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승천의 계단 (6)
침투비행을 위한 이륙은 시완두 호수로부터 루피지 강을 타고 하류로 조금 내려간 지점, 셀루스 국립공원의 관문 중 하나인 음테메레 게이트의 간이 활주로에서 이루어졌다. 시완두 호수 서쪽에도 비포장 간이 활주로가 하나 존재하긴 했지만, 그곳은 보는 눈이 너무 많아 은밀성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황량한 활주로에선 김재환이가 설립한 운송회사 소유의 복엽기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구호물자 수송을 마치고 잠시 정비를 위해 착륙한 것으로 되어있는.
총 세 대의 러시아제 바이칼 복엽기(TVS-2DTS)는 거친 땅에서 험하게 굴려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안정적인 탈것들이었다. 또한 추진계통을 전기 모터로 갈아놓았으므로,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방전」을 보유한 각성능력자라면 그 역량에 비례하여 체공시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양력 효율이 좋은 복엽기는 활주로를 고작 1할 남짓 달리고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조종석에 앉은 부하가 기내방송으로 보고했다.
「이대로 1만 5천 피트까지 상승하겠습니다. 변경사항이 있을 경우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1만 5천 피트, 해발 4572미터는 내가 경태와 상의하여 결정한 고도였다.
‘마음 같아선 고도를 더 높여서 출발하고 싶지만…….’
근래의 아프리카엔 허가받지 않은 비행체들이 많이 날아다닌다고 하니, 비행의 안전성은 고도를 높일수록 함께 높아질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부하들의 체력손실을 고려해야 했다. 1만 5천 피트까지만 올라가도 지상과의 온도차가 28도 가까이 벌어지니까. 여기에 바람을 가르는 비행으로 인한 체감온도 저하까지 감안하면, 부하들은 영하 20도 남짓한 추위를 최소 네 시간 이상 견뎌내야 하는 셈이었다. 그것도 지상에 비해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
이번 비행에 나서는 부하들은 모두 발화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평범한 비행이었다면 역량이 충분한 놈들은 제 앞에 옅은 불을 흩어 한기를 줄일 수도 있었을 터.
그러나 오늘은 그래선 안 된다. 불을 뿌린다는 건 빛을 뿌린다는 것과 같으니까.
그게 아무리 옅은 빛이라도, 단체비행에서 그딴 짓을 해버리면 당연히 눈에 띄겠지. 사방 천지에 눈 좋은 각성능력자들이 널려있는데.
「우우우우웅-」
프로펠러 소음이 동체 내부까지 은은하게 울리는 가운데, 창밖으로 보이는 지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멀게 가라앉았다.
복엽기 편대는 느릿한 상승비행을 이어갔다. 탑승자들이 기압변화에 적응할 수 있게끔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 기내의 기압을 유지해주는 여압장치는 처음 이륙할 때부터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신체강화가 균형적으로 이루어진 각성능력자들은, 중고도의 중간어림까지는 이렇게 상승속도만 좀 조절해줘도 감압병이나 저산소증을 피하는 게 가능했다. 아니었다면 지금쯤 순수 산소호흡으로 혈중의 질소를 제거하고 있어야 했겠지.
조종실에서 다시 한 번 흘러나오는 방송.
「조금 전 1만 피트를 통과했습니다.」
부하들이 차분히 장비를 점검한다. 나 역시 다시 한 번 부하들의 낙하산을 눈으로 훑었다. 비행의 마지막에 낙하산이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대마법사의 존재감을 노출시키고도 백 퍼센트 구해내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다시 약간의 시간이 흘러, 우리는 마침내 1만 5천 피트 상공에 도달했다. 묵상에 잠겨있던 내가 눈을 뜨니, 자리에서 일어선 경태가 손뼉을 치며 부하들의 주의를 모았다.
“자, 다들 준비해! 형님께서 친히 함께하시는 비행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해내보자고!”
강하용 개폐구가 열리자 차가운 바람이 맹렬하게 쏟아져 들어왔다. 내 눈에는 그 색채가 아주 선명한 냉기의 급류.
“뛰어, 뛰어, 뛰어!”
경태의 손짓에 따라 부하들이 차례차례 공중으로 몸을 내던진다. 나 또한 비행고글을 착용하고 마지막 순서로 개폐구를 박찼다.
바박-!
케블라 막이 높은 바람을 받아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 몸 전체에 덜컥 가해지는 충격은 비행을 가능케 하는 양력 그 자체였다.
