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승천의 계단 (11)
은쿠랑가 대령은 나와 내 경호 인력을 리무진으로 이끌었다. 그러고는 맞은편에 앉아 운전수에게 생소한 언어로 지시했다.
“Jya mu majyepfo. Kuri resitora ya koreya.”
하이루프 리무진이 낀 차량대열은 남쪽으로 향하는 도로를 탔다. 창문 밖으로 미끄러지는 부촌의 풍경은 이곳이 정말로 아프리카 내륙국의 도시가 맞는가 싶을 만큼 서구적이면서도 여유가 넘쳐흐르는 것이었다.
잔디가 깔린 너른 정원들, 저택과 별장마다 하나씩 갖추고 있는 수영장, 자택에서 진료를 보는 부유한 의사들,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이러한 부촌에 거의 달라붙다시피 붙어있는 빈민촌의 존재는 「부유해질 수 있는 자들부터 부유하게」라는 개발독재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요소였다. 먼저 부유해지는 자들의 존재가 희망을 주기는 하지만, 한번 벌어진 빈부격차는 체제가 유지되는 한 절대로 다시 좁혀지지 않는다.
하물며 상류계층의 절대다수가 투치족이라는 혈통적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음에야.
이 도시는 빈부격차의 난잡한 누더기라는 점에서 광저우를 많이 닮아있었다.
그럼에도 주민들의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물었다. 빈부격차가 벌어지거나 말거나, 평균적인 생활수준은 계속해서 향상되고 있기 때문이겠지.
심지어 세상이 마법의 시대로 접어든 지금에 이르러서도, 빈민가의 전반적인 굶주림은 치명적이지 않은 선에서 억제되어 있었다. 음식의 질이야 어쨌든, 최소한 연명이 가능할 만큼의 열량은 보편적으로 공급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능력 하나는 대단한 인간이야.’
프랑스로부터 경제적 보복을 받는 와중에도, 이 나라의 대통령은 내전과 학살로 초토화된 나라를 고속성장의 가도에 올려놓았다. 군사지도자로서도, 첩보전문가로서도, 그리고 국가수반으로서도 빠지는 구석이 없는 인물.
기업군단을 경영하며 국가경제를 사유화하고도 큰 잡음이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경영인으로서도 일류라는 평을 받을 만하다.
하다못해 온갖 반군과 전쟁과 학살의 배후조종자라는 악명 역시 그만큼의 능력이 뒷받침되었기에 비로소 얻을 수 있었던 것.
거리에선 하얀 옷을 입은 각성능력자 사내 하나가 기묘한 형태의 지팡이를 높이 든 채 알 수 없는 말들을 외쳐대고 있었다. 각성자답게 성량이 커서, 외쳐대는 모든 마디들이 달리는 차의 유리창을 어렵지 않게 뚫고 들어온다.
「Ubwami bukiranuka buri hafi. Hazabanza habeho intambara, hakurikireho revolisiyo, ikurikirwe n’akaduruvayo, hanyuma Ubwami bw’Imana buze!」
「Komeza kurwana intambara nziza y’ukwizera!」
나는 지팡이를 휘감은 뱀의 목상(木像)을 보며 은쿠랑가 대령에게 물었다.
“저 사람이 지금 뭐라고 떠드는 겁니까?”
슬쩍 시선을 돌린 대령이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뜻을 옮겨주었다.
“「다가오는 왕국이 전쟁을 없애리. 전쟁과 격변과 혼란이 있은 연후에 신의 왕국이 도래할 것이다.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계속하라.」라는군요. 흔한 사이비의 설교일 뿐이니 눈여겨보실 필요 없습니다.”
“사이비라면, 혹시 주술사 왕과 관계가 있습니까?”
“글쎄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요즘 자기가 주술사 왕의 제자입네 사제입네 하는 자들이 워낙에 많이 쏟아지는 중이라 말입니다. 일종의 브랜드 사칭 같은 느낌이죠. 설마하니 그들 모두가 실제로 주술사 왕의 부하들이겠습니까?”
이렇게 답하는 대령의 내면엔 일말의 동요도 존재하지 않았다. 꾸밈없는 무관심인지, 훈련으로 다져진 평정심인지.
차량대열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달했다. 굳이 이 거리를 차를 타고 움직여야만 했나? 싶을 만큼 가까운 식당은, 간판부터 한글이 들어가 있는 한식 레스토랑이었다.
차에서 내린 경찰 대령이 태연하게 권유했다.
“들어가시지요.”
나와 내 애들은 출신을 밝힌 적이 없다. 심지어 임마누일조차도 내 회사의 본거지를 확실하게 알지는 못한다. 블라디보스토크를 오가는 배가 반드시 한국의 항구에만 정박하는 게 아니며, 내가 사업상의 필요로 브라츠키 크루그의 간부들을 초대할 적에도 한국보다는 일본에 자리를 마련한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애초에 그들이 내 회사에 붙인 극동회사라는 별칭도 그저 그들과 우리의 거래가 ‘러시아의 극동’에서 주로 이루어지기에 붙은 것일 뿐이다.
