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66화 (266/561)

#31. 승천의 계단 (9)

르완다 대통령은 자신이 몸소 브리핑을 진행했다.

“놈들의 세력권은 두 개의 화산, 「은냐무라기라」와 「은니라공고」를 중심으로 하여 남으로는 키부 호(湖) 연안의 고마(Goma) 시 외곽까지, 북으로는 마이야모토(Mai-ya-moto) 봉우리 주변의 구릉과 고원지대까지 뻗어있네.”

대통령이 지도를 띄워놓고 광점으로 짚어 보인 영역은 콩고 민주공화국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해놓은 영역과 대략적으로 일치했다.

그도 그럴 게, 후투족 강경파 잔존세력의 주요 자금조달 경로가 바로 야생동물 밀렵이었기 때문이다. 거의 맨몸으로 국경을 넘어 도망친 수백만의 후투족 도망자들에게 있어서, 밀렵은 무장을 위한 선택이기 이전에 생존을 위한 필수였다.

“이틀 전, 은니라공고 화산이 폭발했다는 보고를 접했을 때, 나는 놈들의 본거지가 용암과 쇄설류(碎屑流)에 쓸려나가기를 기대했지. 과거 은냐무라기라 화산이 터졌을 때도 해방민주군 놈들이 적잖은 피해를 입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며, 대통령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그러나 헛된 기대였어. 이번 폭발의 피해가 오로지 남쪽으로만 집중되었거든. 산발적으로 여진이 계속되고는 있지만, 화산이 추가로 폭발한다 한들 해방민주군의 비밀거점들엔 영향이 미치지 않으리라는 게 내 참모들의 예측일세.”

대통령의 말에 나는 조금 어이없는 심정을 느꼈다.

“지금 화산이 터진 재난지역에 공중침투로 들어가라는 말씀이신지?”

“그렇다네.”

“…….”

“가시거리가 제한되기야 하겠네만, 그대들이 수행한 야간침투부터가 시각보다는 계기에 의지하는 부분이 더 크지 않았나? 그대들이 선보인 초장거리 침투는 내로라하는 특수부대들도 함부로 따라하지 못할 짓이었어.”

“지진의 위험성도 있지 않습니까.”

“화산이 터질 때 진도 5의 지진이 발생하긴 했지. 허나 피부 하얀 전문가들이 말하기를, 분화든 지진이든 최대고비는 이미 지났다고 하더구만. 있더라도 앞서 터진 것들보다는 위력이 약할 것이라고. 그러니 여진이 오더라도 타격임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주는 수준은 못 되겠지. 적들이 공들여 지어놓았을 물자집적소들도 멀쩡하게 남아있을 것이고.”

대통령이 가능과 불가능을 따지는 기준은 다분히 ‘군인스러운’ 것이었다. 출신이 출신인 만큼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재차 질문했다.

“며칠 더 상황을 지켜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불가하네.”

돌아오는 부정은 단호했다.

“이번 화산폭발로 놈들의 행동이 오히려 더 빨라졌어. 국경을 넘어오는 수십만의 피난민들 속에 얼마나 많은 후투족 첩자 새끼들이 섞여있는지도 파악이 안 되는 상태인데, 더러운 프랑스 놈들은 이 기회를 틈타 해방민주군에게 대놓고 보급을 해주고 있단 말이야. 그것도 평화유지군 재난구호부대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서.”

“평화유지군을 악용하는 건 프랑스의 전통인 모양이군요.”

유사한 과거사를 염두에 둔 내 말에, 대통령은 비틀린 냉소를 머금었다.

“이 땅의 전쟁이 그들에게는 평화인 게지.”

르완다 대학살이 촉발한 제2차 르완다 내전에서 후투족 정권의 패배가 확실해졌을 때, 프랑스는 유엔 평화유지군을 움직여 「터키석 작전(Opération Turquoise)」을 발동시킨 바 있다. 수십만의 투치족 민간인들을 학살한 후투족 민병대 「인테라함웨」, 그리고 그들에게 동조한 친 프랑스 강경파 전체를 르완다 밖으로 탈출시키기 위한 작전을.

이 작전에 참가한 ‘다국적’ 연합군은 2천 5백의 프랑스군과 서른두 명의 세네갈군으로 구성되어있었다. 말만 다국적이지 사실상 프랑스의 독자적인 군사행동이었던 셈.

당연하게도 여기엔 비판이 뒤따랐다. 프랑스가 평화유지군의 중립성을 중대하게 훼손하고 있노라고.

그러나 프랑스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고, 소극적으로 비판을 하던 자들도 오래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아무렴, 아프리카 오지의 흑인들이 좀 많이 죽었을 뿐인 일로 프랑스 같은 강국과 척을 질 나라 따위가 있을 리 있나.

나는 현재 상황에 적용 가능한 또 다른 과거사를 끌어왔다.

“외교적으로 해결을 볼 여지는 없습니까?”

“외교적이라면?”