까마득한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강과 평야가 가슴 깊은 곳까지 선득거리게 만든다. 듬성듬성 흩뿌려져있는 낮은 구름들은 현재의 고도를 짐작케 해주는 시각적인 단서들이었다.
스마트 고글의 증강현실 디스플레이에 고도, 속도, 방위, 좌표 등의 정보들이 떠올랐다. 이어 화면 곳곳에선 작은 마름모꼴의 광점들이 낮은 밝기로 명멸하기 시작했다. 각각의 광점 옆엔 부하들의 식별번호와 미터 단위의 거리 표시가 따라다닌다. 고성능 블루투스 모듈이 부하들의 GPS 좌표 정보를 수신, 가시적으로 변환하여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날이 쇠락해가기만 하던 인텔이 과거의 계열사 하나(Recon instrument)를 부활시켜 내놓은 상품. 매사냥을 특기로 삼는 헌터들은 이 비행고글에 매우 후한 점수를 매기는 편이었다.
「형님. 별 이상 없으십니까?」
골전도 리시버로 들어오는 경태의 목소리.
“난 신경 쓰지 말고 애들이나 잘 챙겨라.”
「옙.」
내가 전체를 보기 좋도록 대열의 후미에 자리 잡긴 했으나,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 지시를 받은 경태는 일견 잡담 같은 대화를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부하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작은 제트 팩의 추력에 힘입어, 속도는 순식간에 시속 250킬로미터에 도달했다.
속도와 고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비행을 이어나가기를 10분여. 끝이 없을 것만 같던 평야의 가장자리로부터 깊은 굴곡과 음영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저게 그 울루구루인가.’
울루구루 산맥. 루구루족의 발원지이자 전통적인 강역. 주술사 왕이 복속시켰다는 베나 씨족이 저 거대한 산맥 어딘가에 근거지를 두고 있을 것이었다. 성전연합의 사자 마무르가 연결점을 찾았다는 음라리 씨족은 아마도 지금 끝을 보이고 있는 평야 어딘가에 마을을 이루고 있지 않을는지.
압도적인 규모의 산맥이 거대한 무게감으로 육박해온다. 움직이는 것은 분명히 내 쪽이건만, 몸을 움직이고 있지 않은 까닭에 자꾸만 감각의 교란이 일어나는 것이었다. 간혹 수직으로 높은 곳까지 발달해있는 구름들은 부딪히면 죽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산맥의 최고봉은 1시 방향으로부터 느릿느릿 시계방향으로 미끄러졌다. 두꺼운 구름들을 병풍처럼 두른 봉우리들을 일별하며, 나는 이 산맥에 종교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 주술사 왕에 대해 생각했다.
주술사 왕에 관한 최상의 시나리오는 내가 그의 믿음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주술적인 우위’를 선보여 복종시키는 것. 그러나 이건 도리어 역효과를 볼 가능성이 있다. 지나치게 전면에 나서는 선택지이기도 하고.
그다음으로 좋은 시나리오는 단계적으로 호의를 사서 암중의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 현재 검은 대륙이 보여주고 있는 역동적인 변화를 감안하면, 주술사 왕에게는 아직도 무궁무진한 잠재력이 남아있었다. 장차 서구세계의 재앙으로 거듭날 잠재력이.
그를 이용하기 위해서라면, 상황에 따라서는 그에게 신종하는 흉내를 낼 의향도 있다.
험한 산간엔 늦은 시간에도 다수의 비행선들이 날아다녔다. 뼈대가 없어 아무 데서나 펴고 접기가 가능하고, 전통적인 열기구처럼 기낭에 갇힌 공기를 달궈 부력을 얻는 연식 비행선들.
비행선들의 설계엔 의외의 통일성이 존재했지만, 누더기를 꼭 닮은 기낭의 생김새는 하나하나의 비행선들이 모두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같은 것을 본 경태가 운을 띄웠다.
「혹시 그거 아십니까?」
“뭐를?”
「저 비행선들의 설계도를 공개한 사람이 영국 사람이라는 거.」
“그랬나?”
「예. 예전부터 제트 추진 자전거나 제트 엔진 바비큐 그릴 같은 괴상한 물건들을 만들기로 유명한 인터넷 방송인이었는데, 이중각성능력자들이 많아지고서부터는 각성능력자들의 힘으로 만들고 굴리는 게 가능한 탈것들을 선보이더라고요. 자기가 설계한 작품들이 세상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흠…….”
