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제국사냥꾼-262화 (262/561)

#31. 승천의 계단 (5)

르완다 대통령은 내가 요구한 조건변경을 받아들였다. 임마누일이 이야기한 바, 처음엔 조금 불쾌해하는가 싶더니, 내 초장거리 비행계획을 듣고는 매우 흥미로워하며 승낙했다는 것이다. 그런 짓을 해낼 능력을 갖춘 용병들이라면 좀 건방진 게 대수이겠느냐면서.

5월 24일 월요일, 다르에스살람에서 닻을 올린 스텔라 포르투나는 남쪽으로 130킬로미터 가량을 항해하여 루피지 강의 하구로 진입했다. 중류까지의 평균수심이 5미터 이상인 강이고, 미리 파견해놓은 부하들이 주요 경로의 측량을 실시해놓은 덕에 내륙으로 들어가는 데엔 아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세 시간여를 더 이동하여 도달한 장소가 바로 시완두 호수. 내륙활동을 위한 주요 정박지이자 초장거리 침투비행의 출발지점이 되어줄 곳이었다.

“휘유. 붐비네요.”

경태가 광활한 사바나의 경치를 둘러보며 내뱉는 감탄사.

경태의 말처럼, 하마와 악어들의 서식지엔 우리보다 먼저 닻을 내린 여러 척의 선박들이 존재했다. 탄자니아 당국으로부터 내륙수로를 운항할 권리와 호수에 정박할 권리를 구입했을 선객들이었다.

동서의 호변엔 헌터들의 집단 숙영지가 펼쳐져 있었다. 탄자니아군의 감시를 받는 숙영부지였다. 감시탑에 오른 각성능력자 무장병력들은 망원경을 들고 끊임없이 헌터들의 동향을 감시했다. 허가받지 않은 각성체 밀렵을 막기 위함이겠지.

북쪽으로 눈을 돌린 경태 녀석이 이번엔 아이처럼 들떠서는 호들갑을 떨어댔다.

“와, 기린이다, 기린! 형님! 누님! 저기 기린들이 있습니다! 기린이요! 저렇게 무더기로 있으니까 동물원하고는 느낌이 완전 다른데요? 우와, 우와…….”

“…….”

각성능력자의 시력이 아니고선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거리. 북쪽의 호변에선 오륙십 마리 남짓한 기린들이 무리를 이루어 물을 마시는 중이었다. 마력장이 선명하게 보이는 각성체 기린들이 무리의 바깥 경계를 지키고 서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이 기린들과 마찬가지로, 그 외의 동물 무리들도 제 무리의 각성체들을 경계삼아 서로 간에 널찍한 거리를 확보하고 있었다.

이러한 마력장들의 범위 바깥에선, 역시 마력을 품은 사자 한 마리가 가만히 호변을 주시하는 중이다. 불사암에 걸려 쓰러진 어린 물소를 다른 사자들이 앞다퉈 뜯어먹는 동안, 서열이 높아 먼저 식사를 끝낸 듯한 각성체 사자는 피 묻은 입가를 핥으며 사냥꾼의 관찰을 이어갔다. 사자 한 무리에게 물소 새끼 한 마리는 조금 모자란 식사였을 것이다.

‘제법 볼 만하긴 하군.’

무수한 야생을 품은 초원과 호수의 풍광은, 잠시나마 생각을 비우고 머리를 쉬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동물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숙영지와 정박지의 범위는 호수와 호변의 일정 영역으로 국한되었다. 그러므로 호수에 정박할 권리는 경매로 가격이 정해지는 값비싼 것이었고, 정박한 배들은 모터 캠프를 차린 육상의 헌터들을 상대로 자기네 시설을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부분적인 비용 회수를 꾀하고 있었다.

우리가 닻을 내리기 무섭게 불청객들이 밀려들기 시작한 이유였다.

“정말로 안 되겠습니까?”