대령은 아마도 이쪽의 반응을 보려고 여기로 데려온 것이겠지. 우리에 대한 정보를 하나라도 더 알아 두고는 싶은데, 대놓고 취조를 하지는 못할 노릇이니까. 취조를 하더라도 고문과 교차검증이 병행되지 않으면 진실 여부를 확실히 할 수 없고.
식당의 지배인은 한인 여성이었으나, 평소부터 이런 상황에 대비해온 내 부하들은 실수로라도 한국어 한마디를 내뱉지 않았다. 모든 대화가 영어로만 이루어지니, 이쪽이 한국인들인 줄 알고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던 지배인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이상하네……. 분명 한국인들이랑 올 거라고 하셨는데…….”
딱히 불쾌히 여길 것까지도 없는 얄팍한 수작질이었다. 나는 이 또한 알아듣지 못한 척, 마주앉은 경찰 대령에게 물었다.
“여긴 어떤 음식이 맛있습니까?”
“혹시 한식은 처음이신지?”
“아뇨. 접할 기회가 여러 번 있기는 했습니다만, 이 레스토랑에서 무엇을 잘하는지는 모르니까 말입니다. 여긴 메뉴가 많아도 지나치게 많군요.”
농담이 아니라, 메뉴판을 보니 이 식당에선 한식으로 분류되는 모든 요리를 다 취급하는 듯했다. 당연히 하나하나에 대한 전문성은 떨어질 수밖에.
소고기 전골부터 시작해서 짬뽕과 짜장면, 라면에 양념통닭까지 취급하는 이런 식당이, 이 아프리카 내륙 깊은 곳에선 도시 전체를 통틀어 한 손에 꼽을 만큼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일 것이었다. 메뉴 하나하나의 가격이 한국에서 먹는 것과 맞먹도록 비싸다.
대령은 순박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뭘 시키셔도 후회는 없으실 겁니다.”
“그럼 주문은 대령님께 맡기지요. 이곳에 자주 와보신 모양이니.”
이후 식사가 진행되는 내내, 경찰 대령은 나와 내 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티 나지 않게 관찰했다. 때때로 함정이 섞인 질문을 던지며 내 말실수를 유도하는 것은 덤이었다.
그러나 내가 나 자신을 감추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란 말인가.
식사가 끝날 때까지, 대령의 속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뭉근한 불만족의 색채가 차곡차곡 누적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피차 비생산적이고 불만족스럽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다.
“바딕 회장님께선 주술사 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언뜻 가볍게 던져진, 그러나 실상은 결코 가벼울 수가 없는 질문. 나는 한 호흡의 간격을 두고 대답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지요. 어느 누구도 배를 갈라서는 안 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 라…….”
“임마누일에게 들으셨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무기를 사고파는 상인입니다. 그리고 근래의 아프리카는 무기와 탄약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가고 있지요. 나와 같은 무기 상인들에게 주술사 왕은 존재 자체로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호재입니다.”
“실례지만 극동회사는 브라츠키 크루그와 신사협정을 체결한 게 아니었습니까?”
“신사협정?”
“아프리카 쪽으로는 사업적인 욕심을 내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걸로 압니다.”
아아, 그거.
“직접 거래를 터놓으면 그만큼 더 이익이 되기는 할 겁니다. 허나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취급하는 상품들의 수요가 늘어 거래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니 호재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주술사 왕은 전 세계 무기시장의 거래가에 압력을 가하는 강력한 가격상승요인인 셈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해명이었으되, 내용 자체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당초 악성재고가 되리라 예상했던 소구경 소총탄(5.56mm)조차 날개가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었으니. 가만히 있어도 나와 내 회사를 아는 중간상들이 찾아와 상품재고를 문의하는 마당이다.
‘마르띠네즈 제독과 배불뚝이에게도 호재지.’
제독은 허상의 교전들을 꾸며냄으로써 ‘소모된’ 무기와 탄약들을 빼돌리는 방식으로 내게 넘기는 상품의 총량을 증가시켰다. 물론 거기에도 한계는 있었으나, 어쨌든 배불뚝이 페루쵸와 팔랑헤 데 후앙(후앙의 군대)이 자금부족으로 곤란을 겪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어쨌든, 내 설명은 시장상황을 모르는 척 능청을 떨던 은쿠랑가 대령을 납득시켰다. 대령이 확인하고 싶었던 건 내게 최소한의 합리성이 존재하는가 여부일 테지.
“듣고 보니 그렇군요. 이해가 갑니다.”
앞니가 하나 없는 대령의 웃음은 허술한 인상을 자아내는 도구였다. 양념치킨을 먹던 은쿠랑가 대령이 손가락을 빨고서 다시 묻는다.