“콩고 정부의 협조를 구할 순 없겠느냐는 뜻입니다. 프랑스가 그렇게 지저분한 수를 쓰고 있다면, 이쪽은 콩고 정부의 재난지역 통제력을 다른 방향으로 활용하는 것이지요.”

“…….”

“로랑 은쿤다 전(前) 군정총독 건으로 체결한 반군제압 협약이 아직 유효한 것으로 압니다만……. 아닙니까?”

콩고 민주공화국은, 비록 국명에 민주 두 글자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중앙정부의 장악력이 미치기 어려운 지역들에 대해선 해당 지역에 주둔하는 군대의 사령관이 지방행정까지 담당하는 봉건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방행정의 최고책임자를 군정총독(Military governor)이라 부르는 것이고.

로랑 은쿤다는 르완다와 가까운 콩고 접경지대에서 군정총독을 역임했던 반역자다. 군정총독의 권한에 만족하지 못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꿈꾸었던 야심가.

이 인간이 군대를 사유화하고 반란을 일으키며 르완다의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행보를 보이자, 콩고 정부는 눈앞의 대통령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반역자를 잡아다주면, 당신의 골칫거리인 후투족 강경파를 억제하는 데 군사적인 도움을 주겠노라고.

반군을 후원하여 후투를 치는가, 아니면 콩고 정부의 손을 잡고 후투를 억제하는가.

르완다의 대통령이 고른 것은 후자였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대통령이 묘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바딕. 예상보다 이쪽의 사정에 해박하군.”

“유능한 참모가 하나 있는지라.”

“혹시 동행한 자들 가운데 하나인가?”

“아닙니다.”

수연은 후방에 남아 추가적인 정보수집과 행정사무, 그리고 공능법인 개마의 표면적인 활동 지휘 등을 총괄하고 있다. 녀석이 아니면 내가 누구에게 내 빈 자리를 맡기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콩고 정부군은 여력이 없어.”

대통령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저쪽에선 지금 평화협상을 맺었던 동남부의 반군이 재무장을 추진하는 중이거든. 혹시 「마이 마이 바카타 카탕가」라고 들어보았는지 모르겠군.”

“처음 듣는군요.”

“여기까진 모르나……. 뭐, 그냥 내버려두었다간 국토의 4분의 1이 떨어져나갈 위기다…… 정도로 이해하면 편할 걸세. 정말로 위기인지, 아니면 핑계거리가 생긴 김에 내게 엿을 먹이려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약속의 이행을 기대하긴 곤란한 상황이야. 이 빚은 나중에 이자를 쳐서 받아내야겠지.”

콩고는 르완다에 해묵은 감정이 많은 나라다. 후투족 강경파를 일소하겠다는 명분만으로 콩고 전역을 전쟁터로 만드는 데 일조했던 게 르완다와 여기 마주앉아있는 대통령이었으니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여러 반군들에게 무기와 물자와 자금을 대어준 일은 또 어떠한가.

그러므로 콩고에 대한 대통령의 의심은, 사실 대통령 자신이 쌓아온 업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대통령 본인은 원망하려면 프랑스를 원망하라고 할 테지만.’

프랑스가 불씨를 살려두지 않았던들, 콩고와 르완다는 지금보다 훨씬 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을 터였다.

어쨌든 내게 뭔가 숨기는 게 있지만 않으면 되었다. 대통령 같은 유형의 인물을 상대로는 끊임없이 돌다리를 두드려봐야 했다.

대통령이 남은 브리핑을 이어갔다.

“첫 번째 타격목표는 은기코(Ngiko) 서쪽 산자락에 은폐되어있네. 잘 숨겨진 갱도진지이긴 하나, 출입구로 쓰이는 창고와 가옥들, 그리고 환기구들의 배치를 확인해놨지. 침투 과정에서 은기코의 주민들을 주의하게. 특히 주민들 가운데 존재하는 각성능력자들은 전부 다 적들이 배치해놓은 생체 마력장 감지기라고 생각해야 할 거야.”

마법이 돌아온 이후, 마력장의 존재는 은밀한 침투를 주요임무로 삼는 특수부대들에게 줄곧 풀리지 않는 딜레마를 선사해왔다.

전투능력 향상을 위해서는 각성능력자들로 부대를 꾸려야 하지만, 자연적인 각성능력자들의 마력장은 여간해선 은폐할 방법이 없는 존재감을 광범위하게 투사해버린다. 특정 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확고한 적을 상대로는 조용한 침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뜻.

적들이 지속적인 정찰활동을 통해 해당 지역 각성수들의 현황을 꾸준히 갱신한다면, 마력장을 퍼트리는 나무들도 유효한 은신처가 되어주기 어렵다. 집중적인 감시가 이루어지는 경로로 발을 들이는 셈이니까.

그래서 각성능력자로 편성한 특수부대들은 공중침투능력 배양에 갖은 노력을 다 기울이고 있었다. 시대의 변화가 낳은 또 하나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것이다.

대통령이 매사냥 전문가들을 희망한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브리핑 화면이 전환된다.