몇 번째인지 모를 시설 이용 문의. 내가 멀찍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트를 타고 난간 아래로 접근한 미국 민병대 「콜로라도 마운티니어스」 소속의 헌터는, 내 부하의 칼 같은 거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선박정보를 조회해보니 이 스텔라 포르투나는 부대시설이 유독 좋은 편이던데, 그런 배를 빌려놓고 장사를 안 하겠다 하시니 당황스럽군요. 혹시 미리 예약한 다른 단체들이 있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그쪽과 한번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내가 꾸린 선단은 표면적으로 임대사업자 소유로 등록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인들도 이 배가 대략 어떤 시설들을 갖추고 있는지를 조회해보는 일이 가능했다.

스텔라 포르투나는 장기파견활동에서의 사기 유지를 목적으로 여객선이었던 시절의 시설들을 제법 많이 보존해놓은 배인지라, 인프라가 전무한 오지에서 차박을 하고 있는 헌터들 입장에선 군침이 돌 법도 했다.

미국인들을 돌려보낸 뒤엔 호주인들이, 호주인들을 돌려보낸 뒤엔 중국인들이, 중국인들을 돌려보낸 뒤엔 한국인들이 찾아왔다.

이러한 접근들이 매번 순수하게 부대시설 이용에 관한 문의였던 건 아니었다. 문의를 구실 삼아 자연스럽게 안면을 터보려는 자들이 있었던 것.

이런 부류는 주로 이쪽 업계의 후발주자들 내지 중소규모의 헌터 그룹들이 대부분이었다. 대개는 대형 엽사단체들의 2차 협력업체로 딸려와 정부계약의 콩고물을 나누어먹는 인간들.

그 예시 중 하나로서, 보트를 타고 현측으로 접근한 한국계 헌터 하나는 흔들리는 보트 위에서 매우 기괴한 언동을 선보였다.

“개마의 대선배님덜! 전도유망한 후배, 수렵기능사 앙개쩜이가 특공 크루 「슈퍼 꽐라즈」를 대표해서 그랜절 오지게 박습니다! 부디 예쁘게 봐 주십쇼!”

이러면서 뜬금없이 머리를 박고 직각으로 물구나무를 서는데, 분명 한국어를 말하고 있음에도 생소한 외국어를 듣는 기분이 든다. 옆에서 경태 녀석이 턱을 만지작대며 짐짓 진지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첫인사를 그랜절로 하다니. 보기보다 예의가 바른 친구네요.”

“……?”

내가 모르는 젊은 세대의 유행 같은 것인가?

내 의아함을 감지했는지, 경태는 묻지도 않은 것들을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특공은 특수공인능력의 앞 글자를 다르게 딴 것이고, 그랜절은 큰절을 넘어서는 절 중의 절이고 어쩌고 하는 헛소리들을.

고위험 수렵과 유튜브 방송을 병행한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앙개쩜이는, 시설 이용을 핑계로 경태에 버금가는 너스레를 떨어댄 끝에 약간의 술과 식품들을 선물로 받아갔다. 상대해주기에 지친 내 부하가 이거라도 받고 빨리 사라지라는 의미로 내어준 것들. 수다스러운 광대는 ‘백만 개쩌미들’에게 자랑할 것이 생겼다며 신이 나서 돌아갔다.

나로서는 영 이해가 가질 않았다. 여차하면 사람도 죽여야 할 국가 차원의 의뢰에 저런 가벼운 것들이 딸려왔다는 게. 계약 내용엔 분명 주요 활동사항에 대한 비밀유지 조항이 존재했을 것인데, 개인방송을 한다고 떠들어대는 것 역시도.

어쩌면 정부가 정책홍보 차원에서 섭외한 인플루언서일 수는 있겠다. 험한 일은 맡기지 않고, 다만 민사심리전에 써먹을 소스를 뽑아낼 요량으로.

정치적으로 중대한 사태에 우스꽝스러운 희화화를 덮어씌워, 부정적인 여론을 조금이라도 희석시킨다…….

확실히 나쁜 방법은 아니지.

불청객들의 파도가 물러간 뒤 새로운 정박지에서의 경계태세를 확립하는 와중에, 이번엔 탄자니아 국립공원청(TANAPA)의 레인저들이 승선을 요구해왔다. 짜증 가득한 얼굴로 갑판에 오른 검은 피부의 레인저들은 메리옘 바투르 그룹의 장비적응 훈련을 문제 삼았다.

