네 개의 총구가 불을 뿜는 순간, 스물네 명의 반군 경계병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다. 빗나간 탄환이 한 발도 없었으므로 예비로 대기하고 있던 5인은 사격기회를 얻지 못했다.

소음기에 걸러진 총성이라곤 해도, 한 번에 스물넷이나 터지면 조금 위험한 레벨의 소음이 된다. 귀가 좋은 각성능력자에겐 멀리서도 충분히 들릴 법한 소음이.

그러나 기둥 위에 지붕만 올려놓은 거점에서 대기 중인 적들의 비상 대기조는, 총성이 울리고 나서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경태를 포함하여, 염동력 사용이 가능한 부하들이 길목을 차단한 채로 염동차장을 실시한 덕분이었다.

나처럼 정밀한 제어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소음의 확산을 차단할 방위를 점유한 뒤 제 주변의 공기를 최대한 넓게 붙잡아두기만 하면 끝나는 일.

각성능력자들의 소부대 전투 기술이다.

「치워.」

부하들은 죽어 넘어진 시체들을 끌어다 장비를 벗겨 각성수 주변에 던져놓았다. 르완다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패스파인더는 콩고 국립공원 순찰대 소속이었고, 그가 알려준 각성수들의 위치는 틀린 것이 없었으므로 작업은 매우 빠르게 진행되었다.

「지직, 찌이이익, 푸쉭-」

던져진 시체들은 작지만 불쾌한 소리와 함께 움찔움찔 경련들을 일으켰다. 일반적인 사후경직 따위가 아니라, 양분의 존재를 인지한 각성수들이 포식을 시작한 까닭이었다.

불쾌한 소리의 정체는 살갗과 근육이 이리저리 당겨지며 찢어지는 소리. 죽은 자의 피부 위로 거미줄 같은 핏빛 열상(裂裳)들이 생겨난다. 지난날의 평균에 비해 현격하게 빨라진 분해속도는 회로가 열린 식물들 또한 꾸준히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죽은 자들에게서 벗겨낸 장비는 한데 모아 파묻는다. 경태가 염동력을 써서 땅거죽을 들어올리고, 그 아래 장비들을 넣은 뒤 도로 거죽을 덮어버리는 식. 이렇게 하면 파묻은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아서 좋다.

적들의 비상 대기조 역시 간단하게 정리되었다. 엄폐물이 되어줄 벽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내 부하들의 집중사격을 견뎌낼 재간이 없었던 탓.

「후우우우웅…….」

낮은 음계로 가라앉다가 마침내 끊어지는 팬의 소음들. 약간의 마력을 할애하여 모든 환기구를 정지시킨 나는, 위치가 가장 중앙에 가까운 환기구에 이제껏 모아온 이산화탄소를 들이붓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표 아래의 갱도에 숨 막히는 죽음이 번져나갔다. 잠들어있던 과반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움찔거렸고, 늦은 시간까지 깨어 여자를 범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카드 패를 돌리거나 하던 나머지는 하던 짓들을 내팽개치고 난잡한 공황에 빠져든다.

「-!」

지저가 온통 들리지 않는 소란들로 가득해진다. 복도로 나가려다 현기증이 일어 주저앉는 자, 머리를 움켜쥔 채 구토를 하는 자, 호흡이 가빠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자 등.

이곳은 전기가 풍부한 지역이 아닌지라, 갱도진지의 조명은 촛불과 기름등잔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았다. 그 불빛들이 일제히 픽 꺼지면서 탈출은 더욱 어려운 일로 변모했다.

보통의 인간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13%만 넘어가도 30초 이내에 운신이 불가능해진다. 15%에 도달하면 즉시 의식을 상실하며, 17%를 찍을 경우 1분 이내에 사망한다.

내가 연출한 「마주쿠」가 지저의 모든 인명을 살상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분이 되지 않았다.

아주 많은 물자와 무기와 탄약을 저장해놓은 갱도진지는 이제 사백이 넘는 인간들의 공동매장지로 변모했다.

「후우우우웅-!」

죽어야 할 것들을 모두 죽인 뒤에 다시 가동시키는 환풍구. 나는 갱도에 고여 있는 이산화탄소의 색채를 지켜보다가, 바깥 공기와 큰 차이가 없어졌을 때 경태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내었다.

지하로 내려간 내 부하들은 탄약고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폭파 예정시각은 새벽 세 시. 타격목표가 복수인 고로, 모든 목표가 동시에 폭발하게끔 계획을 짠 것이다. 개미굴처럼 난잡하게 분산되어있는 탄약저장고의 폭발물 총량은 갱도 전체를 붕괴시키기에 충분해보였다.

부하들이 작업을 하는 사이, 나는 갱도진지의 암반에 깊은 균열을 만들었다.

그럴 확률은 낮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폭탄이 터지기 전에 이 집단 질식사의 현장에 들어서는 자가 있다면,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새어나온 가스가 갱도 내의 사람들을 몰살시켰다고 믿게 될 것이다. 그럼 추가적인 가스 분출이 무서워서라도 일단 바깥으로 몸을 빼내고서 추이를 지켜보겠지. 폭탄은 마지막까지 발견되지 않은 상태로 남을 테고.

일단 폭탄이 터진 다음에는 흔적이고 나발이고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을 터였다.

이렇게 거점 하나를 다 정리하는 순간까지도, 마을에선 여전히 아이들을 죽이는 제례가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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