「요즘 선한 영향력 어쩌고 하면서 비슷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꽤나 늘었는데, 이 유행의 본격적인 시작을 끊었다고 평가받는 게 바로 그 섬나라 매드 사이언티스트입니다.」
만듦새가 투박한 비행선들의 수송능력은 한눈에 보기에도 1톤이 채 못되어보였다. 탑승자들의 무게를 제외하고 그 절반이나 되면 다행일까.
그러나 산간 전체에 걸쳐 도로라곤 차 한 대 간신히 지나갈 너비의 비포장 흙길 몇 갈래가 전부인 벽지에서, 수백 킬로그램의 화물을 직선으로 운반할 수 있는 수제 운송수단들의 등장은 그 자체로 물류혁명을 촉발할 법했다.
오지 중의 오지까지 새로운 시대의 문명이 스며드는 것이다.
우리보다 한참이나 낮은 고도를 운행하는 비행선들은 의외로 빠른 속도들을 보여주었다. 각성능력자의 힘으로 자아내는 추력이 얼마나 강한가를 떠나, 구조적 완성도가 낮으면 고속비행시의 안정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건만.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은, 비행선의 화물들 가운데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게 선철(銑鐵) 덩어리들이라는 점. 비록 규격은 제각각일지언정, 선창에 들어있는 철괴들은 수제치고는 품질들이 균일하면서도 양호한 편이었다.
나는 경태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그 인간이 용광로 제조법도 퍼트렸나?”
「어,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젠 같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서요.」
울루구루는 가볍게 훑어봐도 지저에 철의 색채가 제법 선명한 땅이었다. 산맥 곳곳에 혈관처럼 뻗어있는, 채산성이 충분해 보이는 광맥들.
그 광맥들을 지키기 좋은 길목마다 무장한 인력들이 배치되어있는 건 결코 우연의 일치 따위가 아닐 것이었다. 낡은 총기나 날붙이 따위를 들고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장전사들은, 복장을 보든 장비를 보든 절대로 탄자니아의 정규군일 리가 없었다.
‘직접 보니 확실해지는군. 저들이 연방정부와 사이가 좋을 수가 있나.’
탄자니아 연방정부는 최근 자신들이 여러 부족들과 불편한 관계가 되었음을 인정했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명확한 언급을 기피해왔다.
그렇게 모호한 태도의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이권다툼이 진행되고 있으리라는 것쯤은 누구나 짐작 가능한 일이었다. 연방정부가 지난날 국익을 명분삼아 바라바이그족의 땅을 수탈했듯이, 이번에도 비슷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루구루 사람들은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철광을 캐내는 게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할 터. 그러나 ‘전체의 이익’을 내세우는 연방정부는, 개발권에 관한 협의도 없이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 잠채(潛採)를 불법으로 간주할 게 뻔하다.
거대한 산맥이 우측 후방으로 멀어지고 전면으로는 광활하고도 평탄한 고원지대가 펼쳐질 즈음, 무전을 통해 부하의 관측보고가 들어왔다.
「2-1이 사령에게 보고. 11시 방향 먼 지상에서 다수의 연속적인 섬광이 관측됩니다. 섬광들의 형태와 분포로 미루어 볼 때 교전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입감. 아까부터 인지하고 있었으니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대꾸한 나는, 날개 막을 움직여 내 위치를 부하들의 아래쪽으로 조정했다. 혹여 유탄이 날아들 경우에 대비한 조치.
지금 내가 활성화한 술식이라곤 기본적인 생체강화에 약간의 발화가 전부인 고로, 영의 회로엔 충분하다 못해 넘칠 만큼의 여유가 남아있었다. 설령 4연장 대공포 따위가 우리를 노리더라도 완벽하게 막아낼 수 있을 정도로.
“진로 고정. 이대로 교전지역 상공을 가로질러 지나가겠다.”
사실 유탄이 날아들 가능성은 희박했고, 날아들더라도 위협이 될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 우리는 지금 일반적인 개인화기로는 닿지도 않을 고도를 비행하는 중이니까.
수평사격을 기준으로, 보통의 소총보다 사거리가 긴 지정사수소총조차 최대사거리는 4킬로미터 이하에 머무른다. 이 일대가 고원이라고 해봐야 해발고도로 5백 미터 남짓. 흉탄이 1만 5천 피트 상공까지 닿기라도 하려면 최소 대물저격총 이상의 강력한 공격수단이 필요하다.
작은 전장에서 번뜩이는 빛들은 꾸물꾸물 기어오듯이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