“이륙을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아야지, 왜 금방이라도 뜰 것처럼 시늉만 반복하고 있는 겁니까? 지켜보는 입장에서 얼마나 피곤한지 아십니까? 우리가 하루 종일 여기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날아다니는 탈것들의 소음, 특히 제트 엔진이나 로켓 엔진을 사용하는 것들의 거친 굉음은 야생동물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쉽다.

광활한 내륙에서 낮은 빈도로 이루어지는 비행이라면 모를까, 이 호수와 같은 집단 정박지 및 단체 숙영지에서 돈만 아는 헌터들이 무분별한 이착륙을 하도록 내버려둘 순 없는 것.

그래서 탄자니아 환경당국은 정박지와 숙영지 단위로 시간당 총 소티(Sortie : 출격 횟수) 제한을 걸어놓았다.

헌터 단체들마다 일일 기본허용 소티를 정해주고 초과분의 출격에 대해선 추가 환경분담금을 내도록 한 것은 덤. 야간출격엔 할증이 붙기까지 한다.

이런 통제에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는가 싶은 의문이 들긴 하지만, 탄자니아의 관료들 입장에선 나름 고민을 해서 내놓은 제도일 터였다. 경제적 이익과 환경보존을 저울질한 끝에 도달했을 애매한 중간지점.

날아다니는 탈것들은 비행정보를 자동으로 기록하고 송수신하는 장치들을 달고 있긴 하다. 그러나 과세를 피하려는 헌터들이 해당 장치를 해킹 또는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정박지와 숙영지에선 공무원들의 육안 감시가 병행되었다.

애젊은 위구르인들이 기묘한 분위기로 지켜보는 가운데, 내 부하 하나가 공무원을 좋은 말로 달래고 나섰다.

“우리는 오늘 주간비행계획이 잡혀있지 않습니다. 이건 그저 장비적응을 위한 연습일 뿐이죠. 발화 능력을 보유한 헌터들의 비행장비는 발화 체임버를 벗어나지 않게끔 능력을 투사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 여러분도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요?”

이른바 영점잡기라고 불리는 장비적응과정. 기체 각부의 온도 센서와 계기의 연소실 압력균형센서를 봐가면서 능력을 투사하고, 그렇게 잡은 영점을 감각적으로 숙달해야만 원활한 비행이 가능하다. 이는 기수의 역량에 따라 체임버의 규격이 달라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공무원은 불퉁거리는 어조로 따졌다.

“그런 연습은 여기 오기 전에 끝내셨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선생님들 사정이 어떻든 우리가 계속 주의를 할애해야 한다는 건 달라지지 않습니다.”

이러면서도 조금이나마 누그러진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가는 말이 고와서가 아니라 무표정한 위구르인들의 스산한 주시 때문이었다. 신경이 쓰이는지 계속해서 흘낏거리는 공무원들.

공무원들을 상대하던 부하는 소정의 뇌물과 먹고 마실 것을 건넴으로써 공무원들을 돌아가도록 만들었다. 못 이기는 척 바구니를 받아든 공무원들은 그 안에 든 먹거리들을 보고 너 나 할 것 없이 군침을 삼켜댔다.

돈보다 먹을 것에 더 선명히 반응하는 모습들을 보건대, 오랫동안 ‘구시대적인’ 음식을 구경하지 못한 듯하다.

“네 동생들의 분위기가 흉흉하더구나.”

느린 걸음으로 다가서서 건네는 내 말에, 메리옘은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조아렸다.

“용서하여주십시오, 저희들의 주인이시여. 무례한 불신자들이 감히 당신께서 지시하신 일에 훼방을 놓았기에, 아직 스스로를 다스리는 데 미숙한 동생들이 차마 의분을 다 억누르지 못하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야지. 너를 믿고 있겠다.”

“……높으신 분의 은혜로우신 말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메리옘은 “믿고 있겠다.”는 말에 가볍게 어깨를 떨었다.

나는 메리옘에게 너희 그룹이 암중의 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해두었고, 메리옘은 동생들을 지도하며 내 기대에 부응하려 애쓰고 있었다.

암중의 칼이 쉬이 살기를 드러내어선 곤란하다.