“그래도 기회가 닿는다면 이 땅에 거래창구를 만들어두고 싶으시겠지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로 자연스럽게 그리 되리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임마누일 그 친구가 아무 생각 없이 나를 대통령 각하께 소개시켜주는 건 아닐 테니 말입니다.”
임마누일이 겉보기로는 그렇게 우스꽝스러울지라도, 브라츠키 크루그 연합의 신사업 개척 및 판로관리를 총괄하는 자리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 인간의 경고에 담겨진 진의는 브라츠키 크루그가 쥐고 있는 기득권을 넘보지 말라는 것이었겠지.’
작금의 아프리카는 장래가 유망하기는 하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지나치게 높아진 사업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 이미 일정 수준의 신뢰관계가 구축되어있는 거래처를 끌어들이는 건 경영의 안정성을 높이는 효과적인 방편이었다.
“그렇다면-”
은쿠랑가 대령이 순박한 음흉함을 가장하여 띄우는 운.
“브라츠키 크루그의 양해를 얻는다는 전제 하에, 주술사 왕과 그 동맹세력들에게 무기를 공급할 기회가 주어질 경우, 회장님께선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으시겠군요?”
“그렇겠지요.”
이 여자는 주술사 왕에 대해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일말의 기대감을 감추며 차분하게 되물었다.
“정보국장쯤 되는 분께서 이런 말씀을 꺼내신다는 건…… 그 기회를 직접 만들어주시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괜찮겠습니까?”
“이런.”
상체를 슬쩍 뒤로 빼는 대령.
“진도가 너무 빠르십니다, 회장님.”
“그럼 아닙니까? 주술사 왕의 활동은 르완다 입장에서도 득이 되는 부분이 많을 텐데요. 리스크가 아주 없지는 않더라도, 르완다 정부의 능력이면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일 테고.”
“그건 그렇습니다만, 지금으로선 일단 장래의 협력 가능성만 확인해두고자 합니다. 우리 르완다에게 회장님은 이제 갓 관계를 맺었을 뿐인 친구이고, 투자처로서의 주술사 왕에게도 불안요소가 존재하니까요.”
“불안요소?”
“알고 싶으십니까?”
“알려주시겠다면.”
짧게 답하고 가만히 응시하니, 대령은 어깨를 으쓱이며 입을 열었다.
“뭐, 이 정도 정보는 호의로 공유해드리지요. 주술사 왕의 칭호와 이름이 두 개의 언어로 구성되어있다는 건 이미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나는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주술사를 뜻하는 「음차위」와 뱀을 뜻하는 「홍고」는 스와힐리어이지만, ‘많은 땅들의 정복자’를 의미하는 「무크와비응이카」는 스와힐리어가 아닌 키헤헤(Kihehe), 즉 헤헤족(族)의 언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무크와비응이카는, 과거 독일의 제국주의자들에게 맞서 싸웠던 헤헤족의 주술사 「술탄 음크와와」와 관련성이 깊다. 주술사 술탄의 이름 음크와와는 무크와비응이카를 두 차례에 걸쳐 변형‧축약해 놓은 것이니까. 무크와비응이카에서 음크와비응이카로, 음크와비응이카에서 다시 음크와와로.
때문에 주술사 왕의 활동에 대응하는 서구세계의 정보기관들은 주술사 왕이 헤헤족과 관련된 인물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다. 모든 게 베일에 가려져있는 주술사 왕의 출신을 짐작할 단서가 그저 자칭하는 이름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은쿠랑가 대령은 그러한 추측을 간단히 부정했다.
“우리 정보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 혹은 그녀는 헤헤족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습니다. 무크와비응이카라는 이름은 도구에 불과한 것이지요. 옛 주술사의 후광을 훔쳐 두르고, 자신과 전혀 무관한 땅에 분란을 일으키기 위한 도구 말입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게 판단하시는 근거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자세한 사정은 말씀드리기 어렵군요. 기밀이거든요. 다만 주술사 왕의 군세, 「활과 화살(우타웨 나 브옘베)」에 침투한 우리 측 요원들이 있다고만 해두지요. 우리는 주술사 왕의 진의가 스스로 밝힌 바와 상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기대를 하긴 했지만, 역시 아프리카 중부 내륙은 르완다 정보보안국의 앞마당이었다. 서구의 정보기관들이 아직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와중에 이쪽은 벌써 요원을 잠입시키는 데 성공했다니. 휴민트(HUMINT/인적 정보자원) 구축에 한해선 이 대륙 최고를 논할 수준이 아닌가 싶다.
‘오늘 밤의 타격을 제대로 해내보일 필요가 있겠군.’
애초에 대충 할 생각도 없기는 했지만.
이런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하듯, 은쿠랑가 대령은 빙글빙글 웃는 낯짝을 유지하고 있었다. 상급자와 마찬가지로 다소 아니꼬운 유형의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