“패스파인더들이 보고한 작전지역 내 각성수들의 위치는 화면에 보이는 것과 같네. 실제 작전시에는 GPS 좌표를 제공할 테니 참고하도록 하고……. 착륙 후 침투를 개시하는 지점은 과거 용암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로 잡는 게 좋을 거야. 타격목표로부터 5킬로미터 이상 이격되어 있긴 하지만, 적들의 경계망은 거주지의 분포를 따라 주로 동쪽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혹은-”

“혹은, 뭡니까?”

“자신이 있다면 숲속으로 강하를 감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대가 내 앞에서 선보였던 그 나선하강을 이용해서 말이야. 보면 알겠지만, 숲에도 공터가 아예 없는 건 아니거든.”

대통령이 쥔 레이저 포인터가 작은 공터를 가리켜보인다. 직경이 20미터 어림에 불과한 공터는 침투목표에 극도로 근접해있으면서도 적의 감시로부터 자유로운 사각지대일 가능성이 높았다. 더욱이 해당 공터엔 우물로 위장한 환기구가 위치해있기도 했다.

대통령은 계속해서 다음 표적들을 보여주었다. 표적들의 배치는 외줄기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타격목표의 수는 도합 넷이었고, 최남단의 표적은 UN 평화유지군의 주둔지와 가까웠다. 자동차를 타면 10분 내로 현장에 도착할 수 있을 만큼.

탈출경로는 르완다가 아니라 북서쪽 내륙으로 들어가는 방향이었다. 그곳에 르완다의 후원을 받는 마이 마이(무장단체) 하나가 있노라고. 거기서 비행선을 타고 중고도까지 상승하여, 침투할 때와 같이 날아서 돌아오면 되리라고.

혹은 작전지역 주변에서 비행을 시작하기에 적합한 고지를 탐색하는 방법도 있다. 효율을 따지자면 이편이 더 나을 것이다.

브리핑의 끝자락에, 나는 또 한 번 돌다리를 두드렸다.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무엇이?”

“우리가 생포당해서 각하와의 계약을 누설할 가능성이 말입니다.”

“조직의 수장이 이런 임무에 직접 참가할 만큼 자신감이 넘치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가? 그것도 중개인에게 보험까지 단단히 들어놓고서?”

“신중함이 결여된 자기 확신은 만용으로 변질되기 십상이지요. 만약 각하께서 그런 불안요소를 고려하지 않으셨다면, 무언가 다른 사정이 있으리라 보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대통령이 낮은 웃음을 터트린다.

“다른 꿍꿍이 따윈 없네. 그딴 걸 걱정할 필요가 없을 뿐.”

“어째서 그렇습니까?”

“콩고에서 힘 좀 쓰는 반군들은 개나 소나 내 이름을 읊고 다니니까. 하나쯤 더 늘어난다고 달라질 게 뭔가.”

이해했다. 본인이 쌓은 업보라는 말이군.

“그대들이 외국인인 것도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아. 아까 언급한 「마이 마이 바카타 카탕가」만 하더라도 외국인 용병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니 말일세. 내게 들어온 정보가 맞다면, 그 용병들은 암중에서 각국 정부의 후원을 받는 모양이더군. 그 동네엔 세계 최대의 코발트 광상(鑛床)이 깔려있거든.”

사정을 설명하는 한편으로 자신이 구축한 첩보망의 힘을 은근히 과시하는 대통령.

“지금 이 중앙아프리카 일대에서 얼마나 많은 외국인 용병과 밀렵꾼들이 암약하고 있는지 안다면 자네도 제법 놀랄 것이야. 용병과 밀렵꾼의 경계는 희미하지. 우리 르완다만 하더라도 각성체 고릴라를 노리는 밀렵꾼들이 어찌나 많이 출몰하는지 원.”

이어 대통령은 혼잣말하듯 덧붙였다. “중국의 부자들은 고릴라를 왜 그렇게 먹고 싶어 하는 건지 모르겠어.”라고.

“어차피 프랑스는 내게 함부로 혐의를 뒤집어씌우지 못할 걸세. 2천 년대 초반이었다면 모를까, 놈들이 숨기려 애썼던 과거가 어느 정도 밝혀진 지금에 와서는 내게 보복을 하려고 트집을 잡는 걸로 비쳐지기 십상이니까.”

“확실히 그렇겠군요.”

“그럼 이제 의문은 다 해소되었나?”

“타격목표 변경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훌륭해!”

짝, 하고 손뼉을 친 대통령이 도구적인 친근함을 드러내며 브리핑을 마무리 짓는가.

“그럼 브리핑은 여기서 끝내도록 하지. 최종 브리핑은 20시에, 작전은 21시에 개시할 테니, 낮 시간 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해두도록 하게. 그대들을 맞이할 준비는 다 끝내두었으니.”

조금 늦었지만 키갈리에 온 것을 환영하네. 라며, 대통령은 배우처럼 두 팔을 펼쳐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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