내가 돌아서려는 찰나, 메리옘이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오늘 밤, 먼 곳으로 향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감히 여쭙습니다. 혹시 제 동생들에게 높으신 분을 시위(侍位)할 기회가 있겠는지요?”

메리옘 그룹에도 윙슈트 비행이 가능한 인력이 존재하기에 나올 수 있는 요청. 자꾸 보채는 듯한 기분이 들어 이쯤에서 한번 나무라 둘까 싶었으나, 생각해보면 이 또한 광신의 부작용이 아니겠는가.

나는 ‘구세주’와 함께 나온 첫 번째 원정으로 위구르인들이 종교적 흥분 상태에 빠져있음을 고려하여 어조를 차분하게 다듬었다.

“오늘은 아니다.”

“그렇습니까…….”

“실망하지 마라. 그리고 너무 서두르지도 마라. 이미 말했듯이, 나는 너희를 칼로 벼려내고자 거둬들인 것이다. 쓰지도 않을 칼을 벼리는 데 공을 들일 이유가 없지.”

“송구합니다. 제가 주제넘은 말씀을 올렸습니다.”

눈을 내리까는 메리옘을 바라보던 나는, 메리옘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아……?”

잠시 당황하는 메리옘.

메리옘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타인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이슬람 문화권의 금기라고 알고 있었다. 빈번히 교류하는 무슬림 딜러들 다수가 동남아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들이었고, 그들은 한결같이 머리에 사람의 영혼이 깃들어있노라 이야기했으니까.

그러나 사이비 교주로서의 메리옘은 내게 반대되는 내용의 조언을, 실질적으로는 요청에 가까운 느낌으로 올렸다. 제 동생들을 칭찬하거나 격려하거나 위무할 일이 있으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좋으리라고.

「샤하바(예언자의 동반자) 아부 우마마 알 바힐리가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전하기를, “고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라. 그것은 선한 행위이니, 신의 이름으로 행한다면 그의 손이 닿는 모든 머리카락에 축복이 깃들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는 본디 율법 상의 가족(마흐람) 중 보호자에게만 허용되는 친애의 표현입니다. 고로 고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라는 말은 고아를 자신의 자식과 동등하게 보살피고 보호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이지요.」

「하물며 저희는 당신께서 정수리에 축복을 부어 권능을 허여해주신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당신께서 머리를 쓰다듬어주신다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자비로운 분이시여, 제 동생들은 무척이나 기뻐할 것입니다.」

한마디로 머리를 쓰다듬는 행위는 이슬람의 교리상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특히나, 피로 이어진 보호자가 존재하지 않는 메리옘 그룹의 일원들에게는.

이러한 조언을 나는 좀처럼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메리옘의 말 속에 못내 껄끄럽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던 까닭.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들은 이미 나를 구세주로 숭배하는 자들이었다. 이제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한다 한들 더 껄끄러워질 게 무어란 말인가.

구세주와 보호자 사이에 무슨 간극이 존재한다고.

한쪽의 가면을 쓰면 다른 쪽의 가면은 자연히 딸려오는 것이지.

“…….”

메리옘의 신경망이 미쳐 날뛰는 수준으로 번뜩거린다. 사이비 개신교회의 목사로부터 안수기도를 받는 열성신도의 반응이 이러할까? 적어도 외견상으로는 닮았는데.

제 조언의 첫 적용대상이 자신이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해보았던 모양이다.

손끝에 쓸리는 머릿결은 급양 상태를 반영하는 양호한 질감이었다. 처음 세례를 내려줄 때와는 많이 달라진 것. 영양결핍으로 인한 각질도 보이지 않는다. 역시 사람은 밥을 잘 먹어야 한다.

부드러운 쓰다듬기를 이어가며, 나는 딸꾹질을 시작한 메리옘에게 일렀다.

“이미 몇 번 말했듯이, 너희는 조금도 서두를 필요가 없다. 내 아래에 머무는 이상, 너희의 운명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알아듣겠나?”

“네, 네.”

그 정해진 운명이라는 게 무엇인지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도, 메리옘은 초점이 흔들리는 눈으로 고장 난 기계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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